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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일곱 번째 밤, 호환(虎患).(上)
게시물ID : panic_911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윈스턴
추천 : 50
조회수 : 3805회
댓글수 : 25개
등록시간 : 2016/10/10 23: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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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밝은 낮의 시간이 어찌 흘러가는지, 홀연히 모습을 띄운 그 책망과 실망의 감정들은 사고를 마비시킨다.

 

글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시사(視事)를 돌보기 쉽지 않고, 음식들이 입에 차지 않으니 몸을 돌보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저 소리들은 흘러가 귓전을 스칠 뿐이요,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허공에 뜨다 사라질 뿐이라. 그 마음의 정기(精氣)를 잃어 빈껍데기 같은 몸을 이끌며 정해진 일상을 채워나간다.

 

마음이라는 놈이 시름시름 앓아 제 힘을 쓰지 못하건만, 현실은 평소와 다르지 않으니 한층 더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상선(尙膳)은 고하라.”

 

 

 

으뜸 내시인 상선은 별관들에게 알아낸 사실을 낱낱이 고하기 시작한다.

의외로 중전은 감추는 일 없이 모든 일을 실토했으니, 내막을 알아내는 것에도 무리가 없었으며 무엇보다 이미 그 명이 다 하여 죽어가는지라 고문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름대로 잘 된 일인 터였다.

 

 

중전마마께오서 회임(懷姙)을 하시었사옵니다.”

 

 

어좌(御座)에 몸을 기대어 이마를 짚는다.

그 소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몹시도 고약한 일이기 때문이니.

 

 

상선도 알다시피, 나는 중전과 합궁을 한 일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면 요물의 짓으로 회임을 한 것인가? 아니라면.”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 아이의 아비 되는 자는

 

 

말끝을 흐리는 상선.

차마 그 결과를 고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속히 말해 보거라. 괜찮다 상선, 괘념치 말라.”

 

그 아비 되는 자는형조판서(刑曹判書) 김조무 대감입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은 이러한 일인지 싶었다.

감히 신하된 자가 임금의 여자를 탐하여 아이까지 배게 하다니, 한 나라의 지아비를 얼마나 업신여기고 우습게 보았길래 이러한 불경을 저지른다는 말인가.

 

 

그 회임을 감추기 위해, 전하와 합궁을 하고자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 하옵니다. 전하의 아이라고 이야기하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겠지요.”

 

 

임금을 지아비로 둔 여자가 다른 이를 만나 음사(淫事)를 저지르니, 이토록 불경한 죄가 또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숨이 가빠질 지경으로 그 화를 누르기 힘들었다.

 

 

허나 그것이 용의치 않던 까닭에 음사(淫祀)를 치렀다고 하옵니다. 그 음사를 중전에게 일러준 무당 노파를 찾기는 찾았으나, 영의정 김조성 대감이 직접 심문한다 하여 데려간 후였고 고문 끝에 노파가 죽었다 하여 그 시신만 돌아왔사옵니다.”

 

으아아아아아아!!!”

 

 

결국 임금의 화는 터져버렸고, 그 진노의 목소리와 함께 두 주먹을 하늘로 뻗으며 부들부들 떨어대었다. 눈앞의 죄 없는 상선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 견딜 수 없는 분기를 허공에 뿌릴 뿐이라.

 

 

당장에 형조판서 김조무를 포박하여 짐 앞에 끌고 오라!!!”

 

 

분기탱천하여 어명을 내리는 임금의 용안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그 화기가 마치 숯덩이 같으니.

형조판서 김조무는 영의정 김조성의 사촌이었다.

 

 

 

 

 

 

 

 

 

 

 

 

 

 

 

 

 

 

 

 

그리하여 형조판서를 하옥(下獄)시키셨군요.”

 

혹독한 고문을 하라 일러두었으니, 낱낱이 고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독기가 마음에 가득 들어찬 임금은, 그 노기를 숨기지 않았다.

