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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때마다 모르겠는 <무서운> 내 부인 2.
게시물ID : wedlock_52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요레요레요
추천 : 59
조회수 : 5435회
댓글수 : 67개
등록시간 : 2016/10/18 17:4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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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인데 할 게 없어서, 그리고 그동안 쌓인게 많아 또 씀.

1. 모든 여성들의 최악의 날, 명절 파이트 사건.

우리 와이프는 풍족하진 않지만 엄청 화목한 가정 및 친척들 사이에서 자라남.
난 풍족하지만(우리집만) 엄청 유난스런 친척들 사이에서 컸음.

엄마가 돌아가신 후, 우리집이 큰 집이라 작은 엄마들이 명절날 음식을 대신 해 주셨음.
그런데 점점 차린 음식에 비해 지출되는 금액이 커짐. 차례상도 허술해짐.
딱봐도 소고기 10근 사서 상에는 2근 올리고 나머지는 자기들이 가져가는 그런 식이었지만, 엄마가 안 계셨기에
안살림이라 아버지는 알아서 모른척하셨음.

와이프와 함께하는 첫 명절.
작은엄마들은 와이프에게 이것저것 훈수두며 엄청 휘두르셨고, 나는 우리 와이프가 확 뒤집어주길 기대했는데
진짜 한 마디도 안하고 네네- 하며 화장실도 안 가고 열심히 일만 하는 것음.
와이프가 겉보기에는 정말 곱게 크고, 또 공부도 워낙 잘하고 그래서 작은엄마들은 집안일을 하나도 모른다고 생각했나봄.

며느리 봤다며 돈도 엄청 써대고...엄청 빼돌렸을 게 뻔함.
명절지나고 얘기 꺼내려고 했더니 와이프가 '지금은 됐어, 아무말도 하지 말고 기다려' 딱 한 마디만 했음.
구정때도 그러더니 추석때도 그랬음.

추석연휴날 다 같이 가족들 있는 자리에서 우리 와이프가 드디어 한마디했음.

'1년 간 제사, 차례 음식하는 법, 가풍 열심히 익혔습니다. 작은 어머님들 고생많으셨으니 이제는 제가 큰 집 손부답게 다 맡아서 하겠습니다.'
'음식이고 반찬이고 떡이고 술이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마시고 몸만 오세요. 다음 차례때 뵐게요.'

그리고 대망의 구정.

구정 전 날 아침에 장보고, 점심부터...
엄청나게 큰 비닐봉지에 부침가루를 탈탈 털어넣더니 동그랑땡 넣고 미친듯이 흔들고, 새우넣고 흔들고, 뭐 넣고 흔들고-
또 엄청나게 큰 락앤락을 사와서 계란 한 판 풀더니 부침가루 흔든 내용물을 또 락앤락에 넣고 미친듯이 흔들.....
전기에다 꽂아쓰는 엄청 큰 후라이팬 두 개 코스트코에서 사오더니 직각으로 배치해서 동시에 부침개를...

암튼 순식간에 나물이며 전이며 국이며 뭐 엄청 후딱 잘했다.

알고보니, 화목한 와이프 큰 집에서는 모두 모여 전부다 같이 집안일을 어려서부터 한 지라 차례 음식의 달인이었다.

차례상보고 다들 작은아버지들도 입을 못 다무시더라.
정갈하고, 양도 많고, 맛있었고...돌아가신 우리 엄마 생각이 났다. 

밥 다 먹고 과일까지 미리 다 깎아서 내 놓은 다음
우리 와이프는 장 본 영수증을 엑셀로 정리해서 A4로 뽑은 다음, 지난 1년간 작은엄마들이 아빠에게 타 간 카드값과 비교산출을 했다. -_-
자비없지 우리 와이프.

작은엄마들은 얼굴이 시뻘개졌고 작은 아버지들도 입맛만 다시며 침묵.
아버지 깊은 한숨.

우리 와이프는 비교산출하고 남은 금액, 100만원이 넘는 차액에 엄청 크게 빨간색으로 표시를 해 놨더라.
그리고 눈 앞에서 5만원권 7장씩 봉투에 담아 작은 엄마들께 드렸다.

드릴 때 드리더라도, 정확히 알고 드리고 싶다고.
뵌 적은 없지만, 우리 어머님 살아계셨더라면, 같이 음식만들고 난 다음에 수고하셨다며 이 정도 금액은 드렸을 것 같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드릴 일 없을거라고. 
우리 아버님 고생하시며 번 돈인데 이렇게 눈 멀게 쓰고 싶지 않다하더라.

하실말씀있으면 하시고, 싫으시면 제사 차례 나눠갖자고.
그게 아니면 명절에 오셔서 대접만 받고 좋은 얘기만 나누고 가시면 되겠다. 딱 잘라 얘기하니 모두들 창피해하며오케이하심.

작은아버지들 전부 우리아버지께 죄송했다 그동안 몰랐다 사과하시고
작은 엄마들은 완전 꿀먹은 벙어리되어서 나가심. 와이프한테 한 소리? 눈에 독기 철철 맺혀서 똑 떨어지게 얘기하니 입도 벙긋 못하심.

그날, 우리 아버지 평생 술 드시며 노래하시는 거 처음 봄.
나보고 너 태어나서 울음소리 들은 날 다음으로 벅차다하심. 세상에서 태어난 거 다음으로 와이프랑 결혼한 게 잘한 일이라며.
큰 소리 안 내고 1년이나 잘 참고 일 마무리 잘한 며느리가 대견하다며 계속 손 잡아주시고
와이프는 아버지께 그동안 고생하셨다고, 그래서 우리 남편이 잘 큰 것 같다며 감사하다 얘기하더라.

명절 지나고 워낙 여리여리했던 와이프는 장렬히....몸살로 쓰러졌지만, 링거를 맞으면서도
'아..역시 난 진짜 멋있는 년이야' 라며 혼자 키득댔음. 

그 이후 명절은 와이프가 알아서 메인음식같은 건 직접 하고, 나머지는 사서하고, 차례 후 간단히 다과하고 바로 모임을 쫑내고 있음.
작은 어머니들 용돈은 없지만, 새롭게 태어난 조카들에게 매번 용돈 많이 주고 옷이며 장난감을 미리 잔뜩 사다놔서
모두들 감사하게 생각하심.

저번 아버지 칠순때 다같이 식사하며 얘기가 나왔는데
우리 와이프가 정말 해맑게 웃으며 '또 예전 차례때처럼 그런 일 일어나면 작은 어머님들 전부 다 가발 맞추셔야할거에요~ 제가 손아귀힘이 워낙 좋아서요~~~~~'하더라.

그거 농담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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