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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
게시물ID : beauty_953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께소
추천 : 48
조회수 : 1296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7/01/09 02: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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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패션에 관심이 많으시다.
덕분에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보다는 아빠랑 같이 자주 쇼핑을 다녔다.
물론 추구하는 스타일이 달라서 매번 티격태격 하지만...
예를 들어, 나는 목이 짧아 가슴이 확 파인 옷을 좋아하나 아빠는 기겁하시고
나는 휘날리는 긴 머리를 좋아하는데, 아빠는 언제나 깔끔한 단발을 추천하신다.

아무튼, 이런 우리 아빠는 내가 이십 대 초반이던 시절부터 내 외모에 관심을 보이셨다.

01.

"딸, 화장을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이여."

원래 화장을 안 하던 내게 (입술에 립밤이나 립글로스를 바르는 게 다였다) 아빠가 어느 날 그런 말씀을 하셨고
거기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잠깐 한국에 나와 있던 중에 피XX 브러쉬 세트를 샀다.
브러쉬를 사기 직전까지도 가격을 보고 뭐 이리 비싼 게 다 있나 싶어 한참을 매장에서 우물쭈물하다가
외국에 계신 아빠께 확인 전화를 걸었었다.

"괜찮아, 좋은 도구로 배우면 좋지."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생애 첫 메이크업 브러쉬를 샀... 아니, 아빠한테서 선물 받았다.

02.

솔직히 풀메이크업은 작년부터 하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화장 전보다 후가 쬐끔 낫네'라는 생각이 든다.
손이 느려 (나는 메이크업계의 에릭) 화장을 마치는데 한 시간 (...) 가량이 걸린다는 점을 빼곤
아빠와 화장에 관해서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편이다.
특히 요즘엔 자기 전까지 메이크업을 지우지 않고 있다가 (절대 귀찮아서가 아니다)
영상통화로 아빠께 얼굴을 보여드리며 이것저것 질문을 하곤 한다.

"아빠, 오늘 딸 쉐딩은 어때?"
"면도를 한 것이여?"
"...아니, 쉐이빙이 아니라 쉐딩 말이여."

이렇게 가끔 아빠의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으로 (설마 개그는 아니었겠지) 웃는 날도 생기고.

03.

아빠가 나를 달래는 법.

"아빠, 아는 동생들이 내 화장은 티가 안 난대. (시무룩)"
"티 안 나게 자연스럽게 화장하는 게 힘들잖여. 잘하고 있어."
"응!"

04.

아빠가 나를 기쁘게 하는 법.

계속 메이크업을 한 상태로 영상통화를 하다가 며칠 전엔 노메이크업인 채로 통화를 하게 됐다.

"딸, 지금도 화장했어?"
"아니. 화장 다 지우고 방금 샤워하고 왔는데."
"그래?"
"후훗. 지금 내 얼굴이 화장한 것처럼 예쁘다는 그런 말인가? (능글능글)"
"ㅎㅎㅎ 그렇게 되겠네."

05.

아빠가 나를 부추기는 법.

"딸, 한국에 있는 동안 눈썹 관리를 좀 받아봐봐."
"어, 그럴까요?"

그렇게 브로우바에 가서 왁싱을 하고 아빠한테 끝났다며 문자를 보냈다.
아빠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시다며 사진을 보내달라 하시기에 마트에서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딸... 하기 전이 더 나았던 것 같은데... 예쁜 딸 눈썹을 왜 그렇게 만들었다냐."

실망하신 아빠를 보고 (나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국 그때 이후로 브로우바에 간 적이 없다.

06.

아빠가 나를 부추기는 법 2.

"딸, 한국에 있는 동안 이번엔 진짜 메이크업하는 법을 배워봐봐."
"어, 그럴까요?"

그렇게 여러 곳을 알아보다가 수업도, 가격도 천차만별이라는 걸 알고 대충 아빠께 설명해드렸다.

"아빠, 아무튼 개인 수업도 있나 봐. 이건 무시무시하게 비싸네."
"개인 수업 받을래?"
"아니, 이건 솔직히 너무 비싸고. 그룹 클래스 들어도 충분해요."
"그냥 배우는 김에 개인 수업 들어. 확실히 배울 수 있을 거 아녀."

그래도 돈이 아까웠던 나는 어찌 됐든 그룹 클래스에 등록했다.
아빠는 잘했다며 열심히 배우라 하셨고.

07.

마지막으로, 내가 아빠께 엄살을 부리는 법.

나는 생리통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엄살이 심하다.
그래서 그날이 오면 아빠한테 온갖 엄살을 부린다.

"아빠, 아포."
"따뜻한 거 배에 얹어두고 있어. 밖에 될 수 있으면 나가지 말고."
"아빠, 여자는 왜 이런 걸까? 그냥 결혼하면 내 남편이 대신 해줄 수는 없는 걸까?"
"딸이 건강하다는 증거니까 너무 짜증 내지 마."
"아빠 다음 생엔 남자로 태어날래. 그리고 엄마 같은 여자와 결혼해야지."
"ㅎㅎ 그려."



새벽이니까 보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요?
뷰게엔 처음 쓰는 글이네요. 나름 뷰티에 관련된 에피소드만 추려서 적어봤어요.
실은 아빠랑 방금 통화하다가 아빠가 너무 잘생겨 보여서... 그만 이런 글을 썼습니다.

속만 썩이는 못난 딸이지만, 아빠 따랑해요.

출처 우리 아빠와 아빠의 하나뿐인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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