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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인사 中
게시물ID : dungeon_6281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1
조회수 : 13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23 2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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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달이 뜨지 않는 밤, 별빛으로는 앞을 밝히기 힘든 밤. 그런 밤은 다른 날보다 행동하기 쉽다. 어두운 만큼 남들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밤이 깊은 만큼, 예전에 계획했던 일을 실행하려고 했다. 모두가 사용하는 우물에 약한 독을 푼다는 계획. 틀림없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F, 이쪽이다."

 "기다리지 말고 달려!"


 순찰을 도는 인원이 없었더라면 말이다. 만약 그랬더라면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조용히 모든 일이 잘 진행됐을 것이었다.

 마을의 누군가가 우리를, 나를 알아보고 신고를 한 건지, 아니면 독단적인 수색인 건지, 여러 명의 무장한 사람이 등불을 들고서 마을을 순찰하고, 집 안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이든, 허리춤이든, 주머니 속이든, 어디에든 한 장 씩 지니고 있는 것은 나와 M의 수배서였다.

 예상외의 상황과 제대로 준비를 끝마치기 전에 들이닥친 사람들. 한눈에 날 알아본 빌어먹을 자식. 우리는 준비한 것을 시도해보기도 전에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짜증나게, 진짜! 누가 찔렀나 봐!

 "언성 높이지 마라. 들킨다. 말하면서 달리지 마라. 혀 깨문다."


 여기저기서 이쪽으로 갔네, 저쪽으로 갔네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닌 밤중의 갑작스러운 소란에 집집마다 불이 켜지고 있었다. 주변이 밝아져서 좋아질 게 없는데.

 답답했다. 기껏 준비한 것들이 헛수고가 되어버린 것에 화가 났다. 계획을 시작조차 못했다는 것이 분했다. 달리면서 뒤를 몇 번이나 돌아봤는지 모른다. 그대로 도망가기엔, 너무나 안타까웠으니까.


 "F, 안 된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날 말리는 M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쩜 그리 내 생각을 잘 아는 것일까.


 "이대로는 못 가."

 "도망가는 게 옳은 거다. 달려라."

 "싫어…짜증 나서 못 가겠어!"

 "멈추지 마라. 붙잡힌다."

 "저것들 다 죽이고 가면 되는 거잖아!"

 "언성 높이지 마라. 달려라. 멈춰선 안 된다. 달려라."

 "이대로는 싫어!"


 들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화가 나서,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 너무나도 분해서, 크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아니, 오히려 찾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던 걸지도 모른다. M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손을 세게 붙들고 달리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놓으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M은 놓아주질 않았다. 뒤쪽에서는 이쪽에서 소리가 들렸느니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달려선 안 되는데. 멈춰서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렸다가 다 죽여야 하는데.

 M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어찌나 세게 쥔 것인지 뿌리칠 수도 없었다. 내 심정을 아주 잘 알 텐데도 멈추지 않는 M이 원망스러웠다.



6

 우리는 달렸다. 밤새도록 달렸다. 아침이 되어도 달렸다. 최소한의 쉬는 시간만 가지면서 잠도, 식사도, 모든 걸 뒤로 한 채 달렸다. 우리의 뒤를 쫓는 기색이 줄었는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계속 달리기만 할 것 같았던 M이 돌연 멈춰 섰다.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춘 것은 아니었다. 혹여나 놓칠세라 굳게 붙잡던 손을 놓아줬으니 말이다. 어찌나 세게 붙잡았던 건지 손이 다 얼얼할 정도였다.

 나는 드디어 풀려난 손을 몇 번 쥐락펴락 한 뒤, 곧바로 M의 뺨을 올려붙였다. 그 뒤를 바로 잇는 것은 원망의 말이었다.


 "왜 그런 거야! 대체! 왜! 왜 막았어!"

 "…F."

 "왜 못 죽이게 한 거야! 시작을 했으면 뭐라도 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 했잖아!"

 "F, 네가…."

 "우리 원래 계획은 그대로 물거품이고! 우릴 엿 먹인 것들에게 피해도 못 줬어! 그것들 머리라도 베었어야 했는데! 몰살이라도 시켰어야 했는데!"

 "F! 내 말을 들어!"

 "싫어! 들어봤자 또 뭣 같은 잔소리만 늘어놓을 거 아냐! 듣기 싫어! 그딴 거 들을 거 같아?"


 난 두 손을 쥐고 M을 두들겨댔다. 그런 내게 M이 무어라 했지만, 내 말을, 내 심정을 털어놓기 급급해 제대로 듣지 못 했다. 아니,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을 수 없을 만큼 M에게 화가 난 상태였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내게 화가 난 상태였다.

 내가 뭐라 말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되는대로 쏟아놓기만 하던 와중 대뜸 이마 쪽에 강한 고통이 밀려왔다. 골 깊숙이 꽂히는 고통에 제정신이 번쩍하고 밀려들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사정없이 휘둘러대던 두 팔은 굳게 붙들려 있었고, M의 이마는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F, 내 말을 들어라."

