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일루전 신드롬과 그 남자의 사랑 #1
게시물ID : love_78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in_Arang
추천 : 0
조회수 : 33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8/05 04:06:02
옵션
  • 창작글
* 이 소설은 아랑의 자전적 짝사랑 연애담을 다룬 소설이고,
실제 있었던 일들을 모티브로 작성되나 허구도 포함됩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명칭은 가명입니다.

혹시라도 제가 만난 짝사랑들 중에 오유를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죠.
아무리봐도 본인이야기이고 너무 불편하다거나
본인이 폄하되어 묘사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꼭 얘기해주세요.
미련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

프롤로그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love&no=7660&s_no=12431776&kind=member&page=1&member_kind=total&mn=434863

-----------------------------------------

#1.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입학식이 끝나고 첫 등교. 변화된 자신의 신체, 새로운 환경. 범수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일명 뺑뺑이로 배정된 공립 중학교였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길건너 초등학교를 같이 졸업한 친구들이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친근한 얼굴과 낯선 얼굴들이 섞여 있었다. 지정된 자리로 가기 전 범수는 교실 문 옆에 비치된 거울과 마주했다. 3년은 입어야 한다며 품이 큰 옷을 사주신 어머니 덕분에 거울 속 범수의 모습은 마치 아버지 옷을 입은 아이같이 어색했다. 국어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책을 많이 읽었고 누구나 취미라고 말하는 독서가 진짜로 취미였던 범수는 수업시작 전 까지 책이나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교실 뒷편의 책장으로 향했다. 대부분이 읽었던 책들이었고,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그는 셜록홈즈 단편집 한권을 꺼내 들어 자리에 앉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교실 대부분의 자리가 채워졌고, 범수는 책에서 눈을 때고 1년간 같이 할 친구들이 누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쭉 훑어보던 그의 시선이 한 자리에서 멈췄다. 학교 규정의 모범같은 단발머리, 갸름한 턱선, 지적이면서도 시크하게 보이는 안경. 꽤 예쁘다고 생각했다. 아니, 저런 여자애와 친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슴에 이름표가 붙어있었지만 대놓고 이름을 보기가 쑥쓰러웠던 그는 출석을 부를 때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자고 생각했다.

 ...김연지... 그녀의 이름은 김연지였다. 학교생활이라는 것이 참 재밌는게 여지껏 같이 지낸적도 없는 아이들이 한 반에 있으면 어느 샌가 자연스레 친해진다는 것이다. 초등학교도 공학, 중학교도 공학이었고 합반이었던 터라 여학생, 남학생들이 서로 친해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범수와 연지도 마찬가지였다. 매일같이 뭉쳐다니는 또래무리는 아니었지만, 서로 공책을 빌린다던지, 숙제를 물어본다던지 하는 정도의 일반적인 관계는 유지할 수 있었다.

 "자, 다음 주까지 58페이지부터 63페이지까지 희곡 대본을 조별로 테이프에 녹음해 오면, 수업시간에 다 같이 들어보고 점수를 메길거야. 이상" 요즘으로 치면 수행평가같은 숙제가 주어졌다. 각자 친한 무리들끼리 조를 짜게 되었고, 범수가 연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몇몇 친구들은 범수와 연지를 같은 조로 엮어주었다. 그 과정의 일등공신은 친하게 어울리던 성우와 그의 여자친구 선화였다. 사실 범수와 선화는 어려서부터 같은 교회에서 투닥거리면서 자라 꽤나 친한 사이였다. 내심 그들이 좋은 자리를 계속 만들어주길 바라며 범수는 조별숙제 일정을 친구들과 이야기했다.

 "그럼 내일 끝나고 우리 집에서 일단 녹음하자"

 조별숙제의 장소는 성우의 집으로 결정됐다. 성우 어머니는 몇 번 놀러가서 뵌 적이 있었지만 굉장히 오픈된 마인드를 가지셨고 친구들이 놀러오는 거을 언제나 환영했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숙제가 한 번에 끝날리는 없다. 성우는 범수를 한 번 살펴본 후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내일 한 번에 녹음 다 못하면 다음에 누구 집에서 할까? 범수야 너희 집 되냐?"

