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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평범했던 날의 기담
게시물ID : panic_922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개소리다메요
추천 : 15
조회수 : 1542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7/01/26 15:5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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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난 일을 돌이켜 볼 때, 그 일이 현실이었는지 꿈이었는지 구별이 안가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당시에 분명 겪었다고 생각했던 일이, 후일 그 기억을 곱씹어 봤을때 그것이 꿈이었는지 정말 현실의 기억이었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일들이요.

이제부터 할 얘기는 무서운 얘기는 아닙니다. 

귀신이라든가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서요.

그래서 이것을 '기담'이라고 제목을 붙여봅니다. 이것은 제가 10여년 전에 겪은 기담입니다.

(아주 예전에 이것을 어느 커뮤니티에 간략하게나마 썼던 적이 있었는데 오유에도 새로 적어봅니다.)




저는 20대 초반에 겪은 사고로 인해 군복무를 공익근무요원(현 사회복무요원)으로 완료했습니다.

발령된 기관은 서울외곽의 어느 산자락에 위치한 국책연구원이었구요.

이 연구원이 역사가 제법 깁니다. 대략 60년대에 설립되었다고 기억하는데 건물을 보면 그 정도 됐겠구나 생각하게 합니다.

80~90년대 학교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나무로 된 문.

낮에도 해가 잘 들지 않는 구조의, 형광등 마저 띄엄띄엄 있어서 늘 어두컴컴했던 복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오래된 병원내지 학교 같았습니다.




공익근무요원의 일은 기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일반 사무보조 업무를 하는 직장인과 비슷한 일을 했습니다.

9시출근, 12시~13시 중식, 18시 퇴근에 단순한 업무지원 성격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로 점심은 거르거나 간식으로 간단히 떼우고 잠을 잤습니다.

책상에 엎드려자기에는 다른 공무원 선생님들의 눈치도 보이고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건물안의 적당한 곳을 찾던 도중

저보다 먼저 복무를 시작한 선임이 언젠가 말했던 지하의 창고가 좋겠다 싶어서 그곳에서 주로 잠을 잤습니다.

이곳은 7평 정도의 공간이지만 층고가 매우 높았습니다.

제 키가 190이 좀 안되는데 그걸로 유추해보니 대략 4m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곳에 철제 앵글이 'ㄷ'자 형식으로 벽을 따라 놓여있었고 앵글에는 갖가지 물건들이 정신없이 쌓여있는 창고였습니다.

층고가 높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조명이 부족함 때문이었는지 딱 하나 있던 형광등을 켜봐도 굉장히 어두웠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 철제 앵글 위로 올라가 그 위에서 잠을 잤죠.




처음에는 몰랐지만, 점심시간에 그곳에서 잠을 한 숨 자고 나오는게 거의 일상이 될 무렵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잘때 조금 기이하달까...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2~3시간을 잔 것 처럼 느껴져 깜짝 놀라 일어나 시계를 보면 고작 10여분이 지났다거나...

분명 큰 치찰음 같은 소리에 잠을 깼는데 조용하다든가...

장난치기 좋아하는 후임이 잠자는 저를 툭툭 치고 도망간걸 잠결에 분명 봤는데 알고보니 그 친구는 오전에 이미 외근을 나갔었다든가...

대략 이런 것들이었습니다만 저는 그 모든게 잠결에 겪은 일이라 기분이 조금 찝찝해도 착각한거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 곳에서 삐대는 날이 계속 됐고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거나 하는... 지금 생각하면 찝찝한 일이 종종 있었지만 역시나 그때는 잠결이라 착각한거겠거니 넘어갔는데

어느 날 부터는 한 층 더 이상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꿈을 잘 안 꾸는 편인데 어느 때 부턴가 그 곳에서 잘때면 무조건 꿈을 꿨습니다.

꿈꾸는게 뭐 이상한게 있나 싶겠지만 그게 항상 똑같은 장소가 나오는 꿈이라면 얘기가 좀 다릅니다.

장소는 바로 그 방이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점이었습니다.

그게 꿈 내용의 전부입니다.

다만 그 광경을 cctv 화면을 보듯 아무 변화 없이 계속해서 보고 있다는게 조금 소름 끼쳤죠.




이쯤되니 좀 무서워졌습니다. 그 순간 순간 잠결에 착각했다고 생각했던걸 되짚어보니 아무리 착각이라고는 해도 그 횟수가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그곳을 1년여간 찾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 곳에 물건을 찾으러 갈때도 별의 별 이유를 붙여 꼭 다른 사람과 함께 갔습니다.

자연스레 점심시간에 잠을 자던 습관도 고쳐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때 느꼈던 감정도 무뎌져 그곳에서 있던 일은 단순 해프닝 정도로만 기억될 쯤이었습니다.




공익근무요원은 기관장의 허락하에 복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 아르바이트등의 부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얼마 안되는 월급으로는 생활이 힘들어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했구요.

잠이부족했죠. 항상. 

