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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객(passenger).5
게시물ID : panic_897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스머스의눈
추천 : 2
조회수 : 44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8/03 01:4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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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강혜령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어선 안 돼.” 새벽빛이 지안의 얼굴을 비췄다. 초췌하고 창백한 납빛이 구름에 가라앉은 어두운 햇살에 떠올랐다. 생기 없는 그의 눈빛이 동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는 격리병동에 갇혔어.” 동률이 답했다. 그는 세 번째 버드와이저 병을 두 모금째 비우고 있었다. 안주로 삼을 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속이 쓰려왔다.

평생 거기서 나오지 못할 거야.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진 모르겠지만, 16살만에 거의 모든 인생이 거기서 다 끝나버린 거야

그것만으론 부족해. 그 아이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란 말일세. 그 아이는 이제 리예의 딸이야. 고대의 종족의 일원이고.”

리예. 고대의 종족. 그 말을 듣는 순간 엘더 원(Elder One)’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미국 학자들은 이미 미지의 존재들에 대해서 나름의 연구를 진행해왔고, 일정한 명칭을 붙여두고 있었다. 그것이 천문과학 팀이나 고생물학 연구자들이 아닌 고전문학 및 문헌학 연구자들에게서 진행되고 있었단 사실이 너무나 뜻밖이긴 했지만 말이다. 동률은 석 달 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질문이 떠올랐다. 미스캐토닉 대학의 고전문학(겸 문헌학) 석좌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그의 계정에 글을 남겼었다. 그는 강혜령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

미스캐토닉 대학은 오래전부터 카이저 사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탐사대의 주축이었던 천문과학부가 아닌 고전문학부를 담당하고 있는 제가 이런 관심을 표한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시기도 하실 겁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저희 고전문학 분야의 종사자들은 천문과학부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엘더 원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짧은 지면에 자세한 이야기를 하긴 힘들겠습니다. 또한 말해준다 해도 전혀 믿지 않으실 겁니다. 그러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카이저 16호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강호성씨가 일가족을 몰살하고 자살해버렸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유일한 생존자인 그의 외손녀인 강혜령이 당신의 병원에 입원했단 것이 사실입니까? 응급실로 구조되어 올때부터 자신의 몸에 스스로 심각한 외상을 입히고 있었단 풍문이 사실인지요?’

고전문학부는 카이저 탐사계획이 기획될 때부터 천문과학부에 간섭을 했었다더군.” 동률이 입을 열었다.

자네는 헤령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겠지. 그들은 토성탐사 계획에 대해서 초기부터 격렬히 반대해왔다는 사실말이야. 최소한 유인우주선을 보내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미친 짓이다. 하지만 미치광이 취급은 그들이 받아야 했지. 21세기에 고대 금서를 들먹이며, 첨단과학의 영역에 제동을 걸려했다는 시도 자체가 멍청하게만 보였을 거야.”

카시니 1호의 엔진이 꺼져 버린 것은 2017, 3년 후에 2호의 엔진이 꺼져버렸다. 그 후부터 60년 넘도록 인류의 눈길이 토성을 향해 간적은 없었다. 토성은 인류에게는 풀 수 없는 영원한 미지의 별로, 그리고 인류와는 무관한 별개의 운명을 지닌 별처럼만 여겨졌다. 적어도 위성 타이탄에서 송출된 것으로 여겨지는 어떤 불가해한 메시지를 지구인들이 수신하기 이전까지는 말이다.

그것은 단순한 우주자기장이 아니었네.” 지안이 말했다. “어떻게 그것을 말로 설명할 수가 있을까? 우주자기장이란 우주공간을 아주 목적 없이 떠도는 전파들이 간혹 지구 곳곳에 설치된 우주 안테나에 불규칙하게 수집되는 것에 불과해. 하지만 그때 수신된 전파는 달랐어. 우주 전파가 어떤 궤도에서 정확하게 지구를 향해 송출되는 경우는 그 이전에는 절대 없었어. 마치 궁수가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듯이 말이야. 그것은 타이탄에서 지구를 향해 송출되었던 거야.”

하지만 그들은 언론에 그런 사실을 공표하기를 거부했다. 과학자들의 세계는 항상 가설로만 둘러싸여 있으니까. 의심은 그들의 기반이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고전문학부는 이미 그 때부터 무엇인가를 짐작하고 있었다. 특히나 호지슨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불안한 꿈에 시달렸다고 한다. 문헌학부 교수로 살아오면서 그토록 불안한 꿈을 꾼 일은 결코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악몽에서 깨어난 직후부터 그 꿈이 대학의 희귀장서 보관실에 봉인된 어떤 고대의 금서와 연관되어 있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자네는 네크로노미콘이란 책에 대해서 들어보았나?”

동률은 지안의 초췌한 눈길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도 못지않게 초점없이 흐릿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이제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몸속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자기를 노려보고 있다는 지안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 * *

 

그것은 삼차원의 영상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책을 읽을 때 조차, 그 책을 읽는 다른 이의 눈이 있었다. 혜령은 그 눈이 자신을 보고 있음을 느꼈을 때의 첫 충격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소름끼치도록 오싹했다.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빠가 조난된 우주탐사선에서 구조되어 집으로 돌아오고 난후, 하지를 막 지난 후의 첫 번째 보름 때부터 였을 거라 짐작됐다. 그 이상한 눈의 시선은 만월의 주기와 관계가 깊었다. 마치 보름달의 눈을 통해 이 세상 전부를 내려다보고 싶은 듯이, 둥근 달이 떠오르면 자신의 검은 눈을 치켜뜨는 것이었다.

