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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객(passenger).2
게시물ID : panic_897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스머스의눈
추천 : 3
조회수 : 51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8/02 16: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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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2.

 

강혜령을 처음 본 것은 지난해의 늦은 가을, 시월도 중순이 다 지나갈 때였다. 그녀는 구조차에 실려 응급실에 들어 올 때부터 온 몸이 망신창이였다. 더는 어찌 손을 쓸 여지가 보이지 않던 상태를 어떻게 수습해낸 것인지 황지안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응급 환자를 진단하기 위해 새벽 시간에 정신과 의사가 호출되는 일은 거의 없다. 황지안이 정신과 원장으로 생애를 보내던 16년여 동안 겪은 처음이자 유일한 사건이었다.

그녀의 자해는 단지 손목에다 사무용 칼날을 긋는 시시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코 아이들 장난이 아니었다. 그녀는 팔목 절단을 시도하고 있었다. 살점은 도륙당한 것처럼 뜯겨져 나가고, 피는 고장난 펌프에서 뿜어져 솟구쳐나온 것처럼 하얀 잠옷을 온통 시뻘겋게 적셔 놓았다. 하지만 무뎌진 부엌 식칼로 뼈를 잘라낼 수는 없었다. 단지 좌완신경골의 일부분을 뜯어낼수 있을 뿐이었다. 척골의 경상돌이 툭 튀어난 부분까지 수차례 찔러댄 듯 보였지만, 신경계가 완전히 떨어져나간 상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해골과 다름없이 너덜너덜해진 왼팔을 그녀는 줄기차게 잡아 뜯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반대 손으로 찌부러진 왼팔의 피부를 찢으려는 시도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필사적으로 두 명의 여간호사가 그녀의 오른팔을 붙잡고 있음에도 힘에 겨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링겔로 투약되는 신경안정제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벤조디아제핀은 그녀의 혈액안으로 전혀 침투해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녀는 끝없이 몸부림치며, 고통에 겨워 울부짖고 있었다. 도저히 인간의 절규처럼 들리지 않는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병동 전체를 잠식하듯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내 몸속에 그 놈들이 있어! 내 몸속에 그 놈들이 있다고!.’ 라고 아우성치는 그 한 마디를 황지안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해내고 있었다.

아코니튬 나펠루스를 투약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그 지시는 총무원장인 김동률의 입에서 나왔다. 지안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마취제 성분의 종류에 그런 이름은 없었다. 그것은 독약이었다. 바곳 혹은 가시투구꽃이라는 식물에서 추출되는 성분의 독약. 아주 일정한 경우에만 마취나 진통의 효과를 위해 소량의 성분을 사용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다른 성분의 약과 혼합해 독성을 중화시키는 방법만이 허락된다. 1그램만 투약해도 성인 남성 한명을 골로 보낼 수 있는 그런 독약이었다. 때문에 지안은 어떻게 동률이 그런 지시를 내리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김동률의 지시는 확고했다.

이런 끔찍한 발작을 진정시킬 방법은 하나 뿐이야. 신경계의 끝자락을 완전히 잘라버려야만 하네. 고통이 느껴지는 발작부위의 신경망과 다른 신경계간의 교감을 마비시키는 것 뿐일세. 동물마취제를 써 볼 생각까지 했어. 하지만 그건 더 위험한 짓이라고.”

황지안은 여간호사 한명이 주사바늘에 보라색 시약병을 투입하는 것을 보았다. 주사기 한 가득, 거의 치사량이었다. 지안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동률의 얼굴도 굳어 있었다. 강혜령의 몸부림이 워낙 거셌기 때문에 다섯 명의 남녀 간호사들이 모두 달려 들어야 겨우겨우 팔다리를 결박끈에 묶을 수 있었다. 극도의 흥분 상태였기에 정맥을 정확히 찾기도 힘들었다. 아주 힘겹게 주사바늘이 정맥속으로 들어갔고, 보라색 용액이 혈관속으로 투약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강혜령은 한동안 잠잠한 상태로 빠져들었다. 숨소리만이 그녀의 맥박이 아직 뛰고 있단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안정된 상태는 결코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들 그것을 보았다.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처럼 붉어져서 부풀어 오르는 검은 혈관, 마치 고무튜브에 펌프기를 꼽아서 급속으로 공기를 주입하는 것처럼, 주사바늘이 꽂힌 주변의 피부들의 팽창해 오르고 있었다.

지안과 동률 둘 다 뭔가 끔찍한 부작용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현상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주사바늘이 들어간 정맥 부분의 혈관이 가장 끔찍한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핏방울이 조금 새는 듯이 보였다. 이윽고 누런 고름이 조그만 벌레를 발로 밟아 터져버린 내장처럼 상처 부위에서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상처는 조금씩 틈이 벌어지면서 악성 종양이 솟구치는 것처럼 불거져 올라왔다. 그리고는 그 상처 안에서 마치 인간의 신체 속에 숨겨져 있던 어떤 무엇이 세상을 향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처럼 볼록하게 툭 튀어 나오는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 새까만 돌기가 솟구친 것을 똑똑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흉악한 생명체의 검은 눈처럼 보였다. 온통 새까만 흑막에 덮여 있었다.

그것의 정확한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눈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처럼 보였다. 인간의 것이 아닌, 그리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의 것도 아닌, 지금까지 인류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종의 지적생명체의 사악한 의지가 담긴 눈처럼 보였다. 그 흑빛의 눈동공이 이 세상을 향해 가장 사악한 증오와 적개심을 내보이는 것을 두 사람은 모두 느꼈다.

그것은 눈이 맞아.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세상에 대한 순수한 증오와 적의만을 갖고 있는 그런 생명체의 눈이었어. 자네는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겠지? 하지만 나는 수긍할 수 밖에 없어. 그 눈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게 느껴지니까.”

대체 언제부터였지? 그때 그 병원에서, 그 팔에서 툭 튀어나온 그 눈을 본 그때부터였나?

그보단 조금 후였어. 내가 본격적으로 그 소녀의 정신상태를 진단하기 시작할 때부터였어. 처음에는 나도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네. 아크로토모필리아(신체절단성애)와 조현병적 망상이 결합된 희귀성 정신질환의 하나일 것이라고 진단했지. 우리가 처음에 봤던 그 끔찍한 신체적 반응은 여러 가지 가능성중의 일부분으로 범주에서 제외해두고 말일세.”

불빛에 완전히 가까워졌다. 인적 없는 마을이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사실 그곳을 마을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거창했다. 단지 여름 휴양기에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몇 채의 별장들이 듬성듬성 들어선 소규묘 주택 단지 불과한 것이었다. 바캉스는 끝났고 이제 이 해변에 사람들은 찾아오지 않고 있다. 오직 황지안, 그가 혼자 이곳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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