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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야기
게시물ID : military2_4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잠깐만요잠시
추천 : 17
조회수 : 2761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6/10/06 00: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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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베트남 전쟁은 2차대전 이후 '내가 넘버원이다.'하던 미국이 왠 듣보잡 베트남에게 패배한 전쟁입니다. 사실 이걸 패배라 해야할지 뭐라 표현해야할지 적당한걸 찾긴 어렵지만, 확실한건 월북이 월남이 이겻다는 사실만큼은 진리죠. ㅇㅇ 이 베트남 전쟁에서 왜 시작되었고 미국은 왜 패배했는가? 그리고 무엇이 바뀌었는가?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일단 베트남 전쟁 자체가 명분이라고는 좆만큼도 없는 전쟁이란 점에선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당시 식민지 해방 분위기에 발맞춰 영국은 눈치 껏 'ㅇㅇ... 해방시켜드림.'하고 빠져나가는 반면 2차대전 이후 독일에게 좆발렸다는 사실로 인해 많이 가오가 상해있던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접수하고자 하는 멍청한 시도를 합니다.
 
 사실 베트남은 이때 사실상 독립 상태라 봐도 무방했는데,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의 압제로 고통받던 베트남 주민들은 사상을 뛰어넘어 하나로 뭉쳐 민족주의 연맹을 탄생시켰고 이들이 그 베트민입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프랑스와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당시 프랑스가 독일에게 좆발리면서 탄생한 비시프랑스와 영국으로 토껴 독일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나선 자유프랑스 중, 베트남 총독부는 비시프랑스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본과도 별 탈없이 넘어가게 됩니다. 이때 베트민들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가며 싸웠는데 미국이 딱히 베트남의 독립에 관심이 있다기보단 그냥 '일본놈들과 싸우는 놈들이면 누구든 좋다.'라는 관점이 맞을 겁니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미국이 지원해준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베트민들도 임시정부와 유사하게 2차대전이 종결되자 바로 버림받게 됩니다. 이들의 전훈은 인정되지 않았으며, 베트남 주둔 일본군의 무장해체는 영국군과 중화민국군이 담당하게 되는데, 이때 영국군과 중화민국군은 베트남을 반으로 뿜빠이해서 무장해체 시키기로 했으나, 중화민국군이 국공내전에 휘말리면서 사실상이 북베트남이 공백지역이 됩니다. 즉 이 북베트남 지역이 바로 새로 탄생한 베트남이었죠. 그리고 이 곳을 다시 지배하겠다고 프랑스는 어슬렁거리며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베트민들의 반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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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개소리말고 집에나 가라.
 
  사실 프랑스의 행태는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행태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프랑스는 잃어버렸던 가오 때문인건지 뭔진 모르나 어떻게서든 식민지를 다시 회복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다들 오인하는 것이 마치 나치 부역자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숙청숙청한 것마냥 이야기하지만, 적어도 비시프랑스를 지지했던 프랑스가 가지고 있던 약 절반 이상의 식민지들 총독부에겐 면죄부를 뿌리면서 식민지를 사수하려했습니다. 샤를 드 골의 어마어마한 흑역사의 시작이죠. 뭐 여튼 프랑스는 매우 졸렬하게 베트남 주민들에게 '해방시켜드림 ㅎㅎ'하는 척하고 거하게 선빵을 후려갈기는데 함포사격을 가하여 수천명이 죽거나 다치게 됩니다. 이후 베트민들의 캡틴 호치민은 프랑스랑 맞짱 한번 뜨기로 결의하고 전쟁에 돌입하죠.
 
 여튼 이때부터 베트남군은 게릴라전을 벌이며 프랑스 군을 압박했고, 하노이를 제외한 대부분 북베트남 지역을 점령한 것도 모자라서 인근 라오스까지 공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이는 프랑스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일단 북베트남이 저렇게 미쳐 날뛸 수 있는 배경엔 북쪽의 공산권 국가들의 지원도 있었고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들이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다시 용인하려 한 이유는 베트남이 공산화될시 올 도미노 효과가 두려워서인데, 인근 라오스가 넘어가면 별 의미가 없어지는 것과 다를게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프랑스는 신묘한 계책을 세웁니다. 바로 적의 후방에 대규모 공수부대를 투입해서 분지 지형을 점령! 분지 지형 인근 산들을 경계로 거대한 요새화를 구축할 신묘할 계책을 세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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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부대 투입? 좋은 계책이지! 마치 마켓 가든이 떠오르는군!
 
