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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정원] 4. 인간 실격
게시물ID : panic_903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
추천 : 11
조회수 : 83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8/28 01: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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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불빛 아래 눈을 떴다.



“어르신, 일어나신 겁니까.”



그곳엔 회색이 있었다.

그런줄 알았건만 자세히 보니 회색으로 뒤덮힌 인간이었다.



“당신은 신인가요?”

“부르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군가에겐 신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악마인 것이죠. 어르신이 원하시는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어르신은 실패 하셨습니다. 이 곳은 그런 사람이 오게 되는 정원입니다.”



실패한 모든 사람이 오는 곳은 아니지만, 하고 그는 덧붙였다.



“하하..”



듣고 나니 그것이 무엇인지는 너무나도 확연해서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실패해버린 것인가.



“잠깐 걸어도 될까요? 어차피 이제 끝난 몸인 것 같은데.”

“잠깐이라면 괜찮습니다. 다만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이야기 하나 정도 할 시간은 괜찮을까요?”

“네, 그정도면 괜찮습니다.”



나는 주변을 걸어다녔다.

정원에 조예는 깊지 않지만 아름답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새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새하얀 대리석 정원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의 본질을 보여주는 듯 했다.

길게 뻗는 길을 걸으며 그에게 말했다.



“참. 부끄럼이 많은 인생을 살아왔네요.”

“저는 어렸을때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어요. 그래서인지 세상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었지요.”

“막연하게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도 그럴것이 제 작은 공간은 숨막히고 억압받는 곳이었으니까요.”

“넓은, 자유로운 세상을 동경했던 것이겠죠.”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흰 울타리에서 잠깐 발을 멈췄다.

무심코 흰 울타리를 매만졌다.



“이런 울타리의 소중함은 잊어버린채.”

“제가 스물이 되었을 때 였을까요. 그제서야 자유를 얻게 되었죠. 대신 지금까지의 부유한 인생을 포기했지만..”

“그렇게 저는 세상을 만나게 되었어요.”



나는 걸으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끝없는 파란색이 펼쳐져 있었다.



“이렇게 파랗고 아름다운 세상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세상은 끈적한 회색빛이었죠. 그걸 그제서야 알게 되었어요.”

“웃음은 조롱으로 눈물은 가식으로 진심에는 가면을 씌우고.”

“그게 제가 소망하던 세상이었어요. 하하. 바보같지요. 이런 것을 꿈꿔왔다니.”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게 됐어요. 다른 사람들이랑 별 다를 것 없이.”

“시간만 흘러갔죠. 제가 지녀왔던 꿈도 잊어버리고.”



어느새 주변은 꽃이 가득한 정원이었다.

이 곳은 정말 끝없이 넓은 공간이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샛노란 해바라기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러다가 저는 한 사람을 만나게 돼요.”

“아름답고 정말 빛나는 사람이었죠.”

“그녀에게 몇 번을 고백했는지,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결국 그녀가 제 손을 잡았을 때는 잊혀지지 않네요.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 이었죠.”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졌다.

짙게 붉은색이 피어올랐다.

주변은 투명한 호수가 넓게 퍼져있었다.


그리고 길은 끝나고 그곳엔 벤치가 하나 놓여있었다.


위 아래로 붉은색에 덮힌 세상을 보며 벤치에 앉았다.

그도 말없이 내 옆에 앉았다.



“하지만 그것은 한여름 밤의 꿈일 뿐이었지요.”

“그녀는 자살해버렸어요. 내 손을 잡기를 왜 무서워했는지 그제서야 알았어요.”

“깊은 강에서 그녀는 행복한 표정으로 잠들고 있었어요.”

“전날 그녀에게 전한 사랑한다는 단 한마디가 그녀에게 전한 마지막 말이었어요.”

“그것이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붙잡기라도 했을텐데…”

“끝은 알게 모르게 찾아오는 것이죠.”


“그때부터 저는 어느 것에도 열중할 수 없었어요. 그저 살아만 갈 뿐.”

“그렇게 일 년을, 십 년을, 이십 년을 살았어요.”

“어느 날 TV를 켰는데 아이들이 나오더군요. 자신의 꿈을 말해보는 방송이었어요.”

“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오랜만에 생각해냈죠. 이미 중년을 지나 노년의 문턱에 있는 몸이지만 그때 만큼은 10살의 어린 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어요.”

“그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하나, 둘.. 어느새 백 번째 글을 썼을 때 저는 이미 노인이 되어버렸어요.”

“하지만 저는 작가가 될 수 없었어요. 독자가 없었기에.”


“제 글들은 빛을 보지 못했어요. 저는 글만 쓸 뿐. 그것을 읽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저 그것은 글자들의 모음 뿐이었죠.”



어두운 밤 아래 작은 별들이 총총 박혀 있었다.

수없이 많은 별들은 마치 우주의 중심에서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었어요.”

“사랑받는 글을 쓰고 싶었어요.”

“잊혀지지 않는 글을 쓰고 싶었어요.”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그것은 꿈이었다.

이루어 지지 않은 꿈이다.



“여태까지 많은 꿈들을 붙잡았네요. 그것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이젠 놓아줄 때 이겠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정작 놓아주니 마음이 편했다.

다만 한 켠에 허무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죽은 것을.


죽은 사람이 꿈을 이룰 수는 없다.



“하하. 정말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살아왔네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부끄럼 많은 생애였다.


성공한 것 하나 없이 꿈만 쫒다 끝나버린 인생이다.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많은 별들이 총총 박힌 하늘아래에서 그의 눈은 블랙홀 같았다.

끝없이 깊은 회색빛 눈동자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는 한마디 물어보았다.



“어르신은 자신이 인간실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뭐.. 요조와 같은 삶은 아니었지만.. 별 다를 것은 없지 않을까요.”

“결국 저도 모든 것은 지나가고, 흘러갈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그런면에선. 어느정도 실격일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자 결국 꿈을 이루는 것을 실패한 나에게 주어진 길은 어디인가요? 그녀를.. 만나고 싶군요.”



마지막으로 사후 세계가 있다면 그녀를 보고 싶다.

그것은 마지막 꿈이었고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아도 문득 찾아보고 마는 것이다.

결국 나는 인간실격에도 실패한 것일 수 있다.

인간 실패정도가 맞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어르신. 재밌는 말을 하시는 군요.”

“그렇죠.. 이뤄지지 않을 것임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하. 뭐 당연하죠. 그것은 아직 이뤄지지 않습니다.”

“어르신, 당신은 꿈을 이루는 것에 실패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나를 바라보곤 한번 더 웃었다.



“이야기를 끝마치는 것에 실패하셨죠.”

“그게 무슨..”

“어르신의 이야기들을 마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대하고 있는 독자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미 작가이십니다.”

“...?”

“뭐. 이제 시간이 끝났군요.”



그는 갑자기 일어났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그가 일어남과 함께 떨어지기 시작했다.

머리위에 터지는 유성우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르신, 당신은 실격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자, 이제 가셔야 합니다.”

“남은 시간 동안 꿈에,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어주세요.”



세상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둠에 감싸졌다.

오직 그와 새하얀 달 하나만이 희미하게 보였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녀와 함께.”



그것이 마지막으로 들은 그의 말이었다.


출처 후속은 댓글로 올라옵니다!

이번 편의 작품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입니다.

나는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정말 유명한 문구죠.

안보신 분도 한번 봐보시는 것을 추천!

문제는 조금 우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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