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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뇌격
게시물ID : dungeon_6414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3
조회수 : 24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10/05 00: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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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

 공허했다. 그 외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공허했다. 간신히 거머쥔 자유였지만, 기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간 스러져 간 이들이 생각나 슬프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없이 공허했다. 무얼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그저 한 자루의 저주스런 창과 함께 발이 닿는 대로 걸을 뿐이었다. 아니, 그 창마저도 어느 순간, 어디에선가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윽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는 생각마저 잃어버리고 그쯤 해서 서서히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지독한 혐오감.

 나를 이루는 것이, 내 기반이 되는 것이, 내가 배워온 것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이, 너무나도 혐오스러웠다. 나를 이루는 것을 남김없이 지우고 싶을 정도로.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2

 듀얼리스트. 어느 순간 내게 붙은 명칭이었다. 그렇게 불리도록 결투에, 여러 종류의 창술을 익히는 것에 집착했다는 증거리라.

 다양한 창술을 지켜보고, 분석하고, 익히고, 갈고 닦아, 온전한 나의 것으로 만들어갔다. 그렇게 혐오스러운 나를 지워 나가려 했다. 혐오감을 지우고, 공허함을 채워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지우려 애를 써도 지워지지 않는 증오스러운 것이 있었다.

 새하얀 연기가 흩어지듯 사라지는 신기루를 떨쳐내려 온갖 노력을 해봤지만, 그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의식 중에, 무의식중에, 신기루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었다. 혐오감을 버리는 만큼, 다시 주워 담는 그런 기분이었다.


 내가 죽어야만 없어지는 것일까, 여태껏 짓밟아 온 동료들의 원한이 신기루가 되어 내게 붙어있는 것일까, 이대로 그냥 죽어버려야 편해질까…. 온갖 생각이 다 드는 와중이었다.

 대뜸 눈앞에 어마어마하게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제대로 눈을 가릴 새조차 없어, 그 너무나도 강렬한 빛에 일순 시야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땅을 짚어 근처 나무에 몸을 기대고 시야가 돌아올 때까지 주변을 잔뜩 경계하는 것이 전부였다.


 "…아저씨는 왜 얼굴을 찡그리고 있어요?"


 팽팽한 긴장의 틈새로 들려온 것은 어느 소녀의 명랑한 목소리였다.


3

 "마계인이라는 건가요?"

 "응. 마계에서 왔어요. 근데 여기가 아라드예요? 여기도 저기도 되게 녹색인 게 엄청 멋진 곳이네. 마계는 칙칙하게 검고 어두운색뿐인데."


 제 키만 한 창을 등에 짊어진 소녀는 뭐가 그리 바쁜지 쉴 새 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또 둘러봤다. 앞으로 질리도록 보게 될 녹색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어 하는 모양인지, 조금도 쉬는 법이 없었다.

 뭐,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지금 굉장히 신경 쓰이는 것은, 소녀가 짊어지고 있는 창이었으니까. 어째서 저런 창을 짊어지고 있는 것일까. 저게 소녀의 무기인 것일까?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 외에 달리 떠오르는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느낀 모양이었는지, 어느 순간 소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 아까부터 왜 자꾸 보는 거예요?"

 "…아저씨…아닌데요…."

 "어린 여자애 모습 훔쳐보는 취미라도 있어요?"

 "그런 것도 아닌데요."

 "그럼 왜 자꾸 보는 거예요? 변태 아저씨인 거 맞지? 그런 거지?"

 "변태도 아니고, 아저씨도 아니에요. 그냥…."

 "우와 그냥 본 거래. 변태 아저씨 맞네."

 "…."


 내가 제대로 대꾸할 시간은 주지도 않은 채 소녀는 쉴 새 없이 말로 나를 몰아붙였다. 말주변이 없다는 것이 새삼 원통스러웠다. …아저씨로 몰리는 것도.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말의 파도 끝에 간신히 오해를, 정말 모든 오해를 푼 뒤에는 어마어마한 피로가 전신을 짓뭉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이지, 대화라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것이었구나.


 "내가 아니라 창을 보던 거였구나. 어린 여자애 보는 취미가 있는 변태인 줄 착각해서 되게 큰 실례를 해버렸네. 어린 여자가 아니라 창을 좋아하는 변태였는데."


 …아니, 오해를 푸니 다른 오해가 튀어나왔다.


 "그래서, 뭐라고 부를까? 창변태 씨라고 부르면 돼?"

 "…아니, 그건 부디 참아주세요."


4

 그 만남 이후로 나는 마계에서부터 넘어온 창사 소녀와 함께 다니게 되었다. 정확히는 소녀가 멋대로 날 따라오는 것이었지만. 아마 나를 아라드를 안내해줄 친절한 가이드 정도로 정해버린 모양이었다. 이쪽으로 갈 때마다 '이건 뭐야?', 저쪽으로 갈 때마다 '저건 뭐야?'

