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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일기 01
게시물ID : freeboard_13950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ary
추천 : 4
조회수 : 20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1/12 07: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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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졸업을 포기했다. 아니 정확히 졸업을 못 하게 되었다. 올 해는분명히 내게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 했다. 대학교 4학년을 수료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내 나이는 28. 이제 곧 29가 된다. 아직도 내 손에는 졸업장이 없다. 아무도 인정 안 해주는 수료증 하나.

 졸업 작품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교수님은 항상 내기만 하라고 하신다. 하지만 그 작품이 내게는 너무나도 높은 벽인 것 같다. 평생을 만화 전공으로 살아 왔는데 내게는 만화가 너무나도 어렵다. 아니 이제는 무섭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작품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 부족한 내 그림 실력이 보여지는 것이 두렵고, 아무리 스토리를 짜 봐도 스토리가 마음에 안들고, 마음에 들더라도 표현을 못 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싫다. 그런 식으로 벌써 3년이 되었다.

 내 년 가을 학기에는 졸업장을 반드시 따야만 한다. 30이 되어서 대학원을 가기라도 해야 할 테니까부모님은 대학원을 가라고 하신다. 나도 갈 수만 있다면 가고 싶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생각이 든다

 ‘내 년에는 졸업할 수 있을까?’

 

2

 우리 집은 그다지 잘 살지 못 했다. 없는 살림에 서울에 와서 반 지하 15평에서 다섯 가족이 낑겨서 살아왔다. 나는 그 반지하 집이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 까지 친구를 집에 데려와 본 적이 없다. 내 집 위치를 말 해 준 적도 없다. 아직도 그 반지하의 곰팡이 냄새가 내 코에 느껴진다. 겨울만 되면 미약하게 되살아나는 비염 증상과 함께 그 곰팡이가 아직도 내 몸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없는 살림에 그 때는 왜 그랬는지문득 만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만화과 학교를 가게 되었다. 일찍 시작이라도 했다면 좀 더 제대로 준비해서 학비가 저렴한 애니고라도 갔을 텐데나는 그렇지 못 했다. 남은 시간은 3개월 이었고 최대한 준비하여 근처에 그나마 가기 쉬운 서울 미술고를 합격 했다. 나는 몰랐다. 학비가 한 분기마다 90만원이 될 줄은. 그리고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내 동생들은 초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반지하의 원인은 나 인 것 같다.

 미술은 돈이 많이 든다. 아니 사실 따지면 돈은 많이 들지 않는다. 만화과여서 그런 것일까? 학원비만 내는 정도로 봐도 된다. 학원비는 한달에 많으면 60만원 이었다. 사실 나 때만 하더라도 인강이 활성화 되기 시작하는 시점이어서 아직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 친구들의 학원비는 더욱 높았다. 하지만 웬걸나는 잊어선 안된다. 내 고등학교 학비가 만만찮았음을.

 그렇게 학원을 다녀 수시로 대학에 붙었다. 그 때는 매우 좋았다. 1순위는 아니었지만 2순위었던 학교에 붙었다. 붙은 것 보다도 겨울방학 특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너무도 기뻤다. 특강비만 삼백만원에 가까웠으니까그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 당장의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리 낙관적이지는 못 했다. 대학교에서 만화과란 해 주는 것 없이 제일 비싼 학비를 요구하는 호구 학과였으니까. 시설은 제일 지원 안 해 주면서 학비 등급은 최고위내 인생 제일 비싼 사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힘들게 대학 4년을 다녔는데 아직 졸업장을 받지 못 했다. 그리고 나는 대학원을 갈 생각이나 하고 있다. 아직도 내 통장에는 매 달 학자금 대출 이자가 나가고 있다.

 

3

 올 해의 졸업은 이미 물 건너 갔다. 작품이야 맘만 먹으면 일주일에라도 만들 수 있다. 대충 만들어 내면 되니까근데 자신이 없다. 그 수치심을 견딜 자신이. 내가 이제 것 해 온 결과물이 고작 이정도란 말인가? 하는 수치심. 그리고 사실 이미 올 해의 졸업 전시회는 끝난 모양이다. 아직은 졸업 작품을 받으시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 같다. 내 마음이 너무나도 지쳐있다. 지치고 지쳐서 이제는 더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싶다.

 졸업은 또 내년으로 미루게 되었다. 그래 또 그렇게 내 계획을 미루게 되었다. 오늘 나는 무엇을 하기로 했었나 생각 해 본다. 그래 그 것들도 다 내일로 미뤄지고 말았다. 그나마 하나 하는 것은 바로 이 일기를 적는 일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너무나도 부정적인 나를 남겨 둔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채지는 않기를 바라면서.

 이 새벽에 더 이상의 부정적인 기록은 없는 것 같다. 이미 내 인생 자체가 부정당한 기분이고 그 모든 것을 적어 놓았다.  오늘은 대한민국과 내 앞으로의 대한민국에서의 삶에서 가장 중요할 지도 모르는 날이다. 너무나도 중요하고 진지해야 하는 날이다. 그런데 나는 비참하게 화가 난다. 그런 날에도 내가 바라는 것이 너무나도 추악하기에.


 ‘오늘 나 로또 당첨 될까?’

출처 나의 부정적인 생각들을 여기에 묻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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