 될리가 없었다. 여전히 그의 집은 친구들을 데려올 수 없는 그런 공간이었다. 범수는 고민했다. 자신의 집에 연지가 온다면 그것대로 좋겠지만, 부모님은 절대로 허락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연지의 집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경험이 없거나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여자 방에 대한 판타지였다.

 "우리 집은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좀 그럴 것 같은데...... 연지야 너희 집은 어때?"

 "어? 우리집은, 안 되는 건 아닌데...... 모르겠어. 집에 가서 물어볼게."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다. 범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에 빠진 범수를 보며 성우와 선화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참으며 범수를 바라봤다.

 다음 날. 수업이 끝나고 범수네는 성우네로 향했다. 학교 바로 옆 아파트 단지였기 때문에 금방 도착했다.

 "오늘은 친구를 많이 데려왔네?"
 "응. 숙제해야 되는데 대본을 녹음해서 오래. 거실에서 해도 되지?"
 "그래. 아줌마가 먹을 것 갖다줄테니까 먹으면서 해~"
 "네 감사합니다."

 그들은 먼저 배역을 정하기로 했다. 사실 범수는 자신이 주인공 역을 맡고 싶었다. 아니 같이 모인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우등생 집단은 아니었지만 다들 수업은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었다. 특히나 국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었고, 늘상 국어선생님의 편애를 받던 범수는 더더욱 그랬다. 몇 십분 째 배역을 정하는 것이 마무리되지 않고 있었다.

 "아줌마가 조금 도와줘도 괜찮을까?"

 또래 아이들의 서로 의미있는 배역을 하겠다며 아웅대는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성우의 엄마가 중재에 나섰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각자 한 줄씩 대사를 읽어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전부 자신이 주인공 배역에 어울린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다는 듯 대사를 읽어 나갔다. 아이들의 대사 리딩을 들으며 우성의 엄마는 고민에 빠졌다. 사실 또래 아이들의 수준이 고만고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범수의 감정표현이 예상보다 훨씬 괜찮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황극을 만들어 노는 것이 범수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놀기에는 커버렸고, 늘상 마주하는 것은 TV만화 프로그램이 아닌 책이었고, 책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그 상황에 빠져드는 것이 제일 좋았기 때문이다. 늘 그는 상상 속에서 책 속의 인물이 되어 혼잣말로 대사를 중얼거리는 게 놀이였다. 스스로 감정표현에 장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범수였기에 그는 자신이 주인공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성우 엄마가 말했다.

 "범수는 되게 감정이 풍부하구나? 주인공도 좋은데 다른 친구들 보다 잘 하니까 남자1, 남자2, 장사꾼, 선생, 마부를 다 해주면 어떨까? 아줌마가 볼 때는 범수가 그렇게 해주면 연극이 엄청 멋있을 것 같거든?"

 주인공이 안 되었다는 것보다 연지 앞에서 어른이 자신을 칭찬해주었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쁠 줄 몰랐다. 범수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 날 녹음은 꽤나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한 번의 녹음으로 충분히 제출할 수 있는 숙제의 완성도가 마련되었다. 범수는 연지의 집에 갈 수 없음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집으로 돌아온 범수는 녹음된 테잎을 들으며 효과음도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서랍을 열어 자신이 가진 카세트 테잎을 펼쳐놓고 효과음에 적절한 소리를 찾기 시작했다.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카세트 테잎에 동화책을 같이 읽어가면서 녹음했을 때 엄마가 넣어주는 효과음이 꽤나 재밌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효과음 검색하면 나오는 시절이 아니었기에 산더미같은 테이프를 몇 시간동안 돌려가며 어울리는 효과음을 찾아냈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희곡 녹음 발표가 끝이났다. 숙제가 끝났으니 조 모임도 당연히 끝났다. 연지와 좀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범수는 선화를 불러 물었다.

