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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 on the G String
게시물ID : readers_260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께소
추천 : 7
조회수 : 47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8/07 12: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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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바흐의 이 곡에 대해서 쓰려고 했었다. 그날이 조금 빨리 찾아온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몇 년 전에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듣게 된 곡이다. 그분의 블로그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곳인데 (짝사랑이다, 그분은 모르니까), 검색창에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심리학'이라고 쳐서 발견한 곳이라는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분의 글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내가 여태 좋아했던 걸 전부 좋아해 온 사람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아, 딱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그건 바로 <물에 빠진 나이프>라는 만화였다. 그분의 블로그는 <물에 빠진 나이프>를 중심으로 한 곳이었다. 나는 그 중심만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벼르고 벼르다 한국에 가서 그 만화책을 샀다. 그리고 이건 아무도 모르지만, 아직 아까워서 3권까지밖에 읽지 못했다. 마지막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마지막 권도 사지 않았다.


논픽션을 써야 한다면, 문학에 대한 어떠한 감상을 써야 한다면, 그분처럼 쓰고 싶었다. 실제로 나는 2학년 때 들은 문학이론 수업 첫날 이 수업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으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그분의 얘기를 꺼냈다. '어떤 분의 글을 읽었어요. 그분처럼 쓰고 싶어요.' 하지만 그 수업에서 나는 내 대학 생활을 통틀어 최악의 점수를 받았다. 교수님은 내 에세이를 보시며 이건 문학이론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언젠가 들어본 말이었기에 놀랍지 않았다.


어느 날 그분이 바흐의 이 곡에 관한 글을 쓰셨다. 그날부터 며칠 동안 나는 내내 바흐를 들었다. 공부를 할 때도, 운동을 할 때도, 길을 걸을 때도, 내 귀엔 Air뿐이었다. 그분은 또 그런 글을 쓰셨다. '지금 이 순간 죽어도 괜찮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 언제쯤 올지 궁금해했다. 몇 년이 지나 익숙한 오르막길을 느릿느릿 걷다가 '지금 이렇게 이곳에서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지금 이 순간 죽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그날은 여름이었다.


또 시간이 흘러 일본에 갔다. 호텔에서 문을 닫고 나오는데, 복도의 스피커를 통해 바흐의 Air가 들렸다. 그래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고 참으로 형편없는 연주의 Air에 감동하며 그 소릴 녹음했다. 흡연자 전용 객실이었기에 담배 냄새로 가득했던 호텔 방도, 복도를 메운 붉은 카펫도, 작디작은 엘리베이터도, 호텔 앞 세븐일레븐에서 사 마신 차가운 물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잊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며칠 뒤 그곳에서 이별을 통보받았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내 에세이는 문학이론이 아니라는 교수님의 말씀보다 더욱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물에 빠진 나이프>는 완결이 됐고 그분은 더 이상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으신다. 좋아하는 작가가 절필하면 이런 기분이 들까 싶었다. 이번에 한국에 가면 결국 <물에 빠진 나이프>의 마지막 권을 사게 되겠지만, 읽지는 못할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바흐의 Air에 빠졌던 게 아니라 그분이 얘기하고 들려주시는 바흐의 Air에 빠졌던 거다. 처음부터 그랬듯이, 그분의 글이 좋았던 거다. 물론 하나도 놀랍지 않지만 말이다.


출처 http://blog.naver.com/rimbaud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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