 그치만 이 계획 어딘가 나사빠져 있긴 합니다. 일단 이들이 들어갈 자리가 디엔비엔푸라는 분지 지형인데, 막말로 분지 지형이라 프랑스 점령지와 이어진 길 하나 없습니다. 이미 여기서 뭔가 이상한데? 하고 느끼겠지만, 이후 계책도 분지지형을 둘러싼 산을 모두 점령해야 제대로 된 요새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점인데, 만약 적이 산을 점령한다면? 역으로 포위되는 거죠. 그치만 이런 발상을 하게 된 까닭은. 일단 프랑스군이 가진 우수한 화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죠, 이미 베트남군은 하노이 탈환전에서 4개사단으로 공격을 시도했다가 프랑스군의 우수한 화력에 싹싹 털린 전적까지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후방에 요새를 만들어버리면 원래 같으면 요새를 가볍게 '우회'하겠습니다만 보급로 한가운데 적의 요새가 생긴다면 그건 이야기가 달라지는 법이죠. 무조건 때려부셔야합니다.
 
 아 물론 이런 멍청한 계책은 당연히 실패합니다. 작전 초반엔 기세 좋게 점령하고 전초 기지도 세우고 비행장까지 뚝딱뚝딱 만들었으나, 베트남군은 민간인까지 총동원해서 길을 닦아 산 위로 대공포와 대포를 올려보냈고, 분지지형으로 들어갈 길을 기어이 만들어내서 프랑스군을 포위섬멸시켜버리니 이것이 디엔비엔푸 전투입니다. 그리고 프랑스군은 이때의 충격으로 찌랭이들마냥 베트남에서 도망쳐나오게 되는데, 이는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이 '캬 남들은 전쟁 때문에 쑥대밭이 되서 복구작업한다고 청년들을 돌릴 곳이 없는데 우리 프랑스는 기어이 전쟁질을 또! 하네! 캬!'하면서 개까이고 있었으며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공산화에 대한 공포심이 폭팔한 미국은 프랑스에게 군비지원도 해주며 한번 다시 먹어봐 했으나 전쟁도 말아먹고 국제 여론도 구려지니 군비지원을 끊어버렸습니다. 이로인해 프랑스군은 정말 '버틸 수 가 없다!'가 되버렸거든요. 그리고 마지막 트롤링으로 분단되있던 남베트남의 총선거를 총괄해야했지만 선거 3개월 전 프랑스군은 홀연히 떠나버립니다. 덕분에 미국의 불안증은 절정으로 향하죠.
 
 사실 이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미국은 정말 '븅신같은' 선택을 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베트남의 파트너로 선택한 것이 프랑스라는 점이죠. 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은 사실 중국도 프랑스도 다 좆까였지만 미국한테만큼은 제법 오케이 싸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만, 호치민을 진성 공산주의자로 오인한 미국은 프랑스를 선택했고 결과는 아주 혹독하게 치루게 되죠. 호치민은 공산주의자긴 했으나, 민족주의자에 가까웠으며 이로 인해 과거부터 사이가 끔찍하게 좋지 않았던 중국과는 절대로 손을 잡지 않으려했습니다. 차라리 중국 대륙 건너편 소련이랑 대화를 하면 했지. 만약 미국과 손을 잡았다면 최초의 자본주의 진영 공산권 국가가 됬을 지도 몰랐지만 뭐 기회를 지가 걷어찬 마당에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여튼 프랑스가 빠지자 이 출처가 불분명하기 그지없는 '도미노이론'에 따라 인도차이나 전체가 공산화될 것을 두려워한 미국이 베트남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죠. 그래서 온 베트남 상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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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베트남의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개판'이 가장 적당한 표현일겁니다. 남베트남의 지도자였던 응오딘지엠은 초기엔 군벌세력과 폭력단을 제압함으로서 치안을 회복하고 민주정권으로서 제대로 활동한 것 같았지만, 사람은 돈을 주면 본성을 알수있다고 미국이 남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겠다고 뿌린 돈은 부패회로의 발동으로 이어졌으며, 남베트남은 부패로 썩은 내가 진동했습니다. 이에 종교계까지 뛰어들어 반부패운동을 전개하고 베트남의 틱광둑 스님이 소신공양을 하면서까지 이어진 반부패, 반정부투쟁은 응오딘지엠이 중놈들이 한게 뭐임? 바베큐가 된거?'하는 개소리나 하고 '모든게 다 공산주의자 탓이다!'하면서 버티니 어디서 본 것같은 모양새입니다만, 여튼 미국의 묵인아래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응오딘지엠은 총맞아 사망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쿠데타가 밥먹듯이 일어나게 되면서 미국 입장에선 '와 시발 여기 상태 대박인데?' 이정도가 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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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광둑 스님의 소신공양, 이와중에 '자주를 외치면서 수입산 휘발유로 자살하다니 이상하잖아요?' 이런 개소리나 시부렁댔으니... 미국마저도 이 사태를 보고 아연실색한다.
 
