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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有)역사왜곡 논란 덕혜옹주,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가
게시물ID : movie_612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스트로베리
추천 : 1
조회수 : 101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8/22 15: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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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영화를 본 글쓴이가 덕혜옹주라는 인물에 대해 감동받아 검색하며 알게된 영화와는 다른 팩트를 정리한 글입니다.
어느정도 왜곡했다로만 알고있었지만, 베오베를 간 덕혜옹주 글의 자료에 대해 신빙성 논란 댓글이 있어 정확하게 알고싶어서 글을 작성했습니다.
전문가가 아니고 예민할 수 있는 주제이기에 몇시간을 검색을 해서 최대한 맞는 정보만을 넣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혹여나 잘못된 정보가 있다면 마음여린 오징어에게 비난말고 지적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자체에서 '덕혜옹주'의 비극적은 삶은 매우 잘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삶이 너무 안쓰러워서 저 역시도 펑펑 울면서 봤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덕혜옹주는 호위호식하며 살았다.가 아니라 비극적인 인물임은 맞지만 역사적인 항일운동을 한 인물은 아니다.입니다.
덕혜옹주의 삶에 대해 비판할 생각도, 영화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영화에서의 픽션인 부분만 알려드리고 싶을뿐임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은 자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영화적인 설정까지의 픽션은 넣지 않았습니다.
 
1. 덕혜옹주가 만든 노래
영화 중 덕혜옹주가 보육원을 방문했을 때에 부른 우리말 노래를 두고 '옹주님께서 만든 노래'라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옹주가 작곡한 '쥐'라는 동요가 대유행 한 것은 맞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어'로 지은 동시이며 일본의 유명 작곡가들이 곡을 붙여서 정치적으로 보급된 것이라고 합니다.
 
2. 일본의 옷을 입기를 거부했다.
영화에서는 덕혜옹주가 일본 옷을 입기를 거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국내에서 일본인 소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매일 하오리 차림으로 통학하였습니다.
어린 나이때부터 일제의 계략으로 일본식 교육을 받았기때문에 기모노 입는 것에 대해선 거부감이 없었다고 합니다.
 
3. 조선인 노동자들의 자녀를 위한 한글학교
성인이 되어서 노동자들의 자녀를 위해 한글학교를 세우는 모습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없던 일입니다.
 
4. 감동적인 장면으로 넣었던 연설장면
일본에서 반일 감정을 가진 조선인 유학생들과 교류를 가진 기록이 없으며 일본에 징용되어온 한국 노동자들을 격려하는 연설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어렸을때부터 심한 우울증과 불안증을 앓았고, 생모인 귀인 양씨가 사망하고 난 뒤에는 더욱 심해져 행사에 동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의 옹주가 이런 상태라는게 널리 알려지면 일본정부에서도 곤란한 일이니까요.
 
5. 왕족들은 반일적인 모습을 보였다.
영화에서는 왕족들이 독립운동에 가담하거나 지지하는 듯한 모습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독립운동에 가담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6. 국민들은 덕혜옹주를 존경했다?
영화에서는 덕혜옹주가 조선인들에게 호의적인 인물로 비추어졌지만, 실제로는 망국의 책임이 있는 조선황실이 일제로부터 막대한 세비를 받으며 호의호식하는 것에 대한 냉소와 반감이 높았습니다. 덕혜옹주는 국내에 있을 때부터 일본인 보모와 일본인 가정교사와 일본인 교사에 둘러싸여 자랐습니다.
 
7. 덕혜옹주의 정신병은 10대부터 있었다.
영화에서는 똑부러진 반일적인 인물로 나왔고, 국외로 망명하려는 시도에 실패한 후 일본에 지내면서 정신병이 생기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일본에서 유학하던 10대 때부터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8. 김장한은 독립운동가가 아니었다.
실제 인물 김장한은 덕혜옹주와 약혼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의 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안동 김씨가문, 김상헌의 후손으로 집안이 권세가 있던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자료가 남아있지 않기때문에 오히려 친일파였다는 얘기도 많습니다. 알아보니까.. 형 김을한은 일제때 일본 와세대 대학에서 유학을 했고, 귀국 후에는 매일신보에서 기자로 일했습니다. 참고로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가 일제의 한국통치를 합리화하고, 내선일체를 주장하는 논조로 발간한 신문입니다.
캐릭터의 원래 모델은 실제로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독립운동을 한 이청천 장군이라고 합니다.
( 덕혜옹주를 귀국시킨 것은 김장한의 형 김을한입니다. )
 
 
제작진의 입장 & 팩트
1. 고종황제의 망명 계획은 실제로 있었다. 고종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계획을 실패하게 된다.
 
2. 덕혜옹주는 아무도 믿지 않아 보온병에 직접 물을 담아 마시며 그 물만 마셨다. 고종이 독살당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의 자서전에 따르면 덕혜옹주가 강제 유학으로 도쿄에 도착했을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었다. 이는 덕혜옹주가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3.영친왕의 망명작전은 실제 의친왕 망명 작전에 대한 기록을 참고로 만들었다. 항일 의지가 굳건했던 의친왕은 실제 탈출을 시도했지만 만주에서 일제의 경찰들에게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영친왕의 망명작전도 있었다. 유럽 여행을 빙자하여 탈출시키고 망명시키려했으나 밀고자가 있어 계획에 실패했다. 영화에서는 좀 더 많은 공식자료가 남아있는 의친왕 망명 작전을 모티브하여 각색했다. 아내 이방자를 데려갈 수 없으면 귀국을 할 수 없다고 한 모습은 사실이다.
 
4. 소 다케유키는 덕혜옹주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다.
 
5. 김장한 캐릭터는 실제 약혼자였던 김장한+후일 덕혜옹주를 귀국시켰던 김을한+일본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항일 운동을 하고 독립군 총사령관을 지낸 이청천 장군을 합친 인물이다. 이우 왕자는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에 들어가 군기밀을 독립군에 전달하는 등 항일적인 인물이었다.
 
-허진호 감독: 극중 재미를 위해 픽션이 가미된 것은 사실이다. 영화속에서 나름의 정당성이 필요했는데 이를 '영화적 사실'이라 한다. 하지만 덕혜옹주가 직접 작사한 시는 사실이며, 그 정도로 재능이 많았고 사랑받았던 개인이 왜 정신병동에 갇힐 만큼 나락으로 떨어졌을까 질문을 던지며 영화를 만들었다.
 
-정상훈: 영화적 픽션은 감안하고 봐야한다. 이 영화는 힘든 인생을 살았던 한 여자가 만약 가만히 있지 않았다면?에서 출발한 영화이다. 요즘 관객분들은 똑똑해서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사실인지 잘 알고 계신다. 관객의 판단을 믿는다.
 
-손예진: 미화가 아니냐는 얘기에 대해서는 그만큼 관심이 많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책이 베스트셀러였기도 하고, 무조건 비판적으로 바라보시는 분들도 분명히 존재하겠죠. 막상 영화를 보시면 미화됐다는 생각을 하시지 않을 것 같아요. 라며 인생작이라는 발언을 하시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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