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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시간의 틈새와 아이들 下
게시물ID : dungeon_6279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2
조회수 : 14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22 20: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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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이라…. 단순한 실험동물에게 이름은 너무 과분한 것이 아닌가?"

 쇠사슬에 매인 아이가 움찔거렸다. 아이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려 말하는 이를 보았다.

 "자네에게 이름이란 것은 필요가 없어. 왜냐하면 자네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아이는 증오와 공포가 뒤섞인 눈길로 말하는 이를 보고 있었다.

 "자네는 그저, 부모에게 버림받은 누군가, 마을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은 누군가, 추방당한 누군가, 세상을 저주하던 누군가, 그리고 실험동물인 누군가로 있으면 족해."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래도 아이는 말하는 이에게 다가가지 못 했다. 아이는 소리를 질러가며 더욱 가까이 다가가려 했지만, 거리가 좁혀지기는커녕 얻어맞고 나가떨어져 더욱 벌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 어디에도 ██이라는 사람이 있을 곳은 없어. 아니, 있을 필요가 없는 거지."
'나한테서 '나'를 가져가지 마!'

 아이는 절규했다. 울부짖었다. 하지만 모든 말 하나하나가 재갈에 가로막혀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는 소리가 될 뿐이었다. 아이의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의 틈새를 헤매던 소녀와 소년은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어느 별의 시간이 끝나는 순간. 조금씩 응축해가던 별이 한순간 강대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폭발과 함께 사라져갔다. 그것을 보며 한 명은 경악을, 한 명은 근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저것이 바로 끝이다. 저것이 바로 죽음이며, 종말이다."

 어느샌가 소녀와 소년의 뒤에 나타난 사자는 아이들과 함께 별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건…별의 수명이 끝난 걸까?"
 "다르다. 저것은 멸망으로 내몰린 최후. 자연스러운 끝은 다음을 남기지만, 멸망으로 내몰린 끝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너무해…."
 "저런 최후가 점차 늘고 있다. 그 결과 다가오는 것은 모든 시간의 끝. 더 이상 흐르지 않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소녀가 사자의 말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와중에 소년은 웃고 있었다. 근사함을 표하는 웃음만큼 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부러운 듯이. 하지만 그걸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소녀는 그걸 본 이후부터 한시도 빠짐없이 사자와 붙어있었다. 끊임없이 의논하고, 끊임없이 무언갈 시도했다. 사자가 말한 '모든 시간의 끝'을 보지 않기 위해서. 그런 시도를 거듭할수록 소녀만의 법칙은 점차 강력해지고 다양해져갔다. 하지만 그 어떠한 법칙도 끝을 막는 데에는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 했다. 그럼에도 소녀는 계속 시도와 좌절을 반복했다.
 소년은 소녀의 그런 시도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저 멍하니 눈에 담고 있었다.

 "얘! 너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
 "너도 같이 하자. 응?"
 "…."
 "서로 자기소개도 하고. 응?"

 종종 소녀는 소년의 손을 잡아끌며 함께 하자고 권유했지만, 소년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입을 연 것이 마치 거짓말같이 느껴질 정도로 소년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래도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끝을 막는 것도, 소년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번에도 어김없이 함께 시간의 끝을 막자고 권유하던 소녀에게 소년이 말을 걸어왔다.

 "내가, 왜?"

 그 짧은 말에 소녀도 소년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소녀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의외의 상황에, 소년은 본인마저 잊고 있던 자신의 소리에, 말에 놀란 것이었다.

 "어…말…한 거야?"
 "…했, 네."
 "마, 말을 할 줄은 몰랐는, 아니, 그, 방금 뭐라고 했었어? 다시 말해줘!"
 "…내가 왜?"
 "…네가 왜 날 도와야 하느냐는 의미야? 그렇게 들린다면…강요는 아니니…어, 아니야?"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멍한 눈길로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서서히 열린 입에서 나온 말은 힘은 없지만,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말이었다.

 "…내가, 왜, 시간의 끝을…막아야 해?"
 "왜냐니…그야말로 모든 게 끝난다는 거잖아. 그건 싫으니까…."
 "네가 싫다고, 나도 싫어해야 해?"
 "보통은…싫어하잖아."
 "난 좋은데."

 소년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 웃음은 예의 별의 최후를 보며 지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근사한 것을 본, 부러움을 담은 그 웃음에 소녀는 그만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모든 것이 멸망하면, 공평하고 좋잖아. 안 그래?
 "…아, 아, 안 그래! 전혀 좋지 않아! 모든 게 멸망하면 공평이고 뭐고 없어! 그대로 끝인 거야!"
 "…그만큼 공평한 것도 없는데…."

 그 말을 끝으로 소년은 다시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다. 소녀는 무어라 말하려는 듯 소년의 앞에서 어물거렸지만, 이내 몸을 돌려 소년에게서 멀어졌다.