 …정말이지 쉴 틈이 없이 아라드 구석구석을 살피려 들고 있었다.


 "듀얼리스트 씨! 저것 좀 봐봐!"


 길을 걷다가도 툭하면 멈춰 서서 제 눈에 든 것을 내게 보여주려고 한다거나.


 "저거 구워 먹으면 맛있을 거 같아! 잡자!"


 …아니면 먹으려고 든다거나. 마계란 곳이 척박하고 먹거리를 구하기가 힘들어 굶기 십상이라고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고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아주 왕성한 식욕을 가감 없이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식욕을 채워주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귀찮았지만, 도와주는 게 그렇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잡으면 뒷다리는 저주세요."

 "한 짝만!"


 배를 곯는 고통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대가도 없이 소녀를 도와주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와, 진짜 통통해 보여! 먹어보고 맛있으면 전투법 조금 더 알려줄게."

 "와아. 이거 참 맛있기를 빌어야겠네요."

 "좀 더 영혼을 실어서 기뻐해 봐."


 소녀가 쓰는 창술은 마계의 배틀메이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가녀리게 보이는 팔과 다리로 제 키만 한 창을 효율적으로 휘둘러 최대의 파괴력을 내기 위한 창술. 그 힘의 기반을 마력이 보조해주지만, 일단 창을 휘두르는 것 자체는 배틀메이지라는 자들의 힘이고, 기술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배틀메이지 소녀는 생각보다 흔쾌하게 승낙해주었다.


5

 마계의, 배틀메이지의 창술은 전반적으로 휘두르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력으로 강화된 신체를 이용한 체술 역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대체 마력으로 신체 능력이 얼마나 강화되길래 단순히 손바닥으로 쳐내는 것이 그 정도의 위력을 내는 것일까? 제법 흥미로웠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마력이니 뭐니 아무리 들어도 내 능력으로는 무리라는 걸 아니까.

 배틀메이지 소녀가 내 신기루에 관심을 가져도 그걸 쓰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 배틀메이지 소녀는 신기루에 제법 큰 관심을 둔 듯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여달라고 호들갑을 떨 정도로 말이다.


 "듀얼리스트 씨. 그거 보여줘, 그거!"

 "꼭 보여야 하는 건가요?"

 "내가 보여달라는데 뭐 그렇게 말이 많아? 냉큼 보여줘!"

 "…하아."


 이렇게 떼쓰는 것을 채 견디지 못하고 신기루를 보여준 것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은 제쳐놓더라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여준다는 게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우와! 우와아! 우와와와! 멋져, 듀얼리스트 씨!"

 "…그런가요?"


 그래도, 신기루를 보면서 좋아하는 배틀메이지 소녀의, 멋지다며 방방 뛰는 그 모습을 보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 확실히, 썩 괜찮은 듯한 느낌이야.


6

 배틀메이지 소녀와 함께 다니며 배틀메이지의 전투법을 배웠다. 정확히는 그중 무기를 쓰는 기술들에 대해 배웠다. …배틀메이지 소녀의 설명이 그다지 알기 쉬운 편은 아니었던지라 하나를 배우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무기로 빠르게 여러 번 찌르다가 크게 휘두르는 기술. 뇌연격이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왜죠? 왜 안 된다는 건가요?"

 "그러니까! 맛이 없다고! 듀얼리스트 씨가 준 이 열매가 맛이 하나도 없었다니까! 끔찍하게도!"

 "다 드시고 그런 말씀 하셔도…."

 "다, 다 먹은 건…배고파서 그랬던 거고! 아무튼, 난 못 알려줘! 안 알려줘!"


 배틀메이지 소녀가 온갖 생떼를 다 부려가면서 내게 전투법을 알려주는 걸 거부하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정말로, 조금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배틀메이지 소녀가 만족하도록 별짓을 다 해봤지만, 배틀메이지 소녀의 행동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태도가 바뀐 이유를 물어도 소녀는 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토라졌다는 듯 '흥!' 소리를 내면서 고개만을 홱 돌려버릴 뿐이었다.

 …솔직하게, 답답했다.


 "계속 이러시면, 부탁하셔도 들어드리기가 힘들어요."

 "어, 뭐, 뭐? 그건…아니, 그, 상관없거든! 듀얼리스트 씨가 내 부탁 안 들어줘도 상관없거든! 내, 내가 직접 하면 되는 거거든!"

 "…그런가요."


 배틀메이지 소녀는 내 말에 자신이 직접 할 수 있다며 당차게 반응했다. 이런 배틀메이지 소녀의 반응에 마음속 깊숙이, 하나 다짐을 했다.


7

 "잠깐! 잠깐 기다려!"


 간만의 적막을 깨고, 배틀메이지 소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배틀메이지 소녀가 열심히 쫓아오고 있었다.

