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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지만 잠이 안 와서 써 본 8년째 연애 중인 이야기
게시물ID : love_216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단아양
추천 : 13
조회수 : 124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7/01/31 06: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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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갑내기 커플입니다. 대학교 1학년, 그 풋풋하던 시절에 만나 8년의 연애를 하고 있어요.
모두가 그러하듯..우리 역시 설레는 첫 만남이 있었고, 지치고 설레던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고, '모지리'같은 시간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이기 때문에, 그에겐 내가 '그녀'이기 때문에 위안이 되는 시간이 있었고, 그런 시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잠도 오지 않고, 간만에 상기된 지난 일들이 귀엽기도 하고, 혼자 애틋하기도 하여 적어봅니다.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을 뿐더러..간추린 이야기도 이 정도인데, 일화 하나하나를 꺼내기엔 너무 긴 이야기가 될거에요.

- 편의상 남자친구는 '군'으로 하겠습니다.

1#첫 만남, 첫 고백
친구의 생일을 기념할 겸, 처음으로 친구들끼리 1박 2일로 여행을 가기로 했고, 군은 친구의 친구로 함께 가게 됐어요. 그게 첫 만남이었죠.
스물 청춘들의 첫 인사가 그러하듯, 우리는 "짠~" 한 마디로 친해졌고, 화기애애하고 알딸딸한 분위기 속에서 대여섯명의 풋내기들은 아주 가까워졌어요.
여행 이후 우리는 종종 만나 저녁부터 아침까지 술을 마시기도 하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기도 했어요.
어느 순간 부터 친구들이 군과 제가 잘 어울린다고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눈치였어요.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둘은 뭐랄까...특별나지 않는 데서 코드가 맞는달까..?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들고 자극하는 포인트가 같...비슷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뭐. 네가 나 좋아하는 것도 알고, 나도 너 좋아하는 티가 났고, 우린 스물이었고, 숙제같은 고백이 남았었죠.
그런데도 고백을 않더라구요. 곧 군대도 가야 할 녀석이 무슨 배짱인지..사랑만 해도 모자랄 시간에 밀당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한 날은, 너무 답답한 제가 자취방으로 불러 단둘이 술을 마셨죠(생각해보니 저도 참 무모했네요).
한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안주 삼아 홀짝홀짝 밤을 새고 있는데, 그래도 이 남자는 도무지 고백 할 생각이 없어보입니다.
결국 저는 코난이 범인을 가르킬 때 마냥 군의 정면에 삿대질을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너! 내가 여자냐 친구냐!" 물었고, 군은 그제야 어버버 했더랬죠.
드디어 고백의 말이 나올 것을 직감했고, 취중고백은 엎어버리면 그만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 얼른 군의 입을 틀어막고는 "자! 자고 내일 맨정신으로 말해! 너 꼭 말 해야된다!!!"며 고백을 내일로 미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드디어 그는 그 말을 합니다.
"사귈래? 아니아니. 사귀자! 사귀는거야!" 서툰 고백이 너무 귀여워 심장이 멎을 뻔 했더랬죠.

후에 군은 이 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고백은 다시 말하자면 확인을 하는건데, 그 확인이 너무 떨리더라. 혹시, 설마, 이런 생각들 때문에 너무 떨렸고, 심지어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실...고백의 포맷에 가까운 말은 군이 했지만, 제가 먼저 고백한거나 진배 없지요.

그렇게 우리는 천진난만한 한 쌍이 되었습니다.


2#기다림만큼 지치고 설레는 일은 없지

고백 이후 커플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실감은 나지 않았죠.
변변한 데이트는 손에 꼽혔고, 대개는 친구들과 여럿이 만나 놀았죠. 오붓한 시간보다 즐거운 시간이 더 많았네요.
(그 때는 그게 참 불만이었는데..지금은 친구들이 더 더 모이는게 재미있는걸 보니..우리 사이, 뭔가가 변하긴 했네요.)
그리고 둘이 맞는 첫 겨울, 제가 학교 프로그램으로 있는 방학중 어학연수를 가게 됐어요. 결국 방학중에 데이트 할 시간도 없이 새 학기가 시작됐죠. 
게다가 그맘때 즈음 해서 하나 둘, 남자 사람 친구들은 나라의 부름에 응하기 시작했고, 군 역시 입대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2년. 몰라요, 그 때 그 시간들이 어떻게 지났는지..사실대로 고백하자면...기다릴 마음은 없었어요.
주변 사람들 얘기 중에 제일 기억에 남았던 말이, 군대 간 남자친구는 택배 기다리듯 기다리는게 아니라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게 아니라고.
그렇잖아도 과 특성상 철야가 찾았고, 이런저런 교내 행사며 뭐며 참가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전역했더라구요.
군이 전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다시 어학연수를 가게 됩니다. 이번엔 좀 더 길게, 이전보다 좀 더 멀리로.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각자 취업을 했고, 장거리 연애가 시작됩니다.
한달에 한두번, 혹은 명절에나 겨우 만나는..

