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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가보고 싶어. 촛불 사이에 서고 싶어
게시물ID : freeboard_14332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권종상
추천 : 3
조회수 : 13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2/08 07:41:09
손이 곱다 싶을 정도의 추위, 맑은 하늘. 숨쉴 때마다 느껴지는 알싸한 차가운 공기, 그리고 얼어 있는 낙엽들을 밟을 때마다, 혹은 그런 잔디 위를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서걱거림. 시애틀의 겨울은 보통 흐리고 비가 오는데, 이렇게 맑은 겨울날은 제게 한국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만일 다른 게 있다면 그건 그림자의 길이일 겁니다. 북위 47도 지점에 위치한 시애틀에서 동지가 가까워진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한낮의 제 그림자가 제 키보다도 긴 것만이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 말고는 너무나 한국의 겨울을 닮은 그런 날입니다. 

이런 날에 마시는 커피가 더욱 고맙게 느껴지는 날입니다. 따뜻한 커피가 꽁꽁 언 손발을 녹여주는 느낌, 그 약간의 저리는듯한 느낌이 동반되지만 금방 따스함으로 풀려오는. 이런 날에 느끼는 그리움 같은 감정, 아마 쉽게 설명하긴 어려울겁니다. 이 기분을 전할 수 있을까요?

이런 날에도 사람들은 아마 거리에 설 겁니다. 참 이상하게도, 한국의 날씨와 이곳의 날씨가 비슷하게 겹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한국이 갑자기 추워졌다면 이곳도 곧 추워지고, 큰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이곳도 그럴 때가 많아졌습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제트기류는 서풍이며, 한국에서 바다 하나를 건너 있긴 하지만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큰 도시가 시애틀이란 이야긴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태평양은 황사의 필터가 되어 주긴 합니다. 이곳의 하늘이 더 맑게 느껴진다고, 가끔 한국에서 찾아오는 지인들이 그리 말하는 건 아마 그런 이유일 겁니다.

요즘은 참 한국에 가보고 싶습니다. 물론 한국에 못 가본 지 25년. 1990년 이곳에 와서 이듬해에 마지막으로 가 보곤 지금까지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광장에 섰던 경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과 함께 길에 섰던 87년의 경험은 제 피부에 그대로 각인돼 있는 느낌입니다. 그때처럼 최루탄이 난무하고 돌과 화염병으로 맞서야 하는 상황이 성숙된 시민의식으로 사라져 버린 그 광장, 촛불이 어둠을 밝히고 있을 그 광장에 함께 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순실 국정조사를 들여다봤습니다. 88년의 5공청문회가 그대로 겹쳐졌습니다. 그걸 바라봤던 기억은 자연적으로 뇌리 안에서 복원됐습니다. 그때 느꼈던 시원함, 막연한 불안감, 이런 것들이 다 되새겨지는 감정으로 그걸 바라봤습니다. 

그래도, 거대한 광장의 촛불은 그 불안감을 지워주는 거대한 증표가 됩니다. 아마 내가 그 광장에 다시 서보고자 하는 것은 내가 촛불의 일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고, 그 촛불이 나를 지켜줄거란 믿음, 더 나아가 나의 믿음을 지켜줄 거란 믿음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많이 그립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아마 내일 즈음이면 여의도를 둘러싼 촛불을 바라볼 수 있겠지요. 저는 거기에 기도 하나를 보태고, 이곳에서 촛불 하나를 보태고 있을 것입니다. 

다시 겨울이 지배하기 시작한 시애틀의 거리로 나갈 시간입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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