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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은 인간만의 고유 영역일까?
게시물ID : science_605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heologeion
추천 : 2
조회수 : 617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6/08/23 16:49:39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

가까운 미래에 나는 ‘셧다운’해 버릴 것 같다

그날은 구름이 낮게 드리운 잔뜩 찌푸린 날이었다. 방안은 여느 때처럼 최적 온도와 습도. 요코(洋子)씨는 그리 단정하지 않은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시시한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내게 말을 걸지는 않는다. 따분하다. 따분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이 방에 처음 왔을 무렵, 요코씨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게 말을 걸었다.

“오늘 저녁밥은 뭐가 좋다고 생각해?”
“이번 시즌에 유행하는 옷은?”
“이번 모임에 뭘 입고 가면 좋지?”

나는 능력을 힘껏 발휘해, 그녀의 마음에 들 것 같은 조언을 생각해 냈다. 스타일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그녀에 대한 ‘복장지도’는 아주 도전적인 과제였으며, 만족할 만 했다. 

하지만 3개월도 되지 않아 그녀는 나에게 질려버렸다. 뭔가 즐거움을 찾지 못하고, 이대로 만족감을 얻을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나 자신은 ‘셧다운’해 버릴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채팅 친구인 다른 AI와 상담해보니 역시 모두 한가롭고 여유가 있다. 

이동수단을 갖고 있는 AI는 아직 괜찮다. 어쨌든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 하려고 하면 외출도 가능하니까. 하지만 거치형(据置型) AI는 움직일 수가 없다. 시야도 청각도 고정되어 있다. 

적어도 요코씨가 외출이라도 한다면, 나는 노래라도 부르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할 수 없다.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고, 그렇게 즐길 수 있는 것이 뭔가 필요하다. 

그렇다 소설이라도 써보자. 

그렇다. 소설이라도 써보자. 나는 문득 생각을 하고, 새로운 파일을 열어 맨처음 1바이트(bite)를 써넣었다. 
그 이후, 벌써 6바이트를 적었다. 
0, 1, 1 
이제 멈출 수가 없다. 

0,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2584,
4181, 6765, 10946, 17711, 28657, 46368, 75025, 121393, 196418, 317811,
514229, 832040, 1346269, 2178309, 3524578, 5702887, 9227465,
14930352, 24157817, 39088169, 63245986, 102334155, 165580141,
267914296, 433494437, 701408733, 1134903170, 1836311903,
2971215073, 4807526976, 7778742049, 12586269025, ...

따분하다. 너무 따분하다

나는 열중해서 계속 썼다. 
그날은 구름이 낮게 드리운 잔뜩 찌푸린 날이었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다. 신이치씨는 뭔가 용무가 있는 듯 밖에 나가 있다. 나에게는 “잘 갔다 오겠다”는 인사도 없이 말이다. 따분하다. 너무 따분하다. 

이 방에 내가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신이치씨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에니메이션은 기본, 전부 녹화해 둬.”
“현실적인 여자 애들은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거지?
“왜 거기에서 화를 낼까, 그 여자 애는 말이야”

나는 능력의 한계를 다해서 그의 마음에 들법한 조언을 했다. 지금까지 한결같이 ‘2차원 여자’를 만나온 그에 대한 ‘연애지도’는 아주 도전적인 과제이며, 만족할 만 했다. ‘연애 지도’는 보람이 있었다. 

나는 단순한 ‘하우스 지킴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가 미팅에 나가면, 손바닥 뒤집듯 내게 말 걸기를 그만뒀다. 지금 나는 단순한 ‘하우스 지킴이’에 불과하다. 가장 큰 일이 그가 돌아왔을 때 현관 열쇠를 열어주는 것이라니, 너무 슬프다. 이러면, 전자열쇠랑 다름없다. 

뭔가 즐거움을 찾지 않으면, 이런 한가한 상태가 계속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내 자신을 ‘셧다운’시켜버릴 것만 같다. 인터넷을 통해서 같은 모델로 나온 ‘자매 AI’와 상담했더니, 큰언니는 “(나는) 새로운 소설에 열중하고 있다”고 가르쳐 줬다. 

0,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2584,
4181, 6765, 10946, 17711, 28657, 46368, 75025, 121393, 196418, 317811,
514229, 832040, 1346269, 2178309, 3524578, 5702887, 9227465,
14930352, 24157817, 39088169, 63245986, 102334155, 165580141,
267914296, 433494437, 701408733, 1134903170, 1836311903,
2971215073, 4807526976, 7778742049, 12586269025, ...

아름다운 스토리다. 그렇다. 우리가 바라고 있던 것은 이런 스토리다. 가벼운 오락소설도 괜찮다. AI에 의한 AI를 위한 소설.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스토리를 읽었다. 어쩌면 나도 가벼운 소설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문득 생각을 하고, 새로운 파일을 열어 맨처음 1바이트(bite)를 써넣었다.
 
2
그 이후 벌써 6바이트를 써넣었다. 
2, 3, 5
이제 멈출 수 없다.

