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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화,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네 번째 밤, 개천에서 태어난 괴물(上)
게시물ID : panic_901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윈스턴
추천 : 20
조회수 : 2278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6/08/19 16: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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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첫 번째 밤, 광대패 속의 여인.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58683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두 번째 밤, 절지당(絶指堂).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60495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세 번째 밤, 원귀의 저주.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94072

 

 






 



 

시관(試官)들을 당장에 들라 하라!!! 몹시도 고약하구나!!!”

 

 

곤룡포의 색과 흡사하게 분노로 달아오른 임금이 역린(逆鱗)하여 대성일갈(大聲一喝) 하였다.

 

 

근래에 이례적일 정도로 큰 불볕더위가 나라를 덮쳤고, 그 탓에 보기 힘들 정도의 큰 가뭄이 함께 찾아들었다.

그 탓에 식량과 식수의 문제가 심각했으나, 그런 파생된 결과 말고도 더욱 앞질러 먼저 다가오는 문제 또한 있었다.

 

너무 더워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판국이다.

그것이 일반적인 백성들을 말라죽게 할 뿐 아니라, 양반을 비롯한 벼슬아치들까지도 고사시킬 정도였던 것이다. 마치 불가에 몸을 맞대고 서 있는 모양처럼 끓어오르는 더위가 삽시간에 강가를 말라붙게 만들 정도였으니 더없이 약한 인간의 몸으로는 버텨낼 재간이 없는 일이었다. 깨진 도자기 파편이 수북한 도공의 집처럼 논밭은 쩍쩍 갈라져 조각난 채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고, 감히 그 논밭에 물을 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판국이었다. 마을의 실개천은 물론 꽤나 줄기가 굵다고 알려진 강들도 말라붙어 흙탕물이나 진흙탕이 되어가는 판국이었으니, 마실 물도 없는데 어딜 논밭에 그 물을 뿌리겠는가. 물이 사라져 진흙바닥에 입만 뻐끔거리며 죽어가는 물고기들을 주울 생각도 못 할 정도로 가뭄은 심각했다.

문제는 이러한 점이었다.

 

다 꺼진 촛불에서 나오는 연기마냥 가느다란 샘이라도 찾아내, 집 앞의 작은 텃밭에라도 뿌려볼 심산으로 나왔다가 열사병에 쓰러져 죽는 백성들이 수시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더위는 양반들에게도 가혹했다.

 

그나마 빙고(氷庫)의 얼음을 먹을 수 있었던 특정 관료들도 별다른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궁으로 출입하는 가마 안에서 쓰러져 죽기도 하고, 산보를 하다가 죽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다가 돌연사 하는 경우마저 있었으니 실로 무력한 것이 인간이었다.

 

 

특히나 나이가 많은 양반들이 자주 죽어나가 벼슬자리가 숱하게 비어나가서 문제가 된 것이다.

 

 

그래서 임금은 특별히 과거 시험을 준비하라 일렀고, 성균관에서부터 초시(初試), 복시(覆試)를 거친 인사들이 어전시(御殿試)를 치른 일이 얼마 전이었다.

이런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도 방방곡곡 이름도 모를 지역에서까지 과거를 치르려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그 중에서도 거르고 걸러 모은 최고의 인재들을 데리고 치르는 것이 마지막 시험 어전시였다.

 

 

그 속에서 급제를 했다는 인사들의 답안을 본 것이 임금의 대노에 대한 이유였다.

 

 

 

 

 

 

 

 

가뭄이 들어 내년 풍년을 이루려면 어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안이 고작 종자를 더욱 확보하여 더 많은 농사를 짓는다.’ 라니 네놈들이 진정 미쳐버린 것이냐!! 어디서 이따위 답안을 장원급제로 뽑아낼 수가 있단 말이냐!!!”