 한편 사실 북베트남도 썩 멀쩡하다라고 보긴 어려웠는데, 호치민을 위시한 북베트남은 공산권 국가들의 영원한 숙제인 '숙청'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땐 천주교도들을 싸그리 조지고 있었는데, 프랑스 식민지배 기간동안 전파된 천주교가 호치민은 '서양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간주했거든요. 사실 불교는 예전에 2차대전 직후 정권에서 불교계는 쓸어버렸으니 노프라블럼이고요. 또 집단농장을 만든다고 농민들과 거의 전쟁을 벌이니 이때 벌어진 대학살에 미국과 남베트남은 총선거했다간 좆될거다;; 하게 됩니다.
 
 또 한편으로는 통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도 있었기에 남베트남에 빨치산을 대거 투입시키고 양성했으며, 무기 지원을 하게되죠. 물론 남베트남은 빨치산따위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기에... 사실 이것이 한국 전쟁 이전 한국과 월남의 차이인데 한국 역시 혼란스러웠으나 어찌됬던 국가 기틀은 잡혀있었고 해방정국의 혼란이 끝나고 나선 제법 안정기에 돌입된 상태에서 빨치산 토벌까지 완료했기 때문에 북한이 공격했을 때, 남로당 박헌영이 주장한 남한 빨치산 대봉기는 일어나지 않았죠. 여튼 남베트남은 좆망 위기고 미국은 어떻게서든 북베트남을 손봐주고 남베트남을 안정시켜야만 했습니다.
 
 미국은 이른바 통킹만 사건을 주작하여 사건을 키웠고 당시 린든 대통령은 의회에 허가도 받지 않고 바로 북베트남에 폭격을 지시하는데, 이게 얼마나 웃긴거냐면 미국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가암히 선전포고도 없이 우릴 공격해?!'하고 일본놈들 줘팼던 전과가 있던 미국이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엔 베트남에게 일절 선전포고도 없이 선빵을 놓습니다. 이미 명분 없는 전쟁의 시작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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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시작이 된 통킨만 사건
 
 민주주의 국가에서 명분이란건 상당히 중요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이점은 병사의 충성심이 굳이 물자와 봉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닌 무형의 가치인 애국심이 큰 부분으로 작용한다는 점이고 이는 그들 자신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인데, 명분이 없는 전쟁은 그냥 말그대로 강제징집되서 '시발 이게 무슨 짓이야!'하고 끌려왔더니 왠 정글로 데려와서 기관총을 주고 보이지도 않는 적을 잡아오라고 하는 것인지라 먼저 선빵을 당하고 분기탱천하여 국민이 일심동체가 되어 싸운 2차대전과는 너무도 다른 양상으로 번지죠.
 
