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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의 대장 내시경, 그리고 프로포폴
게시물ID : freeboard_14663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권종상
추천 : 3
조회수 : 504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01/11 12:36:43
아이들이 라면을 끓였나봅니다. 라면을 먹느니 안 먹느니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시간을 봅니다. 오후 다섯 시가 넘었습니다. 아직도 약 기운이 몸에 남은 듯 합니다. 이미 짧은 겨울 해는 서산을 꼴딱 넘어갔는지 깜깜합니다. 이건 오후만 남은 것도 아냐. 완전히 밤만 남았네. 그리고 내일은 일 나가야 하잖아.

거의 10년만에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습니다. 7년 전인가, 마지막 받았을 때 폴립(용종)이 꽤 큰 것이 나왔기에 걱정했었는데, 이번엔 10년 있다가 오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폴립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몇년 전부터 점심시간에 늘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었는데, 그 효과였나 싶기도 합니다. 아내는 야채 김밥을 싸 주거나, 삶은 야채를 도시락을 넣어주곤 했는데 그러면서 혈당, 혈중 지방, 콜레스테롤, 심지어는 용종까지 잡힌 거라는, 마누라 예찬을 먼저 해 봅니다. 

아마 이 검사를 받아본 분들은 알겠지만, 그 전날부터 고생입니다. 이상한 약을 물에 타서 그거 한 갤런을 다 마셔야 하는데, 그 다음부터는 쏟아 부어야 하는 거지요. 오랜만에 강제 장 청소를 억지로 하는 셈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 덕에 후덜덜. 그리고 집 근처의 지정된 병원으로 갔습니다. 

보험 커버가 되는데도 3백달러 정도의 돈을 내야 합니다. 미국의 기업 우선의 불합리적인 의료 체계 덕분인데, 그나마 저는 이걸 플렉시블 스펜딩 어카운트 FSA 라고 해서 1년에 내가 지정한 액수의 의료비나 의약비를 미리 봉급에서 조금씩 떼어가는 제도를 통해 나중에 돌려받는 제도의 혜택이라도 받으니 다행입니다만, 아예 가난하던지, 아예 아주 부자이던지 하지 않으면 아플 자유도 없는 미국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저는 의료보험의 상당부분을 직장에서 내 주기라도 합니다만. 

아무튼, 손등에 링거 주사를 놓았는데 그걸 통해서 마취제가 들어온건지, 아니면 코 앞에 대 놓았던 산소 호스를 통해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간호원과 몇 마디를 농담을 나누다가 저는 잠이 들었고, 누군가가 내시경 검사가 끝났다고 알려줬을 때야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약 기운은 꽤 오래 가는 듯 합니다. 집에서 자다가 일어났을 때도 뭐가 뭔지, 제대로 실감이 안 가는 상태였으니까요. 간호원의 장난스러운 "집에 갈 시간이야!" 그러나 땅을 짚는 발은 휘청휘청했고, 머리는 아직 어찔어찔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했지만, 간호원은 굳이 저를 휠체어에 태워 엘리베이터를 태우고, 1층으로 내려가 아내를 기다리게 하더군요. 아내가 병원 로비 앞으로 밴을 몰고 오자, 그제서야 저를 일으켜 세우고 차를 타는 저를 배웅했습니다. 운전은 안 된다는 것이 아예 서면 양식으로 되어 있고 거기에 서명하지 않으면 검사 자체를 안 해 줍니다. 몸에 주입하는 이 마취약 때문이죠. 아, 이게 프로포폴인가?

예, 그러면서 집에 가는 동안 저는 다른 생각보다는 바로 이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해서 제때 대처를 할 수 있었겠냐고. 이렇게 어찔어찔하고 팽팽 도는데 제대로 대처가 가능했겠냐고. 그리고 이걸 '즐길' 정도였다면 지금까지 국정이 가능했겠냐고. 집에 돌아와 잠깐 모니터를 들여다보니 장시호가 자진 제출한 새로운 물증, 또 하나의 최순실 태블릿 PC 이야기가 뜹니다. 이젠 꼼짝 못하겠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서 어떻게 다시 잠이 들었었습니다. 그리고 눈 떠 보니 지금 이 시간이 됐군요. 

내일 일 가는 게 억울하겠는데. 병가 한 이틀 끊을 걸. 근데 어떻게 이런 걸 중독이 될 정도로 맞냐고. 몸이 힘든데. 음... 근데 머리는 참 맑고 개운하네요. 마치 몇 년 자고 일어난 것처럼... 몸도 조금씩 풀리는 것 같고. 배가 자꾸 부글부글한 것만 빼곤 이젠 살 거 같은데... 암튼 이 맛에 쳐맞는건가...?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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