 

 

정말 소학은커녕 천자문도 떼지 못한 아이들이나 말할 법한 것을 과거시험의 답안이라고 제출했으니 임금은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어전시에서 이런 답안을 제출한 놈이나, 이따위 답안을 뽑아준 시관이나.

 

 

다른 답안은 더욱 가관이구나. 가뭄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구제하는 방법에 대해 논하라 하였더니 뭐라고? 환곡(還穀)을 더 많이 풀고 백성들에게 농사 대신 노역을 시킨다? 이따위 보기에도 참담한 글귀를 뽑아놓다니 여기가 무슨 흥정질하는 장사치들 바닥인줄 아느냐!!”

 

 

시관들은 역정을 쏟아내는 임금의 앞에 엎드려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하다못해 흘러가는 일갈의 욕설도 시관들은 맞받아 칠 재간이 없었던 탓이다. 단지 그가 나라에서 가장 높은 권력을 가진 임금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들이 듣기에도 뽑아놓은 답안은 불쏘시개로나 쓸모가 있을 글도 아닌 글이었기 때문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고 단지 침음만을 흘려대며 반 울음으로 떨어댈 수밖에.

 

입은 뒀다가 무얼 하느냐!!! 어서 고하라고 하였다!!!!”

 

임금의 노성은 더욱 거세지고, 시관들은 엎드린 바닥에 구덩이라도 있다면 머리를 그 구덩이 바닥까지 처박을 기세로 조아릴 뿐이었다.

 

 

전하, 그들은 잘못이 없사옵니다. 단지 제게 뜻이 있어 지시하였을 따름이옵니다.”

 

 

감히 어전에서 임금에게 대항을 하는 자.

불벼락이라도 떨어질 듯 두려운 임금의 노성을 거두게 했다.

 

만인지상(萬人之上) 영의정, 김조성.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임금인 나도 일언반구하지 않는 것이 과거시험인즉, 어찌 영의정이 권한을 행사하였는가!!”

 

 

 

 

같은 일갈이었지만 다소 누그러진 모양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의정이 임금의 기세에 전혀 눌리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고 반들반들한 능구렁이가 느물거리며 똬리를 틀 듯, 영의정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이번 과거시험 급제자들은 전원, 명망 높은 세도가들의 자제들입니다. 과거시험의 답안이 다소 미흡하다고는 하나 벼슬 한자리 꿰차고 나면 그들의 가문에서 그 자격에 맞도록 알아서 교육시켜 주겠지요. 그네들 가문의 명예가 걸려있는 노릇이니 말입니다. 하여 급제자들 본인이 아니라 그들 뒤에 있는 가문들을 바라보고 한 선택 이었습니다, 전하.”

 

 

말이 청산유수 같고 걸림 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다시 말해보면 과거시험의 본질을 흐리고, 권력가들과 매관매직을 했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과거시험은 공평하게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일진대, 어찌 그 본질을 흐려 가문의 뒷배 따위를 보고 인재를 선별했단 말인가!”

 

그런 의미가 아니옵니다. 어차피 아무리 날고 긴다는 인재를 뽑았다 하더라도 명망 높은 집안에서 관리해주는 것 보다 철저하겠나이까. 거기다 선출한 인재들 사이에서는 이번에 작고한 관료들의 자손들이 섞여 있으니 새로운 인재에 대한 반발 또한 누그러질 줄 아뢰옵니다.”

 

허튼 소리! 이따위 답안을 적는 자는 제아무리 훌륭한 집안의 자손이라도 그저 자격 없는 밥버러지일 따름이다! 네 잘난 세치 혀로 지금 임금을 농락하는 것이냐! 영의정이면 그저 임금의 보좌나 열심히 할 일이지 어찌 이리도 기고만장하여 월권을 한단 말이냐!!”

 

 

그저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영의정은 분명 매관매직을 했거나,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의 인재를 등용한 것이다. 본래라면 권력도 좌의정이나 우의정보다 약하고 그저 임금의 옆에서 그의 일을 보좌하며 조언이나 조금 했어야 마땅할 일이나, 권력 없이 명예뿐인 최고관직도 김조성 그가 꿰차니 말 그대로 만인지상(萬人之上)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영의정의 깊은 뜻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전하!”

