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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전 정성일평론가가 최고의 전쟁영화라 극찬한 그 영화(bgm주의)
게시물ID : movie_653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zlatan09
추천 : 6
조회수 : 90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3/03 18:53:58





박찬욱 감독의 2000년 9월 개봉작이었던  ​​​​에 대한

​정성일 영화 평론가의 글입니다.

벌써 나온지​

 벌써 17년전 영화가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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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2001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되

수상은 못했지만

한국전쟁영화중에는 유일하게 3대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영화기도 하고

그 작품은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경쟁작에 초청되

국내에서도 화제였죠

당시 베를린현지에서도 극찬을 받은 영화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박찬욱이란 예술가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온 작품이기도 

하죠


당시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된 국내영화는 5년만이기도 했죠

당시 도일아시아영화제 최우수작품상부터

국내에서는

청룡영화제 감독상과 

대종상영화제 올해의 작품상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감독상을 

수상하면서 국내와 해외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했습니다..


박찬욱감독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정말 많은 팬을 보유한 

감독님이신데 그래서인지

평론가분들을 이분의 최고작을 놓고 서로 갈리더군요


참고로 이동진평론가는 박찬욱감독의

최고작을 박쥐와 복수의 나의것이라고도 말하더군요


그러나 정성일 평론가 생각은 다른가 봅니다.

정성일 평론가가 생각하는 

박찬욱감독님 최고작은 

공동경비구역 JSA입니다.


  ​​​   맹렬하게 통일을 다그치는 이 순진한 전쟁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2000년 10월/ 정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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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8월 5일 휴전협정에 따라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유엔군으로 부터 북한국 포로송환이 있었다.

그 이듬해 11월 8일 판문점 회담장을 중심으로 공동경비구역을 세웠다.

국제명칭으로는 'Joing Security Area' 약칭 JSA라고 부른다.

 박찬욱 감독의

JSA
이곳에서 벌어진 작은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작은 사건이라는 것이 좀 이상하다.

작은 총격전이 벌어지고,

북한국 초소에서 한 명의 장교와 다른 한 명의 전사(신하균)가 사망하고,

중사(송강호)는 부상을 당한다.

그리고 남한군 병장(이병헌)이 총을 맞고 북한군 초소에서 가까스로

다리를 건너다가 급히 출동한 남한군에 의해 구조된다.

유엔은 중립국인 스위스에서 (한국인 아버지를 둔 스위스 국적의)

소피 장 소령(이영애)을 책임수사관으로 파견해서 이 사건을 조사한다.

소피 소령은 진술서와 현장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들 사이에 정말 무슨 일이 생겼는지 파고들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쉬리」와 같은 방법으로 출발해서

정반대

도착한 영화이다.

박찬욱 감독도 강제규감독과 마찬가지로

분단 모순을 영화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쉬리」가 액션영화에 몰두하는 만큼이나 미스테리와 추리,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밀어부친다.
정말로 이 영화는 분단 모순을 정면으로 다룰 생각이 전혀 없는 영화이다.

그래서 사건을 따라서 정면으로 승부하는 대신 의도적으로
그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만든 다음 퍼즐처럼 짜맞추는 일에 몰두한다.
추리소설과 하드보일드 풍의 스타일, 미스테리와 코미디가 사방에
지뢰밭처럼 널려 있다.

 

게다가 지뢰를 숨길 생각조차 없다.

 

처음에는 우리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다음, 사건을 파악할 때 즈음에는

조마조마하게 몰고 간다.

여기에는 역사 앞에서 분단 현장을 엄숙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그 어떤 의식적인 배려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는

진정성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아리어리야말로 어쩌면 우리들을 처연하게 만드는

반성적 성찰에로 이끌고 간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안에서 공공연히 그 자신이 한국전쟁의 경험과

무관한 전후세대라는 점을 선언한다.

거리낌없이 온갖 통일 논쟁으로부터 고개를 돌린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분단과 통일을 논쟁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쟁 없는 전쟁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전쟁영화라고?

그렇다.


그것도
아주 순진할 정도로 전쟁영화 속의 군인들의 장르적인 컨벤션을
동원하여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그러니까 시종일관 그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미스테리로 풀어나간다.

박찬욱 감독이 그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면서
거의 한눈을 팔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의아할 지경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영화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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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어찌되었건 남북한 문제가 나오고, 그 모순의 최전선인

​판문점에 이르면 그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한다.

이데올로기 논쟁색깔론

비수를 들이민다.

그 안에서 무언가 불편하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분단은 우리들의 역사이자 현실이다.

그 앞에서 그 어떤 영화도
한 가지 입장
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JSA​​
시침 뚝 떼고 판문점 경계선에서 벌어진 총격사건을 외국영화처럼
그려내기로 작정한다.

(이 말이 오해 없기를. 말 그대로 할리우드영화가 아니라

'외국'이라는

어휘 그대로의 느낌으로 공동경비구역에서의 사건을 다룬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벌어진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면서
우리들을 그 모든 입장으로부터 뚝 떼어놓는다.

그 어느 누구의 입장에도 서지 않는 그 순간,

그래서 반공영화빨갱이 영화 사이의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으면서,

 (스위스에서 온 소피 장 소령을 내세워 관객인 우리들에게조차)

마치 그 어떤 다른 외국에서 벌어진
사건처럼 친절하게 이 나라의 분단이 왜 생겼으며,

판문점이 무엇인지 일러주면서,

아무 망설임 없이 남북한을 왔다갔다하면서,

미스테리가 되어버려야 하는 이 전쟁영화의 조건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깔깔대고
대놓고 웃는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영화 속의 장르

영화 바깥의
현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가
만들어낸 장르 안에서의 아이러니가 현실을 휘저어놓고,

장르의 법칙을 기어이 굴복시키면서 차례로 등장인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주인공들의 영화적인 선택 속에서

자꾸만 현실이 빚어내는 비극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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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국과 북한국 병사들의 동선을 따라 평범하게 원형이동하는

카메라가

남북한 분단의 경계를 뛰어넘는 통일의 염원으로 읽히고,

대치하는 두 진영의
병사들 사이에서 생겨난

우정이 (적군을 이라고 부른다!) 빚어낸 대사들이

영화 바깥의 남한의 심의기구를 예민하게 긴장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18세 등급으로 나왔다가 재심에서 15세 등급으로 다시 조정되었다)  

당연히도 그저 잘 짜여진 추리 드라마의 전쟁영화로 보아야 하는
이 영화가 우리들의 현실 안에서 비극을 일깨우고 분단의 아이러니에

어쩔 줄 모르게 만든다.

그리고 이 웃음이

더 이상 이런 어이없는 아이러니를 연출하는 상황에

제발 이제는 종지부를 찍자고 간절하게

호소한다.

 

이 영화는 정말로 손에 땀을

쥐면서 웃자고 만든 영화이다.
그런데 보는 동안 자꾸만

눈물이 난다.

우리들의 현실은 이 순진한 전쟁영화 앞에서 부끄러워진다.

이보다 더 맹렬하게 통일을 다그치는 우리 세대의 영화를

나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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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정성일 평론가가 가장 좋아하는 박찬욱감독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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