 이후의 전쟁 과정은 따로 적시하지 않겠습니다. 미국은 전쟁을 하면서 꽤나 많은 병신 짓을 벌이게 되는데 사실 이때 당시의 미국 역시 군기강의 문란함은 매우 심각했고 별은 단 장성들은 베트남 위락촌에서 술을 마시며 따듯한 남국의 날씨를 즐겼지만, 그 아래 병사들은 정글이라는 지옥도에서 수없이 죽어갔고 헬기조종사들은 술에 쩔어있었으며 이는 한국군이 봐도 너무 충격적인지라 한국군 장성이 '야; 너 이렇게 취해가지고 우리 애들 어캐 수송함; 안돼;;'하니까 헬기조종사가 되려 '시발! 이런 x같은 지옥에서 맨정신으로 버티라고?'하며 되려 지랄하는 막장 상황이었죠. 전쟁터에서는 앞에서 총쏘는 적보다 뒤에서 날라오는 총알을 더 조심해야할 판이었고 부대엔 마약중독자가 넘쳤기에 미국 내에서는 '전쟁 끝나면 마약중독자들이 몰려온다!'하는 상황까지 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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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풀메탈재킷, 뒤통수에서 날라오는 총알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무기마저도 M16은 분명 우수한 무기입니다만, 사용자들은 정신없이 연발로 놓고 난사질하기 바빳으며 폭격기들은 밥먹듯이 폭격질을 했고 미사일 만능주의에 빠져 '기총따윈 필요없지 않아?'해서 F-4에 빼버린 기총으로 인해 전투기 교환비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두어 한국전쟁 이래로 소련 기종 대비 쌓아둔 교환비를 여기서 다 깍아먹었습니다.
 
 또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북베트남에 대한 공격을 안했다는 것이죠. 이게 가장 큰 노답의 이유인데, 소련과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한 미국은 북베트남엔 폭격만 가했을 뿐 정규군 투입은 하지 않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적의 본거지를 그대로 냅두고 적을 무찌르라는 답없는 이야기였습니다만, 미국은 이때 재정신이 아니었기에 그냥 합니다. 뭐 그린베레와 같은 특작부대를 이용한 공작은 계속했지만 뭐 그걸로 적을 무찌를 수는 없는 노릇이죠.
 
 여튼 이 전쟁에서 미국은 정말 '억'소리 나는 돈을 퍼부웠고 여기에 린든 대통령은 또 지 좆대로 금본위제를 포기합니다. 뭐 이후 뒤수습을 위해 미국은 중동국가들 멱살잡고 오일머니는 오로지 달러로만해. 하고 동맹국들에겐 님들아! 우리가 님들 지켜주는데! 달러화! 못믿습니까?!! 하는 것으로 어찌저찌 굴러갑니다만, 이 뒤로 미국은 부채의 왕국이 되죠. 뭐 상관없습니다. 부채를 받고 싶어도 못받잖아요? 억지로 받을 배짱도 없는데 주는 대로 받아야지.
 
 이후 전쟁에서 가장 결정타를 맞게 된 것은 바로 북베트남이 벌인 구정공세인데, 사실 구정공세 그 자체는 북베트남의 실패에 가까웠고 북베트남이 아끼고 아껴온 빨치산들이 일거에 소탕되어 사실은 남베트남과 미국이 쾌재를 부를 만한 일이었습니디만, 북베트남은 전략의 달인이었습니다. 이런 멍청한 짓을 그냥 할리가 없죠. 이들이 구정공세를 벌인 그 해는 바로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였으니까요. 구정공세 자체는 실패한 공세지만 이 공세는 미국의 언론들을 통해 미국에 생중계되었고, 막연하게 우리가 이기고 있겄지 하던 미국인들 눈에 보인 것은 전쟁의 실체였습니다. 정말 북베트남은 전투에선 질지도 모르지만, 전쟁에선 지진 않겠다는 그 발상이 아주 정확하게 이용할줄 아는 국가였던거죠.
 
 이로인해 린든 대통령은 재선 출마를 포기하고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중단해버립니다. 거의 공세한계에 다달았던 북베트남은 미국을 기어이 이겨낸 것이죠. 뭐 미국은 가기 전에 남베트남에게 물자를 대거 양도하고 북베트남에겐 '야! 처들어오면 핵이 날라갈지도 몰라 임마!'하면서 협박까지 하면서 나오긴 합니다만... 뭐 개소리가 되고 마니까 넘어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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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구우? 수천억달러 쓰고도 못이긴 찐따라 안들리는데에~
 
 이후엔 많은 변화가 생깁니다. 미국이 인도차이나 반도에 대한 관심은 매우 짜게 식게 되면서 정말로 미국이 우려하던 공산권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캄보디아의 친미정권도 무너지고 마오이즘에 경도된 크메르 루주 정권이 생겨나는데 이 새끼들이 엄청난 또라이새끼들이라 그 유명한 킬링필드가 펼쳐집니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계 주민까지 학살당하면서 베트남 정부는 빡침이 이빠이데스가 되죠. 그리고 베트남은 '자국민을 학살하는 이 미친새끼들을 제가 한번 조져보겠습니다!' 하고 신나게 줘패러갑니다. 이것이 제 3차 인도차이나전쟁이죠.
 
