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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 하다 번호 따인 이야기 1
게시물ID : humorstory_4473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유글레나(가입:2003-08-15 방문:1533)
추천 : 3
조회수 : 109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1/19 23: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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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pg


(전혀 보편적이지 않은 마스크)

1. 
봉사활동 하다가 번호 따였다.

번호를 따간 분은 90년생 여자였다. (본인 89)
모 봉사활동에서 대화를 나눌 짬이 생겨 이야기 하다 종료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고 

"다음에 봉사활동이나 같이해요" 하면서 폰을 건네길래 
속으론 '헐...' 했지만 겉으론 쿨한 척
"그러죠ㅎㅎ" 


2.
단언컨대 보편적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번호 따일 일이 전혀 없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진 않을까?'
'거절 당하면 어쩌지'
'망신 당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들.

게다가 번호 따는 주체가 여성이라면 안전에 대한 위협도 느낄 수 있다.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지?' 같은.
아니, 사실 그것 때문에라도 여자가 번호 딸 일은 별로 없지.


번호를 묻고 말고도  전에 살갑고 호의적으로 대하는 일도 많지 않다.
혼자 겉도는 것 같아서 웃으며 챙겨줬는데
자기 혼자 망상 결혼식까지 올리고 노후까지 걱정하다
부담을 주거나, 어장관리다 뭐다 욕하는 경우도 있고 관계가 어색해질 때도 있다.

남자가 당하면 부담이지만 여자가 당하면 위협이 될 수도 있다.


3.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인터넷 쇼핑몰 하시는데 취미로 봉사활동 하신다는 분.
본인이 비슷한 처지에 있던 적이 있어서 돕고 싶은 마음에 정기로 하시는 분.
졸업을 위해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는 분들. 등등.

그리고 가끔은
'저 따위로 할 거면 왜 신청했고, 왜 왔지?'
'너무한거 아니야?' 싶은 분들도 있다.

나에게 번호를 물어본 분이 그러했다.
대화를 나눴는데도 딱히 공통분모 없고 화제가 마땅치 않아도
계속해서 웃고 대화를 이어갈 의지를 보여 '그래도 착한 사람인가보다' 싶었다.

그리고 다음 날 커피를 마시자 하길래 알았다. 고 했다.

이성적 매력이나 인간적 호감을 느끼진 않았다.
이성이 나에게 번호를 물어보고 만날 의사를 보인다는 게 신기했다.


4. 
처음에는 교대에서 만나자 하길래 그러자 했다.
그러다 당일 20분 정도를 남기고 내가 약속 장소를 강남으로 바꿨다.
장소는 강남, 카페는 강남역 출구 바로 옆, 장소는 문과 가깝고 열린 공간으로.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약속장소를 정하거나, 직전에 장소를 조금 바꿔서 가보니 이미 포섭된 사람들이 있었다." 
"물리적 위협에 억류되어 갔더니 옥장판을 강매 시켰느니~, 굿을 보고 복채를 냈느니" 하는 이야기는 흔하다.
사실 왠 만한 물리력은 다 뿌리치고 도망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인터넷 괴담을 접하다 보니 조금은 무서워서.



2.png


(2+2*2= ?)

■ 내게 호감을 표했는가? → O
1) 먼저 말을 검
2) 의식해서 웃으면서 호응하는 게 보임
3) 공통분모를 찾고 대화를 이어가려는 의지가 보임
4) 번호를 먼저 물어 봄
5) 약속을 먼저 잡음

■ 내가 호감을 살 인물인가? → O
1) 깔끔하게 면도하고 깔끔하게 입고 감
2) 봉사활동에 성실하게 참여하고 원만하게 지냄




3.jpg

(....)

■ 내가 이성적 호감을 살 인물인가?  →  (...)
글쎄다

■ 내가 번호를 따일 정도의 사람인가?  →  No.

나는 나에게 대체로 호의적이고 나를 옹호하지만 주제파악 할 줄은 안다.


■ 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인가? →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한 번 스스로 용기를 내거나 변화를 주고 싶은 시도가 아닐까?
이렇게 어색한 게 일반적이고 능숙하게 번호 물어보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나?
그래도 카톡이나 전화 같은 것도 없이 바로 다음 날 약속을 잡는 게 일반적인가?
그래도 이야기 보니까 이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별 생각을 다했다.

일단 겪어보자는 생각에 만났고 이야기 했다.