 

나라를 생각하는 충신을 존중해 주시옵소서, 전하!”

 

 

조정의 악머구리들이 또 다시 소리를 높인다.

 

납죽 엎드린 꼴도 그러하거니와 그들의 듣기 싫은 소리 또한 한여름의 시끄러운 악머구리와 다를 게 하나 없었다. 임금은 옥좌에 머리를 괴고 앉아 지끈거리는 두통을 이겨내려 애쓴다. 이로써 하루 온종일 통촉 소리를 듣게 생긴 일이다.

다른 국정을 돌보려 할지라도 영의정의 편인 대신들은 과거시험 이야기를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임금이 어전시의 결과를 승인하기까지 멈추려 들지 않을 일이었다.

 

어전에서 문득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본다.

 

언제나 바라보고 쬘 수 있었던 저 햇볕이 어찌나 멀게 느껴지는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뜨겁고 야속한 햇볕이 아니라, 꼭 한번 찾아가고 싶은 광명의 천상을 보는 듯하였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그 날, 어전에서는 임금의 예상 그대로 과거시험의 소리만 울려 퍼졌고 다른 국사(國事)는 마비되어 버렸다. 임금은 하루 종일 통촉 소리만 듣고 지냈으며 별다른 이야기를 꺼낼 기력조차 나오질 않아 앉아만 있었다.

 

더욱 화가 나는 사실은 임금이 신하들의 거센 반발에 골머리를 썩으며 차마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도 못해 앉아만 있을 때, 그때 보았던 영의정의 미소였다.

영의정은 그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으며 온화함을 유지한 채, 임금을 바라보고 있었다.

명백히 비웃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처사였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그들이 제 앞날도 모르고 자기 목을 매는 짓을 하는 모양입니다.”

 

 

짐짓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임금을 달래는 여인.

그저 평소라면 속으로 화를 삭이며 전전긍긍했을 터이지만, 이제는 야심한 시각마다 밀회를 할 수 있는 여인에게 털어놓는 것이다. 연이어 하소연하며 역정을 쏟아내는 임금이었지만, 그 기분은 노기가 한풀 꺾여 다소 편해 보였다.

 

 

그래, 네가 알아주니 정말 고맙구나.”

 

소녀는 그저 범의 아가리에 고개를 처박은 그들이 우스울 따름이옵니다.”

 

범의 아가리라! 하하하하!!”

 

 

반기를 든 조정대신들에게 종일 시달리며 고립되다보면 자신감과 자존감은 있는 대로 깎여나가 처참히 무너진다. 사방에서 예의를 다해 임금을 대하나, 그 본질은 삿대질과 모욕에 지나지 않았다. 임금의 의사를 무시하고 영의정의 의견을 종용하라니, 그저 임금이 사리분별도 못하는 멍청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무에 다르단 것인지.

 

그렇게 시달리다 그 시름을 달래주는 이가 옆에 자리하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전하.”

 

 

즐거워하는 임금에게 여인이 더 바싹 다가와 자리했다.

항상 여인은 이야기를 할 적에, 임금과 같은 침상 위에 자리한다. 한 번 옆자리를 권했을 뿐인데 그 후로는 임금이 따로 권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듯이 옆자리에 앉는 것이다. 하지만 임금도 그것이 더욱 친숙하고 좋았기에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여인이 바싹 다가오기라도 하면 그녀를 인식해 다소 몸에 화기가 돈다.

 

이번에도 감도는 향기.

번번이 기억하려 애쓰지만, 그저 꽃향기라는 것을 알 뿐 무슨 꽃인지는 모른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사옵니까?”

 

 

 

소매 안에서 넌지시 무언가를 꺼내어 임금의 앞에 내려놓는 여인.