역모로 당장에 능지처참이나 거열형을 명해도 모자랄 대죄이니 그 어떤 이들도 김조무를 보호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었다. 그것은 영의정 김조성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전마마의 일로 심려가 크시겠사옵니다.”

 

 

결국 하루를 더 견디지 못하고 중전은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 전신에 돋아난 꽈리는 정도가 심해져 몸이 녹아내리는 듯 하였고, 끝내 온 몸이 핏물로 화하며 흐물흐물 녹아내리니 시신의 참혹함도 이를 데 없었다.

 

 

이제는 이야기 해 줄 수 없겠느냐.”

 

 

그 심력이 다하여 기운마저 쇠한 듯 가라앉은 그 목소리.

안정(眼精)에서부터 느껴지는 그 쓰라림.

 

 

지금 품에 간직하고 계신 사희의 비늘 덕이지요.”

 

 

예를 갖춘 공손한 모습으로 조용히 임금의 옆에 와 앉는다.

시선을 그 여인의 애잔한 눈빛과 마주하며 이야기를 들으니 그 마음은 한결 편하다.

물론 그 내용은 그러하지 않지만.

 

 

쥐의 머리들을 썩은 나뭇가지에 꿰어 신체(神體)로 삼아 전하께 저주를 걸었을 것이나, 용의 기운에 저주가 물러나 주인에게 돌아가니 그 업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은 것입니다.”

 

어찌 죄가 있다고 하나 중전이 나에게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인가! 대체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단 말인가!”

 

전하께오서 승하(昇遐)하시면 전하의 아이라 속일 셈이었겠지요. 중궁전의 상궁들 또한 중전마마를 돕는 모양이었고, 그러한 행태를 중궁전별감들 또한 눈감아주고 있는 모양이었으니 전하께오서 중궁전에 드셨을 적 승은을 입었다 입을 맞출 셈이 아니었겠사옵니까.”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으나, 여인의 입으로 그 의미를 명확히 하니 비통함이 끝을 모르고 마음을 짓누른다.

가슴 안에 날카로운 송곳이 들어 구석구석을 찌르는 듯, 너무도 아프고 답답하며 숨이 막혀 온다.

상실감, 실망감, 근심과 걱정.

 

그리고 죄책감.

 

 

중전은 경산(慶山) 현령(縣令)의 딸로 나를 적대하는 영의정 김조성이 직접 데려온 사람이다.”

 

 

몹시도 힘이 빠져 가라앉은 목소리는 마치 장송(葬送)의 시를 읊조리는 듯 구슬프고 소삼(蕭森)했다. 지나간 날을 회상하며 이야기하나 그 눈앞에는 많은 기억들이 스쳐가니, 스스로에게 자책하는 말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저 생각나고 느껴지는 대로 꺼낼 뿐이다.

 

 

김조성이 데려온 여자이니 내가 어찌 편히 마음을 나눌 수 있었겠는가. 그것이 그 여자 잘못은 아니니 내 살아가는 데에 있어 부족함이 없게 해 준다고 마음을 썼으나중전은 편하지 않았던 모양인 게지…….”

 

 

임금은 중전에게 사랑을 줄 수 없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하나 그 마음은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다.

 

 

짐이 부덕하여 그리하였는가. 중전을 품지 아니하고 그저 불편함 없이 지내게만 해 준다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나의 허물이었던가. 중전을 마음에 들이지 아니하였으니 이것 또한 짐이 감당할 수 있어야 할 일이나 어찌 이토록 가슴이 아프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결과가 이루어졌을까. 중전을 품지 아니하고도 중전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할 방법은 없었을까.

어떻게 했다면 어떻게 했다면.

 

그저 결과를 후회하며 답이라는 놈이 존재하지 않는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질 뿐이다.

 

 

전하. 임금은 하늘이 내린다 하였으나, 어찌 다르시겠사옵니까. 다를 것 없이 부드러운 살과 따뜻한 피로 이루어진 인자(人子)이실진대, 어찌 자신을 그토록 가혹하게 채찍질을 하시옵니까.”

