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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가져오는 것(웹애니, 러브크래프트 원작)
게시물ID : panic_907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스머스의눈
추천 : 5
조회수 : 133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9/17 01:10:48
  
저는 러브크래프트의 필력이 약하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펄프 잡지에 싣기 위해,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쓴 글에는 뭔가 강박적인 심리가 느껴지는데,
그건 그 자체로 독특한 매력이  있고,
기고를 목적으로 삼지 않고 자유로운 심정으로 쓴 듯한 글에선 의외로 글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흡인력 있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이 있거든요
이 소고 "what the moon brings"도 그런 단편중에 하나입니다. 
크툴루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코시모시즘과
드림랜드적 몽환적 세계, 양 측면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도 흥미롭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러브크래프트적 세계를 
접근하는데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단편이죠

--

What the Moon Brings - 달이 가져오는 것


Written by H. P. Lovecraft 
Translated by Gaya



나는 달을 증오한다. 실은 두려워하고 있다. 달이 익숙하고 사랑스런 정경 위로 빛을 뿌리면 그것들은 이따금 생소하고 소름끼치는 모습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어느 기묘한 여름날이었다. 내가 거닐던 오래된 정원에 달빛이 나리고 있었다. 습윤한 수림이 해운을 이루고 꽃들은 몽롱한 향기를 뿜어내는 기이한 여름은 내게 야성적인 감흥과 다채로운 색채의 몽상을 실어다주었다. 수정같이 투명하고 얕은 물결을 따라가고 있던 중에 나는 노란 달빛으로 끝단을 마무리한 예사롭지 않은 파문을 보게 되었다. 마치 평화롭던 물길이 저항할 수 없는 흐름에 말려 이 세계의 것이 아닌 미지의 바다로 이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잠잠히 빛을 튀기고, 불길한 인상을 선연히 발하면서 저주받은 달빛에 감싸인 그 물길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그동안, 숲으로 둘러싸인 기슭으로부터 하얀 연꽃 봉오리들이 아편의 향취 같은 밤바람에 실려 하나둘씩 나부끼더니 절망의 한숨을 쉬면서 개울물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는 조각이 새겨진 아취다리 아래서 무섭게 소용돌이치면서 사자의 고요한 얼굴에서 비추이는 불길한 체념을 엿보이며 뒤를 응시하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매혹과 미지에 대한 두려움에 반쯤 넋을 잃은 채, 나는 부주의한 발길로 잠든 꽃들을 짓밟으며 강을 따라 내달렸다. 그리곤 달빛 속에서 바라보이는 끝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낮에는 담장이 서 있던 장소였지만 지금은 오로지 나무와 오솔길, 꽃과 관목, 석상과 탑, 그리고 풀이 우거진 기슭과 기괴한 모양의 대리석 다리 아래로 금빛으로 반짝이는 실개천이 굽이쳐 흐르는 새로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죽은 자의 얼굴 같은 연꽃의 입술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내게 따라오라고 속삭였기에 나는 개울이 강이 될 때까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갈대가 일렁거리는 습지와 반짝이는 모래사장 한가운데에서 나는 이름모를 광막한 바다의 해변으로 들어섰다.

밉살스런 달은 바다 위에서 빛나고, 소리 없는 파도 너머로는 신비로운 향기가 풍겨왔다. 연꽃 봉오리들이 물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자 내 맘속엔 그네들을 건질 그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솟아났다. 달이 밤마다 일으킨 비밀을 그들에게서 알아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편으로 달이 기울고 음울한 해안에서부터 잠잠히 썰물이 빠져 나갈 무렵, 나는 파도가 씻어 내린 오래된 첨탑과 녹색 해초로 화려하게 띠를 두른 흰 주랑들이 달빛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죽음에 깃든 모든 것들이 이 바다 밑 처소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만 절로 몸서리가 쳐지면서 연꽃과 이야기를 나눌 마음도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검은 콘도르 한마리가 암초에서 쉴 곳을 찾으러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먼 거리에서 보았을 때였다. 나에겐 새에게 기꺼이 던질 의문이 있었으며 살아있었을 때의 저들이 내가 알던 사람들인지도 알고 싶었다. 거리가 아주 멀지만 않았다면 질문을 꺼내볼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새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고 큼직한 암초 가까이 내려왔을 무렵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저물어가는 달 아래로 썰물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죽은 도시의 첨탑과 고층건물과 지붕들이 아스라이 빛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관경하고 있을 무렵, 죽어버린 세상의 시취를 장악한 냄새가 콧속을 자극하며 스며들어왔다. 이럴 수가, 묘지에 묻힌 모든 시신들이 제자리 찾지 못한 이 망각의 장소에 모여들어 있었고, 잔뜩 몸을 찌운 바다 벌레들이 그들을 배불리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오싹한 광경 위로 사악한 달이 낮게 걸려있었지만, 통통하게 살찐 바다 벌레들은 달빛엔 아랑곳없이 먹이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러나 벌레들이 굼실거리는 그 밑바닥의 요동을 전해 준 잔물결을 바라보는 사이, 나는 콘도르가 날아갔던 먼 지점에서 예까지 실려 드는 새로운 한기를 느꼈다. 마치 눈으로 보기도 전에 육신부터 먼저 공포에 사로잡힌 듯이.

이유 없이 온몸이 떨려온 게 아니었다. 내가 시선을 들어 올린 순간, 야트막히 물이 빠져버리면서 이제껏 언저리만 보였던 거대한 암초의 전모를 보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암초가 한 소름끼치는 우상이 쓴 검은 현무암 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그 우상의 괴이한 이마는 희끄무레한 달빛 속에 드러나 있었고, 그 흉물스런 발굽은 수마일 바닥 아래 지옥의 진흙뻘을 긁어대고 있음이 분명하리라. 나는 심술궂게 흘겨보는 배덕한 노란 달을 피해 달아나면서, 수면 밑에 잠겨있는 얼굴이 언제고 솟아나와 감추고 있던 눈을 떠서 나를 노려볼 것만 같은 공포에 정신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이 냉혹한 존재에게서 벗어나려는 심정으로, 살찐 바다 벌레들이 세상의 죽음을 향연하는 해초 투성이 벽과 물에 잠긴 거리 한가운데의 그 악취 나는 여울 속으로,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기꺼이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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