 "…."

 "…네가 얼마나 상심했을지 알고 있다. 제국이라면 뭐든 증오하고 미워한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런다고 해서 널 붙잡으려 드는 놈들을 족치러 가겠다는 게 가당키나 한 얘기 같은가?

 "…그딴 오합지졸들이 내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해? 날 위협이나 할까?"

 "네 실력에 자만하지 마라. 언제나 예외를 생각하고 움직여라. 네 실력으로 그깟 오합지졸들을 백이고 천이고 해치울 수 있다 하더라도, 만에 하나를 생각해라."

 "그렇게 신중해서야 누구 하나 죽이겠어? 그리고, 날 이해한다고 했지? 그럼 말해봐. 왜 막았어? 마을 한복판에서 싸우면 죄 없다는 사람들이 다칠까 봐? 그까짓 오합지졸들이 무서워서? 내가 질까 봐? 말해봐! 당장!"


 순간 내 손목을 붙든 힘이 강해졌다. 하지만 그런 것은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원망의 눈길로 그를 노려보는 데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무서운 건 없다. 두려워하는 것도 없다. 그저 만 가지 일 중 하나만을 걱정할 뿐이다. 단지 그것 때문이다.

 "걱정되는 것 딱 하나 때문에 도망을 쳤다고? 일을, 그까짓 놈들 때문에, 망쳐버렸는데! 도망칠 생각만 한 거야? 화도 안 나? 분하지도 않냐는…!"

 "그럴리가 없잖나!"


 그는 내 말을 끊고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소리를 지르는 M의 표정은…어딘가…화가 난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는데 분하지 않을 리가 없다! 화나지 않을 리가 없다고! 나도, 그 같잖은 것들이 짜증 나서 어찌할 수가 없단 말이다! 내가 그 정도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 정도의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냐는 말이다! 나도 사람이다! 나도 그 정도는 느낄 수 있다고! 네가 느끼는 감정을! 나도 느낄 수 있단 말이다! 그래도! 잡힐지도 모른다는 정말 만에 하나를 조심해 억눌렀다! 참았다! 나중을 위해서 견뎠다!"


 M은 여태껏 억눌러온 것으로 생각되는 말들을 토해내듯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을 정도로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우리의 일에 진전이 없을 때, 넌 내게 답답하다며 불평했다! 그리고 난, 그걸 이해했다! 나도 답답하다 느꼈으니까! 일을 어이없는 실수로 그르쳤을 때, 이게 뭐냐며 짜증을 냈었다! 그것도 이해했다! 나도 그렇게 느꼈으니까! 네가 내게 해온 말들! 행동들! 전부 다 이해했다!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이해하지 못하는 건,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그런데! 대체…!"


 M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를 악물고서, 짜증이 잔뜩 담긴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입이 멈추자 갑작스레 정적이 찾아왔다. 아니, 씩씩대는 숨소리만이 크게 들려왔다.

 M은 강하게 쥐고 있던 내 두 손목을 내치듯이 놔줬다. 그리고 그대로 근처 나무에 기대어 밤새도록 달린 피로를 풀려는 듯, 여태 한 말싸움의 피로를 풀려는 듯, 눈을 감아버렸다.

 나 역시 나대로 피로가 쌓인 상태였기에 근처에 대충 몸을 뉘여 잠을 청했다.



7

 잠을 한숨 자고 머릿속이 말끔해지자 내가 한 행동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억지를 부리고, 악을 쓰는 꼴불견인 모습들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그렇게나 부끄러운 행태들에 절로 사과의 말의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M은 내 사과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짧은, 웃음일지 탄식일지 알 수 없는 소리만을 냈을 뿐이었다. 그것이 내 사과를 받아준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여전히 화가 나있다는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 M이 어딘지 모르게 변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물게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고 해서 정말 변한 것일까,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가 내뱉는 말은, 여전히 딱딱하고, 거침없고, 정도랄 게 없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무언가가 부족하게 느껴지곤 했다. 무엇이 부족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 가는 것은 없었다. 정말 부족하기나 한 걸까?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다음 일을 의논하면서 바로 답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짧은 고민 끝에, 어두워 보이는 듯한 낯빛으로 승낙 혹은 거절을 말한다는 것뿐이었다.


 그가 하는 생각은, 척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깊어졌다. 그렇다고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느냐 물으면 두 눈을 지긋이 감았다 뜨며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다른 생각을 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나는 그의 잡념을 덜어주고자 노력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각하느냐는 시답잖은 농담부터 그가 알려준 방법, 지쳐 쓰러질 때까지 대련하는 것까지. 믿을 수 있는 동료로서 노력했다. 그럼에도 그의 잡념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그는 종종 허공에 내뱉듯이 질문을 던지곤 했다. 우리가 벌이는 일이 잘 끝날까?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잘 될까? 별다른 일은 없을까? 언제쯤 끝날까?