 

 

불경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

사람의 자식이니 자책하지 말라하는 그 위로.

 

그 따스한 말과 함께 여인은 임금의 어깨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그리고 감싸 안고 몸을 붙여 끌어안는다.

무척이나 따뜻한 그 체온이 임금의 등을 통해 느껴진다.

여인의 그 부드러운 몸이 느껴지고, 애틋한 그 마음이 느껴진다.

 

 

중전이라는 자리에 앉아 그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불경하게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였으니 그 죄 이루 말을 할 수 없사옵니다.”

 

 

다소 강경한 그 말.

한 나라의 임금 앞에서 내세우는 의견.

그러나 그것은 강함의 탈을 쓰고 다가오는 여리고 따스한 위로다.

 

 

전하의 잘못이 아니옵니다.”

 

 

침묵.

 

그 한 마디의 말을 끝으로 여인은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더욱 힘을 주어 임금을 끌어안을 뿐이었다.

여인의 그 따스하고 포근한 가슴이 등줄기를 타고 느껴짐을 의식했다.

탐스러운 여체를 느낀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슬퍼하고 있는 와중에 이러한 것을 느끼는 자신이 우습기도 하여 그만 입꼬리가 올라간다.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지는 까닭에 그러하다는 생각도 든다.

 

 

웃는 모습이 더 보기 좋으십니다, 전하.”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터라 그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인이 미소를 띠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뒤를 돌아 그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동했으나 임금은 그러지 않았다. 지금의 이 따스함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었던 탓이다.

여인 또한 임금을 감싸 안은 그 팔을 풀지 않았다.

그저 피식 웃는 소리와 함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지금의 전하께 알맞은 이야기가 있사옵니다. 근심은 잠시 잊으시고 부디 이야기를 들어주시지요.”

 

 

 

 

 

 

 

 

 

 

 

 

 

 

 

 

 

 

 

 

 

 

 

영산은 나이 지긋한 촌장의 병수발을 들고 있었다.

곤장 다섯 대가 이토록 사람을 망가뜨리니 그 살벌함이 몸소 느껴진다.

볼기에 온통 피가 눌어붙고 그 살가죽이 찢어져 생살이 온통 드러나 있으니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으으으어으으으

 

 

죽어가는 사람마냥 앓는 소리가 혼이 빠지는 모양을 하고 있으니, 온 힘을 다하여 병수발을 드는 것이다. 조심스레 깨끗한 천을 물에 적셔 피를 닦아내고 갈아놓은 약초를 바른다. 조금만 건드려도 그 몸이 죽을 듯 부르르 떨어대니, 그 손길을 몹시도 조심스럽게 하여 영산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 죽일 놈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을 이토록 심하게 매질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촌장은 마을 사람들의 고충을 대변하러 관아에 찾아갔었다.

그저 살고자 찾아간 일이다.

 

 

 

 

 

그 범이라는 놈이 밤마다 마을에 내려와 사람들을 물어가니 살 수가 없습니다요!

 

어허, 본인이 듣기로 그 범의 크기가 집채보다도 더 크다던데 어찌 그런 위험한 일에 나라의 귀한 포도군사들을 희생시킬 수 있겠는가.

 

허나 밤마다 마을 사람들이 물려갑니다요!

 

문짝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야밤에 출입을 삼가거라. 그럼 되지 않느냐.

 

저희가 세금을 내는데, 나랏분들이 저희를 지켜주어야 응당하지 않습니까!

 

뭐라! 감히 일개 촌로인 주제에 나랏일을 도맡아하는 관아에 와서 명령을 하는 것이냐!!!

 

 

 

 

 

그것으로 끝이었다.

 

촌장은 본보기로 곤장을 맞고 쫓겨났다.

젊은이가 맞아도 몸이 성치 않을 곤장 다섯 대는 나이 지긋한 노인에게 있어서 죽으라는 법과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겨우 이야기하고 기절하여 끙끙 앓기만 할 뿐이니, 언제 저승길에 들어서도 이상하지 않은 병세인 것이다.