 잠에서 깬 소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소녀가 가지런히 앉아 있었다. 소녀는 곧은 눈빛으로 소년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은 금세 관심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얘, 우리 서로 자기소개하자."

 소녀가 무슨 말을 꺼내도 소년은 반응하지 않았다. 여태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쭉 그럴 셈이었으니까.

 "나는 아세트야. 아세트 아미나. 마계 테라코타 소속이었어. 나름 천재라고 불렸고, 지금은 이곳에서 찾은 시간의 패밀리어의 힘과 메멧의 도움으로 시간의 끝을 막으려고 하고 있어."
 "…."
 "너에 대해서 말해줘. 전부 들어줄게."
 "…."
 "…네가 말해줄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 있을게. 계속 기다릴게. 그걸 위해 연구도 얼마든지 미룰 거야. 그러니까 너에 대해서 들려줘."

 소녀, 아세트는 미동도 없이 소년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소년은 처음엔 몇 번 흘긋거리며 아세트를 보았지만, 금세 그 약간의 흥미도 사라졌는지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기만 했다. 어차피 지치면 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아세트는 끈질겼다. 앉은 자리에서 시간이 얼마나 지나가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소녀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시간의 끝을 막는 연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소년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 상황에 먼저 지쳐버린 쪽은 소년이었다.

 "왜, 대체 왜 나에 대해서 듣길 원하는 건데?"
 "너의 말에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무 이유도 없이 타인의 멸망을 바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무 이유도 없이 멸망을 평등이라고 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 이유를 알려면 너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정말 이유가 없다고 한다면 어쩌려고?"
 "세상에 이유가 없는 것은 없어. 그러니까, 너에 대해서 들려줬으면 좋겠어."

 아세트는 담담하게 제 생각을 차근차근 말했다. 그러면 소년 역시 제 이야기를 차근차근 말해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소년은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아세트에게서 시선을 피하는 것이었다. 어딜 봐도 자신에 대해 말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아세트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말해줄 마음이 생길 때까지.

 "혹시 말해줄 마음이 생긴다면 다시 여기로 와줘. 난 계속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소년이 그 시선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자리를 옮기려고 할 때 아세트가 한 말이었다. 그 말에 소년은 차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정말 기다릴 것이 뻔했으니까.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끝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됐으니까.
 결국 소년은 아세트의 끈질김에 지고 말았다.

 "제발…말할테니까…기다린다느니 뭐니 하지 마…. 그럴 가치도 없으니까…."
 "고마워."
 "고마워할 가치도 없어. 들을 가치도 없어. 기다릴 가치도 없어. 대체 뭘 듣고 싶어 하는 거야? 난 얘기할 것도 없는데?"
 "너에 대한 것이 듣고 싶어. 너의 옛날이야기를 듣고 싶어. 사람의 모든 언행은 옛날에서부터 오는 거니까."

 아세트의 말에 소년은 얼굴을, 입 주변을 쓸어내렸다.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소년을 곧게 바라보는 아세트의 눈길에, 소년은 마른침을 삼키고는 서서히 자신의 옛날을 풀었다.

 "나, 나는…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누군가야. 마을에서 박해받던 누군가야. 추방당한 누군가고, 제국의 병사에게 포획당한 누군가야. 그리고 실험동물인 누군가이면서, 세상을 저주한 누군가야."
 "…응?"
 "그 어디에도, 나라는 것은, 없어. 그게, 나야."

 소년은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아세트를 보고 있었다. 아세트 역시 살짝 찡그린 표정으로 소년을 보고 있었다.

 "태어난 게 죄인 게 나야. 이름조차 가질 자격이 없는 실험동물인 게 나야. 그런데, 이젠 실험마저 끝나버렸어. 내가 살아있어야만 하는 이유마저 사라졌어. 그러니까 나는 죽는 게 옳아. 애초에 여태껏 살아있는 게 이상한 거…."
 "잠깐, 잠깐만!"

 아세트는 다급하게 소년의 말을 가로막았다. 소년은 말을 멈추고 아세트를 보았다. 소녀는 조금 화가 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군가? 이름이 없어? 그럴 리가 없잖아!"
 "…네가 말했잖아. 너도 실험에 참여했다고. 그럼 알 거 아냐. 이름이 없다는 거."
 "그래. 나는 널 치료하는 실험에 참여했었어!"
 "그럼 내 이름이…."
 "루엔! 루엔이야! 너에 대한 기록인데 네 이름이 없다는 게 이상해서, 혼날 걸 각오하고 온갖 기록이란 기록은 다 뒤져보고, 계속 물어봤어. 그리고 끝끝내 알아냈어! 넌 루엔이야!"
 "…뭐?"
 "그래도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이름을 부르는 게 옳다고 생각해서 자기소개를 할 때까지 기다렸어. 그런데…이름이 없다고 할 줄은 몰랐어. 그러니까 네 이름 줄게."

