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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이스 120회-최태민이 박근혜에 접근한 기존의 정설 부정하다
게시물ID : sisa_7842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마2
추천 : 14
조회수 : 147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11/12 03:08:38
최태민이 박근혜에 접근한 기존의 정설은 최태민이 육영수가 꿈에 나타났다는 핑계로 접근했다는 것인데 파파이스 120회에서는 이것을 부정합니다. 그 정설을 깨는데 이상호기자가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74년 8월까지 사이비 교주였던 최태민이 갑자기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딸에게 편지를 보내고 75년 3월에 박근혜를 만나고 한 달 만인 4월 갑자기 구국 선교단 총재가 되고 역시 한 달 만인 5월 5,000명 신도가 모인 임진각서 구국 기도회를 엽니다. 구국 십자군 헌장도 5월에 만들어졌는데 내용을 보면 전국적인 조직으로 군대 조직과 완전히 똑같이 만들었답니다. 그리고 6월에 진짜로 창군을 합니다. 만난 지 3개월 만에 전국조직이 창건합니다. 중요한 건 기독교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멸공'하자고 모인다는 것입니다. 선언문이나 선서문을 보면 취지가 모두 '멸공 구국'입니다.
이상호 기자가 취재한 최태민의 유일한 호적상의 아들 최제석의 증언에 의하면 최태민은 공화당 중앙위원 뿐만 아니라 서대문 지역구의 지역위원장까지 맡았답니다. 지역위원장이라면 국회의원 후보까지 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최태민이 박근혜에게 편지를 보낸 당시는 최태민만 편지를 보낸 게 아니라 애도의 마음으로 각계 사회원로들과 명사들이 단체로 편지를 보내는 와중에 최태민도 보낸 것이랍니다. 육영수가 살아생전에도 박정희 가족과 몇 번 같이 식사를 했고 최태민은 최제석에게 자주 자랑스럽게 그 이야기를 했다네요.
친일의 관점에서 박정희와 최태민은 한 사람은 순사 한 사람은 일제의 군인으로서 동지적 관계였을 수 있답니다. 그리고 유신헌법 당시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에서 진보적 기독교계가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최태민의 이용가치가 아주 높았다는 것입니다.
즉 박정희가 자기 정권유지를 위해서 뿌린 씨앗이 지금의 파국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자기신화가 완전히 해체되는 사태를 맞이한 즉 인과응보의 역사적 사례랍니다.

최태민
1942년부터 일제시대 순사. 황해도 순사 출신.
대한비누 공업협회, 대한행정신문사 근무.
1954년-최태운 승려
1955년-전국불교청년회 부회장
1963년 5월-공화당 중앙위원
1969년-천주교,불교, 기독교 결합 영세교 출범
1971년 10월-영등포구 방화동 592-7번지 호국사에서 교리
1974년 5월 동대문구 제기2동 122-16 박모씨 전세 입주
1974년 8월 서울 북아현동 154-5 손모씨 빌딩 2층 입주. 자칭 태자마마.

[김어준의 파파이스#120] 최순실 특집+3 최태민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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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어준의 파파이스#120] 최순실 특집+3 최태민 미스터리
https://www.youtube.com/watch?v=JpFgziySCRU (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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