임금은 그것이 무엇인지 고개를 숙여 들여다본다.

 

작고 반짝이는 무언가가 임금의 침상에 놓여진다.

 

문득 여인의 눈치를 살폈는데, 그 미소가 왠지 또 장난기가 배어나오는 모양새다.

 

 

허어, 수수께끼라도 하자는 이야기로구나.”

 

 

말없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여인.

시선을 다시 내려 여인이 내려놓은 물체를 관찰한다.

 

그것은 검은 빛깔을 띠고 광택이 유별나게 도드라졌다. 마치 흑요석을 보는 듯, 그 빛깔이 어두우면서도 반들반들 발광(發光)하였으며 모양은 사람의 손톱을 닮았다.

 

 

 

무슨 물고기 비늘 같은데, 이 어두운 색 하며 유난히 빛나는 것이 요란스럽구나.”

 

물고기의 비늘이라 생각하시옵니까?”

 

아니다, 고기의 비늘이라기엔 너무 큰 것 같구나.”

 

 

 

신중히 답을 고르느라 어느 것으로도 확정하지 못하고 골몰하는 임금.

문제를 틀리기라도 하면 임금의 위상이 손상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그 물건을 대하는 모양새가 진중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여태껏 살며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니 어떻게 알아맞힐 수 있겠는가.

 

임금은 그저 물건을 보며 생각하다 여인의 눈치를 보다 분주히 시선을 옮겼다.

 

 

 

이것은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 속의 인물이 가지고 있던 물건이옵니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여인에게 눈을 맞춘다.

자상함마저 느껴지는 그 잔잔한 목소리가 이야기속의 모든 광경을 눈앞에 불러오는 듯하다. 속삭이는 듯 가벼우면서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이야기지만 그 내용이 어떨지는.

 

 

 

 

다 듣고 나시면 많은 것이 변하시겠지요.”

 

 

 

 

 

 

 

 

 

 

 

 

 

 

 

 

 

 

장날인 탓에 그나마 시끌시끌한 편이었던 마을이 이제는 떠나가라 울리고 있었다.

누구의 목청이 가장 큰지 겨루는 모양으로 서로가 목소리를 드높여 물건을 팔아대고 있었다. 하다못해 볼품없는 장작을 파는 나무꾼도 멀건 죽이나 겨우 먹은 탓에 힘에 부칠 만한데, 사력을 다해 목소리를 쥐어짜는 꼴이 여간 절절한 것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칡뿌리를 캐다가 파는 부부가 하나 있었다.

 

좋은 자리는 전부 다른 이들이 꿰차고, 이들 부부는 장터의 맨 구석의 볕도 들지 않는 곳에 자리했다. 그나마 가장 안쪽에 있었고, 그 옆에는 밧줄이나 삼태기 따위를 보관하는 창고가 자리한 탓에 그것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나마 들어오는 이도 얼마 없는 자리이건만, 몇몇의 지나가는 이들은 사주지도 않으면서 한마디씩 하고 간다.

 

 

 

아니, 산에 뭐 캐러 올라가서야 가끔 주워 먹는 게 칡인데 장에서 판다고 그게 팔려?”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당연지사 칡은 팔리는 물건이 아니었지만, 산나물이나 열매, 버섯들은 다른 이들이 다 캐가고 남는 건 텅 빈 나무나 이 칡뿌리가 다였다.

그나마 나무는 나무꾼들이 너무 많은데다 그들 틈바구니에서 견뎌낼 재간도 없었기에 아무도 팔지 않는 칡을 캐온 것이다.

 

이들 부부도 나물을 캐면 캘 수야 있었겠지만, 세상이 허락하지 않았다.

 

역적집안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조정이 탐욕과 부정부패에 물들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도적놈 소굴이 되었던 때였다.

그때 난을 일으켰다 얼마 싸우지도 못하고 망해버린 가문의 자손이 이들 부부인 것이었다.