 

 

 

정말 나쁜 놈들 이예요. 나라의 법도가 있을 터인데 어찌 힘없는 노인에게 이토록 가혹하단 말인가요.”

 

어허, 누가 듣겠습니다. 말씀을 삼가세요.”

 

들을 테면 들으라지요. 나도 때려죽이려면 그러라지요.”

 

 

 

촌장의 하나 뿐인 손녀는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을 사람들이 굳이 나이 지긋한 촌장에게 이를 부탁한 것은 마을 사람들 중에서 가장 발언권이 뛰어난 이가 촌장이었기 때문이고, 나이가 많은 이가 이야기해야 더 말을 잘 헤아려줄 것 같아서였다. 헌데 이토록 초주검이 되어 돌아오다니. 마을 사람들은 온통 죄스러운 마음에 촌장의 집을 떠나지 못하고 그 마당에 서서는 공손히 손을 모은 채 쾌차하기를 하늘에 대고 기도할 뿐이었다.

 

 

 

얼마 전부터 범이라는 놈이 나타나 사람들을 물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없으면 소나 돼지 같은 가축들을 물어갔으며, 간혹 문을 부수고 들어가 방안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물어가기도 했다. 비명소리를 듣고 뒤늦게 횃불을 들어 우르르 몰려든 마을 사람들이 목격한 것은, 담벼락 따위는 땅을 박차고 뛰어오를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걸어서 넘어가 사라지는 거대한 범의 뒷모습 뿐 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덩치와 기세에 겁에 질린 사람들은 감히 그 뒤를 쫓아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그저 범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늘을 찾고 조상님을 찾을 뿐, 그 앞발에 채이면 단번에 몸이 산산이 조각날 것이었다.

 

 

 

촌장의 숨소리가 다소 편해진 것을 확인한 영산은 그제야 한숨 돌리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소매로 닦으려 하니,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던 촌장의 손녀가 새것같이 깨끗한 천을 물에 적셔 그 얼굴을 대신 닦아 주었다.

 

무엇인가 생각하던 영산은, 그길로 촌장의 집 밖으로 나갔다.

 

온 마을 사람들이 촌장의 집 마당에 모여 옹기종기 서 있는 모습을 둘러본다.

 

 

촌장님 병세가 어떠한가!”

 

나으실 수 있겠습니까!?”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안부를 묻는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이도 많았으나, 병자에게 좋을 리 없으니 그저 꾹 참고 있다가 영산에게 물어올 뿐이다.

 

 

촌장님 병세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우선 위급한 때는 넘겼습니다. 상처가 더 곪지만 않는다면 쾌차하실 수 있겠습니다.”

 

 

그 몇 마디에 사람들은 몹시도 안심하여 저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영산이 의원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이러저러한 일들을 도우며 품삯을 받아 살았고, 이 마을에 오기 전 다른 마을에서 의원의 일도 도운 적이 있어 의술에 대해 아는 바가 있으니 누군가 병이 들면 곧잘 영산을 찾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영산의 처치는 곧잘 효과를 보곤 했던 것이다.

 

 

여러분. 이대로는 살 수 없습니다.”

 

 

그 한 마디에 마을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조용해졌다.

이래나 저래나 마을은 고통 받는 이들이 넘실대고 있다.

 

 

난 범을 잡으러 갈 것입니다. 그 범이라는 놈이 살아있는 한, 우리는 계속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을 잃을 것입니다.”

 

 

.

 

벌서 그 범에게 물려간 이가 열 손가락으로 셀 수가 없고, 가축들 또한 물려가 하룻밤 만에 알거지가 된 집도 왕왕 있었다.

촌장이 관아를 찾았으나, 곤장을 맞고 초주검이 되어 쫓겨났으니 이는 명백한 거절이라.

나라에서도 버린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세금도 내고, 나라라는 땅덩어리 안에 존재하고 있었으나 명백히 버려진 셈이었다.