5.
의심이 미안 할 정도로 그냥 평범한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는 중국어를 전공했는데 요즘은 학원 강사로 일을 하고 있다.
성인 중국어는 아니고 중고등학생 혹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초급을 가르친다.
뭐 이런저런 이야기.

역시나 공통분모는 희박했고 더 이상 나눌 이야기가 마땅찮았다.
내가 아는 중국어야 던파에서 중국인 작업장 유저 죽이면서 내뱉은 육두문자거나
wo xiang mai ni de dongxi(니꺼 아이템 사고싶어!) 같은 문장일 뿐...

여자는 책을 좋아하지도 자전거를 타지도 게임을 하지도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커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다니거나 블로그를 하거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거나
웹툰을 보거나 운동을 좋아하거나 옷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분위기가 조금 서먹해질 쯤 대강 이런 분위기를 예상하고 가져온 타로카드를 꺼내려 했다.
그러자 여자가 먼저 자기가 중국어를 하고, 동양학 쪽에 관심이 있다 보니 사주풀이 같은 걸 할 줄 안다며 종이를 꺼냈다.
타로카드가 서양의 점이라면 사주는 동양의 점이기 때문에 나름 흥미가 생겼다.

한자이름과 생년월일과 이런저런 것들을 적다가 이런저런 풀이를 해줬다.
금金이 불에火 둘러싸인 상황이다.
금은 단단해서 쉽게 녹지 않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금도 녹고 만다.
당장은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4.jpg



'이 풀이는 타로카드 마이너아르카나 sword 8번 카드와 비슷하구나' 생각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너의 주위에 화(火)가 있는 것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근데 평소에 너는 원만하고 둥글둥글한 성격이기 때문에 원한을 사진 않았을 것 간다.

그렇다면 화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혹시 전생이나 업보에 대해서 들어봤느냐.


6. 
혹시나는 역시나.

나는 그런 걸 믿지 않는다 말했고 여자는 믿어야 한다며 설득했다.
프로이트가 나오고 주지학이 나오고 명리학이 나왔고 화학과 물리학이 나왔다.
제임스 랜디와 원론수준의 심리학으로 후려치고 연역법의 명제와 귀납법의 추론을 내리갈겼다.

* 제임스 랜디 "국가 혹은 개인이 초자연현상을 믿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행위이자 사이비입니다.", 전직마술사로 자칭 초능력자나 영능력자들을 때려잡고 다닌 분. "누구라도 좋다. 그 어떤 초자연현상이라도 내 앞에서 입증한다면 100만 달러를 상금으로 주겠다."며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100만 달러를 받아 간 자는 그 누구도 없었다고 한다.

보편적 상식이나 몇 가지 명제를 세우고 상대의 동의를 얻는다
그 다음 명제들로 상대를 옭아 핀치에 몰아세우는 화법은 그럴 싸 했지만...
레퍼런스는 커녕 근본 희박한 증거나 논리비약 심각한 주장에 끄덕일 얼치기가 아니었다. 

초짜였는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제 서야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이라 이야기 한 뒤 그렇게 들락달락 했던 건 요의가 아니라 대답이 궁했기 때문.
(전화로 조언을 구하는 듯 했다)
계속해서 중국어나 동양철학 이야기를 꺼낸 건 부자연스러움을 숨기기 위해.
번호를 받아간 건 포교활동(?)을 하기 위해. 봉사활동 역시 포교대상을 찾기 위해.

화장실에 간 사이 짐을 챙기고 자리를 떴다.
커피 값은 교육비라 치고.


7.
평소 이쪽 계통 사람들은 아예 상종 자체를 하지 않는다.
차라리 스타크레프트1에 나오는 중립생물(Kakaru)과 대화하는 편을 택하겠다.
말을 걸어도 시선을 두지 않고 듣지 않으며 길을 막으면 치고 간다.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얘네도 사람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얘네는 이런 걸 왜 하지?"
동기(motivation)가 뭘까? 진짜 믿나(faith)이 되나(incentive)
그 이야기를 듣고 끝까지 따라갔으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얘네 조직도는 어떻게 되어있고 어떤 활동을하고 있을까..

그것도 잠시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
내 할 일과 관심사 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세상이었다.
나는 불쾌했지만 동시에 나름 신기했던 경험을 금방 잊었다.



8.
최근에 보장구(전동휠체어) 청소를 돕는 봉사활동을 했다.
유난히 나한테 호의적인 여성분이 계셨는데  쉬는 시간에 말을 걸어왔다.
"다음에 봉사활동이나 같이해요." 폰을 건네면서.


(2편 계속)
출처 소설 아님 실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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