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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신당 : 참회의 서 #7. 애환-1
게시물ID : panic_897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야설왕짐보
추천 : 10
조회수 : 84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8/01 17: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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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편 분량의 코믹/공포/스릴러 소설입니다. 챕터 #1 부터 보셔요. (순서대로 보시면 됩니다.) 

봉신당 : 참회의 서 #1. 귀곡성-1 : http://todayhumor.com/?panic_88655
봉신당 : 참회의 서 #1. 귀곡성-2 : http://todayhumor.com/?panic_88656

봉신당 : 참회의 서 #2. 숙 명-1 : http://todayhumor.com/?panic_88663
봉신당 : 참회의 서 #2. 숙 명-2 : http://todayhumor.com/?panic_88664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결-1 : http://todayhumor.com/?panic_88677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결-2 : http://todayhumor.com/?panic_88678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결-3 : http://todayhumor.com/?panic_88682 

봉신당 : 참회의 서 #4. 대 면-1 : http://todayhumor.com/?panic_88700
봉신당 : 참회의 서 #4. 대 면-2 : http://todayhumor.com/?panic_88701

봉신당 : 참회의 서 #5. 악몽의 밤-1 : http://todayhumor.com/?panic_88717
봉신당 : 참회의 서 #5. 악몽의 밤-2 : http://todayhumor.com/?panic_88739
봉신당 : 참회의 서 #5. 악몽의 밤-3 : http://todayhumor.com/?panic_88745
봉신당 : 참회의 서 #5. 악몽의 밤-4 : http://todayhumor.com/?panic_88801
봉신당 : 참회의 서 #5. 악몽의 밤-5 : http://todayhumor.com/?panic_88803

봉신당 : 참회의 서 #6. 적응-1 : http://todayhumor.com/?panic_88834
봉신당 : 참회의 서 #6. 적응-2~3 : http://todayhumor.com/?panic_88837
봉신당 : 참회의 서 #6. 적응-4 : http://todayhumor.com/?panic_88857
봉신당 : 참회의 서 #6. 적응-5 : http://todayhumor.com/?panic_88882
봉신당 : 참회의 서 #6. 적응-6 : http://todayhumor.com/?panic_88909
봉신당 : 참회의 서 #6. 적응-7 : http://todayhumor.com/?panic_88977
봉신당 : 참회의 서 #6. 적응-8 : http://todayhumor.com/?panic_89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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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애환(哀歡)

 

이게 웬 풀밭이야!”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멀건 된장국 하나에 콩 조림 하나,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푸성귀들이 으깬 감자에 섞여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히라타와 취사반장 신페이의 표정은 과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누군가? 비록 부사관이긴 해도 753부대에 가장 오랜 시간 근무한 터줏대감이자 보이지 않는 실세가 아닌가. 그런 그들에게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 모를 개뼉다구(?) 하나가 흡사 직속상관이라도 되는 양 투정을 부리는 것이다.

그것도 조선인이...

 

고기! 고기! 고기!”

 

주객이 전도되다 못해 이제는 숫제 젓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건방진 태도에 히라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붉으락푸르락, 흡사 카멜레온이라도 된 듯 수시로 색이 변한다. 그 뿐인가? 취사반장 신페이 역시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전시의 고기는 간곡히 부탁해도 내어줄까 말까인 귀한 식재료다. 설 휘와 설 산 남매는 어느새 싸늘한 분위기를 인식하고 말없이 식사에 집중하건만, 청연은 초지일관 떼를 쓰듯 소리쳤다.

 

나를 대하듯 깍듯이! 나를 대하듯 깍듯이! 나를 대하듯이...”

뭐야! 너 이 자식 보자보자 하니까!”

으앗! 스기야마씨한테 일러야지!”

? 으아아악! 이런... 망할 자식!”

 

욱하는 심정에 히라타가 몸을 내밀었다. 금방이라도 청연에게 달려들어 드잡이질을 할 듯 험악한 표정이다. 하지만 큼지막한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그를 막아섰다. 취사반장 신페이였다.