 아직 잠이 채 가시지 않았던 건지, 거의 허우적대며 달려오는 모양이었다. 급히 달려오다 넘어진 건지 옷에는 흙먼지가 꽤 묻어 있었고, 팔에도 다리에도 쓸려서 다친 상처가 있었다. 금방 일어나 서둘러 쫓아온 탓인지 묶지 않은 머리는 나풀대고 있었다.


 "왜, 왜 가는 거야? 응? 왜?"

 "제가 없어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아직, 아직 안 가르쳐준 게 있잖아!"

 "가르쳐주시지 않잖아요."

 "그, 그건…."

 "…그간, 이것저것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뇌연격이라는 것은 제 능력이 닿는 만큼 알아볼테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을 잇지 못하는 배틀메이지 소녀에게 나름의 정중한 작별인사를 건넨 뒤, 소녀를 뒤로하고 그대로 떠나려 했다. 하지만 배틀메이지 소녀가 다급하게 안 된다고 외치면서 나를 붙들었다. 대체 왜? 이해가 가질 않았다.


 "가지 마…."


 배틀메이지 소녀는, 울지는 않았지만,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한 것도 배틀메이지 소녀였고, 뭔갈 더 가르칠 의향이 없던 것도 배틀메이지 소녀였는데, 대체 왜 날 붙드는 걸까….


 "…그렇다면, 가르쳐주세요."

 "응?"

 "갑자기 태도가 바뀐 이유를, 전투법을 더 가르쳐주지 않은 이유를, 알려주세요."


 …어린아이의 생떼에 약하다는 건 굉장히 피곤한 일이야.


8

 "하압!"


 배틀메이지 소녀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던 이유, 전투법을 더 가르쳐주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전부 다 알려주면 내가 가버릴까 봐. 그저 그뿐이라고 했다. 배틀메이지 소녀는 계속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했고, 전부 알면 떠날까 무서워서 그렇게 대했던 거라고 했다.

 정말이지, 어린아이다운 귀여운 생각이었다.


 "듀얼리스트, 어때? 잘 돼가?"

 "네, 뭐."


 전부 다 배우면 떠날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 같이 다니자는 제안을 받으면 그 제안을 승낙할 생각 역시 안 했던 것은 아니었다. 결국엔 배틀메이지 소녀의 헛짓이었던 거다.

 하여튼, 대화는 잘 풀려서 소녀는 소녀대로, 나는 나대로 만족하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그 기술이 그렇게 맘에 들었어?"

 "예전부터 생각은 해오던 거였는데, 그 기술에 대한 설명과 시범 삼아 직접 보여주신 것을 보고 확실히 마음을 잡은 거예요. 기술의 완성에 영감을 주신 거네요."

 "에헴, 천만의 말씀. 그건 그렇고 쉬는 시간, 쉬는 시간!"


 내 말에 한껏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던 배틀메이지 소녀는 내게 들러붙으면서 얼른 쉬라고 난리였다. 얼른 쉬면서 자기에게 신기루를 보여달라는 신호였다. 질리지도 않는 건가.


 "네네. 자, 신기루에요. 여태까지와 별로 다른 것도 없는 신기루지만, 여전히 신기하기 그지없는 신기루에요."

 "오, 이젠 별말 없이 잘 보여주네? 여태껏 온갖 싫은 표정 다 지으면서 보여줬는데."

 "그야 배틀메이지 씨께서 좋아하시니까요."


 확실히, 어느샌가 신기루를 보여도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신기루를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보다 배틀메이지 소녀의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기 때문이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배틀메이지 소녀 덕분이라는 것이다.

 내 말 때문인지 배틀메이지 소녀는 몸을 배배 꼬면서 날 가볍게 두들겨댔다. 그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썩 귀여웠다.


 "그, 그나저나, 언제까지 그렇게 딱딱하게 부를 거야?"

 "네?"

 "배틀메이지 씨라니, 딱딱하잖아. 난 듀얼리스트를 듀얼리스트라고 부르는데!"

 "음…배틀메이지 선생님?"

 "더 딱딱해졌잖아."

 "배틀메이지 사부님?"

 "장난 그만 치고! 나처럼 해봐! 나처럼!"


 배틀메이지 소녀의 색다른 생떼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정말이지, 어린아이의 생떼에 약하다는 건 피곤한 거야.



안녕하세요. 흔한 아라드의 듀란아슈덕입니 아니, 글쟁이입니다

잠시 후가 바로 몇 분 뒤였습니다 쨔잔


제목이 뇌격인 이유

뇌연격의 뇌

뇌격점혈섬의 뇌격


뇌격점혈섬이 뇌연격 모티브라는 썰이 생각나서 쓰기 시작했던 듀란아슈...정확히는 듀얼배메 글이었습니다


여러분 듀란아슈 파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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