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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의 탈
게시물ID : music_1283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졸린사슴
추천 : 2
조회수 : 31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8/11 01: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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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0. 발단
무려 혐오 사이트인 오유에서 힙합에 관련된 글은 힙합에 대한 불만인 경우가 있다.
힙합은 왜 그렇게 '화가 나있는' 지 모르겠다는 반응들이 많다.
 
한편 힙합에 대한 '다른' 글들은 힙합은 솔직하며,
'came from the bottom' 정신이 중요하며,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도끼는 자신이 돈을 잘 번다고 말하는 가사를 쓰는 이유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함이라고 했었다.
 
둘 다 그럴싸한데?생각을 한 번 정리해보고 싶었다.
 
1. 힙합의 공격성
 
내가 알기로 힙합은
주체, 장소: 흑인이, 미국에서 시작한 걸로 알고 있다.
창작 동기: 흑인들은 차별받는 세상에서 자신들의 불만을 강하게 드러내고자 했고,
음악 형식: 그것은 주류 음악처럼 '음높이(pitch)'가 있는 음악이 아닌 말을 쭉 늘어놓는 것이었다.
성격: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이들이 만들었기에 형식을 갖추기 보다는
일상 언어들이 검열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직설적으로 표출되었으며, 욕까지 나왔다.
 
한마디로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힙합의 특성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래퍼들의 공격성은 왜 우리에게 공감을 사지 못하는 것일까?
 
2. 인간의 공격성
 
나는 인간을 이해하는 첫단추를
"공격성은 위기의식의 표출이다." 로 삼는다.
여기서 공격성이라 함은 단순히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자세'를 말한다.
 
예를 들어보자. 아이가 우는 것은 엄마를 때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방긋방긋 웃는 것보다는 엄마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는 행위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가 우는 것은 상대적으로 급한 욕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확장하면 '시위의 자유'가 법에 명시되는 것도
인간의 위급한 위기의식의 표출을 보장하기 위함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힙합의 기원도 마찬가지다.
'음악'이라는 '예술'에 저급한 언어가 나오고, 욕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흑인들에게 급한 욕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나는 그 음악들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그 부족한 것들을 대충 '인권'으로 퉁쳐서 이해하고 있다.
 
힙합에서 'real'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진짜 내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힙합적이다.
가장 힘들게 살아 온 사람이 가장 공격성을 드러낼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현재 래퍼들의 공격적인 가사는 합당한가?
그러니까, 리스너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가?
 
3. Hater 혐오
 
힙합 신에서 디스를 하는 대상은 크게 두 부류다.
첫째, 시덥잖은 래퍼. 둘째, 시덥잖은 리스너. 묶으면 'Hater'다.
헤이터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데,
자신은 뛰어나다는 내용이 힙합 곡들의 다수다.
 
정말 뛰어난 래퍼가 이런 가사를 쓰면 '그런가보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제대로 데뷔한 적도 없는 래퍼들도 이런 가사를 쓰고 있다.
그들의 가사에 공감할 수 있는가?
 
물론 그들 삶에도 헤이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삶의 헤이터는 있다.
그런 시시콜콜한 일을 가사로 옮겨 적으면 특별할 것이 있는가?
예술이 언제부터 일기장이 되었는가?
참, 이 글은 힙합이 예술의 일부라는 전제로 쓰고 있다.
 
래퍼들은 또한 자신이 항상 최정상에 있다. 그들의 가사를 보면 그렇다.
그런데 정말 최정상에 있다고 할 만한 사람이 누군가?
모든 래퍼들이 자신이 뛰어나다고 말하고 있다.
 
모두가 뛰어나다고 하면 도대체 누가 뛰어난 걸까?
'뛰어나다'의 기준은 또 뭔가? 쇼미더머니 우승?
나는 예술가는 'most'한 존재가 아니라 'unique'한 존재라고 배웠다.
아, 혹시 개성이 있다면 뛰어난 걸까?
그런데 왜 가사는 남들처럼 자기 자랑 하는 가사를 쓰는 것인가.
 
유니크하다는 것은 아무도 쓴 적 없는 단어의 배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모두가 듣고 있는 힙합도 처음에는 미국의 어떤 흑인이 탄생시켰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그 것.' 유니크의 가치는 여기에 있으며,
바로 그런 것을 새로운 관점이라고 하는 것이다.
 
4. 전국시스템적응력자랑
 
그렇다면 "나 돈 엄청 벌어!"하는 가사는 인정할 만한 가사인가?
글쎄, 그것도 아닌 듯 싶다.
 
앞서 말했듯이 'came from the bottom'이다. 지금은 Top이다.
옛날에 개고생했다는 사실과 지금 돈을 엄청 번다는 사실은
보통 결합되서 나온다. 그래야 드라마가 되니까.
 