 

구태여 덤불을 쑤실 필요 뭐 있수? 나올 건 뱀밖에 없을 텐데(일본 속담 : 긁어 부스럼). 손님대접을 하라 했으니, 별 수 있어? 대좌랑 맞설 셈이 아님 참아! 군인은 상명하복(上命下服)! 그걸 배우기엔 너무 늦은 나이 아니우?”

젠장!”

 

히라타가 답답한 표정으로 이를 갈아보지만 얄미움은 쉬이 가라않지 않는다. 그를 대신해 나선 신페이가 제법 인내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이봐! 젊은 친구, 요즘 보급 사정이 안 좋아. 최근엔 육류가 들어오질 않는다고!

안 들린다. 안 들린다. 고기! 고기!”

 

점잖은 타이름에도 청연은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고기를 연호하고, 얄미움은 극에 달한다. 벽창호도 이런 벽창호가 없는 것이다. 그 모습에 히라타는 결국 참았던 울분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어휴! 내가 살다 살다 저런 꼴통을... 야 이 개자식아! 고자질을 하던가 말던 가! 네 마음대로 해! 난 갈 테다! ! 가네다!”

하이! 오장 가네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히라타가 돌아서며 오장(하사) 한 명의 이름을 호명했다. 가네다 마사이치, 어색하게 웃지만 어리바리한 기색이 역력한 사내로 2개월 전 753부대로 전입 온 초짜 오장이었다. 전선의 상황이 심화된 후 초임 오장은 인력이 부족한 최전방에 우선 배치되는 것이 통상의 관례였다. 헌데 가네다는 대체 어떤 뒷 배경인지 초임주제에 덜컥 후방부대에 배치 된 것이다. 하여 부모님이 누구냐!’ ‘친인척 중 군부의 고위관료가 있느냐하는 질문을 거듭 했지만 이 어리바리한 초임 오장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차라리 실토하면 그에 따른 대우를 하면 될 것을, 알 수 없음은 늘 불안함 그 자체였다. 따라서 히라타도 처음의 두 달은 그의 어리바리한 행태 참아내며 비위를 맞춰 주었으나, 얼마 전 발송된 본토(本土) 육군성의 인사처 담당계장이 보내온 전보가 일순간에 그의 처우를 바꾸어 놓았다.

 

[동명(同名)의 육군성 고위관료 자제와 뒤바뀐 듯, 정기 인사 시 1:1 교류 예정자임]

 

높으신 귀공자에서 단박에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것이다. 따라서 특별대우가 사라진 것은 물론 히라타의 애먼 신경질까지 받아내야 하는 처지였다.

 

가네다! 네가 저 얼간이 자식 알아서 해결해! 숙소를 안내해 주던,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 넣던! 알았나? 후자라도 널 탓하진 않겠다!”

... 하이!”

그럼 난 간다!”

어이 히라타! 히라타! 자식! 성질머리하곤... 쯧쯧, 에라 모르겠다. 가네다! 나도 부식장부를 정리해야 하니까, 네가 알아서 하고, 혹 무슨 일 있으면 그때만 부를 수 있도록! 알겠나?”

하이!”

 

히라타가 떠나자 취사반장 신페이도 귀찮은 일에 엮이고 싶지 않은 듯 식당 한 켠으로 사라졌다.

 

하아아...”

 

초임 오장 가네다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경험 많은 히라타조차 두 손 들게 만든 난처한 손님인 것이다. 게다가 도움을 주어야 할 신페이 마저 장부 정리를 핑계로 내빼버리니, 부담감을 느끼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분란(紛亂)의 순간이야 말로 오지랖퍼가 진정 즐기는 뒷담화의 장()임을 말해 무엇 할까? 어리바리한 신임 오장, 등 돌리고 떠난 두 명의 고참 들, 특유의 촉()을 느낀 악마가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봐... 젊은 친구!”

으힉... ... 언제...”

 

가네다가 당황하여 소리쳤다. 그의 곁엔 어느새 청연이 찰싹 달라붙어 어깨를 매만진다. 느물느물하다 못해 끈적한 시선이었다. 청연의 의도야 어쨌든, 그에겐 그것이 마치 악()의 촉수처럼 보였다.

