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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지하철 계단을 다 올라온 나는 다리가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게시물ID : sisa_7934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간유구
추천 : 19
조회수 : 69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1/21 03:12:43
구질구질.
길게 글을 썼다가 이 오밤중에 뭔 짓인가 싶어 다 지웠다.

그냥...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는 거.
신촌역이었지 싶다. 아니구나, 이대역이다.
지하철 계단을 다 올라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하늘은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그때의 꾸깃꾸깃한 기분, 아랫배 깊은 곳에서 으윽.... 으윽....
음울하게 신음하던 검은 소용돌이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물론 잊고 싶지도 않다.

" 돈 몇 푼 받은 걸로 사람이 말야... 자살이나 하고 말야... 그릇이 그거 밖에 안 돼. "

당시 내가 근무했던 회사의 사장이 내 면전에서 뱉은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 태어나 처음으로 이른바 [윗사람]을 들이받았다.

" 맨날 하도 돈 처먹고 다녀서 그거에 익숙한 새끼들이야 그렇겠죠. "

고분고분하던, 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야근도 불사하던 늠의,
그래서 그 회사 비리 두어개 쯤은 알고 있던 늠의
' 뭐라고 이 새꺄? ' 라는 눈빛에 저어기 당황하던 그 사장의 얼굴도 여전히 기억에 선명하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세상에서 좀 살아보자.]

단지 그 바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내게 있어 상식의 소멸을 뜻했다.
그래,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세상에서 제발 좀 살자.

앞에서는 환한 웃음으로 악수를 나누고 사진 찍으며
뒤로는 그를 욕하는 소리에 동조하는 자를 신뢰할 수 있나?
내 상식으론 그런 사람 신뢰할 수 없다.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는 친구가 되고
신뢰할 수 없는 동료는 단순 계약관계로 남는다.
단지 그것이다.

한번 무너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려면 그 열 배 백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하물며, 십 년도 넘게 물건을 고를 때면 그게 어느 회사 제품인지 기어이 귀퉁이에 감춰둔 이름을 찾아내는,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말로 " 꼼꼼하기 그지 없는 " 마음새를 가진 이를 상대라면 오죽할까.
누가 그때 탄핵에 찬성했는지, 누가 그때 후단협이었는지, 누가 민집모였는지, 누가 무슨 개소리 지껄였는지
잊었을 거 같은가?
잊을 거 같은가?

그저 꾹 참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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