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일 나가기 전에 써보는 군생활의 추억
게시물ID : military_651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늘강산바다
추천 : 1
조회수 : 90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12/23 05:19:34
전 95군번으로 육군병장을 만기제대했습니다.
논산훈련소 수료후 후반기교육으로 육군항공학교 항공병과를 졸업하고
경기도에 있는 모항공부대 교육병으로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항공병과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 저는 항공운항병이 될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생각하지도 않았던 교육병이 되고 실망감이 매우 컸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곳은 여러 헬리콥터 부대가 있던 곳으로
이름의 성씨 가나다순으로 자대배치를 하는 구조였고 저는 운이 나쁘게도 마지막선에서 짤려
항공관제실에 가지 못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찌됐든 교육병으로 작전과에 소속된 이후 그야말로 개같은 저의 군생활이 시작됩니다.
제 사수는 작전과의 최고 고참이었는데 교육장교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면 말년이라 그런건지 교육장교의 말을 더럽게도 안 들었습니다.

자대배치받은지 한달도 안된 저는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받지 못한 상태라
여러 교육자료(훈련관련 매트릭스 작성 등등)를 작성하는데 익숙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사수는 인수인계조차 해주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개같은 사수였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때리지도 않았습니다. 애초에 빨리 제대할 생각만 했지 부사수에 대한 관심따위는 없었던 인간이란 생각이 듭니다.
교육자료는 작성해야 하는데 사수는 어디 짱박혀서 나오지는 않고
그러다보니 결국 작전과내 다른 병과병들(운항병, 작전병 등등 모두 저의 고참)이 대신 교육병 일을 하게 되었고
이게 저의 개같은 군생활의 시초가 됩니다.
제 사수가 제대한 후 저는 정말 지독하게도 작전과 고참들로부터 갖은 구타와 욕설을 달고 살았습니다.
작전과에 저의 바로 윗고참이 둘이었는데 저와 11개월 차이나는 동기고참이었습니다.
이게 뭘 의미하냐면 이 고참 두명은 11개월 동안 작전과 막내로 지냈다는 얘기지요.
얼마나 한이 많았겠습니까.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아닙니다. 거기다 제 사수가 했던 짓거리까지 합쳐졌으니
그 분노와 복수심? 같은게 오롯이 저에게 향하게 된 것이겠죠.
평일에는 그렇게 고참들에게 갈굼당하면서 교육자료 만들고 
휴일이면 장교들이 복사해달라고 맡기고간 교본을 몇시간이고
기계처럼 복사기에서 복사를 하면서 휴일을 보냈습니다. 휴일이 휴일이 아닌거죠.
저는 수요일에 있었던 전투체육시간이 가장 좋았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전 사실 이 때는 이런 군문화가 정상인줄 알았습니다. 이제 갓 20살 넘은 청년이 사회생활을 알면 얼마나 알고
군대의 생리를 뭘 알 수 있었겠나요. 그냥 그게 정상적인 사병의 군생활인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저에게 복사를 시키던 장교새키들 정말 개새키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젠 이름도 얼굴도 기억조차 안납니다.

다행인지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인지
두달 뒤에 운항병고참의 후임이 들어옵니다. 제 항공병과 후배이기도 했죠.
고참들간의 짬밥은 서로 차이가 나지 않는 구조여서
이제 줄줄이 작전과에 제 후임이 들어오게 되는 상황이었죠.
건국대 법대를 다니다 군에 왔다는 후임은 생긴 것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선한 사람의 전형적인 스타일이었습니다.
의지가지 없던 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전우라고 생각됐고 실제로 트러블없이 잘 지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잘해준들 제 위 고참들은 이 후임마저도 갈구기 시작했습니다.
다소 행동이 굼뜨고 눈치가 빠르지 않던 후임은 결국 그런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작전과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군기교육대까지 다녀오게 됩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이미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후임이 군기교육대 다녀온다고 달라질 수는 없었습니다.
중대장과 운항장교는 결국 이 후임을 5분 대기조로 보내게 됩니다.
저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갈굼 대상이 2에서 1로 줄어든 작전과 고참들은 뭐가 억울한지 더 악랄하게 저를 갈구기 시작했죠.
저는 참 운이 없는 놈이란 생각이 참 많이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운항병, 작전병 등등 고참들이 제대할 시기가 다가오면서
작전과에는 후임들이 계속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상병 5호봉 정도가 되면서 실권자가 된 후에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저는 제 상식선에서 작전과 후임들에게 공평하게 역할을 배분해 주었고
제가 당한 것처럼 후임들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원이 많아지다보면 뺀질거리는 인물이 꼭 한 명은 있기 마련입니다.
아직 제가 완전한 실권자는 아니었고 제 윗 선임의 후임 하나가 선임의 빽을 믿고 저에게 간간히 반항을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오전 일과 시작 전에 작전과 후임들을 모아놓고 한 소리를 했습니다.
그 뺀질이를 염두해두고 한 말이었죠.
그런데 그게 못마땅했던지 그 뺀질이후임의 사수가 저를 작전과 후문으로 부르더군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제가 반박을 하자 제 머리를 주먹으로 치더군요.
저는 반사적으로 맞주먹을 날렸고 그렇게 몇 분간 투닥거렸습니다.
손목시계가 날라오고 군복은 헝클어지고 둘 다 싸움에 소질은 없는터라 누구 하나 넉다운이 안되는 상태가 지속됐고
그 고참이 먼저 야 그만하자 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잡았던 멱살을 놓고 떨어진 시계를 찾아 손목에 차고 있는데
담배를 건네더니 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담배 피면서 얘기를 하던데 솔직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그 사건은 지나갔고
그 고참은 제대할 때 까지 저와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작전과 일에도 거의 관여하지 않고 그렇게 제대를 했습니다.
계속 짬밥을 먹다보니 저에게도 후임이 들어왔고 재밌게도 제가 다니는 대학교의 후배였습니다.
덕분에 후임의 과동기 여학생과 펜팔도 하게 되었는데 절대 강요에 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절대.
저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정말 평범한 학교의 선후배처럼 저는 후임에게 할 일을 가르쳐줬고
주기적으로 시행하는 2박 3일 일정의 항공사격을 나가기 전 날엔 같이 표적지도 만들면서
훈련 나가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냥 야영하고 온다는 생각을 가져라 라고 얘기해 주었고
항공사격장에 나가면 몇 몇 주어진 일만 하고 나면 교육병은 딱히 할 일이 없는터라
- 교육병은 여러 교육이 실시 되기 이전에 자료를 만드는게 엄청난 스트레스지 교육이 시작되면 실제로 할 일은
정비병들에 비해 많지가 않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하고 사진도 같이 찍고 그렇게 보냈었죠.

그리고 저는 쭈욱 민주적인 방법으로 작전과 후임들을 이끌었고
제대 전날 작전과장이 작전과병 전부를 부대 밖의 외부 식당으로 불러 송별회까지 해주었습니다.
이 전 고참들이 제대할 때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나름 의미있는 송별회였죠.
그렇게 저는 제대를 했습니다.

요즘 군대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그래도 군대는 다시 가고 싶은 곳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가끔 행정착오로 재입대하는 꿈을 꿀 정도니까요.

독감조심하시고 연말연시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