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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한 꾸러미
게시물ID : panic_906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과그림자
추천 : 15
조회수 : 1455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6/09/13 11: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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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소꿉친구 기태와 함께 보물찾기를 했었다. 보물은 다양했다. 캔 따개, 깨진 조개껍데기, 구멍 뚫린 동전, 산산히 흩어진 차 헤드라이트의 조각.... 별 것 아닌 것들이었지만 어린 아이들의 눈으로는 세상 제일의 보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줍지 말아야 할 열쇠꾸러미를 주웠다.

큼지막한 보석이 박힌 열쇠 하나.

금색 열쇠 하나.

은색 열쇠 둘.

동색 열쇠 셋.

푸른 색 열쇠 넷.

마지막으로 시뻘겋게 녹슨 작은 열쇠 하나.

 우리는 신나서 모든 자물쇠들에 열쇠들을 하나하나 대보고 다녔다. 보관은 하루를 교대로 번갈아 하며 했던 시도들과 성공한 것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그렇게 알게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은색 열쇠 두개는 우리집과 기태의 집을 열 수 있다. 푸른색 열쇠 중 세 개는 반 친구들의 사물함을 열 수 있다. 동색 열쇠 한 개는 우리 집 차고를 연다.

  우리는 모든 것을 시도하려 들었지만 보석 열쇠와 녹슨 열쇠는 써 볼 수 없었다. 보석 열쇠는 너무 컸고 녹슨 열쇠는 기분이 나빴다. 기태는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열쇠들로 무언갈 열 때마다 점점 시뻘건 녹이 열쇠를 덮어가고 있다는 걸. 나는 그 열쇠가 무서웠다. 그 열쇠를 덮은 녹은 피와 같은 색이었다. 나는 그 열쇠를 볼 때마다 푸른 수염과 그의 아내들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푸른 수염은 아내에게 열쇠를 준다. 그리고 당부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저 방의 문만은 열면 안되오, 꼭. 그것만은 기억하시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그럴게요. 푸른수염은 떠나간다. 아내는 방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한다. 앓을 정도로 궁금해한다. 끝내 방문을 연다. 그리고 방 안의 광경에 놀라 열쇠를 떨어뜨린다. 방에는 푸른수염의 전 아내들의 시체가 걸려있었다. 푸른 수염의 아내는 두려워하며 열쇠를 주웠다. 그녀는 못본척하기로 했다. 그러나 열쇠엔 이미 붉은 얼룩이 묻었다. 어떤 수를 써도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기태 몰래 열쇠를 물에 씻어본 적이 있었다. 핏물같은 붉은 물이 열쇠에서 줄줄 나왔지만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그 열쇠를 점점 무서워하게 되었다. 열쇠는 기태가 주로 들고다니는 모양새가 되었다. 기태는 내 달라진 태도에 섭섭했으나 더 많이 시도해볼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나는 그게 못내 두려웠다. 기태는 점점 이상해져가고 있었다. 시뻘건 녹이 열쇠를 잠식하고, 기태의 정신도 좀먹어가는 것만 같았다.
 
 "열쇠를 다 써봤어. 하나 빼고는. 긱기기긱."

 자신의 방에 쳐박힌 기태는 지우개를 갉아먹으며 그렇게 말했다. 

사각사각사각사각......

나는 건성으로 으응, 하고 대답하며 기태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기태 어머니는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기태 어머니는 기태가 이상해진 것이, 나 외에는 친구가 남지 않은 것의 원인이 나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나는 억울했다. 

 "야, 역시 그거."

 "응?"

 기태가 인위적인 웃음을 지은채로 나를 어색하게 보았다. 더 이상 말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리 내!"

 나는 기태가 소중하게 쥐고 있는 그것을 빼앗았다. 기태는 핏발선 눈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행인이 맞을 수도 있는 위험한 나쁜 행동이었지만 나는 그때 초등학생이었고 악의도 없었다. 내 친구를 되찾고 싶어서 한 짓이었다. 나는 그대로 열쇠를 창 밖으로 던졌다.

 "내 열쇠!"

 기태의 몸이 붕 뜨더니 휙 떨어졌다. 기태는 열쇠를 따라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기태의 어머니는 얇은 목소리로 소름끼치게 비명을 질렀다.