 

 

근데 그놈 크기가 엔간한 대반석(大盤石)과 맞먹는데 무슨 수로 잡는단 말이오!?”

 

소를 물고 목책을 훌쩍 뛰어넘는 걸 봤소!”

 

쇠를 박아놓은 빗장도 부수고 들어간다던데!?”

 

 

그저 기겁을 하며 사색이 된다.

평생 이런 살풍경을 겪어 본 일이 없는 이들인지라 어찌 겁이 안 나겠는가.

그 정도로 거대한 범은 호렵(虎獵)을 업으로 삼는 엽사(獵師)들도 손사래를 치고 줄행랑을 칠 만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나서는 이는 없으리라.

이미 예상한 바이기 때문에 영산은 그저 웅성대는 마을 사람들을 목전에 두고 기다릴 뿐이었다.

 

 

내가 같이 가지.”

 

 

누군가 손을 들고 앞으로 나선다.

영산도 몹시 달가워하는 눈치를 보인다.

탄탄하지만 다소 마른 몸을 가지고 날랠 것 같은 발걸음을 보인다.

 

마을 제일가는 엽사(獵師).

산짐승 사냥을 업으로 삼는 이.

 

서와라는 사내였다.

 

 

엽사님이 함께 해 주신다면 가능성이 없을 것도 아니겠군요.”

 

그래도 그 호랑이를 얕잡아볼 수는 없소. 엔간한 덫으로는 그놈 걸음도 못 옭아맬거요.”

 

 

엽사 서와와 손을 마주 잡는 영산은 눈치가 꽤나 달갑다.

그 달가움 속에서도 비장함이 감도는 것은 퍽 느껴지지만, 조금이라도 희망이 보이는 모양이니 나쁜 것은 아니다. 서와는 마을 유일한 엽사였고, 실력도 출중한 편이었으니까.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은 사이 또 다른 사내 하나가 지체 없이 걸어 나왔다.

그 몰아쉬는 숨이 몹시 거칠었다.

 

 

나도 간다.”

 

 

꽤나 기골이 장대한 사내로, 두툼한 턱수염이 인상적이다.

그 단단해 보이는 팔뚝은 여느 사람들 허리둘레만치 두터워 보기만 해도 억센 힘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서와가 나섰을 때와 달리 영산은 씁쓸한 표정을 채 지우지 못하고 잔웃음을 보일 뿐.

 

마을 제일의 목수.

 

칠 일 전, 열 살 난 아들을 범에게 빼앗긴 목우라는 사내다.

 

 

아저씨. 아들 일은 정말 유감스럽지만

 

아니, 그저 아들 복수 하고 싶어서 눈이 돌아간 게 아니니 염려하지 말게나.”

 

 

목우의 태도는 너무도 단호했다.

사실 목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장사였기 때문에, 서와와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도움이 될 터였다.

영산이 염려하는 바는 목우의 신변도 그렇겠지만, 아들을 잃고 아비까지 잃는다면 진실로 홀몸이 되어버릴 그의 아내였다.

그러나 목우의 눈빛은 결코 분기나 비통함으로 흐려진 모양이 아니었다.

오히려 영산은 범에게 비명횡사하지 않으려면 힘 있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함께해야 했기 때문에 거절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결국 영산 또한 목우를 받아들였고, 그 이후로 한 식경의 시간을 더 기다렸지만 더는 나서는 이가 없었다.

 

 

 

 

 

 

 

 

 

 

 

 

 

 

 

 

 

 

 

 

준비는 마치셨습니까?”

 

그렇소. 사냥 도구는 내가 야장(冶場)까지 들러 죄다 챙겨왔으니, 되도록 몸에 익은 무기만 챙기면 됩니다.”

 

 

사실 엽사인 서와 이외에는 챙길 것이 별로 없었다.