 

그나마 말석의 벼슬이라도 지내고 있던 양반의 집안이었으나, 삼족이 멸해지는 멸문지화를 당해 산산이 가루가 되어 버렸다. 그나마 살아남은 것이 이들이었으나, 역적 놈의 집안이라 하여 밭일은커녕 산에서 뭔가 캐기만 하여도 돌팔매질을 받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지천에 무엇이 자라나도 손을 댈 수가 없는 것이었다.

 

사실 나라에서 그런 벌을 내린 것은 아니었지만, 약한 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학대는 잔혹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여보, 미안하구려. 나 같은 것과 혼인을 하여 이 무슨 고생이란 말이오.”

 

 

서방 되는 이의 한이 서린 한탄이 한숨이 되어 바닥을 꺼트릴 듯 내려앉는다.

그들은 온전한 집도 없는 탓에, 개천의 다리 밑에서 생활했다.

 

집을 지어보려 노력하지 아니한 것도 아니나, 끊임없이 돌팔매질을 하거나 불을 지르려 하는 이들 때문에 도저히 살 수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개천의 다리 아래에 살면, 그들을 괴롭히기 위해 다리를 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나마 사람들이 내버려 둔다.

 

결국 이들 부부는 몸 온전한 거지처럼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예요, 서방님. 어차피 저는 천출 백정의 딸이었잖아요. 이래나 저래나 마찬가지라면 서방님과 함께 백년해로 하고 싶어요.”

 

 

 

망해버린 역적 양반가의 남편과 백정의 딸인 아내.

 

누가 더 기구한 운명일지는 비교해 볼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벽이라고 만들어 세워 둔 거적들이, 날이 저물어 바람이 일자 을씨년스럽게 흔들려왔다. 그나마 찬바람을 가리려고 열심히 엮어 세워 둔 거적들은 벽이 되어 주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지만 구멍은 하나도 없는 낡아빠진 돌다리가 샐 틈 없이 비를 막아주는 지붕이 되어 주었다. 나름대로 세간을 갖추려 집안에 큰 돌들을 쌓아 아궁이 흉내를 낸 불가를 만들고 뚜껑이 깨진 가마솥도 주워다 놓았다.

 

지금 끓고 있는 가마솥에는 낮에 팔다 못 팔고 도로 가져온 칡들과 개천 근방에 지천으로 널린 쑥들이 조금 캐어져 담겨 있었다.

 

그리고 구걸하여 얻어낸 쉰 밥 한 덩이를 나누어 먹는다.

 

쉬다 못해 퀴퀴한 곰팡내도 나는 듯 했지만, 그들 앞에 흐르는 개천의 고약한 악취에 비하면 그 쉰 밥덩이는 그저 삭혀진 짠지 같은 음식에 지나지 않는다.

 

온 마을의 개골창이 모여들어 마을 밖으로 흘러나가는 개천.

 

특히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장터라도 열릴 때면, 특히나 개천은 그 악취를 더욱 거세게 돋운다.

 

 

 

내일은 우리 마을 밖으로 나가 먹을 것을 구해 봅시다. 설마 다른 마을 사람들까지 우리에게 돌팔매질을 하겠소? 다른 곳에 가서 먹을 것을 캐오고 구해오면 될 것이오.”

 

 

 

그 쉬어터진 밥을 꾸역꾸역 삼키며 아내를 다독이는 남편은, 그와 동시에 자기 자신을 다독이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음식 같지도 않은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니 어찌나 혓바닥이 야속한가.

 

배를 곯으면 사람은 짐승이 되는지도 모른다.

 

 

 

 

 

 

 

하윽!!”

 

 

밥을 먹은 지 한 식경도 되지 않아 아내가 고통으로 배를 부여잡는다.

급체라도 한 것인가 싶어 아내를 눕히고 손끝을 꼬챙이 따위로 찔러 피를 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 왜 그러시오! 어디가 그리도 아프단 말이오!”

