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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굿 가이
게시물ID : panic_913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묻어가자
추천 : 15
조회수 : 188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10/26 04:51:11
과거에 사람들이 쓴 SF 소설을 봤어.
참 재밌더군.
우리가 사는 미래를 그렇게 생각할 줄이야.
특히 냉동인간 이야기.
냉동인간이 미래에 깨어났더니, 냉동인간의 장기를 빼내려고 냉동인간을 죽인다든가
혹은 냉동인간들을 죽이며 즐거워한다든가 하는 소설은 참 황당한 것 같아.
왜냐면 우리에겐 장기도 충분하고, 죽일 대상도 충분하거든.
최소한 우리들은 조상을 죽이면서 기뻐하진 않아.
하지만 조상을 죽이는 것도 색다른 재미이긴 하겠군.
아, '죽일 대상'이 무슨 말이냐고?
너도 알지 모르겠지만 미래 세상은 정말 유토피아야.
인간들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상상해 봐. 굶을 걱정도 없고, 이상형과 마음대로 섹스도 할 수 있고, 볼 거리도 정말 많아.
그리고 늙어 죽지도 않지. 사고만 당하지 않는다면.
그런 풍요로운 시간이 자신들 앞에 영원히 펼쳐져 있는 거야.
더 발전할 것도 없지. 인간은 발전을 담당하지 않아. 컴퓨터가 모든 걸 발전시키지.
인간은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야.
미래에는 노동이 미덕이 아니지. 노동은 악덕이야. '일하는 자, 먹을 생각도 말아라.'
일하는 건 노동로봇이나 하는 일이야.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어때? 이런 풍요로움으로 사람들의 욕구가 충족될 것 같아?
아니야.
사람들은 권태를 느꼈지. 권태를 깨부술 정도로 자극적인 쾌락을 원했어.
그리고 자신들의 힘과 권력을 확인받고 싶어했지. 그건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거든.
그래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죽이기로 했어.
그 옛날 주왕과 달기가 만들었던 주지육림을 재현한 거지.
왜냐하면 우리들은 모두 주왕과 걸희의 권력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죽이는 건, 권력을 확인함과 동시에 권태를 깨부수는 행위지.
미친 것 같다고?
이래서 옛날 구닥다리들하곤 말이 안통한다니까.
너희들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느끼지?
옳은 생각은 없어.
너희는 우리가 역겹고, 우리는 너희가 미련스러워.
사람들은 모두 시대에 갇혀 있는 거야.
시대가 만든 문화 속에서 너의 생각이 형성되는 거지.
역사를 공부했다면 더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테지.
옛날에는 노예제가 있었지. 순장이란 것도 있었고. 소년애도 있었지. 일부다처제도 있었고 형사취수제도 있었어.
옛날 사람들이 이해가 가?
그들도 너희를 이해하지 못할 거야.
단지, 그 사회의 수준에 맞는 문화가 생기는 것 뿐이야.
그러니 너희가 우리를 욕할 생각을 하기 전에,
노예제, 순장, 소년애, 일부다처제, 형사취수제 따위가 존재했던 옛날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는 상상을 해봐.
어이가 없지?
우리도 마찬가지 심정이야.
그러니 우리를 욕할 생각일랑은 접어 두렴. 이 미개한 것들아.
단지 죽일 힘이 있어서 죽이는 것 뿐이야.
아, 죽이는 대상이 누구냐고?
우리는 사람들을 죽이지 않아.
사람들끼리 죽이면 체제가 붕괴되지 않겠어?
우리는 이 체제에 만족한다고.
그래서 우리는 사람과 닮은 생명을 만들었어.
죽이기 위해서 말이지.
아, 거기 궁금증이 있는 원시인... 아니, 궁금증이 있는 친구가 있는 것 같구만.
가상으로 고통받는 흉내를 내는 존재를 만들면 안되냐고?
하하하하.
멍청한 질문이로군.
진짜 고통이 있어야, 진짜 즐거움이 있는 거야.
그래서 우리들은 진짜 생명체를 생산했지.
사람들은 자기와 닮은 것들을 죽일 때 제일 행복해하더군.
그래서 사람과 굉장히 비슷한 생명체를 만들었지만, 사실 이것들은 사람이 아니야.
인권 따위 없지. 우리가 종을 탄생시켜 생명을 줬으니 우리가 생명을 뺏을 권리를 갖는 거야.
이 녀석들도 기쁨이나 고통을 느껴.
그게 핵심이지. 흐흐흐.
근데 우리들 중에서는 착한 사람들도 있어.
타인의 고통에 잘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지.
하지만 반전이랄까? 이들도 죽이는 쾌락은 좋아해.
다만 죽이고 나서 죄책감에 사로잡힐 뿐이지.
그래서 착한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는 '죽음에 다다를 때 더 행복해지는' 제품을 만들었어.
착한 사람들은 그 녀석들을 천천히 죽이지. 그 녀석들은 천천히 즐거워하며 죽어.
착한 사람들은 죄책감을 가지지 않게 됐어. 그 녀석들은 때리고 죽여야지만 행복해하거든.
그래서 착한 사람들은 뿌듯해지게 되었어.
윈윈이랄까.
어때. 이 정도면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려나?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들만의 유토피아를 완성시킨 거야.
 
 
 
 
 
나는 과거에 보내는 메시지를 끝마쳤다.
 
"사장님. 아주 명연설이십니다."
 
나는 허리에 찬 칼을 빼서는 아부 하는 놈을 베었다.
 
"나는 아부하는 놈들이 싫어."
 
놈은 아주 고통스러워하며 죽었다. 나를 경호하는 임무를 맡았던 제품인데, 어차피 또 생산하면 그만이다.
나는 놈들을 생산하는 회사의 사장이니까. 다른 제품들이 나를 보며 벌벌 떤다.
난 그들이 귀엽기도 하고 괜스레 자신이 흐뭇해져서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이 메시지가 과거로 갈지는 모르겠구만. 그래도 시간을 뛰어넘어 정보전달을 한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어."
 
다른 제품이 와서는 내 말을 받아주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역사적인 방송은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도 모두 보게 되지요. 
사장님의 냉소적이고 자신감에 찬 모습에 사람들이 열광할 겁니다."
 
'짜식... 그래. 넌 살려준다. 이 방송은 동시대 사람들이 모두 보게 될 거다. 그래서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지.
근데 내 이야기가 진짜 과거로 간다면 어떡하지? 설마... 진짜 과거로 가진 않겠지?
과거로 전송됐다면 옛날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 같아 괜히 미안해지는군.
사실 우리가 생산해내는 제품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해. 단지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표현하도록 만들었지.
하지만 사람들은 진짜 고통을 원해서, 제품이 진짜 고통을 느낀다고 홍보한 것 뿐이야.
그렇게해서, 고통스런 흉내는 진짜 고통처럼 보였고, 사람들은 진짜 기쁨을 느끼게 됐단 거지.
사실 진짜 고통을 느끼게 만들 수도 있었어. 하지만 난 굿 가이니까 그러지 않았지.'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행복하고 뿌듯했다. 그래서 자축하는 의미로 옆에 놈을 칼로 푹 쑤셨다.
 
"아... 넌 살려 줄랬는데 마음이 바뀌었어. 나는 굿 가이니까."
 
놈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아주 억울한 표정으로, 아주 고통스런 표정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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