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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세카이계란 무엇인가》에반게리온 이후 오타쿠 문화의 역사
게시물ID : animation_4034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험안끝났다
추천 : 4
조회수 : 74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11/20 11: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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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카이계란 무엇인가》, 마에지마 사토시 지음, 김현아·주재명 옮김, 워크라이프, 2016 

재미있는 책이에요. 읽고 몇 가지 인상적인 부분을 꺼내봤습니다.
 

 

22 쪽

 

  1990년대 후반에 역사적인 메가히트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오타쿠 문화에 초래한 거대한 변화로부터 탄생한 것이 '세카이계'이고 '그 변화란 대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오타쿠들 스스로 답을 찾아다녔던 궤적이 '세카이계'다. 사회현상이라고까지 불린 이 메가히트작은 오타쿠 문화의 비즈니스 모델부터 작품의 내용, 오타쿠들의 취미와 기호, 작품 수용 태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에 결정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세카이계'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것은 사실 '이러한 변화 그 자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33 쪽

 

  후에 『제로연대의 상상력』을 집필하며 세카이계를 비판한 우노 쓰네히로는 '선량한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그 이전부터 운영하던 웹사이트 '혹성개발위원회'에서 세카이계라는 용어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 다른 이름은 '포스트 에반게리온 증후군'. '사회'나 '국가' 따위는 무시하고 '자신의 기분'이나 '자의식'이 미치는 범위 '= 세계'라고 인식하는 것 같은 세계관을 가진 일련의 오타쿠계 작품이 이렇게 불리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별의 목소리>,《최종병기 그녀》/

 

 

36 쪽

 

  <에반게리온>의 TV 방영이 시작된 1995년은 버블 붕괴로 시작된 경제 불황(헤이세이 불황)의 장기화를 사람들이 실감하면서 '경제 대국 일본'이라는 신화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던 시대다. 그 와중에 1월에는 한신 아와지 대지진, 3월에는 옴 진리교에 의한 지하철 사린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두 사건이 발생하면서 앞날에 막막한 느낌을 드리운다. 그러한 불안한 기대에 '트라우마', '어덜트 칠드런' 등의 말이 유행하는 속류 심리학의 붐도 일어나고, '내면', '진정한 자아' 등 사람들의 관심이 내부로 쏠리고 있었다. <에반게리온>은 그런 시대를 거울처럼 비춘 작품으로 평가된다.

 

 

77-78 쪽

 

  그렇다면 <에반게리온>이 오타쿠 문화에서 그려지는 전쟁의 이미지에 끼친 영향이란 무엇일까? <에반게리온> 이전 시기 로봇 애니메이션의 표준인 <기동전사 건담>과 비교를 해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는데, ‘화이트베이스의 부재’와 ‘적의 부재’, 이 두 가지가 <에반게리온>이 탄생시킨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다. … 이 작품(에반게리온)은 분명 <기동전사 건담>이나 그 문맥을 이어받은 <전설거신 이데온>, <기동전사 Z건담> 등, 리얼 로봇물로 통칭되는 작품군의 계보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측면에서는 일상에서 전장이라는 비일상의 세계로 배(화이트베이스)를 타고 떠난다는 흐름을 답습하지 않았다. … 결과적으로 이카리 신지는 학원 생활이라는 일상과 사도 요격전이라는 비일상이 동거하는 기묘한 전장에서 살게 된다.

 

  

78-79 쪽

 

  다음은 ‘적의 부재’.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가 사도라는 정체불명의 적이다. <기동전사 건담>에서 적으로 설정된 지온 공국의 전쟁 목적은 ‘연방정부로부터의 독립’이다. 이는 시청자는 물론 등장 캐릭터들에게도 명확하게 알려진다. … 그러나 <에반게리온>의 사도는 그러한 이해를 일절 거부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습격해오기 때문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이고, 게다가 그 형상도 푸른 8면체, 하얀 무늬가 있는 검은 구체, 빛 같은 일절의 감정이입을 거부하는, 마치 ‘적’이라는 개념이 그대로 구현화한 것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 신지는 전장에 있어도 적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품을 수 없다. 학교도 있고 편의점도 있는 공간에 어째서인지 적이 덮쳐오고, 왜 싸워야만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곳이다. 결과적으로 사고가 헛돌고 추상화하다 자신의 내면의 문제에 도달해버린다. 이카리 신지가 관념적인 자의식의 물음에 사로잡힌 것은, 제3 신도쿄시와 사도가 초래한 필연일 것이다.

 

 

86 쪽

 

  <별의 목소리>를 ‘이 부분은 <이데온>의 패러디’, ‘이 대사는 <오키나와 결전>의 인용’ 등을 지적하면서 감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여고생이 갑자기 ‘교복을 입은 채 우주로 나가 로봇을 타고 싸운다’는 이런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감상할 수 있는 건, 역시 우리가 ‘전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로봇 애니메이션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청자에게 불쑥 <별의 목소리>를 들이밀면, ‘왜 고교생이 전쟁에 나가야만 해?’, ‘왜 인간형 병기로 싸워야만 하지?’ 등의 의문에 휩싸여 제대로 감상할 수 없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오타쿠들이 공유하는 공통 전제, 약속된 패턴들 안에서 미카코와 노보루의 이야기를 펼치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요소를 취합해서 만들어낸 것이 <별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93-94 쪽

 

