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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에 대한 생각
게시물ID : sisa_7936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내꼬추에점화
추천 : 5
조회수 : 50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11/21 10: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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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서핑하면서 돌아다니다보면 김재규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더군요. 요즘엔 긍정적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싫어하는 사람들은 싫어하고 있고요

싫어하는 이유도 '박정희정권에 부역했기 때문이다' 단지 그뿐이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김재규는 독재정권하에 높은자리를 차지한 고위공직자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적을 보면 단순히 독재정권의 부역자라고 보기에는

의문스러운 행적들이 많습니다. 일단 유신철폐를 박정희에게 수차례 직언하기도 했고, 그와 동시에 중앙정보부 고문실을 폐지하면서 공포정치를 추구

하던 박정희와는 사상적으로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김재규를 깎아내리는 프레임으로 대표적인것이 차지철에게 밀려 질투심에 우발적으로 10.26사태가 벌어졌다고 하는 설이 있죠. 그런데 왜 차지철에게 밀려난건지는 사람들이 간과하는것 같더군요.

김재규는 자신의 민주적이상과 자신을 중용하던 박정희와의 사이에서 지난한 세월을 보냈을겁니다.

거기다 김재규는 이종찬 장군계열로서 '군인은 정치에 개입하지 말아야한다'를 신조로 삼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니 박정희 입장에서는 자꾸 삐딱선 타는 인물보다는 '각하가 곧 국가'라는 말이나 싸고 다니는 차지철을 입안의 혀로여겼겠죠.

직언하는 충신과 아부하는 간신 정도로 정리가 되는 거죠.

게대가 요즘에 주목받는 부분인 최태민에 대한 것도 직언했으나 박정희는 이를 묵살하고 오히려 ㄹ혜를 제물로 삼아 최태민을 통해 기독교계를 포섭하려 했다는 정황도 있죠.

일단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은 결코 우발적인것이 아니었습니다. 3군단 재직시절에는 박정희 방문시에 내부에서 못열도록 하는 회의실을 만들고 거기에 가둔뒤에 하야를 유도하려는 계획도 있었다고 하죠. 하지만 박정희의 방문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현되지 못했었죠.

10.26 이후에도 그는 거사에 대해서 스스로 떳떳하다는 생각을 했던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중정이 아닌 숙적 투성이었던 육본으로 제발로 들어갔던 것이고요.

김재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중에서는 민주화를 국민의 손으로 이룩해내지 못하게 한 점을 들던데 당시 시국을 보았을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단 군부의 박정희에 대한 충성은 확고했었고 완벽한 독재국가에서 시민들이 혁명을 성공하기 위해선 정규군과 비슷한 무력을 가지거나 하나도 빠짐없이 죽을생각을 하고 국민 전부가 참여해야하며 혁명과정에서 심각한 출혈이 일어난다고 보면 되는데 당시 우리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역사가 우리의 거울이기도 한점을 생각해보면 당시의 부마사태는 비폭력주의로 무장하고 천안문에서 탱크에 학살당한 중국의 청년들을 생각해보면 될겁니다. 그리고 중국은 여전히 일당독재국가죠.

그렇기에 저는 '김재규는 민주화를 국민의 손으로 이룩해내지 못하게 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머릿속에 괴물이 들어앉아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같은 프레임은 당시 민주화를 자신들의 손으로 이뤄내지 못한 민주운동권의 질시어린 시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자란다.' 유명한 말입니다. 헌데 이런말은 이미 흘러간 피로 얼룩진 역사를 기리며 평할때나 쓰는 말이어야지 그러한 역사가 없었음을 아쉬워하며 누군가를 탓하기 위해 쓰는 말이어선 안됩니다.

김재규는 과보다는 공이 많은 인물입니다.
다른 모든것을 차치한다고 해도 부산 마산 지역에서 수십 수백만이 학살당할수도 있었던것을 미연에 방지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그는 욕먹어서는 안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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