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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908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eptunuse
추천 : 8
조회수 : 144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9/24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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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운전을 하던 나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만나러 가는 그녀는 힘들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나에게 환한 달빛과 같은 존재다.

 

때문에 한참을 달려야 하는 먼 거리 조차 내겐 즐겁게 느껴졌다.

 

난 크게 숨을 들이쉬며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그녀를 처음봤을 때의 그 모습을 간단히 떠올릴 수 있었다.

 

양갈래 머리를 하고 분홍색 구두를 신은 귀여운 소녀.

 

그녀의 미소는 지금까지도 나를 소년으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소년과 소녀.

 

확실히 그때의 우리는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과 소녀와 비슷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내눈에 길을 따라 걷고있는 노인의 모습이 들어왓다.

 

마을로 가시는것 같았기에 난 차을 세우고 그 노인에게 말을 건네었다.

 

“어르신, 요앞 마을로 가시죠? 타세요. 태워드릴게요.”

 

내 말에 노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차에 올라탔다.

 

“고맙네. 마실삼아 걸어서 장에다녀오는길인데 마침 힘에 부치던 참이었네.”

 

노인은 내 생각대로 인근 마을에 사는분 이었다.

 

“이동네 사람은 아닌거 같은데 여기까지 무슨일로 왔나?”

 

노인의 물음에 난 멋적은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내 말에 노인은 늙은이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표정을 보니 색시감이라도 만나러 가는 모양이구만.

 

어떤가 내말이 맞지?”

 

난 미소로 어물적 넘기려 했지만 노인은 이미 그렇다고 결론을 내버린 모양이다.

 

 

 

 

 

호탕하게 웃어제낀 노인은 얼마가지 않아 얼굴에서 미소가 옅어졌다.

 

그리곤 한숨을 푹 내쉬며 약간은 무거워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젊은이. 그 인연에 항상 감사해야 한다네.

 

그 사람이 언제까지고 자네와 함께 할 수 없을 테니 말이야.

 

함께하는 매 순간순간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게.”

 

노인은 굳어지는 내표정을 눈치채지 못한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와 마누라는 그리 금실좋은 부부는 아니었어.

 

돌이켜 보면 싸웠던 기억이 더 많은것 같구만.

 

하지만 말일세, 막상 몇해 전 먼저 떠나보내고 나니 후회스러운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네.”

 

노인은 나를 보며 말을 마쳤다.

 

“떠나고 난 뒤면 너무 늦는다네, 둘이 함께 있는 시간을 감사히 여기게.

 

그리고 죽음이 둘을 갈라놓는 순간까지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게.”

 

난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내 포기하고는 뻔한 대답을 하기로 했다.

 

“예. 어르신. 명심하겠습니다.”

 

그제야 노인은 만족한듯 웃었다.

 

 

 

 

“고맙네 젊은이. 덕분에 편하게 왔네.

 

그래. 애인을 만나러 간다면서? 어디로 가는겐가?”

 

노인의 말에 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어르신. 전 저쪽길로 조금만 올라가면 됩니다.”

 

내가 가리키는곳을 바라보던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저쪽으로 가면 나오는거라 해봐야.....”

 

의아해 하던 노인은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아차 하는 표정이 되었다.

 

당혹감이 서린 표정으로 노인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이런, 이 늙은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실언을 했구만. 미안하네 용서하게나.”

 

어쩔줄 몰라하는 노인의 표정을 보니 오히려 내가 미안해졌다.

 

“아닙니다 어르신 좋은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살펴가세요.”

 

노인은 내가 떠날때까지 동정어린 눈길로 나를 보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맘껏 기지개를 켰다.

 

제법 오랜시간 운전을 했지만 공기좋고 한적한 곳에 오니 오히려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몸을 풀고 가방을 내린 나는 약간 들뜬 마음으로 그녀를 만나기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 나왔어. 잘지냈지?”

 

난 가방을 내려놓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을 건네었다.

 

“미안해. 여러가지로 바빠서 시간내기가 힘들었어.”

 

대답이 없는 그녀를 뒤로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주변으로 관리 안되어 풀들이 잔뜩 자란 산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내가 서있는 곳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난 즉시 장갑과 낫을 꺼내어 작업을 시작했다.

 

 

 

 

“오다가 어떤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눈치가 진짜 빠른분이었어.

 

아무말도 안했는데 나보고 애인만나러 가는거냐고 하더라.

 

내가 너무 신난티를 냈나? 아무튼 좀 민망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그랬어..

 

그리고 또 뭐라고 했는지 알아? 너한테 잘해주래.

 

죽은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고개를 들어 잡초가 무성한 무덤을 보며 이어서 말했다.

 

“뭐. 그건 조금 틀렸지만.”

 

무덤옆에 쓰여진 그녀의 이름을 잠시 바라본 나는 과장되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너 만나러 이쪽으로 온다고 하니까 그 할아버지 엄청 당황하더라.

 

이쪽은 다 묘지라는걸 아셨나봐.”

 

작업을 마치고 가방에서 물을 꺼내 묘비 앞에 앉은 나는 더러워진 묘비를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내가 여러번 이야기 했지? 넌 소나기의 그 소녀와 많이 닮았다고 말이야.

 

깨끗한 옷차림에... 순박한 얼굴에... 나같이 촌스런 애가 맘을 준것도 그렇고 또...”

 

나는 더 말을 잊지 못하고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두려움에 가득한 눈길로 날 올려다 보던 소녀의 모습.

 

그 소녀의 모습을 떠오르자 자연스레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남몰래 좋아하던 소녀.

 

난 그 소녀에게 말한번 건네지 못했다.

 

혼자서 끙끙 앓고만 있을때 소녀는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녀가 떠나가는게 싫었다. 내가 용기를 내어 붙잡으면 그녀가 내곁에 있어줄까?

 

그 작은 희망을 가지고 그녀에게 찾아갔다.

 

그러나 흠겹게 끌어낸 내 고백은 차가운 눈빛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녀는 떠날것이고 날 잊을것이다.

 

아니 단순히 잊는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경멸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견딜수 없었다.

 

소녀가 절대로 이곳을 떠나게 해서는 안된다.

 

그녀가 떠나지 않게하기 위한 방법을 떠올리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실행은 그보다도 빨랐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들여다 보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소녀의 몸에 식칼을 꽂아 넣을 때의 감각은 여전히 선명했다.

 

조금씩 떨리려 하는 손을 꽉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죽음이 인연을 갈라놓기 전에 후회없이 살라는 그 할아버지 말은 틀렸어.

 

오히려 죽음으로 인해서 인연이 계속 이어질수도 있지.

 

너랑 나처럼.”

 

한숨을 내쉰 나는 그녀의 무덤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한마디 덪붙였다.

 

“비록 그 덕에 살인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고 있지만 말이야.”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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