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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평론가가 혹평한 나홍진감독의 곡성
게시물ID : movie_642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zlatan09
추천 : 10
조회수 : 2129회
댓글수 : 79개
등록시간 : 2017/01/15 12:09:27
그냥 이 영화를 깍아내릴의도는 아니고요 ㅎㅎ
정성일평론가정도 되는 사람이 혹평을 했다길래 어떤가 한번 찾아봤네요.
이 영화를 재밌게봤으면 계속 그러시면되고...그냥 전 이러한 시각도 있구나정도만 보면 괘찮을듯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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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과 무속에 관한 이야기라는 말이 흘러나오면서‘본 적이 없는 공포’를 만나게 될 것이라며 모두들 기대의 아드레날린이 거의 최고치에 이르렀다. 
심지어 공포 영화의 러닝타임이 상업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2시간 36분에 이른다는 사실까지 알려지자 약간 전율마저 느껴졌다.
자, 이제 마침내 영화를 보았다. 
보고 나자 무언가 보긴 보았는데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를 모르겠다고 모두들 어리둥절하게 서로를 쳐다보았다. 
누군가는 거만하게 이 복잡한 이야기에는 심오한 비밀이 담겨 있는 것처럼 설명했다.
반대로
누군가는 냉소적으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소문대로) 시골 마을에 연속적으로 정체불명의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현장을 수색하던 동네 경찰 종구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한 일본인의 오두막에서 어린 딸의 신발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날부터 딸은 신열을 앓기 시작한다.
무당이 등장하고 점입가경으로 동네 사람들은 하나둘 좀비가 되어가고, 여기에 엑소시즘을 하기 위해 신부님까지 가세한다.
좀 더 놀라운 건 처녀 귀신도 깊은 밤에 동네를 나돌아 다닌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딸을 구하기 위해서 악전고투를 시작한다.
 
간단하게 말하겠다.
나홍진은 한 영화 안에 있어서는 안 될 서로 다른 것들을 뒤죽박죽으로 섞었다.
장르는 규칙의 게임이다.
그런데 <곡성>은 공포 영화 안에서 서로 다른 게임을 거의 폭력적인 수준으로 뒤섞기 시작한다. 
좀비는 살아난 시체이고 귀신은 누군가의 눈에만 나타나는 허깨비이다.
물론 둘 다 영화적 상상력의 창조물이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의 경계를 넘어서면 안 된다.
왜냐하면 좀비는 과학이 실패한 생명의 영역이고, 귀신은 종교가 자신을 의심할 때 나타나는 영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실험적인 스토리텔링이라고 감탄할 것이고, 반대로 누군가는 반칙이라고 화를 낼 것이다.
문제는 실험이라기에는 이야기가 앞뒤가 안 맞는 정도를 넘어서 거의 부조리하게 느껴질 정도이고, 그렇다고 반칙이라고 하기에는 거의 모든 장면에 몹시 공을 들여 안정된 톤을 유지하면서 그 긴 시간 동안 끝까지 간다는 것이다. 
아마 다짜고짜 대답을 요구하고 싶을 것이다.
무서운가요?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하지만 종종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을 준비도 함께해야 한다.
<곡성>에서 가장 무서운 건 나홍진의 연출 솜씨가 아니라 미술부가 붉은 페인트로 뒤범벅을 한 시골집 폐허의 오싹한 방 안 풍경들이다.
그럼 도대체 <곡성>은 무슨 영화인가요?
가장 쉽게 설명해주겠다.
이 영화는 <살인의 추억>의 심령학적 공포 영화 버전이다.
두 영화의 공통점 한 가지 더.
둘 다 범인이 안 잡히고 결론도 안 난다.
몹시 ‘찝찝한’ 상태로 극장을 떠난 당신이 카페에서 열띤 토론을 할지 짜증을 내면서 집에 갈지는 누구와 영화를 보러 갔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영화 속 대사.
 
 
“놈은 지금 낚시를 하는 거여.”
나는 그걸 고스란히 돌려주고 싶다.
이 영화는 낚시다.
그걸 물지 말지는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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