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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게시물ID : readers_264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파게티조아
추천 : 3
조회수 : 33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9/22 0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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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러니까 인마야, 진작에 네가 나한테 말이라도 했으면 내가, 어? 고객센터 전화해서 중단이라도 안 해 놓냐? 물건 그거 사고 처리 된 게 얼마라고? 오만 사천원?"

 소장은 운전대를 잡은 때부터 벌써 코 앞에 서울엘 다 온 때까지도 여적 통화중였다. 김은 운전 중에 통화를 하는 것 보담도, 저러다 단속에나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래. 어, 어. 그게 사고 접수받고 이십사시간 내 정상적으로 발송했다, 그렇게 말하면 통장에서 돈이 안 빠져 나간다꼬. 아니, 나중에 사정따라 돈이 나가도 일단 시간은 벌 수 있다 그 말이지, 어? 한 삼주든 오주든 간에. 그 셰 고객이 와서 물건 찾아가믄 찾아갔다 연락하고... 그으래, 없던 일로 하면 됐던 건데... 인마야, 말을 해야지."

 높낮이 심한 사투리 억양으로도 사근사근 할 얘기 다 하는 것도 소장이 가진 재주라면 재주다 싶었다. 딴에는, 예서 제서도 항상 을이라는 업에서 나름 십 몇년인가를 소장으로 있었다는 게 이런 처세 덕인가도 싶다. 그러면서도 김은 머리를 갸우뚱했다.

 '그냥 돌려달라면 안 되나?'

 슬쩍 조수석이며 옆자릴 보니, 다른 사람들은 꾸벅대며 졸고 있거나 핸드폰을 만지작 댈 뿐이었다. 워낙에 피로에 찌든 탓도 있겠지만 아마, 그냥저냥 이런 일이 흔해빠져 그런가보다 하는 맘도 있겠지 싶다. 낮에 이놈저놈 흰소리에 몇 번이고 작업이 지체되는 걸 본 뒤라, 김은 그렇게 넘겨짚어 보았다.

 "아니, 알아, 안다꼬. 아는데, 일이 그래 되나? 고객이 물건 받고도 따로 연락은 안할 거 아이냐. 그냥 받으면 끝인데. 걔네는 그렇게 생각을 안한다꼬. 사고 접수되고 이십 사시간이면 그냥 무조건 저, 뭐야, 망실비로 통장에서 빼가 뻐린다니까. 아이, 나중에 받았다고 다 증명해도 안 돌려줘. 빼갈 땐 그렇게 빼가도 저얼대 안 돌려줘. 그러니까 문자온 걸 잘 확인해야 돼. 이번에야 뭐 그거 침대 시트? 옷? 그게 오만 얼마니까 그렇지 이번 추석 땐 동민이 그, 한우세트 사십 얼마인가 사고라고 변상하라고... 그래, 동민인 나한테 바로 달려 와가 돈 빼는 거 일단 정지시키고 송장 확인해보니까 배송 했더만. 저가 시켜놓고, 어디 맡기라하고는 딴 데 갔다온거를 고기가 상했네 어쩌네 하면서... 그으래- 어. 그래서 그거는 봐라, 우리는 배송 제대로 했다, 그렇게 일단 시간 벌고 따로 얘기를 하면 되는데, 어. 그래... 어,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바빠도 문자를 꼭 다 확인해야 돼. 안 그러면 그냥 이런 식으로 갑질당하는 거야, 어. 그 새끼들이 그렇게 갑질을 한다니까, 그래."

 전화 건너편 앳된 목소리는 이제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그냥 소장이 '네가 맞다. 그 새끼들 나쁜 새끼.'하고 얘길 들어준 것으로도 화는 풀린 모양였다. 어쨌든 내일 새벽에도 저 양반은 또 탑차에다 물건을 잔뜩 싣고 저녁까지 일을 해야 할 텐데, 그래 어쩔텐가. 어데 하소연할 데나 있어서, 억울하단 얘길 들어나주고 같이 욕해줄 사람 있는 게 또 어디일까, 요즘 같은 세상에.

 "그래, 일단은. 내가 고객센터에 다시 전화를 해 볼게. 송장이랑 뭐 얘기해서...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뭐 방법이 있나, 우리 같은 사람들이. 변호사를 쓸 거야 집에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 다시 찾아가서 수령증 써달라 이러면서... 무슨무슨 진상 소리나 들을 거야, 응? 당장도 너나 나나 내일 일을 안 할 수가 없는데, 어? 먹고 살아야지. 이 따위로 어이없게 갑질을 당해도 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그런 기다. 돈 빼가기 전에 시간이나 벌어 놓고 얘길해야지, 그런 거 밖에 없다니까? 응, 응. 그래. 다음부턴 뭔 문자를 받든 뭐, 사고처리 되었습니다, 클레임이 왔습니다 뭐가 오든 문자를 받으면 무조건 나한테 전화를... 그래, 바쁜 거 아는데, 야, 내 그걸 모르겠냐. 좉같아도 물건 뜨다 문자 오면 그냥 내려놓고 확인해야지. 어쩔 수가 없어요, 어쩔 수가. 그래, 응, 응. 일단 오늘은 그냥 푹 쉬고. 어. 알았어. 내가 내일 그 쪽이랑 통화하고 다시 얘기해줄게. 응, 그래. 어, 쉬어라. 낼 아침에 보자."
 "현철이예요?"
 "어, 저번 달에 그거. 터미널 와서 물건 찾아갔다는 그기, 또."

