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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남자가 준 시
게시물ID : love_95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께소
추천 : 2
조회수 : 78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8/26 17: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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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일을 하기 위해 학교 도서관에 갔다. 내가 요즘 하는 일은 가까운 교수님의 연구를 돕는 것인데, 인터뷰 녹음을 듣고 타이핑을 해야 해서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하루에 서너 시간을 보낸다. 도서관 맨 위층에 가서 자리를 잡고 헤드폰을 쓰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고 구석에 앉아 있어서 그런지 집중이 잘 됐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놀라서 옆을 돌아보니까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나이는 내 또래인 듯했다.

'저기 부탁이 있는데요...'

남자는 검색하고 싶은 게 있는데, 이 대학교 학생이 아니어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가 없다며 혹시 핸드폰을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얘기했고 그에게 내 핸드폰을 건넸다. 그가 바로 쓸 수 있도록 새 창에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는 사이트를 올려뒀다. 그런데 핸드폰을 받아든 남자가 화면을 얼마간 뚫어질 듯 쳐다보더니 내게 익숙한 언어로 다시 말을 꺼냈다.  

'¿Hablas español? (스페인어 하세요?)'

남자는 스페인어로 설정되어있는 내 핸드폰을 봤다고 설명했다. 그도 중남미에서 살아본 적이 있어서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고 했다. 어쨌든 굉장히 능숙한 발음에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집에 있는 느낌과도 비슷했다.

그렇게 남자는 핸드폰을 다 쓴 후에 내게 돌려줬고 나는 계속 일을 했다. 그런데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헤드폰을 벗자 그가 웃으며 쪽지를 건넸다. 노란 메모지 위엔 검은색 펜으로 쓰인 글이 있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스페인어로 된 시예요. 갑자기 생각나서 적어봤어요.'

그가 써준 시 덕에 나는 남은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곧 자리를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바보같이 '가볼게요'라는 말만 남기고서 도서관을 나섰다. 어쩌면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일 텐데. 우리 학교 학생도 아니고.

그날 저녁 언제나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친구와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그 남자 얘기를 꺼냈다. 이렇게 예쁜 일이 나한테 있었다고 하자 친구는 부럽다는 말과 함께 남자에게 이름도 연락처도 묻지 못한 나를 혼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웃어넘겼다. 문학을 사랑하는 친구는 처음 보는 시라며 남자가 내게 남긴 쪽지를 몇 번이고 읽었다.

'시 좋네, 번역하고 싶다.' 그녀가 스페인어로 중얼거렸다.
'벌집이라는 단어가 좋더라.' 실은 나는 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문학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아니, 어쩌면 사랑에 관한 얘기였으려나. 


"Anoche cuando dormía"


Anoche cuando dormía
soñé ¡bendita ilusión!
que una fontana fluía
dentro de mi corazón.
Dí: ¿por qué acequia escondida,
agua, vienes hasta mí,
manantial de nueva vida
en donde nunca bebí?


Anoche cuando dormía
soñé ¡bendita ilusión!
que una colmena tenía
dentro de mi corazón;
y las doradas abejas
iban fabricando en él,
con las amarguras viejas,
blanca cera y dulce miel.


Anoche cuando dormía
soñé ¡bendita ilusión!
que un ardiente sol lucía
dentro de mi corazón.
Era ardiente porque daba
calores de rojo hogar,
y era sol porque alumbraba
y porque hacía llorar.


Anoche cuando dormía
soñé ¡bendita ilusión!
que era Dios lo que tenía
dentro de mi corazón.



"지난밤 자는 동안"


지난밤 자는 동안
꿈을 꾸었습니다, 아 환상이여!
내 심장 속에서
어떤 샘물이 흐르는 꿈이었지요.
말해주세요. 물이여, 숨은 물길이여,
어째서 내게로 오는 건가요?
한 번도 마셔보지 않은
새로운 삶의 샘이여.

지난밤 자는 동안
꿈을 꾸었습니다, 아 환상이여!
내 심장 속에
벌집을 둔 꿈이었지요.
그리고 황금빛 벌들은
그 속에서
오래된 씁쓸함으로
하얀 밀랍과 달콤한 꿀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지난밤 자는 동안
꿈을 꾸었습니다, 아 환상이여!
내 심장 속에서
타는 듯한 태양이 반짝이는 꿈이었지요.
붉은 집과도 같은 따스함을 주었기에
타는 듯한 것이었고,
빛을 비추고 또 나를 울게 하기에
태양인 것이었습니다.

지난밤 자는 동안
꿈을 꾸었습니다, 아 환상이여!
내 심장 속에 든 게
실은 신神인 꿈이었지요.



출처 시는 안토니오 마차도Antonio Machado라는 스페인 시인의 작품입니다.
그나저나 시를 번역하고 싶어서 번역한 친구가 접니다 ;)
이건 친구 이야기를 친구 시점에서 제가 쓴 글이고요.
얘기 듣고 같이 두근두근했네요. 아무튼, 두근두근해서 책게가 아닌 연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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