 

여보! 배가배가 너무!!”

 

 

 

남편은 최악의 상황을 생각했다.

썩은 밥을 잘못 먹어 배탈이라도 났다면 약이 필요한데, 쉰밥도 겨우 한 덩이 구한 마당에 누가 약을 지어 줄 것인지는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러고 마냥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남편은 급히 아내를 업고 마을 안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못 먹고 사는 살림에 사람을 업고서 달리자니 다리가 후들거려 쓰러질 지경이었지만, 남편은 천근으로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의원을 향해 달렸다.

 

쉬지 않고 다리를 놀리는 남편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으나, 아내는 그러한 것을 눈에 담을 여력도 없는 듯 끙끙 앓기만을 반복했다.

 

 

 

 

 

 

 

 

 

안된다면 안 돼! 너희 부부를 들였다가 누가 보기라도 하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장사 하라는 게야!”

 

 

의원에서는 진즉에 퇴짜를 맞았다.

오히려 의원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냈으니 그나마 아픈 환자에게 몽둥이 찜질이라도 피하게 하려고 몇 마디 말도 꺼내지 못 한 채 도망 나왔다.

 

그렇게 전전긍긍 고민하며 찾다가 다다른 곳이 약재상이었다.

 

배탈에 좋은 약을 구할 수 있을까 싶어 애원하지만 약재상 또한 몽둥이만 들지 않았을 뿐, 매몰차기는 마찬가지였다.

 

 

 

구억우욱우우욱!!”

 

 

 

구역질을 세차게 거듭하는 아내.

남편은 이날 이때까지 이토록 애걸복걸 빌어본 일이 없었다.

 

평소 사람들의 멸시와 모욕을 받아내며,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익숙해졌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토록 목숨을 다해 애원하는데도 매몰차게 거절하고 쫓아내려 하는 사람들을 보자 남편의 마음은 다시 한 번 절망에 잠겨갔다.

 

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했는지.

 

이토록 울며 빌어대는데, 사람이 죽는 소리를 내는데.

이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매정하게 쫓아낼 뿐이었다.

 

다시 한 번 느낀다.

 

이들에게 자신들은 사람의 자식이 아니었다.

 

 

 

 

 

 

집으로 오는 길이 너무도 버거웠다.

 

아내의 앓는 소리가 꽤 잦아들었지만, 그 식은땀은 여전히 줄줄 흘러 아내를 업고 있는 남편의 등짝을 축축하게 적셔왔다. 아내를 업고 온 마을을 헤집고 달리느라 다리가 후들거려 당장에라도 쓰러질 판국이었지만, 이토록 앓아대는 아내를 길바닥에 내려놓을 수가 없어 죽을힘을 다해 집으로 발걸음을 하는 것이었다.

 

 

집으로 도착하자마자 끓여 두었던 쑥 물을 아내에게 먹인 뒤, 이불로 쓰는 천 따위를 아내에게 전부 덮어 주었다. 그나마 쑥이 배탈에 좋다는 것은 알기에 쑥 물만 우선 마시게 했다. 남편은 아내가 잠든 것을 보고 나서야 집 밖으로 나왔고, 개천가의 바위에 앉아 몸을 쉬게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며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마을에서의 취급은 그야말로 역병 환자나 문둥병 환자의 취급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집안에서 자고 있는 아내가 들을까 꺽꺽대며 애써 울음을 삼켜댄다.

 

누구나 더러운 것을 바라보듯 이들 부부를 바라보았으나, 지금 이 개천에서 흐르는 가장 깨끗한 것은 남편의 눈물이었다.

 

 

 

 

 

 

 

한참을 울다가 지쳐, 눈물을 훔치고 집에 들어가 아내의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다리 아래인 까닭에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눈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웠으나, 종종 다리 위를 걷는 소리가 들리는 모양으로 보아 날이 밝은 모양이었다.