하다못해 먹을 것조차 챙기지 말라고 서와가 단단히 일러두었기에, 영산은 날이 잘 벼려진 식칼을 들고 왔고 목우는 크고 묵직한 쇠망치와 정(*돌이나 바위에 구멍을 뚫거나 쪼아서 다듬는, 쇠로 만든 연장.)들을 가지고 왔다.

 

그나마 무기라고 들고 온 쇠붙이들도, 호랑이를 잡을 때에는 서와가 가지고 온 수렵도구들을 사용할 셈이니 유사시의 호신용이라 할 것이었다.

 

먹을 것은 냄새를 풍기니 범에게 위치를 발각 당하기 쉬워지고, 수렵 무기가 아닌 것은 범에게 사용하기 쉽지 않으니 거추장스러울 뿐이라 했다.

 

영산과 목우가 오자마자 서와는 그들에게 날 끝부터 손으로 쥐는 부분까지 모조리 쇠로 만들어진 작살을 쥐어 주었다.

 

 

엔간한 날붙이들은 범에게 휘두르기도 전에 채여서 잡아먹히기 십상이니, 되도록 기다란 무기를 써야하지. 그래서 창이나 작살을 써야 하는 거라오.”

 

 

그리고 봇짐을 하나씩 두 사람에게 들게 했다.

꽤나 묵직했는데, 그것이 죄다 덫의 용도로 사용할 것들이라고 했다.

 

 

직접 싸우는 것도 몹시 위험하니 되도록 해서는 안 될 짓이오. 덫으로 유인하고, 덫으로 발을 옭아매고, 덫으로 죽이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

 

 

그리고 세 사람은 산을 향해 출발했다.

마중을 나오는 이는 마을 사람들의 절반 정도 뿐 이었으나,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숨어서라도 지켜보는 이는 거의 대부분이었으니 모든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떠난 셈이었다.

어떤 이들은 대낮부터 물을 길어다 절을 하며 기도를 올리기도 했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하염없이 뒷모습을 바라보기도 했다. 가족인 자는 숨죽여 눈물 흘리기도 했고, 호환을 당한 이의 가족들 또한 오만가지의 감정이 뒤섞여 울음을 터뜨렸다.

 

세 사람이 떠난 시각은 미시(未時)의 초입.

정오가 조금 지난 후였다.

 

 

 

 

 

 

 

 

 

 

 

 

 

 

 

 

 

 

 

 

마을과 꽤 가까운 산 임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가파르고 험난하여 오르기가 꽤나 벅찬 일이었는데, 아무래도 사람들이 산에 잘 오르지 않다보니 길이 닦이지 않은 탓이었다.

기껏해야 산에 오르는 이들은 약초꾼이나 나무꾼, 그리고 엽사인 서와 뿐이었고, 그나마 산에서 나는 버섯이나 나물, 열매 등등의 부산물들도 캐오는 이가 약초꾼이나 서와 뿐이니 다른 이들은 산에 오를 일이 없는 것이었다.

 

사실 범이 나타나기 전에도, 늑대나 표범 따위가 자주 출몰했었던 탓에 너무도 위험하니 다가가는 이들이 없을 뿐이었지만.

 

 

조금만 더 가면 상인들이 자주 오가는 관도가 나오니 힘을 내시오. 날이 저물기 전에는 당도해서 덫하고 함정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소.”

 

 

사실 서와의 독려는 영산에게 치중되어 있는 편이었다.

산길이 익숙지 않은 것은 목우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는 타고난 힘이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지친 기색은 없었다. 하지만 영산은 지금 땀이 비 오듯 하고 다리가 부들거리는 모양을 하고 있으니 지친 기색이 역력히 보이는 것이었다.

 

 

이 산 너머에 관도가 있다구요?”

 

정확히는 산 너머가 아니라 산등성이에 있지. 그 길 끝에 큰 성이 있어 오가는 이가 많으니 산등성이를 따라 관도를 닦았소. 물론 산등성이라고 꼭대기는 아니고, 바로 그 너머에 더 큰 산이 솟아 있으니 우리가 가는 곳은 그곳이라오.”

