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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메갈리아 사태"와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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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시험안끝났다
추천 : 1
조회수 : 74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1/08 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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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 사태"와 페미니즘

:: 《행복한 페미니즘》 독서감상문 ::


 

메갈리안.jpg

 

 2016년 중순 한 사람의 트윗(tweet)에서 촉발된 소위 “메갈리아 사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 전반 ㅡ 주로 10~30대 젊은 층일 것으로 생각한다 ㅡ 에서 페미니즘 열풍이 불었다. 이러한 열풍에 따라 출판계에서는 ‘페미니즘 관련 도서’가 많이 출판되고 판매되었고 《여자다운 게 어딨어》,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등이 화제의 책들로 나왔다.[1]


 나도 페미니즘 열풍에 휩쓸리며 ‘과연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위에 언급한 책들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위의 책들은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이해한 페미니즘에 대해 서술한 ‘수필’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책은 조금 더 철학적이고 이론적으로 페미니즘을 서술한 ‘교과서’였다. 수필과 같은 글은 페미니즘에 대한 감정적인 서술이 많아 도리어 그것을 이해하는데 난항을 겪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고민을 하는 나에게, 친구는 한 권의 책을 추천해주었다. 그 책이 바로 여성 인권운동가 벨 훅스bell hooks의 저서 《행복한 페미니즘》(이하 “행페”)이었다.


 행페는 사실 제목만 봤을 때는 불안한 감이 있었다. 제목에서 “나는 페미니즘을 받아들여 행복해졌다.”라는 저자의 감정이 다소 지나치게(나의 기대와는 어긋나게) 드러난 것으로 느껴졌다. 따라서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여타 수필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불안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나치게 감정적 서술로 의미를 애매하게 전달하는 다른 책들보다는 괜찮다는 친구의 추천을 듣고 읽기 시작했다.


행페.jpg

 

 행페의 원제목은 “Feminism is for everybody: Passionate Politics”로 한국어판 제목은 사실 편집자와 번역자의 의도가 지나치게 들어간 제목이었다. 행페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페미니즘이 비단 젠더를 넘어 인종, 계급적인 차별을 반대하고 평등을 추구하며 이를 위하여 ‘가부장제’의 종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리만을 중시하는, 마치 ‘반(反)남성주의’와 같은 사상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래서 제목을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Feminism is for everybody”이라고 지은 것이다. “행복한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에서는 이러한 저자의 의도가 드러나지 않는다. 저자의 의도가 심하게 왜곡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번역은 책의 핵심을 바로 보여주지 못하는 잘못된 번역이라 생각한다.


 행페의 제목을 보며 느꼈던 불안은 책의 원제와 본문의 핵심 주제를 파악해가며 점차 사라졌다. 물론 행페 역시 “나는” 혹은 “우리는”과 같은 주어를 자주 사용하여 마치 수필처럼 저자의 감정을 자주 드러낸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게(지나치게 복잡하지 않게) 쓰여져 아주 만족스러웠다. 조금 더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접근이 아니었던 점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 책은 내가 기대하던 ‘페미니즘의 교과서’에 잘 부합한 책이었다. 애초에 그러한 이론적인 접근에 대해서는, 저자가 “페미니즘의 전문 용어들은 학문적 청중만을 염두에 두고 씌어졌다. 이제 페미니스트 사상가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그들 내부의 군중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을 창출하는 엘리트 그룹으로 변해 가는 것 같았다.”(행페, 60쪽)라고 언급하며 페미니즘이 지나치게 이론화되며 대중과 멀어지는 것을 경계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행페의 핵심은 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모든 차별을 철폐하고자 하는 운동이라는 “확산적 사고”이다. 저자는 페미니즘을 추구하면서 젠더 이외의 다른 차별에 눈을 돌리는 페미니스트를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하며, 그러한 페미니즘을 “개혁주의 페미니즘” 혹은 “라이프 스타일 페미니즘”으로 부른다. 개혁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라는 현 체제 안에서 단순히 여성의 권리만을 주장함으로써, 페미니즘을 자신의 계급 상승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 견지하고 있는 페미니즘을 일컫는 말이다. 라이프 스타일 페미니즘은, 세상의 모든 차별을 생각하는 확산적 사고의 과정에서 반드시 수행되어야 할 “자기 성찰”을 생략한 채, 페미니즘을 하나의 패션 ‘브랜드’처럼 가볍게 판단하는 사람이 견지하고 있는 페미니즘을 일컫는 말이다.


 행페를 읽고 다시금 메갈리아 사태를 바라보았다. 메갈리아를 옹호, 지지하는 사람과 메갈리아를 반대, 혐오하는 사람과의 갈등, 서로에 대한 비난과 욕설, 페미니즘의 정의와 가치에 대한 공방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기본적으로 “메갈리아”라고 지칭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말해 메갈리아의 정의가 무엇인지 모호한 현 상황에서 무언가를 판단하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적어도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듯하다.