 

저 두 사람 엄청 갈구지? 괜히 막 멀쩡한 사람한테 어리바리하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 아 아니... 아닙니다. ... 잘해주십니다.”

에이... 나는 관계자가 아니니까 굳이 나한테까지 거짓말 안 해도 돼, 딱 보니까 히라타 저 아저씨 성깔 엄청 더럽네 그치? 막 화내다가 갑자기 또 잘해주다가 또 막 화내다가... 그러지? 괴팍하고... 나는 그런 경험이 전혀 없지만, 딱 보니까 촉이 오네. 사실은 지도 엄청 어리바리하면서 민망하니까 남 탓만 하고, 그치?”

... 그게...”

괜찮아! 스기야마, 히라타, 신페이, 그 양반들 쭉 세워놓고 누가 제일 어리바리해 보여? 하면 나는 바로 그 양반 찍는 다니까? 눈에 괜히 힘만 주고, 눈알 튀어나오겠다. 그치? 하나도 안 멋있는데, 크크크... 신페이? 그 아저씨도 그래, 고기가 없긴 뭐가 없어! 배 나온 거 보니까 지가 다 먹었구만, 그치? 고기가 부족한 게 아니에요. 그렇게 중간에서 처먹는 돼지들이 많은 게 문제지 크크크 안 그래? 꿀꿀! 꿀꿀!”

...”

 

가네다의 입술 사이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급히 다물어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나름의 일화가 있는 듯 안면 근육이 실룩댄다. 청연으로선 적당히 넘겨짚은 말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묘한 공감을 준 듯 했다. 어느새 배시시 웃는 편한 얼굴이 그 증거였다. 공동의 적(?)에 대한 험담, 그것만큼 인간관계를 쉽고 빠르게 이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악의 그림자도 때를 놓치지 않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니 비수를 꼽았다.

 

웃었네? 지금 내 말에 동의하는 거? 아싸! 히라타는 어리바리에 성질만 더럽고, 그 뚱뚱한 아저씨는 혼자 고기 처먹는 돼지? 앗싸! 돼지 아저씨는 아직 저기 있는 거 같던데 가서 일러야지! 히히히

! 안됩니다! ... 큰일납니다.”

가네다? 가네다라고 했지? 아니긴 뭐가 아니야! 히라타씨 성격 엄청 더럽다고 했더니, 가네다가 좋다고 웃더라. 아주 신이 난 표정이더라. 딱 그렇게 사실만 말 할거야! 왜 내 말이 틀려?”

... 아닙니다. ... 저는 그게 아니라.”

여기가 안이지 밖인가? 크하하핫

? 무슨 말씀이신지?”

이거 모르는구나? 캬캬캬 괜찮아 농담이야. 농담! 일러바치긴... 같은 처지끼리 돕고 살아야지! 안 그래? 히라타한테 당하고사는 우리 가네다. 그리고 나. 우리 갈굼 동지끼리 싸우면야 되나! 걱정 마! 내가 사실 입이 엄청 무거운 사람이야!”

... 다행...”

 

청연의 말을 듣고야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리는 가네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풀기엔 조금 일렀다. 악의 그림자는 집요했다. 또 다시 입가에 드리운 음흉한 미소가 불길한 예감을 선사한다. 마치 오래된 친구마냥 다가오는 손길, 다정스레 어깨동무까지 하며 웃지만 눈빛만은 악마의 그것을 연상케 했다.

 

가네다... 내가 나이가 더 많은 것 같으니까 편하게 형이라고 할게, 지금부터 이 형이 몇 가지 물을 테니까! 솔직담백하게 말해야 돼! 알지? 동생이 거짓말을 하면, 이 형이 너무너무 화가 나서, 곧 바로 뛰어나간단 말야. 그럼 뭐하겠어? 가네다가 그러는데 히라타씨 성질이 엄청엄청 더럽다.’ 그냥 인간 말종에 악마다.’ 그렇게 말 했다고 이를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 ... 제가 언제?”

에이! 그러니까 솔직하게 얘기하면 되지. 그럼 나 얘기 안 해! 그럼 문제가 안 되잖아. 그치?”

