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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연쇄살인마 김대두 사건
게시물ID : panic_920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99콘(가입:2011-03-08 방문:3368)
추천 : 29
조회수 : 6973회
댓글수 : 22개
등록시간 : 2017/01/02 23: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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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실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기에 잔인한 내용의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잔인한 내용의 글을 싫어하시는 분들께서는 이글을 읽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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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합니다.
     
     
    300px-김대두.png
     
    당시 현장검증 중인 김대두(출처 위키백과) 
     
     
    한국최초의 연쇄살인마라고 적었지만 사실 조선시대에도 구한말에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 살인마는 존재 했을겁니다.
    조선시대 왕족으로는 100여명을 죽인 사도세자가 있겠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도쿄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을 무차별적으로 17명을 이판능이 있지만
    둘다 대량의 살인이라 연쇄살인과는 거리가 멀고
    기록된 최초의 사건은 한달간격으로 남자아이2명을 성폭행하고 교살한 이관규가 있지만
    대한민국이 건국 후 최초의 연쇄살인은 김대두가 최초가 아닐까 합니다.
    김대두는 불과 55일 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전남과 경기도 서울을 돌면서 3개월 영아와 어린이 5명을 포함한 17명을 살해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불과 26살이었습니다...
     
    1975년 김대두는 (당시 26살) 폭력으로 형을 살고 출소하지만 전과자라는 낙인때문에 직장을 구하기 힘들었기에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에 김대두는 벌지 못할바엔 돈을 갈취하겠다 마음을 먹습니다 
     
    그의 첫 살인은 자신의 고향인 전남 광산군(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시작됩는데
    시골 외딴집에 밤에 침입해 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남편(안모씨)을 살해하고 부인은 중상을 입힙니다.
     
    그리곤 그곳에서 갈취한 돈이 다 떨어져 갈때쯤 순천행 기차를 타는데 거기서 우연히 교도소 동기를 만납니다.
    둘은 순천 몽탄역에 내려 범행계획을 모의하고 9월7일 새벽 박모씨의 집에 침입 돈을 요구하지만 거절 당합니다.
    이에 화가난 김대두와 교도소 동기는 집주인 박씨와 그의 부인 그리고 박씨의 손자까지 살해합니다.
    이때 3명을 살해하고 집안을 뒤져서 나온 금액은 250원 (당시 버스비와 담배한갑이 10원이었던걸 생각해본다면 현재가치로 10만원 정도)
    이들은 어차피 할바에는 더 큰돈이 있는 서울에서 범행을 저지르기로 의견을 모으고 서울로 향하게 됩니다.
     
    서울에 둘은 도착 하지만 살인을 저지른 직후라 둘은 서로 잠시 떨어져 있기로 하는데
    그 이후로도 김대두의 연쇄살인은 멈출 줄 모릅니다.
    세번째 살인은 9월 11일 서울 면목동에서 1명을 살해하고 
    네번째 범행은 같은달 24일 수원으로 넘어가 양모씨의 집에 침입하는데
    이때 집주인 양씨와 양씨의 어머니, 8살 남자아이와, 11살 여자아이까지 4명을 한번에 살해합니다...
    이렇게 4명을 죽이고 그가 얻은거라곤 피해자가 팔려고 내놓은 고추15근이 전부 였다고 합니다....
     
    다섯번째 범행은 경기도 양주에서 벌어지는데 집에 침입해 집에서 자고 있던 부부내외와 3살난 아들을 살해하고
    15살난 딸에게 중상을 입히고 달아납니다. 이때 훔친돈은 2만1천원
     
    여섯번째 범행은 경기도 시흥 어느주택에 침입해서 집에 있던 아이의 엄마와 생후 3개월난 여아를 무참히 살해 합니다.
    여기서 훔친돈은 1천500원 이때 김대두의 진술로는 생후 3개월난 아기는 짓밟아서 살해 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대담한 범죄가 연이어 계속 발생하자 언론에서는 이를 "야수의 짓"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후로도 골프장 캐디와 젊은 부부가 사는 집에 침입해서 금품을 빼앗고 캐디와 부인을 강간하는 범죄를 저질렀고
    그가 검거되기 하루 전날 교도소 시절 알고 지냈던 교도소 동기(혹은 젊은 청년)를 만나 같이 범행 할 것을 제의 하지만
    동기가 자신의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때 김대두는 교도소 동기를 살해하고
    그가 입고 있던 청바지를 벗겨 가는데 (1970년대 청바지는 당시 젊은이들의 must have item)
    김대두는 피뭍은 청바지를 멍청하게도 세탁소에 맡기게 되면서 그의 범죄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싸우다 코피가 뭍었으니 세탁을 해달라는 김대두를 수상하게 여긴 세탁소 주인의 (혹은 세탁소 직원의 신고)신고로 잡히게 됩니다.
     
    1975년 10월 7일 경찰에 검거되서도 처음에는 친구와 싸우다 코피가 흘렀다고 진술하다
    나중에는 불량배에게 맞아서 피가 흘렀다고 말을 바꾸지만
    경찰의 계속된 조사에 사람 하나를 죽였다고 입을 열게됩니다.
    결국 자신이 저지른 모든 범행일제를 인정했고 검거후 이틀뒤에 현장검증을 실시하는데 
    현장검증 과정에서 웃고 껌을 씹는 등 전국민을 분노와 경악케 했습니다.
    현장검증을 하면서 밝혀진 범죄수법이란게 허술하기 짝이 없었는데
    동네에서 떨어진 외딴집만을 골라 가족모두를 살해하고 집안을 뒤져서 금품을 훔쳐가는 수법의 반복이었으니까요
    살해방법도 특별한 살해도구를 가지고 다니지 않고 집안에 있던 식칼 망치 낫 등으로 살해했는데
    시신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했다고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6번째 살인을 저지를 때 생후 3개월의 아기도 밟아 죽였다고 했는데
    살해이유는 그냥 울어대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였다고 합니다.
     
    수사과정에서도 경기도 일대를 돌면서 자신이 4차례에 걸쳐서 일가족을 살해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검거 후 이듬해인 1976년 12월 사형선고를 받고 같은달 28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죽기전에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사죄를 하고
    중범죄자와 소위 잡범이라는 경범죄자를 분리수용해 범죄를 배울 수 없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김대두 그가  55일 동안 9건의 범죄를 저질렀고 9건의 범죄로 17명을 살해 했지만
    그가 빼앗은 금액은 2만6천 800원 그것도 양주에서 빼앗은 2만1천원이 없었다면 6천원도 되지않는 액수....
    수많은 생명을 살해했지만 그가 그토록 만지고 싶어했던 큰 돈은 만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떠나 그를 그토록 잔인한 살인마로 만들었던 분노의 근원은 무었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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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족이지만 순천에서 같이 범죄를 저질렀다 서울에서 헤어진 교도소 동기 김모씨도 김대두 검거후 검거되는데
    김대두의 강요에 의해 살인을 저지른 점 한번뿐인 점 등이 고려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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