 물론 크메르 루주군은 그냥 민간인 학살이나 할줄아는 쓰레기새끼들이었기 때문에 미군에게 단련되고 남베트남을 접수하면서 미군 무기로까지 무장한 괴랄한 베트남군에게 개털려버리는데, 재밌는건 위에서 언급했다 싶이 '마오이즘'계열인 캄보디아를 돕겠다고 나선 것이 바로 중국이란 것이죠. 사실 크메르 루주가 벌인 짓거리를 생각하면 대가리에 총맞으셨어요? 할만한 소리지만, 이대로 베트남이 동남아의 패자가 되는 것을 내비둘 순 없는 노릇이었기에 한번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 더 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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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니들만 미국이랑 싸워봤냐! 우리도 미국이랑 한따까리했어!
 
 재밌는건, 중국은 분명히 베트남의 빈집털이를 한 것이었습니다. 베트남의 주 병력은 전부 캄보디아를 조지고 있었고 잔존한 병력은 말그대로 향토예비군 수준의 병력이었습니다만 아주 엄청나게 고전합니다. 이 전쟁에서 중국의 목적은 애초에 베트남의 멸망은 아니었습니다만, 대충 국경도시 몇개 족쳐버리고 베트남이 놀래서 캄보디아에서 병력을 빼면, 가오 좀 잡은 다음에 '마! 니들 다음부터 까불지마 이새꺄!' 할 목적이었죠. 만약 중국이 각잡고 베트남을 멸망시키려 했다간 소련이 '허? 국경분쟁 까먹으셨나봄? ㅋㅋㅋㅋ또 한개 사단정도 뒈져보실래요?'하면서 실력행사에 나설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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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을 막기 위해 베트남은 여자고 나발이고 다 전쟁터로 달려간다.
 
 여기서 중국군은 진짜 그냥 인해전술로 꼬라박았고 20만이나 되는 병력을 동원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노련하게 운영하던 중국군은 어디로 가고 그냥 븅신들만 남은 수준이었죠. 중국군은 20만을 동원한 끝에 국경 도시 몇 곳을 파괴하고 빠져나오는데  베트남의 저항이 자신들의 예상보다 훨씬 거셌고, 자신들의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쓰레기 같았던 점 때문입니다. 그럼 베트남의 주병력은? 여전히 캄보디아를 조지고 있었고, 캄보디아엔 기어이 친베트남정권이 들어서게 되죠.
 
 그리고 미국은 베트남 전쟁 이후 냉전시대 전략에 대한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때 파트너로 잡게 되는 것이 중국입니다. 중국은 소련과 결별하면서 국경분쟁으로 군사적 충돌을 한판 거하게 벌였습니다만, 결과가 굉장히 불안했죠. 정말 전면전했다간 좆될거 같다. 이정도였습니다. 한편 소련은 중국이 건방지다고 핵 한방 처먹이고 베이징까지 밀어버릴 계획으로 미국에게 '야 핵쏠건데 니들 어쩔거냐?'하니 미국이 '니가 중국에다 쏘는 순간 핵전쟁이다.'하면서 소련의 핵무기 사용을 막았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선 다행히 목숨은 건진 상황이었죠. 따라서 중국의 주적은 같은 공산권 국가인 소련으로 전환되고 미국은 이 틈을 노려 중국의 벽을 살살 건들입니다. 바로 핑퐁외교로.
 
 또 미국 내 징병제에 대한 전환의 필요성도 대두됩니다. 베트남 전쟁 내내 벌어진 군기강의 문란과 징병제를 피해 해외로 도피하는 청년들, 반전여론은 군의 개혁에 대한 거대한 외침으로 바뀌었으며 징병제를 유지하는 한 이러한 썩어빠진 군대는 바뀔 수 없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모병제로서의 전환이 대두되어 모병제로서의 미군으로 전환이 시작되죠. 그리고 이에따라 자연스럽게 작지만 강한 군대의 필요성이 강조되게 됩니다. 사실 이때부터 지금의 입이 떡벌어지는 미군이 받는 대우들이 시작됬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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