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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이념에 관한 두서없는 짧은 글입니다,
게시물ID : history_274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monade
추천 : 0
조회수 : 44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7/01/29 10: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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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대단한 내용은 아닙니다, 그냥 유교 이념이 조선의 재정을 제약하는 원인이었다 라는 논지의 답글을 보고 생각난 글입니다, 물론 싸우자는 글은 아니고 그냥 답글로 쓰기는 좀 애매해서 옮겨보는 수준이고 발만 담그는 수준이라 많이 부족하니 지적은 환영합니다,

아무튼 다들 아시는 내용이시겠습니다만 지방의 학교 제도가 과거 제도와 결합하면서 지방의 신사 세력이 등장한 것은 명나라 시기부터이지요, 그리고 향악 등을 통하여 신사 세력이 자치적인 면모를 띄는 한편 중앙 정부는 그 것을 관리 감독하게 되는데 이러한 도덕적인 관리 체계가 등장한 이유가 무엇인가 보면 결국 그 원인은 통치 체제의 붕괴로 이어집니다,

무슨 말 인가 하면 기존의 송나라 이전의 시기에는 직접적인 통치가 가능했습니다, 그 땅의 소출이며 징용이 가능한 인원을 파악하는게 용이했지요, 그러나 송나라 시기를 거치며 농업 혁명이라 부를수 밖에 없는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농업 생산량이 폭증하는 과정을 겪게 되면서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더이상 자급 자족에 국한되지 않을뿐더러 급변하는 시장 경제 체제로 말미암아 각 지역의 호족들의 발흥이라 볼수 있을 정도로 지역 부농 및 각 지역의 세력들이 중앙의 컨트롤에서 벗어나게 되어 정확한 파악조차 어려워졌습니다, 더욱이 중국은 지금도 통역사를 붙여야 할 정도로 각 지역간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며 그러하기에 방법이 없었죠,

따라서 부득이하게 나온게 과거 제도의 정립 및 도덕적 통치 개념입니다, 지방의 학교 제도에 따라 수 십년간 황제에 대한 충성과 도덕적 관념을 뼛속 깊이 새긴 학생들중 과거를 통하여 벼슬에 오를수 있는 사람은 한줌도 못됩니다, 나머지 절대 다수의 학생들은 황제에 대한 충성을 아로새긴채 지방에서 도덕적 약속인 향약을 통하여 자치를 이루게 되고 말이지요, 

이 것이 이제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적용되는바 물론 소규모 자영농 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이나 그 것은 어디까지나 조선이 지향하는 정책적인 방향성이고 또 그 내용일뿐 유교적인 측면에서 강제되는 사실은 아닙니다, 유교적 측면에서 강제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급변하는 사회 체제에 따라 통치 체제의 붕괴를 막는 한편 자정 작용을 유지하고 공동체 질서를 강제하는 것 정도에 불과하지요,

요약하자면 유교에서는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대하여 법치 질서를 내세우기 보다는 도덕적 영역에서 강제하기를 원하였고 실제로 그러한 측면에서 어느 정도 자기 정화 능력이 유지되었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개개인이 알아서 적당히 해먹는거야 도덕적인 측면을 외향적으로나마 유지하고 있다면 뭐라 할 이유도 없는게 현실적으로 사실이고 그 것까지 막을수는 없는 노릇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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