 죽지는 않았다. 

 다만 팔 하나 부러지고 다리에 금가는 선에서 마무리 됬다. 이는 기태가 운이 좋아서가 아닌, 기태집이 3층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기태가 빨리 낫기를 빌었다.

 그러나 나는 기태를 다신 볼 수 없었다. 






 왜 21살이나 된 청년이 이런 이야기를, 몇년이 지난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한가? 그것은 매일 집으로 배달되어오는 발신자 없는 편지 때문이다.


 [놀러와]

 열어보면 삐뚤삐뚤한 어린 아이의 글씨가 종이에 붉은 색으로 큼지막하게 써 있겠지. 나는 최근 오는 편지들에 아주 진저리가 났다. 그래서 열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쳐박곤 했다.

 기태는 다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학교에도, 놀이터에도, 어디에도 기태는 보이지 않았다. 누구도 기태를 본 적이 없었고 기억할 정도의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기태가 사라진 날에는 우리 집에 이런 이런 편지가 꽂혀있었다.

 [녹슨 열쇠가 열렸어. 같이 가자.]

 기태 어머니는 학교에도 찾아오고 집으로도 찾아왔다. 학교에선 선생님이, 집에선 부모님이 적당히 막아주었다. 그러나 하굣길만은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자식 잃은 부모가 더 잃을 만한 게 있을리가 없었다. 그녀는 사직서를 내고 나를 쫓아다녔다. 

 "얘, 사실대로 말해줘....... 말해 달란 말이야.....!"

 나는 그러면 입을 열고 외워버릴 것 같은 말을 반복했다. 경찰서에서 말한 이야기 그대로.



 그러나 그녀는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듣길 바랬다. 나는 고개를 젓고서는 집으로 도망치듯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 날,  내 어깨를 세게 쥐고 어르고 달래다 소리질렀다.

"왜 말 안해주는데, 왜왜왜왜왜! 쓰레기같은놈이너같은놈이내아들이랑어울리는것도존나싫었어이좆,같은새끼야말좀하라고내아들의목숨이걸렸다고 아, 아아...... 아아악! 악!악!악! 왜, 왜, 왜, 왜, 왜!"

 나는 그것을 보고 드디어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말하란 말이야아아아!"
 
 나는 다시 모든 이야기를 말했다. 열쇠꾸러미에 대해서 경찰들에게 고했던 이야기를 기태어머니께 잘 알려드렸다.


 "왜?왜왜왜? 왜, 왜!"

 기태 어머니는 붉어진 눈으로 짐승 울음 같은 소리를 내며 내 목을 졸랐다. 확실히 그녀는 미쳤다. 

너지? 네가 죽였지?

 컥....컥컥...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목이 압박되어 혀가 튀어나와 달랑거렸다.

 너구나...! 하하하핫.....!

 곱던 기태 어머니는 흉물스런 모습으로 계속 웃고 있었다. 나는 대롱대롱 매달려 부들부들 떨었다. 달려오신 엄마가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죽었을 것이었다. 

 그 뒤로 기태 어머니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받았던 충격을 걱정해 일부러 알려주지 않고 말을 돌리곤 했다. 엄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나는 직감적으로 모르는 게 더 나은 소식이란 걸 알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엔 새벽에 전화가 왔었다. 수신자 번호를 보니 알 수 없는 번호였다. 

"나야."

 기태 어머니였다.

 "용서할게. 나는 기태가 있는 곳으로 가. 기기긱기."

 내가 말을 고르는 사이에 기태 어머니는 그 말만을 내뱉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행방불명 처리되었다. 경찰은 내가 기태어머니와 통화를 한 마지막 사람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열쇠꾸러미에 대한 이야기들. 유치한 이야기는 경찰에게 털어놓지 않았다. 정신병자로 취급받긴 질렸다. 경찰은 혐의가 없어 곧 나를 풀어주었다. 

 집에 들어와 물 한 잔을 들이켰다. 편지는 아까 밖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어?

 식탁에 못보던 종이가 올려져있다. 장 봐올 것 리스트인가. 

 종이를 집어드는데 어쩐지 서늘했다.

 [네가 안 와서 내가 놀러왔어.]

 긱기기긱기기기기긱

긱긱긱기기기기긱

 나는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출처 くコ: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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