  (《최종병기 그녀》, <별의 목소리>,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 이 세 작품이 세카이계의 대표작이라는 논의는 비교적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이 작품들이 무엇인가를 배제하고 있다는 인식도 공유되고 있는 것 같다. … 이러한 작품에서 배제된 것은 ‘세계 설정’이다. 《최종병기 그녀》의 세계에서 치세는 왜 싸우는지, 그 병기는 어떤 원리로 가동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별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이고 《이리야》 또한 아키야마 자신이 말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삭제’되어 있다. 그리고 독자는 그러한 설정 등을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청소년의 자의식 또는 소년과 소녀의 연애, 슬픈 사랑에 완전히 감정을 이입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도 ‘인류보완계획’, ‘범용인형결전병기’, ‘사도’라는 수수께끼에 쌓인 단어를 자주 등장시키며 실컷 시청자의 흥미를 끌어놓고는, 종반부의 노선 변경에 의해 그에 대한 해설을 전부 내팽개치고 이카리 신지라는 등장인물 1인의 자의식만을 클로즈업했다. 그리고 후발주자인 세 작품에 이르면 ‘세계 설정’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116-117 쪽

 

  《하루히》는 극히 세카이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쿈의 과잉이라 느껴질 정도로 수다스러운 1인칭으로 전개되고, 또한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가고 싶다’라는 사춘기의 보편적인 고민을 주제로 한 이야기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하루히 자신이 작중에서 ‘모에야, 모에!”라고 자기언급적으로 말하듯이, 에반게리온 이후 또 하나의(그리고 주요한) 흐름인 ‘모에’라는 형식에도 충실하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나가토 유키라는 캐릭터는 명백하게 <에반게리온> 아야나미 레이의 계보를 계승한 존재다. … 또한 《최종병기 그녀》 등의 포스트 에반게리온 작품군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이야기 소비의 배제’를 《하루히》에서도 지적할 수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우주인, 미래인, 초능력자는 각각 완전히 다른 체계로 하루히가 가진 능력을 설명하는데, 그 설명의 정합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그 각각의 설명조차 하루히라는 소녀의 생각만으로 간단히 개변되어버리는 일이 암시된다. 때문에 《하루히》에는 확정된 세계관, 세계 설정이라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132-134 쪽

 

  우선 루프물이란 ‘시간SF’의 일종으로, 등장인물이 어떠한 원인에 의해 동일한 1주일, 또는 어느 특정 시점부터 자신이 죽을 때까지 등의 시간을 반복하는 작품을 말한다. … 그리고 이런 유의 작품은 세카이계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다. 루프물에서는 주인공이 휘말린 어떤 사정이 해결되지 않는 한 기본적으로 세계는 동일 시간을 반복한다. 게다가 이런 작품에서 루프를 탈출하는 열쇠는 종종 연애 등, 개인적인 인간관계에 숨겨져 있다. 이러한 구조가 ‘너와 나의 관계성과 세계 운명의 직결’이라는 세카이계의 정의와 합치한다. 게다가 이런 유의 작품에서 루프 중이라는 기억을 유지하는 건 주인공 하나뿐이라는 설정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루프를 겪는 등장인물은 인식을 공유할 다른 사람이 없기에 내성적이 된다(=혼잣말이 많아진다)는 점도 덧붙여 둔다. 

 

 

140, 143 쪽

 

  ‘세카이계’라고 한 단어로 말하지만, 이 말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작품을 지칭한다. … 그런 세카이계의 핵심을 ‘자기언급성’에 두고 살펴보려 한다. …1990년대 이후의 오타쿠 문화에서 자주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자기언급적인 표현이다. … 이러한 작품들은 거의 과잉으로 보일 정도로, 자신들이 겪는 상황이나 만나게 되는 이상한 등장인물이 소설적으로는 흔해빠진 것(로봇 애니메이션, 침략 SF, 변신 히어로물, 본격 미스터리, 그리고 세카이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작중에서 계속 지적한다. 그리고 그 이상한 것들을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비웃거나 하지 않고, 극히 심각한 자의식의 고민이라는 주제로 풀어간다.


   

172-173 쪽

 

  한 번 더 《제로연대의 상상력》으로 돌아가자. 이 책에서 우노가 세카이계에 대해 한 비판은 두 종류다. 하나는 앞에서 확인한 것처럼 세카이계가 ‘낡은 상상력’이라는 점, 또 하나는 그것이 ‘강간 판타지’라는 점이다. 이것은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반성에 대한 욕망을 비판한 것이고, 우노는 세카이계에 숨어 있는 이 구조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 결국 ‘사실은 여자아이에게까지 싸움을 시키고 싶지는 않지만’이라거나 ‘사실은 여자아이에게 상처 입히고 싶지 않지만’이라는 반성을 사이에 끼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여자아이가)싸워준다.’, ‘섹스한다’로, 죄악감이나 책임감이 경감하고, 욕망을 강화하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 … 예를 들어 <기동전사 건담>같은 로봇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청자는, 단적으로 말하면 로봇끼리의 전쟁을 즐기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본다. 그런데 그것을 분명히 말하지 않고, 오히려 주인공들은 반전이나 평화주의를 외치며 싸운다. 여기에서도 ‘전쟁은 악이다’라는 반성의 제스처를 끼워 넣음으로 오히려 안심하고 오락으로서 전쟁을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228 쪽

 

  많은 팬이 작품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콘텐츠는 끝내는 것이 허락되지 않게 된다. 팬의 사랑은 당연하다는 듯이 속편, 신작을 바라는 목소리가 된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하게 끝났음이 분명한 이야기에 새로운 곤란을 불러들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작중의 등장인물에게 있어서 팬의 작품에 대한 사랑은, 평화롭게 마무리된 세계를 부수고 새로운 재앙(게다가 무한하게) 불러들이는 저주로서 기능하고 만다.


 

 

 

출처 http://blog.naver.com/mlnookang/220865785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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