 "야, 너 연지랑 친하지?"
 "아마도?"
 "그럼 걔랑 더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너희는 뭐하고 노냐?"
 나름 커플에게 연애조언을 구하기는 했으나 사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연애경험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을까. 고민하던 선화는 대답했다.

 "영화보러 가자고 해~ 혼자보러가면 뻘쭘하니까 친구들이랑 같이 가자고 하던지"

 지금처럼 프랜차이즈 영화관이 성행할 때가 아니었고, 대부분 영화는 부모님과 보러갔던 범수였기에 어린 우리들끼리 영화관을 가도 괜찮을까 고민에 빠진 범수였다. 무엇보다 돈이 없었다. 일주일에 몇 천원받는 게 전부였던 범수는 본인 혼자서 영화를 보러갈 수 있을 정도의 금액밖에 없었다. 자신이 읽었던 소설들에서 남자는 무언가를 주는 존재였고, 여자는 무언가를 받는 존재였다. 범수는 자신도 그런 존재로 비춰지길 원했다. 일단 돈은 어떻게든 해보자고 생각한 범수는 전화기를 들어 친구들에게 영화보러가자며 약속을 잡았다.  어쩌다보니 일요일 아침 조조로 영화를 보는 것으로 시간이 정해졌다. 연지만 시간이 되면 만사가 오케이였다.

 "여보세요?"
 "거기 연지네 집이죠?"
 "전데요?"
 
 내 목소리가 이상하진 않았을까? 어떻게 말을 꺼내지? 고민하던 범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어...... 저기, 애들이랑 영화보러 가기로 했는데 너도 같이 갈래? 선화랑 정희도 같이 가..."

 연지가 대답하기까지 그 짧은 시간동안 범수는 '제발, 그래 언제 보러가는데? 라는 대답이 나와라.'를 주문처럼 되뇌이고 있었다. 긴장했던 탓일까. 범수는 지연의 대답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 안 돼."
 "어?"
 "나 일요일 아침 밖에 시간 안 된다구"

 범수는 환호성을 질렀다. 하마터면 들고있던 전화기를 놓칠 뻔 했다.

 "어디로 갈건데?"
 "하계동 삼영백화점에 있는 삼영시네마에서 보기로 했어."
 "알았어. 그런데 얼마 갖고 가야 돼?"
 "어...... 그게 나 영화표가 되게 많이 생겼어."

 고등학생 정도만 되도 범수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갓 중학교 1학년이 된 아이에게 영화표를 여러 장 줄 사람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 대한 호감표시라는 것을, 연애에 서툰 남자가 서툴게 감정표현을 한다는 것을 알기에 연지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선택한 영화는 그 당시 극장에서 최고 인기작품은 한국형 액션블록버스터의 새 장을 열었다던 '쉬리'였다. 조조할인으로 영화표가 싸다고는 하지만 범수의 용돈으로 어찌할 수 있는 범위는 아니었다. 그 날 저녁 범수는 퇴근하고 온 엄마를 찾아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엄마, 나 영화보러 가도 돼?"

 고지식하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범수의 부모였기에, 그의 질문은 뜻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고 싶은 영화 생겼어? 아빠 오시면 영화보고 싶다고 말씀드려."

 아, 이게 아닌데. 생각하던 범수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갈 것이고 영화비용을 자신이 다 내고 싶다고 말하기에는 일을 너무 크게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없던 일로 하기에는 연지와 가까워 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결국 범수는 몰래 아버지 돈에 손을 대기로 결심했다. 범수의 아빠는 늘 돈을 뒷주머니에 넣어둔 채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타이밍만 잘 잡으면 몰래 만원짜리 몇 장을 꺼내 영화비용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첫 데이트 -데이트가 아닌 단체 영화관람이었지만 적어도 범수에게는 데이트였다- 는 몰래 아빠 돈을 훔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