가려움은 항상 잠복해 있었다. 미칠 듯한 가려움이었다. 피부속에서 알 수 없는 괴생명체가 기어다니는 느낌이었다. 수술 자리가 아물때의 감각을 경험해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감각이 자기를 점점 장악해오고 잠식해가고 있는데, 그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더 큰 괴로움이었다.

아빠는 자기방속에 틀어박혀 좀처럼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우주 탐사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얼굴을, 이제는 자기 내면에 파묻혀서 더 보기 힘들어졌다. 밤이 깊어져도 방의 불을 키려고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거울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거울만 쳐다보면 헛것을 함께 보는 전형적인 정신병자가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아빠가 느꼈던 고통을 모두 이해하게 됐다. 눈을 감을 때마다 지옥이 보였다. 아빠가 직접 보았던 그 지옥의 눈을 이제는 자신이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아빠가 토성의 이심 궤도로 진입할 때부터 겪었던 일을 모두 보았다. 이계의 생명체들끼리 공유하는 기억의 전이였다. 아빠는 타이탄의 북반구에서 회오리치는 폭풍의 눈을 향해 초소형 우주 안테나를 쐈다. 더 정확히, 그가 기획하고 설계한 마이크로 우주 전파를 폭풍의 눈 너머에 있는 미지의 존재를 향해 발신했던 것이다. 코데사에 잡히는 수신 전파는 없었다. 우주 저편에서 아무런 응답도 전해져 오지 않았다. 카이저 호는 타이탄 궤도를 이틀 더 비행한 후, 코데사 프로젝트를 잠정적인 실패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폭풍의 눈을 가장 가까이서 본 탐사대원들은 그 영상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것은 탐사대원 모두가 공유하는 기억이었다. 코리는 그 풍광이 마치 우주의 한복판에서 끝없이 휘몰아치는 그랜드캐니언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마이크는 폭풍의 중심부에 떠 있는 검은 눈이 지옥을 향해 입을 벌린 무한한 심연의 입구 같이 보인다고 했다.

누구보다 강호성 자신의 실망이 컸다. 그가 코데사 프로젝트의 총책이었으니. 그는 코데사의 분광기에 스캐닝된 영상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식물이나 생명체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광물로 짐작되는 흔적은 드문드문 나타났다. 하지만 표면의 풍속이 965킬로미터로 짐작되는 그 어마어마한 풍동을 향해서 내려갈 순 없었다.

어느 정도는 충분히 예상한 결과였다. 외계문명과의 교신이란 하나의 가설일 뿐이었다. 카이저는 우주탐사 역사상 가장 머나먼 별을 향해간 최초의 연구선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행성 궤도를 휘감는 맹렬한 풍속에 휘말리지 않는 탄탄한 선체를 완성해낸 것 또한 충분한 성과였다. 하지만 실망감과 패배감을 넘어서 두려움의 감정이 그들을 옥죄어 왔다. 그들 모두가 보아선 안될 것을 보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 검고 사악한 눈, 불의 고리와 같던 소용돌이, 그 주변에서 들려오던 것처럼 느껴지는 요란한 북소리는 착각이라 믿으려고 애써도 현시처럼 생생했다. 모든 승무원들이 잠에 들때마다 그런 것들을 꿈에서 보았다.

호성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승무원들이 미스캐토닉 대학의 연구팀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과 고전문학부 간에 토성탐사 계획을 두고 미묘한 알력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고전문학부의 경고는 큰 발언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줄기차게 요구했다. 타이탄의 중심부위를 비행하더라도 그것을 눈으로 보려는 시도를 하지 말 것, 코데사를 발신할 계획을 가능한 재고할 것, 설령 어떠한 메시지를 응답받더라도 즉각 해석하려고 시도하지 말 것. 그들은 그런 것을 요구했다. 천문과학부의 입장에선 재고해볼 가치도 없는 요구였다.

하지만 그들이 타이탄의 우주 전파를 수십 차례나 스캐닝해서 겨우 잡아낸 음성 주파를 예측하고 있었단 사실은 다시 생각해봐도 충격이었다. 어떻게 그들은 그 소리를 알고 있었을까?

판클루 글루나파 크툴루 리예 가나글 파탄.’

고전문학부는 이 문장의 뜻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했다. 단지 그것이 결코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될 주술적 문장이라고만 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극소수의 언어학자와 문화학자들만이 그 뜻을 알고 있으며, 절대로 암송하거나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고 했다.

천문과학팀은 그 경고를 미신적인 헛소리로 일축했다. 대학 전체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하지만 이제 모두가 그 주문을 듣고 있다. ‘이아, 이아, 크툴루 파탄.’ 조용하고 느린 음성으로 들려왔다. 마치 머나먼 저편의 세계에서 들려오는 부름처럼.

헤령에게도 그들의 부름이 들렸다. 헤령은 그들이 보여줬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카이저호의 탐사대원들은 기술 결함으로 조난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광기에 휩싸여 서로를 죽였다. 지구에 착륙하기 훨씬 이전부터 카이저호에 살아남은 사람은 헤령의 아빠 한사람 뿐이었다. 모두가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의 눈으로 동료들을 보았다. 증오의 눈으로 이전까지 친구였던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 자신의 감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들의 인간적 감정은 이미 우주선과 함께 실종되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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