여기서 그들의 정치적 관점이 궁금해진다.
그들은 자신이 'the bottom'에 있게 된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할까?
그저 주사위 던지기처럼 재수없게 자신이 빈민층 생활을 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대한민국에서)좌파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데,
개인이 빈민이 된다면 그것은 사회나 국가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나는 비행청소년이 인성이 나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노동자들이 그들 스스로가 모여 하나의 '사회'를 이뤄 자신의 삶에 대해
최선을 다할 수 있게끔 그 권리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래퍼들의 관점은 어떨까?
내가 보기에 그들은 우파적 관점을 갖고 있다.
자기들이 어렸을 때는 되게 어려웠단다. 그런데 크고 나서 성공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다.
왜? 내가 뛰어나니까. 가사를 보면 다 그런 내용이다.
 
개인이 어려웠던 것에 대한 통찰은 전혀 없다.
본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힘들었을 텐데도 말이다.
한 명이 잘못이면 개인의 잘못이지만 모두가 잘못이면 사회적 문제이다.
그들은 표층적 현상에만 집중하고 있다.
 
또한 성공한 것은 순전히 개인의 역량이다.
그렇다면 실패한 것도 순전히 개인의 역량인가?
그들은 그렇게 보고 있다.
경제적 빈민의 원인에 대한 구조적 통찰이 없으니까.
 
이것은 우파적 관점이다. '신자유주의'가 무엇인가?
개인의 능력 경쟁을 강조하는 경제 체제이다.
'니들이 잘하라'는 것이다.
 
잠깐. 여기서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앞서 힙합의 본질을 이야기 했다.
힙합은 '저항' 정신이 강하다. 자신의 위기의식이 크기 때문이다.
이때 저항 정신은 사회를 향한다. 즉 좌파적이다.
그런데 현재 래퍼들은 저항 정신을 우파적 관점에서 활용한다.
'내가 성공한 사람이야. 너네는 다 틀렸어.'
한마디로 앞뒤가 안 맞다는 것이다.
지금 유행하는 입진보, 패션진보랄까? 전혀 진보적 입장이 아니다.
 
현재 시스템에 잘 적응한 사람들이 자기 자랑을 한다.
자신에게 빈곤했던 시절을 보내게 한 시스템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다.
이런 걸 두고 노예정신이라고 한다.
 
미국 흑인들이 멋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노예 상태에서 탈출하려고 했던 뛰어난 저항 정신에 있다.
즉 진보적인 관점이다. 그런데 현재는 그 반대다.
그들은 저항 정신을 우파적 관점에서 활용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지나친, 즉 공격적인 자기자랑은
어떤 것에 대한 위기의식의 표출일까?
그것은 당연히 보상의식이다.
 
자신이 여지껏 받지 못한 인정을 성공하고 나서 받으려 한다.
그런데 그것을 찔끔찔끔 받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따라서 자기자랑이 공격적이게 된다.
 
거 왜, 어떤 엄마가 '우리 딸이 서울대에 갔지 뭐야, 호호호호'
하면서 지방대에 아들 보낸 엄마 앞에서 자기 자랑하는 것과 같다.
즉 수준이 낮다.
 
5. 마치며
현재 래퍼들이 예술가로서의 명색을 갖추려면
'real' 힙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음악 테두리'에서의 힙합을 추구하면 된다.
괜히 쓰잘데기 없이 멋 부리고 싶어서 'real, real' 하니까
인식론도 못 배운 것들이 '진짜'에 대한 철학 없이 흉내내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이다.
 
아이돌이 사랑 노래 부르면 그들은 다 'faker'들인가?
아니다. 그저 예술의 저변이 대중에게까지 확대되었고, 그 시장에서 움직이는 것뿐이다.
아이돌은 성상품화된 대상이지만, 그게 뭐 어쨌다고.
사람은 아름다운 것에 끌리기 마련이다. 힙합은 '멋' 아닌가?
 
나는 Bewhy 좋아하지만, 그의 <Forever> 가사는 앞뒤가 안 맞는다.
"근데 얘들아 나는 (중략) 더 가치있는 걸 바라보지 영원한 걸 따라가렴"
"나를 보면 서둘려 카메라부터 켜는 Ladies"
Ladies가 정말 영원한 거라 생각하는 걸까? 내 추측이지만 아닐 거라 믿는다.
맞다고 하면... 뭐, 조용필 형님의 오빠부대도 뭐... 아직도 bounce bounce하니까...
 
그런데 뭐 어떤가? 랩이 신나고 멋있으면 장땡이지.
대중음악은 그런 거다. 너무 '구리지' 않으면 된다.
 
랩도 멋있으면 된 거다.
래퍼들이 괜히 이상한 '탈'을 써서 대중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그걸 또 자기 가사에 쓰기는 하는데, 그러다가 '탈'난다.
 
힙합은 좋은데
개똥철학은 냄새나니까 걱정 된다.
이 글은 그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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