... ... 그건 그렇습니다만...”

 

어디서 배워온 화법인지는 알 수 없으나, ‘꿩 잡는 게 매, ‘개 잡는데 소 잡는 칼은 필요 없다.’는 말처럼, 어리바리한 가네다에겐 청연의 얼토당토않은 화술도 효과적으로 먹혀들고 있었다.

 

고기 반찬 나오지?”

... 고기요?”

그래, 고기!”

... 그게... 저는 통... 별로...”

 

청연의 탐욕스런 표정에 기가 눌린 탓인지 가네다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다 못해 희미해진다. 명확한 확신을 주진 않지만 부정의 뉘앙스였다. 다른 주제였다면 결코 느끼지 못할 미세한 반응이건만 청연이 누군가! ‘고기먹을 것’, 본능적 욕망에 관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놀라운 총기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날카롭게 캐치해낸 그가 매서운 표정으로 물었다.

 

저는? 지금 저는이라고 그랬어? 저는?”

? ... 그게... 그러니까!”

! 딱 걸렸어! 그럼 너 말고 딴 사람들은 고기 먹는단 얘기네?”

... 그게... ... 다들 먹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어째 계속 말끝이 흐리다? 이건 백퍼센트 긍정인데? 자꾸 그럼 형이 섭섭해!”

... 아니... ... 그게... 높은 장교... 분들만... 종종...”

아 놔! 이럴 줄 알았어! 있긴 있다는 거 아냐! 다 죽었어! 다 오라 그래! 히라타는 갔고, 그래! 방금 전 장부 정리한다던 식당 아저씨! 신페이씨! 거기 안에 있죠? 고기 있다잖아! 고기! 왜 안 줬어!”

으악! 안됩니다. 안 돼요.”

안되긴 뭐가 안 돼! 이놈들! 고기가 있으면서 감히 나를 안줘! 나를 대하듯이! 나를 대하듯이!”

 

느닷없이 소리치며 광분하기 시작한 청연, 어느새 만류하기엔 늦은 과도한 흥분상태에 돌입한다. 당황한 가네다가 다급히 허리춤을 붙잡아 보지만 이미 고기에 꽂혀버린 광인(狂人)을 말릴 순 없었다. 성난 황소가 된 청연은 가네다를 뿌리친 채 식당 한 켠, 불빛이 새어나오는 곳으로 달려간다. 그야말로 저돌적인 움직임이었다. 그 탓에 바닥에 내팽개쳐진 가네다가 망연자실 바라보다 급히 눈을 비빈다. 그리곤 나는 악마를 보았다.’ 먼 훗날 모 영화의 제목으로 쓰일 그 말을 떠올린다.

 

가네다 이 정신 나간 새끼!”

 

멀리서 들려오는 신페이의 함성소리에 가네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노기 어린 표정이 그의 망막에 아로새겨지고, 때 늦은 후회만이 흘러나왔다.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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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돼지고기 야채볶음 앞, 한 사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울상이 되어 있다. 한쪽 뺨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있고, 한쪽 정강이는 고통에 겨운 듯 절룩인다. 하지만 그를 마주한 뚱뚱한 체구의 중년 사내는 아직도 화를 삭히지 못 한 듯 씩씩거리고 있었다.

 

어휴... 이 얼간이 같은 자식! 내가 이 밤에 저걸 꼭 볶게 만들어야 했냐?”

... 죄송합니다.”

 

물론 두 사람의 난처한 표정 따윈 조금도 개의치 않는 또 다른 사내도 있었다.

 

역시 고기야 고기! 하하하핫!”

 

고기볶음을 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화색이 도는 이 남자, 빛 보다 빠른 속도로 젓가락질에 여념이 없다. 가까이에선 한 남매가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건만, ‘제 앞으로 접시를 잡아당기며 방어전선을 구축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고기, 고기, 고기, 고기!”

 

모두의 아쉬운 시선에도 자비는 없다. 고기볶음 한 접시를 게 눈 감추듯 뚝딱 해치우고 나서야 비로소 만족스런 표정으로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뭐해? 다 먹었으면 일어서자!”

... ...”

