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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패권주의자의 하루
게시물ID : sisa_8329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리스마스
추천 : 7
조회수 : 67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1/10 22: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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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반(反)패권주의자는 매일 아침 06시 30분에 일어난다. 만약 그가 반(反)패권주의자가 아니라 음모론자였다면,
 "이 시간에 굳이 일어나야 하다니, 이건 프리메이슨의 음모야."
 라고 외치며 일어났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반(反)패권주의자로 그런 자잘한 음모따위는 믿지 않았다.
 "이 시간에 굳이 일어나야 하다니, 이건 패권주의자의 음모야."
 만약 방에 있는 거울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이고 저 병신이 또."
 라고 한 마디 했겠지만, 아쉽게도 여기는 앨리스가 사는 동화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거울은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반(反)패권주의자는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씻고, 밥을 먹기 위해 주방으로 나왔다. 어머니는 이미 일어나 가족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었지만, 반(反)패권주의자의 눈에 어머니는 그저 주방의 패권을 가지고 권력을 휘두르는 이 집의 청산대상일 뿐이었다.
 "아, 엄마. 나 생선 먹기 싫다고 그랬잖아!"
 "MI친놈아, 그냥 주는대로 처먹어."
 하지만 어머니는 거울이 아니었고, 주방은 동화나라가 아니었다. 강력한 욕설과 함께 밥을 푸던 주걱이 그대로 얼굴을 향해 날라왔다.
 아침을 굶고 뺨에 붙은 밥알을 흥부마냥 떼 먹으면서 반(反)패권주의자는 언젠가 어머니의 저 악랄한 패권을 청산하고야 말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주린 배를 잡으며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했다.
 첫 수업은 조별모임이 기본인 수업이었는데, 반(反)패권주의자는 이 또한 청산해야 할 문제투성이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개강 첫 날 수업에 좀 늦었더니 이미 자기들끼리 조를 다 짜서 어쩔 수 없이 아무 조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물론 강의계획서에 첫 날 수업이 있으니 꼭 시간에 맞춰 오라는 내용 따위, 반(反)패권주의자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다.
 "아, 반가워요."
 "……."
 조장이 먼저 인사를 건냈지만, 반(反)패권주의자는 떨떠름하게 그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조장은 과거 이 수업을 한 번 들어서 수업 내용도 잘 알 뿐만 아니라, 성격도 좋아 조원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반(反)패권주의자의 눈에는 그저 볼썽사납게 잘난척 하는 청산의 대상이었다. 그가 이 수업을 다시 듣는 이유는 지난 수업 때 같은 조원이 "발표 때 깽판을 쳐서 점수가 낮게 나왔기 때문." 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그를 시기한 학생 하나가 "시험결과를 몰래 바꿔 점수가 낮게 나왔기 때문." 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거야 반(反)패권주의자에게 있어 전혀 상관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저 패권을 가진 잘난척쟁이를 청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갑자기 그가 다시 이야기를 걸었다.
 "갑자기 수업내용이 변경되어서 조별 발표가 빨라지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요?"
 반(反)패권주의자는 최대한 날선 태도로 물었지만, 조장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번 발표가 성적과 바로 이어지니까 잘 하기 위해서 준비를 미리 좀 해 왔어요. 그리고 발표 할 사람도 뽑아야 하구요."
 다른 조원들은 역시 준비가 철저한 조장이라고 박수를 쳤지만, 반(反)패권주의자는 준비를 해 왔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그걸 준비하시면 어떻게 해요?"
 반(反)패권주의자의 갑작스런 이야기에, 모두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아니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그렇게 다 준비해 오시면, 나중에 발표자 정할 때 본인이 유리하시잖아요? 혼자 점수 잘 받으려고 그러시는거죠? 그런게 어디 있어요."
 "아, 아니에요. 발표자는 나중에 저희끼리 공정하게 한 번씩 다 발표를 해 보고 그 중에서 정할거에요."
 드디어 이 요망한 패권주의자 놈이 기색을 드러내는구나, 반(反)패권주의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조 내에서 발표자를 뽑으면 조장님이 가장 유리할 거 아니에요? 전 그거 이 조의 패권주의라고 생각하는데요."
 나왔다, 패권주의.
 "아니 그러면 조원들이 정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나요? 저희가 내용을 가장 잘 알고, 다 준비하는 건데."
 조원들 중 누군가가 물었다.
 반(反)패권주의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B조에게 뽑아 달라고 하면 되지 않나요?"
 조원들 모두 저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반(反)패권주의자를 쳐다보았다.
 "발표자가 제일 점수가 높은데, 정하려면 모르는 사람이 평가를 해야 제일 정확하지 않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물론 자기가 B조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아까부터 이야기 했는데, 이건 저희 발표잖아요. 왜 다른 조에서 그걸 뽑아야 하죠?"
 "맞아요. 그리고 B조는 저희 경쟁조인데, 좋게 해 줄리가 없을거에요."
 조원들의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여기서 뽑으면 여태까지 조에 제일 기여 많이 한 사람이 유리하잖아요? 그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요. 뒤늦게 시작한 사람한 정당하게 참여를 할 수 있어야죠. B조에서 공정하게 저희 발표를 보고, 비밀투표를 해서 넘겨주는게 제일 깔끔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조원들의 아우성이 빗발쳤지만, 반(反)패권주의자는 더 이상 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무 것도 정하지 못하고 수업이 끝났지만, 반(反)패권주의자는 아까 수업에서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미 패권주의로 똘똘뭉친 그들과 이야기 해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남은 오후 수업을 듣지 않고, 신문부를 찾아가 수업의 불합리성에 대해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았다. 같은 조원이자 그의 친구인 또 다른 반(反)패권주의자도 옆에서 그 내용을 거들었다.
 다음 날 교내 신문은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패권주의가 있다고 대서특필 되었다. 교수님은 자신의 수업이 그런 식으로 이용되는 것이 언짢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후 다른 조원들이 내용을 보고서 말도 안 된다고 마구 항의를 했지만, 그는 이미 들어줄 마음이 없었다.
 옆에서 같이 거들었던 친구는 조원들의 항의를 듣고 조금 꼬리를 내렸지만, 자잘한 것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조장은,
 "어떤 방식이든 공정한 방식이면 다 수용할 수 있어요."
 라고 말했다. 끝까지 맘에 들지 않는 녀석, 이라고 반(反)패권주의자는 생각했다.
 그리고 끝까지 괴롭혀서 진을 다 빼야겠다고, 다짐했다.
 조원들은 지금 발표만 있는게 아니라, 다음, 다다음도 있는데 왜 그렇게 해야 하냐고 이야기 했지만, 그딴 것 알바 아니고 반(反)패권주의자는 지금이 중요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더니 엄마가 다시 생선을 굽고 있는 냄새가 났다.
 "아, 엄마. 내가 생선 먹기 싫다고 그랬지!"
 다시 밥주걱이 날아 올까봐 팔을 들고 몸을 움츠렸지만, 이상하게 날아오지 않았다.
 대신 저 병신은 언제쯤 철이들꼬,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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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요새 하도 이야기가 많길래 써 봤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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