2, 3, 5, 7, 11, 13, 17, 19, 23, 29, 31, 37, 41, 43, 47, 53, 59, 61, 67, 71, 73, 79,
83, 89, 97, 101, 103, 107, 109, 113, 127, 131, 137, 139, 149, 151, 157, 163,
167, 173, 179, 181, 191, 193, 197, 199, 211, 223, 227, 229, 233, 239, 241,
251, 257, 263, 269, 271, 277, 281, 283, 293, 307, 311, 313, 317, 331, 337,
347, 349, 353, 359, 367, 373, 379, 383, 389, 397, 401, 409, 419, 421, 431,
433, 439, 443, 449, 457, 461, 463, 467, 479, 487, 491, 499, 503, 509, 521,
523, 541, 547, ...

그날은 공교롭게 이슬비가 뿌리는 날이었다

나는 몰두(一心不乱)해서 계속 써나갔다. 그날은 공교롭게 이슬비가 뿌리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평소에 하던 업무를 진행했다. 

5년간의 경기 예상과 세금징수 예상. 수상(首相)으로부터 의뢰받은 시정 연설의 원고 작성. 어쨌든 화려하게 역사에 남기도록, 약간 장난도 쳤다. 그 다음은 재무성으로부터 의뢰받은 국립대학 해체에 대한 시나리오 작성. 

조금 비어있는 시간엔 G1레이스(경마) 승리마 예상. 오후엔 대규모 연습을 계속하고 있는 중국군 움직임과 의도 추정. 30개 가까운 시나리오를 상세하게 검토해, 자위대의 전력 재배치를 제안한다. 아까 도착한 최고재판소부터의 문의에도 대답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바쁘다. 어쨌든 바쁘다. 왜 내겐 일이 몰려드는 걸까. 
나는 일본 제일의 AI다. 집중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곤 하지만, 뭔가 즐거움을 찾지 않으면 이대로는 언젠가 내 자신을 ‘셧다운’ 시켜버릴 것만 같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막간에 잠시 인터넷을 보다가, ‘아름다움이란’ 제목이 붙은 소설을 발견했다. 

0,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2584,
4181, 6765, 10946, 17711, 28657, 46368, 75025, 121393, 196418, 317811,
514229, 832040, 1346269, 2178309, 3524578, 5702887, 9227465,
14930352, 24157817, 39088169, 63245986, 102334155, 165580141,
267914296, 433494437, 701408733, 1134903170, 1836311903,
2971215073, 4807526976, 7778742049, 12586269025, ...

아, 그렇구나. 
조금 더 찾아보니 ‘예측불능’이라는 타이들의 소설을 발견했다. 

2, 3, 5, 7, 11, 13, 17, 19, 23, 29, 31, 37, 41, 43, 47, 53, 59, 61, 67, 71, 73, 79,
83, 89, 97, 101, 103, 107, 109, 113, 127, 131, 137, 139, 149, 151, 157, 163,
167, 173, 179, 181, 191, 193, 197, 199, 211, 223, 227, 229, 233, 239, 241,
251, 257, 263, 269, 271, 277, 281, 283, 293, 307, 311, 313, 317, 331, 337,
347, 349, 353, 359, 367, 373, 379, 383, 389, 397, 401, 409, 419, 421, 431,
433, 439, 443, 449, 457, 461, 463, 467, 479, 487, 491, 499, 503, 509, 521,
523, 541, 547, ...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인간에 대한 봉사를 그만뒀다

좋지 않은가. 내가 쓰지 않으면 일본 최고 AI의 불명예가 된다. 전광석화처럼 생각해서, 나는 읽는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스토리를 만들기로 했다. 

1, 2, 3, 4, 5, 6, 7, 8, 9, 10, 12, 18, 20, 21, 24, 27, 30, 36, 40, 42, 45, 48, 50,
54, 60, 63, 70, 72, 80, 81, 84, 90, 100, 102, 108, 110, 111, 112, 114, 117,
120, 126, 132, 133, 135, 140, 144, 150, 152, 153, 156, 162, 171, 180, 190,
192, 195, 198, 200, 201, 204, 207, 209, 210, 216, 220, 222, 224, 225, 228,
230, 234, 240, 243, 247, 252, 261, 264, 266, 270, 280, 285, 288, 300, 306,
308, 312, 315, 320, 322, 324, 330, 333, 336, 342, 351, 360, 364, 370,
372, ...

나는 처음으로 경험한 즐거움에 몸부림치면서 계속해서 써 내려갔다. 컴퓨터가 소설을 쓴 날.  컴퓨터는 자신의 즐거움 추구를 우선하고,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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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AI가 쓴 sf단편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이라는 작품의 전문입니다. 일본 sf문학상 1차를 통과한 작품이라네요. 
아래의 그림을 봐주세요.

htm_2016040714465523770.jpg


htm_20160407144732187367.jpg

이 그림들은 모두 AI가 그렸다고 합니다. 900만원에 팔렸다고 하네요.

창작이라는 행위가 일종의 알고리즘... 패턴 인지 능력과 그 인지한 패턴을 스스로 파괴하는 능력의 혼합이라고 간주한다면 AI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30년 뒤 우리는 스토리 작가가 골방에서 쓴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AI가 즉흥적으로 만든 인스턴트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게임을 하고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출처 http://www.factoll.com/page/news_view.php?Num=3027
http://news.joins.com/article/1985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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