 

내내 무표정하던 설 휘의 얼굴에도 상대적 박탈감이란 이름의 바람이 휘몰아친다. 인간적인 배신감이랄까? 좀스러워 보일까 꺼내기엔 민망한 감정들이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가네다! 숙소는 어디지?”

하이!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청연의 부름에 가네다가 급히 대답하며 달려왔다. 반가움과 배신감이 뒤섞인 요상한 표정이긴 했지만, 그는 황급히 앞장서며 청연 일행을 재촉했다. 비록 청연이 요상한 말들로 자신을 현혹 시킨 후, 곤경에 빠뜨렸지만 일단은 제 앞에 몰아닥친 태풍, 즉 신페이를 피하는 것이 우선인 듯 적극성을 띄며 손짓하고 있었다.

 

! 그럼 내일 아침도 잊지 마시고! 고기, 고기! 하하하! 가자구 가네다군!”

하이! 저 쪽으로...”

! 두고 보자...”

 

신페이의 짜증 섞인 표정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서자 짙은 어둠이 청연일행을 맞이했다. 후방의 보급부대답게 건물이라곤 불 꺼진 창고와 막사가 대부분이고, 사람들이 사는 인가(人家)와 멀리 떨어졌기 때문에 불빛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가네다의 안내를 따라 조금 걷자 캄캄한 어둠 저 편으로 줄지어 서 있는 화물 트럭들이 보이고 곧 큼지막한 창고 건물 앞에 당도했다.

 

설마 여기?”

급히 쉬실 곳을 마련하다보니 마땅한 곳이... 여기 밖에...”

 

가네다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이미 취사반에 들러 한 차례 봉변을 당한지라 나타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나를 대하듯대하라는 부대장의 지시가 떨어진 것은 수십 분 전에 불과했던지라 급히 다른 거처를 마련하긴 힘들다는 변명도 이어졌다. 청연은 잠시 못 마땅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저 멀리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불빛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쩔 수 없다니까 오늘은 일단 여기서 쉬겠는데, 저긴 뭐하는 데야? 촛불인가? 누가 앉아있네? 엄마야!”

 

질문하던 청연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둠사이로 보이는 불빛, 그 곳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산발을 한 채 말없이 서 있었다.

 

! 귀신아냐? 귀신!”

 

소복 입은 여자를 가리키며 주저앉은 채 뒷걸음질 치는 청연, 그의 호들갑에 뒤 따르던 설 휘, 설 은 남매도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헌데 어인일인지 가장 겁이 많아 보이는 가네다는 태연한 표정이다. 아니 태연하다 못해 답답함마저 토로한다.

 

저 년은 왜 또 기어 나왔어! 어휴... 쟤는 초 보급 해주지 말라니깐! 어휴...”

... 누군데?”

위안부 보충대에 광녀(狂女)입니다. 정신이 나가서는 밤만 되면 저렇게 기어 나와서 주위를 배회하는데, 몇 번이나 주의를 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어휴... 말 그래도 광녀니까요. 그래서 전방에도 못 보내고 계속 보충대에만 있다는데... 혹시 정신 나간 년 정신 차리게 하는 도술 좀 없습니까? 쟤 땜에 놀란 병사가 한 둘이 아니에요! ! 거기 너! 빨리 숙소로 안 돌아가! 누가 이 시간에 돌아다니래! 초도 끄고! 불이라도 나면 니가 책임 질 거야?”

 

가네다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소리치자 그제야 여자는 부리나케 달아난다. 가다가 돌부리에라도 걸렸는지 철푸덕넘어졌음에도 재빨리 일어나 건물 뒤편으로 도망친다. 그녀가 어둠속으로 사라지자 그제야 마음의 평온을 되찾은 청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 ... 위안부라고 했어? ... 위안부면,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나?”

, 사기 진작을 위해 각지에서 차출한 아이들입니다. 생각하시는 게 그게 맞다면, 맞습니다. 위안부. 전선에 투입된 병사들의 아랫도리 회포를 풀어주려고 모인... 날이 밝으면 저기로 안내해 드릴... !”