그래서 이제는 무서운 기억이 많이 희석된 그 지하 창고를 다시 찾아가서 예전에 늘 그랬듯이 철제 앵글 위로 올라가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바로 또 꿈을 꿨습니다. 예의 그 꿈이요.



그런데 이 번엔 조금 달랐습니다.

상단에서 바라보고 있는 시점이나 cctv를 보는 듯한 광경을 보고 있는건 마찬가지였지만

이번엔 그곳에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0여년이 지난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대략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서로서로 앞 사람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일렬로 그 방을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검은색 줄무늬 원피스 같은 옷을 입은 여자를 선두로 대 여섯명이 소리없는 어떤 규칙이나 구령에 맞춘것처럼 빙빙 돌고 있었고

물리적으로 말도 안되는 공간 왜곡이 있었습니다. 바닥이 파도처럼 출렁거린다든가 사각형의 방이 누군가 좌우로 비트는 것처럼 늘어나고 줄어들곤 했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느꼈던 정말 이상한, 태어나서 처음 느껴봤던 종류의 감정이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정도로 현실감이 있는 동시에 

상황 자체가 말이 안되기에 꿈이라고 밖에는 생각 할 수 없는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습니다.

무섭다는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괴이하다는 감정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일이 여기까지였다면 그냥 또 해프닝이겠거니 꿈이겠거니 지금도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렇게 아주 한참을 빙빙 돌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이 쪽을 보며 검은색이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크게 벌린 입으로 온갖 괴이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을때

무언가 이상한 일이 분명하게 일어났다고 느꼈고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한다는 생각을 그때서야 했습니다.




기차가 급제동할때 나는 엄청난 굉음의 쇳소리.

피아노의 가장 높은 음의 건반을 매우 빠르게 연타하는 소리.

정규방송시간 외 화면조정중이라는 화면이 송출될때의 '삐'하는 전자음.

오래된 가전제품에서 나는 고주파음.




대략 '이런 느낌'의 소리들이 전부 섞여서,

태어나 들어본 어떤 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그 검고 깊이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 들의 입(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곳)에서 버퍼링 걸린 스트리밍 음악 마냥 불규칙하게 끊기며 들려왔습니다.

말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습니다. 

그 광경을 그저 계속해서 보고 듣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굉장한 스트레스였습니다.

짜증이나서 빡친다는 종류의 스트레스라기보다 도저히 내 의지로 어쩔 수 없을 정도의 무엇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 상황자체의 무력감, 공포감에 의한 스트레스였던 것 같습니다. 코즈믹호러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어느순간 그것이 다 없어졌습니다.

드디어 내가 현실이라고 지각할 수 있을만한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단순히 꿈에서 깬건지, 내가 뭘 잘못 줏어먹고 환각 같은것을 본건지, 그것도 아니면 평생 가위눌린적이 없었는데 이게 그런 것이었는지...

잠에서 깰때 꿈과 현실이 기상이라는 행위로 확실하게 분절되어 있어 어떤 것이 꿈이고 현실인지 분간 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그 괴이한 광경속에서 현실로 돌아올때까지의 확실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냥 짐작할 뿐입니다. '꿈에서 깬 거겠지'하면서요.




그렇게 대략 3m정도 되는 그 철제 앵글에서 거의 떨어지다싶이 내려와 정신없이 건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밖은 화창했고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연구원 사람들이 있는 아주 일상적인 보통의 풍경이었습니다.

얄밉고 억울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섞인 기분으로 심각하게 두근대던 놀랜 가슴을 진정시키며 30분여간 줄담배를 피우다가 겨우 다시 자리로 복귀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저 이상한 꿈을 꾼 것 뿐일지도 모릅니다.

유독 그 곳에서는 괴이한 해프닝이 자주 있었지만 잠결에 겪은 착각이었을뿐일지도 모르고

마지막으로 봤던 꿈의 광경은 이러한 착각이 무의식에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악몽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 곳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다고 생각하는)던 광경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종류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귀신이 나오는 영화를 보거나 정말 무서워 보이는 놀이기구 앞에서의 긴장감 등의 두려움을 아득히 뛰어넘는 감정이었는데

이것을 저는 '공포'라고 짐작해봅니다. 흔하게 얘기하는 감정이지만 그 감정의 깊이를 제대로 겪어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일순 전기에 감전되고 있는 것처럼 온몸의 모든것이 날카로워 지는 듯한 소름과 함께 밀려오는, 내가 절대로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되는 엄청난 무력감.

날것 또는 정말 원초적인 감정을 느꼈던 기이한 경험이었습니다.




이후 남은 복무기간을 사고없이 잘 마치고 소집해제되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생활 동선이 그 동네와 겹치지 않아 그 연구원 근처를 지날일이 별로 없습니다만

우연히 한 번 그 곳을 지날때 발령초기 선임이 했던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그 지하창고와 관련된 얘기들, '저기서 귀신나온다ㅋ' 같은 으레 어두컴컴한 장소를 보면 말 하는 우스갯 소리인 줄 알았던 그 말들이

실은 그 선임도 그 곳에서 겪은 어떤 해프닝 때문에 했던 말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요.





어떤 평범한 날에 겪었던 기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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