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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1.
게시물ID : freeboard_14679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diac
추천 : 3
조회수 : 15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1/13 00: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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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7. 권태 1

몇 시간 째 켜진 인터넷의 새 탭 같은 나.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애써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적지 않는 이유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단지 권태에 기인한다. 어떤 일도 별로 재미가 없고 어떤 일도 사랑해 볼 수 없다. 어떤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과 권태기를 맞는 중인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조차 나에게 의미 없이 다가올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단지 나의 권태가 나를 떠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다.

계절을 혼동해서 찾아오고 날아가는 철새 같은 나의 권태. 나의 권태는 어떤 사랑으로 말미암아 계절을 혼동하게 되었을까? 나의 권태도 사랑을 해보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스스로 사랑을 하고자 노력하며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랑의 성질에 직접적으로 귀인하는 것이다.

아주 적은 양의 사랑을 가지고도 많은 것을 혼동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나의 정신으로부터 배웠다.

내가 애써 하는 것은 나의 권태를 사랑하지 않는 일이다. 나의 권태를 사랑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내가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 없다. 어쩌면 곧장 권태를 사랑하는 일 마저도 권태로워질 것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태를 사랑하며 권태를 사랑하는 일을 권태롭다 하지 않는 것은 권태에 대한 이기이지 권태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저승에서부터 바람이 불어 나의 권태를 싣고 온다. 저승에서부터 날아온 나의 권태는 나의 어깨에 앉아 모든 것을 졸린 눈으로 노려본다. 그의 눈길이 가는 곳마다 먼지가 쌓인다. 나는 게으름과 권태를 잠시 혼동한다. 권태와 게으름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권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좀 더 원초적인 어떤 것이다.

어쩌면 권태는 아주 치열한 종류의 관념이 아닐까? 치열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도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의 사랑을 사랑한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그 누군가의 사랑은 사랑해볼 수 있다. 나는 이제 나의 권태의 사랑을 사랑해보기로 한다. 그러면서 이 도저한 권태를 어떻게든 견디어 보기로 한다.

나의 권태가 사랑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갈피라도 잡아볼 수 있다면! 혹은 권태가 사랑했던 종류의 음악은 어떤 것이었는지라도 알아볼 수 있다면…… 권태와 권태의 사랑 앞에서 나는 무척이나 무력해진다.

모두가 행복을 앞에 두고서 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혼동이 나를 엄습한다.

권태가 사랑했던 것을 알고자 권태의 성질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권태는 졸린 눈으로 모든 것을 노려보는 자이다. 그가 바라보는 자리마다 그가 오래전 가지고 있었던 것과 같이 도저한 먼지가 끼고, 그 먼지와 정확히 같은 그의 폐에도 이미 한 가득하다. 그의 먼지는 양자물리학의 전자처럼 그의 폐 안에도 사물들 안에도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혹 권태가 사랑했던 것은 어떤 사상이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권태는 사상을 사랑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사상해온 자이다. 배반당한 자와 버려진 자는 다시 같은 것을 사랑할 수 없다. 그리고 사상에 대해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것은 배반과 버려짐뿐이다. 착각 속에서 사상가가 죽거나, 비판 속에서 사상이 죽을 뿐이다. 권태는 이것을 가장 뼈저리게 알고 있는 자이고 고로 그는 권태가 되었다.

어쩌면 권태는 아주 치열하게 사는 관념일지도 모른다. 외로움 자체는 외로움을 탈 수 없듯이 권태 역시 어떤 것도 권태로워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권태가 사랑하는 것은 글 쓰는 일일 것이다. 다만 그는 이미 존재했던 문장밖에는 쓸 수 없는 작가이다. 그래서 이미 어디인가에 한 번 이상 쓰였던 문장, 쓰였던 플롯, 쓰였던 전개만을 쓸 수 있고 그의 글에는 지루함 뿐인 것이다.

이제 조금 갈피가 잡히는 듯 하다. 권태를 의인화한다면 그는 작가이다. 그리고 그는 모든 셰익스피어가 그러했듯이 이미 존재할 법한 모든 플롯을 스스로 만들어낸 작가인 것이다. 그는 이미 모든 문장을 한번씩 적어보았던 작가이다. 그의 서재는 무한히 크고 그의 책 안에는 이미 모든 문장이 적혀 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새로운 글을 쓸 수 없는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재생산뿐이지만 그는 부단하고 치열하게 쓰고 쓴다. 고로 권태 자체는 권태를 느끼지 않지만 그를 보는 우리는 권태를 느끼게 된다.

이미 모든 문장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큼 작가에게 낙담스러운 일이 있을지.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권태의 존재 자체가 모든 문장의 존재를 보장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권태에 가까워지는 일뿐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어차피 모든 일 끝에 남는 것은 권태뿐이다. 많은 일을 체험할수록 더 큰 권태를 체험하게 될 뿐인 것이다. 더 많은 문장을 쓸수록 더 많은 이미 존재했던 문장을 반복하게 될 뿐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권태 자체에 점점 다가서는 일 밖에는 없다.

그렇게 나는 권태가 사랑하는 것은 결국 쓰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기 복제밖에는 할 수 없도록 운명 지어져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쓰는 작가이다. 권태의 사랑을 사랑해보자는 일이 이곳까지 왔다. 나는 조금이나마 권태의 정체에 대해 깨달았으며 그의 의인화를 시도했다. 어차피 관념은 어딘가에 빗대어서나 예시를 들어서 밖에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태의 글에 대한 사랑은 그의 서재만큼이나 무한하다. 권태의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면 이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권태는 무한하고 고로 나의 글에 대한 사랑을 그의 사랑에 가깝게 만드는 일 또한 무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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