 

순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둔탁한 타격음이었다. 가네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붙잡은 채 주저앉고, 청연은 때린 손이 아프다는 제스추어를 취하며 중얼거렸다.

 

나쁜 새끼들...”

왜 때리십니까!”

몰라서 물어?”

잘 모르지 말입니다.”

... ... 위안부... 어휴! 이 나쁜 새끼들...”

 

청연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분을 삭히지 못하자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가네다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 반도분이시죠? 말씀을 잘하셔서 제가 잠시...”

어휴! 저 할머니들 집에 보내드려야 하는데...”

할머니가 아니라 대부분 어린 아이들입니다. 13살부터 25살까지...”

그게 더 나빠! 내가 있던데서는... 그 어린 아이들이 할머니가... 어휴...”

무슨 말씀이신지? 어린아이가 할머니가 되다니요?”

그런 게 있어!”

 

청연이 계속 역정을 내자 잠시 주변을 확인하던 가네다가 넌지시 말했다.

 

고맙습니다.”

뭐가?”

그 아이들에게 관심 가져주시는 것 같아서요.”

가네다! 너야 말로 무슨 소리하는 거야?”

그런 게 있습니다. 나중에 차차 알게 되실 겁니다. 그보다...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

부탁? 뭔데?”

들어주신다고 약속하셔야 말할 겁니다.”

그럼 싫어! 말 하지마!”

? ... 그런!”

가봐! 피곤해서 잘라니까!”

... ... 그럼 쉬십시오.”

 

듣기도 전에 말문을 막아버린 청연의 거절에 가네다의 표정이 못내 아쉽다.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 걷지만 어째 걸음걸이가 영 힘이 없고 쓸쓸해 보인다. 그때 짜증스런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청연이었다.

 

뭔데! 들어나 보자.”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누가 부탁 들어준다고 했어? 뭔지 들어나 본다고 했지?”

하하하 그게 그거죠. 그러니까 제 부탁은...”

 

누가 들을 새라 가네다가 청연의 귓가에 바짝 붙어 속삭였다. 청연의 고개가 살며시 갸우뚱한다. 그리곤 후다닥 제 등뒤에 선 설 휘, 설 은 남매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심각하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신을 모신 자가 어찌 타인을 불행하게 하는 비술을 쓰겠습니까? 덕은 덕으로 업은 업으로... 뿌린대로 거둔다는 옛 말도 모르신단말입니까?”

 

얼토당토않다는 듯 설 휘가 청연을 향해 불만을 토로했다. 설 은 역시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봉신당에는 저주를 획책하는 비술은 없습니다. 업을 지고, 그것을 풀어내는 것이 저희의 숙명, 아쉽지만 들어드릴 수 없을 것 같네요.”

... 정말 답답한 애들이네... 대단한 거 말고 가볍게 골탕먹일만한 뭐 그런거면 된다는데... 그래도 없어?”

없습니다.”

 

설 은의 단호한 거절에 청연이 고개를 숙인 채 걸어와 말했다.

 

가네다군

하이!”

쟤들은 그런 거 없다는데? 저주 같은 거...”

아 그러시군요. 죄송합니다. 사소하고 개인적인 원한이라... 안 될 것 같긴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아이... 내가 보니까 너 괴롭힘 많이 당한 것 같아서 도와주고 싶었는데... 미안하다 야...”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방법이 없다는 청연의 말에 가네다는 힘없이 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잠시 후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가네다를 향해 청연이 달려왔다. 그리곤 조용히 속삭이며 말했다.

 

내가 이거는... 차마 가르쳐 주기가 그랬는데. 이건 어때?”

... 아니 그런!”

저주 하면 이게 최고지! 한 번 해보고... 안되면 말고... 힘내라!”

감사합니다.”

 

청연의 응원에 가네다의 눈빛이 반짝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업무를 시작하려 자리에 앉은 히라타는 탁자 위에 놓인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뭐지? 누가 나한테 편지를... 보낸 사람 이름도 없고... 어디보자...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7통의 편지를 보내지 않으면...”


 

7-1-2.jpg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개인 사정으로 연재를 너무 오래 쉬었네요.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드립니다.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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