 그저 혼잣말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 질문들에 늘 긍정적으로 답해주었다. 잘 될 것이라고. 무사히 끝날 거라고. 잘 끝날 거라고. 그럴 때마다 M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별말도 없이 그저 빤히.


 한 번은 그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넨 적이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쉴 새 없이 제국을 증오하느냐고. 지치지 않느냐고. 나는 그 물음에 아주 당당하게 답해주었다.


 "지칠 때마다 머릿속으로 쓰레기들의 목을 따내는 걸 상상하거든. 그것만으로 기운이 나니까."

 "…그럴 거 같다고 생각은 했다만."

 "후후, 뻔한 여자지? 그래도 마냥 상상으로 버티는 건 아냐. 만약 혼자였다면 이렇게 오래 맞서진 못 했을 거야. 네가 있어서 괜찮은 거지."


 내 말에 M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띠면서 날 바라보았다. 그런 표정을 지을 정도인 걸까?


 "둘이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 보면 금세 즐거워지니까. 혼자선 할 수 있는 게 적지만, 둘이서는 많잖아."

 "…하, 역시…네놈답군."

 "아하하, 그런가? 그것도 그건데, 일단은 틀림없이 해낼 수 있을 거라고도 믿고 있거든. 너를 믿고, 나를 믿고, 우리의 끝을 믿어. 그거면 충분하지 않아?"

 "그런가."


 M은 내 답을 전부 들은 뒤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왜 물은 것이냐 물었지만, 그는 아무리 물어도 답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고개를 돌리며 내비친 살짝 웃는 모습은, 내 답이 조금은 맘에 들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8

 기분 좋게 불어온 바람이 여인의 머릿결을 훑고 지나갔다. 여인은 제 짧은 머리칼은 단정히 정돈하곤 난간 아래의 자그마하게 보이는 땅을 내려다보았다. 늘 보는 것임에도 가슴 한 켠에서 올라오는 두근거림은 늘 새로운 것이었다.

 그녀의 곁에서 그녀가 해주는 이야기를 듣던 다홍색 장발의 여인은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뒤에는 어떻게 됐어요?"

 "그 뒤로도 쭉 그렇게 지내다가, 갑자기 사라졌어. 잘 있으라는 인사만 남겨두고 말야."

 "흐음, 언니처럼 멋진 여자를 두고 가다니, 별 볼 일 없는 남자인가 봐?


 나탈리아는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를 가지런히 정리하며 말했다. 그녀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별 볼 일 없다니, 여기 없는 사람이라고 말 너무 막 한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여자 보는 눈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남자."

 "아하하! 평가가 너무하잖아!"


 그녀는 나탈리아의 말에 웃음을 터뜨린 그녀는 배 아래쪽의 풍경에 급하게 어디론가 달려갔다. 내려야 할 곳이 가까워진 것이었다. 루터에게 달려가 근처에 내려달라 부탁을 한 그녀는 다시 나탈리아에게 돌아왔다.


 "흐음, 그러고 보니 분명 저쪽이었죠?"

 "응. 며칠 뒤에 지나간대. 서두르면 지나가기 전에 도착할 거야. 루터 씨에게는 찾을 게 있다고 거짓말했으니까, 비밀 지켜줘야 해. 알았지?"

 "후후, 역시 레지스탕스에는 언니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해요. 루터 아저씨든 다른 사람들이든 너무 미적지근하니까요. 아아, 나도 같이 가고 싶어라.


 나탈리아는 지루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어투에, 그런 표정에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나탈리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혼자 가볼게."

 "어머, 내가 만날 '언니~, 언니~'하면서 붙어 다니니 진짜 애인 줄 아나 봐?"

 "어라, 내 동생이 아니었어?"

 "꺄하핫! 언니만 좋다면 동생이 되어줄 수도 있겠네요! 언니도 나 같은 귀여운 동생 있으면 기분 좋고 그러겠어요. 그쵸?"


 나탈리아는 싱긋 웃어 보이며 가볍게 농담을 하는 투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며 제 뺨에 손가락을 얹는 등 어린이가 애교를 부리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퍽 귀여웠는지 그녀는 얼굴 가득 웃음을 피우고 있었다.

 세인트 혼의 고도는 점차 낮아지고 있었다. 하선할 때 역시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그럼, 며칠 뒤에 보자."

 


안녕하세요. 흔한 아라드의 관종 글쟁이입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글을 옮기러 왔습니다.


인사 중편입니다

근데 세상에나 제사지낸다고 외가에 간대요

그래서 바로 하편도 올릴 겁니다

으아아아


오늘의 아라드 팬픽은...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이번에도 즐겁게 읽으셨길 빌겠습니다.


1. NPC의 말투를 그대로 재현하는 건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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