 

 

그의 묘사를 더 깊이 들어보고 알게 된 것은, 지금 오르는 산 너머에 있는 더 높은 산에서 범이 내려온다는 것이었다.

큰 산과 작은 산이 붙어 있어 하나의 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름대로 나뉘어 있는 모양이었다. 작은 산의 정상에서 한 식경만 내려가면 그 큰 산의 산자락이라 했으니 지금 고생은 고생도 아닌 것이었다.

 

 

혹여 흑영산(黑靈山)으로 가는 길인가?”

 

그렇소.”

 

 

기를 쓰고 산을 오르는 까닭에 자신의 뒤에서 따라 오르는 목우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으나, 왠지 그 기색을 알 것만 같았다.

마을 주변의 지리가 어두운지라 어디로 향하는지는 몰랐으나, 그 이름은 들어본 바가 있다.

너무도 높고 높아 그 높이가 구름까지 닿으며, 드높은 나무와 우거진 수풀들이 사방을 가득 메운 까닭에 그 깊이를 알 수도 없다던 영산(靈山)이었다.

산의 신령이 산다 하기도 하고, 신선이 산다고 하기도 하는 소문과 이야기만 무성한 곳.

 

 

그럼 그 산자락 근방에 있는 관도를 통하니, 산적을 만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겠지요.”

 

 

근심이 앞서는 목우와 달리 그 기세가 차분하고 거침없는 서와.

그들의 사이에서 영산은 벅찬 숨을 몰아쉬며 대화를 들을 뿐이었다.

 

범도 무섭지만 산적들 또한 무섭기는 매한가지 아니던가.

 

날이 저물기 전에 당도해야 하는 흑영산 이건만, 그 길은 너무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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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려 호랑이가 나오네요 ㅎㅎ

호랑이라 하면 짐승 취급 받기도 하고 신령 취급 받기도 하고 ㅋㅋ 재앙 취급 받기도 하고 ㅋㅋㅋ

우리나라에서는 그 의미가 더 각별하고 많지요 ㅎㅎ


저는 사실 사자보다 곰보다 호랑이가 좋습니다.


저는 호랑이를 무진장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호랑이는 저를 맛있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모음 하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이야.




지난번에 '그림마' 님께서 그림을 그려 올려주셨어요!!




야화팬픽.jpg



오왕! 오왕! 고퀄리티!!!!

고오오오오오급 퀄리티!!!!!


ㅎㅎ 감사합니다 ㅠㅠㅠㅠ 소중한 그림 ㅜㅜ

'김먼지' 님 홍년이 이후로 또 그림을 받아보네요 감개무량합니다! ㅠㅠ



 



사실 이번 편은 호랑이 이야기는 도입부일 뿐이고, 임금의 이야기가 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중전이 바람을 피우고 임금을 저주했지요.

이것으로 또 다른 길로 들어서는 거겠지요.


임금님은 고자가 아닙니다 여러분.

그냥 여자문제에 대해서 신중할 뿐입니다.

그는 신사입니다 여러분 으헝헝...

임금이면서 중전하고 동침도 안하고 후궁도 없다고 고자인건 아닙니다!

으헝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 항상 재미있게 봐 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시일 내에 되도록 빨리 하편으로 다시 만나요!!

 

 

    


 

 

 

출처 작성자, 본인, 윈스턴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첫 번째 밤, 광대패 속의 여인.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58683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두 번째 밤, 절지당(絶指堂).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60495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세 번째 밤, 원귀의 저주.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94072

야화,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네 번째 밤, 개천에서 태어난 괴물(上)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96198

야화,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네 번째 밤, 개천에서 태어난 괴물(下)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99037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다섯 번째 낮, 쥐떼.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302935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다섯 번째 밤, 홍량(妅俍) 무녀.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309155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여섯 번째 밤, 몽중화(夢中花).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314271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일곱 번째 낮, 서신(鼠神).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316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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