 아세트의 말에 소년은 제법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름을 주겠다는 말 때문일지, 잃은 줄로만 알았던 이름을 되찾았기 때문일지, 아니면 아세트의 말 자체에 어이를 잃어서일지는 알 수 없었다.

 "이름을 준다고? 그게 내 이름이라는 보장은 어딨는데? 아니, 이제 와서 이름이 무슨 소용인데? 이름을 가진다고 내 태도든 뭐든 달라질 것 같아?"
 "아니, 그렇게는 생각 안 해.
 "내가 이곳에 와서 해온 생각은 하나밖에 없어. 죽고 싶어. 살아있어야 할 의미조차 없으니까, 죽고 싶어!"
 "살아있어야 할 의미는 만들면 돼."
 "억지로 만들 이유는 없잖아. 세상의 멸망을 막아야 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세상이 멸망하면 좋잖아. 날 버린 사람들도, 날 박해한 사람들도, 날 내쫓은 사람들도, 날 이렇게 만든 사람들도! 나도! 모두 멸망해버리고 좋잖아! 내가 왜 굳이 멸망을 막아야…!"
 "진정해."

 아세트는 절규하듯 외치는 소년의 말을 가로막았다. 가쁘게 숨을 내쉬는 소년에게 아세트는 찬찬히 몇 번이고 진정하라고 말해주었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라고 말해주었다.
 소년이 어느 정도 진정한 듯이 보이자 아세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소년의 두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네가 겪은 일을 알지 못 해. 네가 아니니까. 너에게 들은 얘기와, 너의 반응들로 네가 겪은 일들을 알아내야 해. 하지만 그 정도로 네가 겪은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런데 나한테 살 이유를 만들라고? 시간의 끝을 막는 거로?"
 "아니,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지금부터 난 너에게 어떤 권유도 하지 않을 거야. 하기 싫다고 했으니까. 그걸 넘어서 원한다고까지 했으니까."
 "…그럼 대체 뭘 만들라고 한 거야? 이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내가 되어줄게. 네가 살아야 하는 이유."

 소년은 어안이 벙벙해져 무슨 소리냐 물었지만, 아세트는 그 말을 끝으로 꼭 잡고 있던 소년의 손을 놓고 끝을 막기 위해 연구하던 자리로 천천히 걸어갔다. 소년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아세트를 불렀지만, 아세트는 멈추지 않았다. 아세트는 계속 걸어가며 마저 입을 열었다.

 "날 위해 살아줘. 그럼 나도 널 위해서 살 테니까.
 "…야!"

 아세트는 늘 하던 대로 멀찍이 떨어져 사자를 불렀다. 그리고 연구를 이어나갔다. 잠시 서있던 소년은 다시 제자리에 주저앉아 늘 그랬듯이 무릎에 고개를 처박았다.
 바뀌는 것은 없었다.


 아세트는 여전히 모든 시간의 끝을 막기 위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사자의 도움을 받아, 시간의 패밀리어의 도움을 받아,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다시 도전했다. 소녀만의 법칙은 점점 정교해지고 강력해지고 다양해졌다. 그래도 끝에서 멀어지는 일은 없었다.
 소년은 그것을 계속해서 지켜봤다. 소녀의 연구, 소녀의 실패, 소녀의 좌절, 그리고 다시 도전하는 모습을. 홀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또 지켜봤다.
 홀로 뒤처지는 자신을, 홀로 나아가는 아세트를.

 제자리에 멈춰있는 자신을 보며, 진전이 없는 자신을 보며, 끊임없이 전진하는 소녀를 보며, 포기하지 않는 소녀를 보며, 소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것을 느꼈을까.


 어느 순간이었다. 사자와 말을 나누던 아세트의 뒤에 소년이 바로 서있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서있었다. 소년은 천천히 입을 열어 자신을 꺼냈다.

 "…내가…해야하는 일을…알려줘…. 나만 혼자 두고 가지 마…. 나도…나도, 같이…."

 바뀌는 것은 있었다.
 소년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다른 것이 아닌 소외감이었다. 결코 생길 리 없었던 그 작은 감정을 시작으로 소년은, 루엔은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분명히, 바뀔 것이다.

─ 

Acet Amina 크리에이터

Luene 다크나이트


안녕하세요. 흔한 아라드의 글쟁이입니다.
혼파망인 상태에도 글을 옮깁니다.

하지만...딱히...드릴 말씀이...없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저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네요.

오늘의 아라드월드는 놀라게도 치유물이었습니다.
독자를 치유하는 게 아니지만...

그럼, 즐겁게 읽으셨길 빌겠습니다.

1. 마음이 여린 어린 아이의 정신을 개박살을 내려면 어떤 말을 해야할지 고민했습니다.
더욱이 그 말을 하는 것이 황제니 절대 저급한 말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고민의 결과가 도입부였습니다.

2. 전 다크나이트와 크리에이터의 나이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봤자 무의미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니까 닼나크리파세 읍읍

3. 도입부에서 아이의 외침은,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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