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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외할아버지의 영화같은 삶.txt
게시물ID : humorstory_2095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불이
추천 : 10
조회수 : 68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0/12/23 12:26:15
저희 외할아버지는 1916년 1월생이십니다.

빠른 16년생... ㄷㄷㄷ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 계시구요 저희 외할아버지께 직접 들은 얘기를 전합니다.







1916년 1월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심.


청년기에 만주와 일본을 오가며 보따리 무역상을 하셨는데 돈을 어마하게 범.

만주 한번 갔다 오실때마다 쌀자루에 돈을 가득 담아서 오셨다고 함.

사촌들을 돈세어주는 사람으로 고용함. 돈세다가 찢어진건 그냥 가져가라 함.

고향인 의성에서 알아주는 부자가 됨.


만주에 계실때 2차대전이 발발. 

만주에서 급히 조선으로 오셔야 하는데 그 돈을 가져올 방법이 없어 

만주 벌판에 할아버지만 아는장소에다 돈을 묻어 두고 조선으로 몸만 옴.

말씀으론 지금시세로 수억원은 될거라 하심.


집으로 오자마자 일분군에 징용 당해서 싸이판으로 떠남.

싸이판 전선에서 전 부대원이 다 죽었는데 일본인 소대장이랑 외할아버지만 살아서 돌아오심.

외할아버지께서 싸이판에서 돌아오는 동안 외할아버지가 전사했다는 통지서가 와서 집안이 발칵 뒤집어짐.

동네 근처에 도착한 외할아버지는 자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접함.

왠지 뻘쭘해져서 집에 바로 못오고 동네 뒷산에서 해질때까지 서성거렸다함.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고 하심... ㅋㅋ


해방된후 그동안 벌어둔 돈으로 의성 비안국민학교 앞에 과자가게를 여심. 

과자가게 초대박 남.

원래 부자였는데 더 부자가 됨.


그러다 6.25사변 일어남.

자전거랑 소달구지에 가재도구 챙겨서 청도로 피난.

철없는 저희 어머닌 소풍가는 줄 알았다고 함.(저희 모친은 42년생, 당시 아홉살)

피난가서도 잘드시고 편안히 계셨음.

전쟁이 끝난후 고향에서 계속 과자가게 하심.


1955년에 전재산을 챙겨서 대구로 올라오심.

대구에선 잡화가게를 여셨는데 고향사람들의 무료숙소로 쓰임.

고향사람들이 대구에 볼일 있어 올라오면 무조건 외할아버지댁에서 묵고감.


그러다 부산에 연탄공장을 설립하심.

전재산을 다 털어 넣었는데 알고보니 사기 당한거였음.

대구에 잡화가게랑 집한채 남고 전재산 싹 다 털림.

어릴적 외갓집에가면 낡은 등나무가방이 있었는데 외할머니께서 그 가방을 못버리는 이유가 

사기 당할때 돈넣어서 들고간 그방이 그 가방이라고....ㅠ.ㅠ






그 이후엔 대박을 못내시고 그냥 잡화가게만 하시면서 그럭저럭 생활하심.






몇년전 외삼촌께서 외할아버지모시고 만주에 다녀왔음.

외할아버지가 예전에 돈 묻어 놓았던 장소에 가자고 하심.

그 장소에 가보니 군부대가 들어와 있어 철조망이 쳐져있음.

돈묻어 놓은 장소가 바로 보이는데 못들어감.

외할아버지께서 막 우셨다 함.

외삼촌이 그돈 지금 파내봐야 쓰지도 못한다며 억지로 달래서 오심.






아흔이 훨씬 넘으신 연세인데도 자전거 타고 다니실 정도로 정정 하십니다.

항상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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