여혐혐 - 복사본.jpg


 우선 현재 인터넷상에서 페미니즘 담론의 하나로 유행하고 있는 것이 “미소지니(misogyny 프레임”이다. “미소지니”라는 말은 “여성 혐오”로 번역되며,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성을 의식∙무의식적으로 차별하는 언행을 여성 혐오로 규정하고 비판한다. “미소지니 프레임으로 젠더이슈를 바라볼 때 성차별과 성폭력 등의 문제는 여성을 향한 남성 측의 의식·무의식적인 혐오의 문제로 전치된다. 즉 성차별은 더는 사회구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의 가부장제 아래 남성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근본적인 공격성향 및 콤플렉스에서 비롯된다. (우에노 치즈코,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


메갈리아는 이러한 미소지니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미소지니 프레임을 받아들인 메갈리아가 놓치는 부분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여자든 남자든 태어나서부터 줄곧 성차별적 사고와 행동 양식을 받아들이도록 사회화되었다는 사실”(행페, 9쪽)이다. 이는 즉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또한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임을 행페의 저자는 분명히 한다. 이를 성찰하지 못한다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만이 문제이고 “모든 여자들의 공간은 필연적으로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적 사고가 부재하는 영역일 거라는 그릇된 가정”(행페, 21쪽)을 동반해 페미니즘 운동을 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페미니즘 운동 내부의 반남성주의 분파는 (…중략…) 모든 여성을 희생자로 재현하기 위하여 모든 남성을 적으로 명명했다. 남성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계급 권력을 신장시키고자 하는 욕망과 함께 개별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계급 권력에 대하여 주목하지 못하게 했다.“(행페, 153-154쪽) 현재 논란이 되는 메갈리아의 모습은 남성을 가해자, 여성을 피해자라고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반남성주의 분파 페미니즘과 닮아있다. 그들은 결국 ‘여자라서’ 피해받는 특정 부분에만 관심이 있을 뿐, 더 나아가 인종적, 계급적 차별의 철폐를 고려하는 페미니즘의 대의에 대해서는 그들 스스로 배신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자라서.jpg

(이미지 출처: http://www.imgrum.net/media/1253673707767950115_2104029185)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메갈리아는 사회악, 청산해야 할 쓰레기’와 같은 끔찍한 생각을 하진 않는다. 나는 메갈리아가 페미니즘의 “의식화 그룹”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의식화 그룹이란 페미니즘에의 투신을 끌어내는 정략 창출의 토대가 되는 집단으로 여성 인권 관련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대화의 공간이다. “현대 페미니즘 운동 초기의 의식화 그룹들은 종종 개입과 변혁의 전략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저 자기가 희생되는 것에 대한 울분과 적의를 풀어놓는 장소가 되었다.”(행페 31-32쪽) 나는 우리나라에 페미니즘이 학문적으로 수용된 것은 지금보다 훨씬 예전이라 생각한다. (그 예전이라는 기준도 대략 20~30년 정도이다.) 여성학이 들어오고, 여성 인권 단체가 활동하기 시작하고, 여성 인권에 주목하는 언론이 탄생한 것은 예전 일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본격적으로 대중적인 운동으로 전환되고 많은 일반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아직 얼마 안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성 지배에 대해 분노로 항거했던 초기 페미니스트 운동가들 사이에는 사실 반남성주의 정서가 상당했다. 여성 해방 운동을 불러일으킨 동력은 불의에 대하여 타오르는 분노의 감정이었다.”(행페, 21쪽) 이렇게 페미니즘 운동이 초기에 반남성주의 정서가 강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현재 메갈리아의 소위 ‘남성 혐오’적인 표현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페미니스트 손희정씨가 진보 언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Le MONDE. diplomatique)에 기재한 글, 〈이제 ‘메갈-이후’를 봐야 할 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페미니즘에 던져진 과제는 ‘워마드(메갈리아의 한 분파)는 당연히 페미니스트 전사다, 그러나 그 방법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식의 손쉬운 단정이 아니라, 이 시기를 열어낸 자들인 그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연대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3] 사실 페미니즘은 반남성주의가 아닌 반성차별주의인바, 메갈리아의 반남성주의 정서는 페미니즘 운동의 원동력이 될지언정 페미니즘 운동의 핵심 정서가 될 수는 없다. 나는 메갈리아가 ‘끝까지’ 반남성주의를 견지하며, 여성혐오에 대해 오로지 남성에게만 반성할 것을 요구할까 걱정이 된다. “현대의 페미니즘이 점차 진보하고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서 성차별적 사고와 행동을 지지하는 집단이 남성만이 아니라는 사실, 여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반남성주의 정서는 더 이상 페미니즘 운동의 의식을 규정하지 않게 되었다.”(행페, 21-22쪽)


《행복한 페미니즘(Feminism for everybody: Passionate politics, 2000)

벨 훅스(Gloria Jean Watkins, bell hooks) 지음, 박정애 옮김, 큰나,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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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성일, 〈[2016 출판계 결산] 출판, 맨부커상이 이끌었다〉, 《독서신문 책과 삶》 12월호, (2016), 3쪽

[2] 박가분, 〈[포비아 페미니즘] 공포를 먹고 사는 페미니즘〉, 《리얼뉴스》 2016.11.30

[3] 손희정, 〈이제 ‘메갈-이후’를 봐야 할 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9.30


출처 http://blog.naver.com/mlnookang/220900910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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