우리의 연애는 기다림의 연속이였고, 사이버 연애가 대부분이였어요.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권태기가 찾아오고, 우리는 이별합니다.


3# 너였으면..

제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랑'이 이유였고, 군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이유'였을테죠.

저에게는 다른 사람이 생겼고, 그는 저를 공주처럼 대했어요.
왜 이렇게나 이뻐할까 의아할만큼, 사랑한다는건 이렇게 하는거야 알려주듯 연애했죠.
그는 나를 만나 행복하고, 내가 제일 사랑스럽고, 내가 있어 다행이라고 했답니다. 추억의 싸이월드가 그랬다고 하네요.
그렇게 행복에 겨운 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
익숙함을 떨쳐내려 몸부림 치지 않아도 될 만큼, 새로운 사람에게 점차 물들어 갈 즈음의 어느 날.
이 사람과 함께 걷는 이 길을 군과 걸었다면, 군과는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이 사람과 함께 먹는 이 음식을 군과 먹는다면, 군은 뭐라고 했을까.
이 사람과 함께 보는 개콘을 군과 함께 본다면, 분명 같은 포인트에서 웃었을텐데.
처음엔 군과 보낸 긴 시간에 비해 새로운 사람이 익숙치 않아서 그러겠거니 싶었는데, 이런 생각이 하나 둘 쌓였어요.
그러다 '군은 군의 방식대로 사랑했고, 나는 내 방식의 사랑을 원했던 거였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됐죠.
아무렇지 않게, 오랜만에 친구와 전화하듯 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저 안부를 묻고, 종종 연락 하자는 의례적인 말을 남기고 끊었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고, 저는 대학원에 진학합니다.

결국 그 1년의 공백은 끝이 났습니다.
영원할 것 같진 않았지만 다소 허무하고 허술한 이별이었죠.

4# 다시

스무살에 만나 스물 셋에 헤어졌던 우리는 스물 넷이 되어서 다시 만납니다.
다시 만난 군은 이전에 비해 체격이 커졌고, 꽤나 '남자'같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스물'이었습니다.
군은 직장을 그만 두고 다른 학과 공부를 위해 학교에 다닌다고 했고, 저 역시 공부중이었으니, 다시 스물이 맞기도 했죠.
군은 우리의 공백 동안 일어났던 나의 시간을 알고 있었습니다.
잘 지냈느냐, 어찌 지냈느냐, 많이 변했네- 하며 다시의 첫 만남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친구처럼, 친구보다는 더 다정한 사이처럼, 우리는 또 얼마의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초겨울.
늘 그렇듯 종강 후 술잔을 기울이던 어느 저녁.
군은 생전 보인 적 없던 박력을 과시하며 "야. 이렇게 손 내밀면. 이렇게 잡는거야."라며 제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살짝 벙-쪄 있다가 이내 울음도 나고, 웃음도 났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5# 남매인듯 연인인듯 부부인듯

다시 만난지도 벌써 이만-큼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보통 3년 내지 4년 만나면 가족이라는데..우리는 그 배가 되는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친구들에게서는 "이정도면 부부 아니냐"하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저는 "부부를 넘어서 남매같다"고 말하고, 군은 "난 지금도 너 보면 떨려"합니다.

우리는 가끔을 길을 지나는 다정한 연인의 모습을 여과없이 부러워하고,
간밤에 있었던 잠꼬대가 웃겼다며 깔깔거리고,
별 것 아닌 일에도 웃음 삼았다가, 울음 삼기도 하고,
이전보다는 서로를 좀 더 받아들이기도 하고,
이젠 좀 투닥거릴 줄도 알고,
짓궂은 장난으로 경쟁 아닌 경쟁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했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도 있겠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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