 마냥 핸드폰만 만지작대며 딴청이더니, 소장이 통화를 끝내자마자 재호 씨가 불쑥 물어온다. 또박또박 표준어를 하긴 하는 재호 씨인데, 이럴 때는 사투리 억양이 툭 불거졌다. 경상도인가 강원도인가 아리까리는 했는데, 생각해보니 함경도인가 양강도인가 하는 쪽 억양인가 싶기도 했다.

 "우리는 그냥 맨날 이런 식으로 당하는 거야. 무식해서 당하는 것도 아니고, 당하는 줄 몰라서 당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먹고 살라꼬."

 재호 씨는 고갤 한 번 끄덕하더니 들리지도 않게 뭐라 한 번 궁시렁대고는, 다시 핸드폰 화면에 코를 박았다.

 "잠깐 잠깐, 이 분 여기서 내려주는 게 나을 걸요?"

 금방 졸고 있더니, 어느 새 일어난 형준 씨가 툭 말을 꺼냈다. 김은 셋이 끼어 앉은 제 옆의, 아침에 같이 온 양반을 쳐다봤다. 이 사람은 벌써 침까지 흘리는 게, 제 안방이었다.

 "암사 갔다가 고덕 갔다가 하는 것보다 여기서 버스 타는 게 나을 거예요. 수유리라는데."
 "그래?"

 팔뚝을 두 세 번을 쳐도 안경 쓴 남자는 정신을 못 차렸다. 김까지 나서서 남자의 어깰 흔들며 '아저씨, 아저씨!' 소릴 지른 다음에야 남자가 눈을 떴다. 그러고는 대충 얘길 듣더니,

 "아, 그러네요. 여기서 바로 가는 버스 타고 갈게요, 저는."

 하고 제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바닥에 라이터를 떨구길래, 김은 발치를 더듬어 그걸 주워다 남자의 손에 들려줬다.

 "감사합니다."

 마침 뒤에서 버스가 오고 있었다.

 "오늘 수고했어요, 응?"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세요."
 "네, 네. 얼른 가요, 얼른 가."
 "아, 네."

 어지간히 피곤한가도 싶었다. 저 양반 내일도 나올 수 있으려나?

 "탔어? 탔어요?"

 남자의 허둥대는 양에 낄낄대던 재호 씨가 물어왔다. 형준 씨가 뿌연 뒷유리 너머를 이리저리 보고는,

 "어, 탔어."

 하고 알려주었다.

 "집에는 잘 가야 할텐데."

 소장이 허허, 하고 차는 다시 굴러갔다. 출근할 때처럼, 차 안은 다시 침묵이라 김은 가만히 차창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가로등과 여적 도로에 파다한 차들과 그 차 안에 있을 사람들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잠깐을 그리 멍하니 있었던 것 같은데, 문득 지나는 표지판을 보니 벌써 강변북로였다.

 "저, 친구는 어디 천호나 어디 내려주면 되나?"
 "그냥 고덕에 내리시는 게 나을 걸요? 앉아서 가요, 역 차이도 없는데."
 "아, 네. 그냥 가시는 길에 고덕에 내려주세요."
 "응, 응. 그래."

 형준 씨가 참견을 해주길래, 김은 고갤 끄덕끄덕했다. 이대로면 시간이 아주 늦지는 않으니, 정말 천호에서라면 집까지 서서 가야지 싶었다. 월요일인데 다행스럽게도, 강변북로가 많이 막히질 않았다. 잘하면 열 시 전에는 집에도 닿겠다 싶었다. 김은 그런 생각을 하고 또, 옆 방 학생이 세탁기에 제 옷들을 좀 빼 놨으면 오늘은 빨래라도 할 수 있겠지, 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애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면서 김은, 들뜬 마음에 하나 둘 하며 한강에 반짝대는 불빛들의 개수를 세 보았다. 흰소리 없이 일당을 하나도 깎이지 않고 받은 것도 좋았다. 여튼 오늘은, 여러모로 운이 좋은 날이었다.

 김은 빙그레 웃어보았다.
출처 나의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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