남편이 집 밖으로 머리를 살며시 내밀어보자 어슴푸레하게 날이 밝아오는 것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그 신세가 고약한 것을 다시 느낀다. 다른 이들은 남향이 좋다 동향이 좋다 하여 해가 잘 드는 곳을 기가 막히게 챙기곤 하는데, 그 자신은 내다보질 않으면 해가 났는지도 모를 다리 밑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어찌 같은 사람인데도 이토록 다르단 말인가.

 

전날 끙끙 앓았던 아내의 기색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

 

 

 

, 여보!! 여보!!!”

 

 

 

눈이 휘둥그레진 남편이 다급한 목소리로 아내를 흔들어 깨운다.

아내는 부스스한 모양으로 일어나 눈을 뜨고, 서서히 몽롱한 그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안정을 찾은 아내의 모습과는 다르게 남편은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어할 정도로 당황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는 남편에게 이야기한다.

 

 

여보, 배가 너무 고파요.”

 

 

 

 

 

 

 

 

 

 

 

 

어안이 벙벙한 남편이 어리둥절한 와중에 뛰어나가 밥을 구해왔다.

아침부터 일어나 구걸을 다닌 남편은 어떻게든 밥덩이를 구해왔는데, 아내가 많이 아파했던 것을 떠올려 평소보다 무리해서 구걸을 했다. 밥덩이를 다섯 덩이나 구하게 되었는데, 구걸도 자주 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적선을 해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일에 있어서는 매우 무리를 한 것이었다.

 

그 쉰밥의 적선도 그냥 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산과 들에 돋아나는 나물들 따위도 못 캐게 하는데 어찌 밥을 거저 나눠주는가.

갖은 모욕과 비하, 심지어는 폭행까지 당해줘야 그 쉬어터진 밥덩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의 놀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밥을 구해 온 남편은 집에 도착하자, 다시 한 번 넋이 나가버렸다.

 

아내가 집에서 나와 온 개천에 돋아난 쑥을 뽑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당나귀 따위가 게걸스레 풀을 뜯듯이 우적우적하며 개천가에 널린 쑥들을 뽑아 먹고 있었다. 끓이거나 데치지도 않은 생풀을 사람의 모습을 하고서 어떻게 그냥 먹는다는 말인가.

그 모습만으로도 해괴할 지경인데, 아내의 모습은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혼이 쏙 빠질 정도로 놀라게 만든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내의 배가 만삭으로 부풀어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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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상편으로 올리고 허리를 자른 이유는.


제가 이번 주말에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옵니다, 헤헤.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까닭에 나머지는 다녀와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ㅜㅠ 부디 양해를 ㅎㅎ..



지난번에 몇 편 정도로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어주신 분이 계셨는데 ㅎㅎ


열 번째 밤 이상까지는 가지 않나 싶습니다!

그때 상황 봐서 계속 재미있게 봐주시면 이어가고 아니면 염두에 뒀던 결말을 속히 맺고 그렇게 하겠지요 ㅜㅜ



그리고 지난 세 번째 밤 이야기에 김먼지 님께서 덧글로!!


무려 홍년이를 그려주셨어요!!!!




홍년이.jpg





너무 이쁩니다 귀엽습니다 ㅠㅠㅠㅠㅠ

감사해서 이걸 어찌 하옵니까 ㅜㅠㅠㅜㅠ

금손님 좋은 그림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귀여운 홍년이 모습이 짠하게 마음을 울리네요... 애잔.. 아련... 흐규....ㅜㅠ

네, 제 마음 속의 홍년이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ㅜㅠ


 



나머지 내용은 다음주 평일에 속히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분들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ㅎㅎ


부디 언제나 행복한 일만 가득하셔요!!






 

 

출처 작성자, 본인, 윈스턴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첫 번째 밤, 광대패 속의 여인.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58683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두 번째 밤, 절지당(絶指堂).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60495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세 번째 밤, 원귀의 저주.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94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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