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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computer_3383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이스트리아
추천 : 10
조회수 : 540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7/03/11 16: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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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컴퓨터를 처음 만났던 때는 8살때였다. 아버지를 따라 갔던 광고사에 놓여져 있던 컴퓨터.
 나보다 3살 많은 형이 키보두를 두드리며 심심해 하던 나에게 보여주었던 또 다른 세상.
 형의 손에서 화면이 바뀌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을 멍하니 구경했다.
 형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세상이 바뀌었고 모든 행동이 신기했다. 그 모습은 마치 마법사 같았다.
 집에 있던 게임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놀라운 물건이었다.
 아버지께서 일을 마치신 뒤 돌아가는 길에서 우리 가게에도 저런거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조용히 웃으셨다.
 아버지의 웃음 뒤의 씁쓸함을 당시의 나는 몰랐다.
 세를 들어서 장사하시는 어머니의 가게, 그 곳이 내가 부르는 집이었다.
 가게 뒷켠에 있는 조그마한 방이 우리 가족이 사는 집.
 나에게 그런 환경은 당연했고 다른 집을 보았을 때도 우리집 하고는 조금 틀리구나 정도였다.
 집이라는 곳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 편안한 휴식장소가 아닌 잠을 잘 수만 있으면 되는 곳이었다.
 그런 생활을 하는 우리 가족에게 컴퓨터를 살만한 돈이 있을리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그만한 돈을 쓸리 없었다.
 그렇게 컴퓨터는 나에게서 잊혀져갔다.
 하지만 바로 2년 뒤 컴퓨터의 대대적인 보급이 시작되면서 친구들 집에 하나 둘씩 놓이면서 나는 컴퓨터를 다시 만났다.
 파란 창과 함께 다시 만난 컴퓨터는 예전 내 기억속의 모습과는 또 달랐다.
 나는 그 친구네 집에 놀러가는 일이 일상생활이 되었고 컴퓨터에 빠지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 때가 아닌가 싶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 가족은 24평의 집으로 이사를 했고 아버지는 입학선물이라면서 컴퓨터를 사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큰 지출이었고 어머니의 핀잔과 바가지를 감당하셨던 아버지께 위로와 감사를 전한다.
 사촌형이 놀러와 설치해준 스@, 워@, 파@ 등은 내 중학교 시절을 함께 했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인터넷이 이미 보급화되기 시작한 때라 온라인게임 라@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수능을 맞이했는데 수2 난이도와 실수 덕분에 원하던 의대나 약대를 포기하였다.
 허나 수능을 잘봤다고 가정하여, 지금 다시 고르라고 해도 의대나 약대보다는 지금 갔던 학과를 고를 것 같다.
 컴퓨터과는 아니었지만 전기전자과는 나에게 컴퓨터의 기본적인 원리부터 시작해서 세부적인 원리를 알려줬다.
 그중에서도 나는 프로그램쪽에 관심이 있어서 전공수업을 들으면서 복수전공으로 컴퓨터를 들었다.
 당시 수업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교수님의 말씀은,
- 지금 여러분이 쓰고 있는 OS는 얼마입니까.
 나에게 OS는 언제나 컴퓨터와 항상 함께 있던 존재였고 나 자신도 포멧을 하고 재설치를 할때 돈을 주고 샀던 기억은 없었다.
 컴퓨터를 사면 같이 오거나 다른 경로로 다운 받아서 OS에 투자하는 돈은 아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봅시다. 누가 당신이 낸 물품을 지적재산을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나는 교수님의 말씀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니,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무의식적으로 아깝다고 생각했으니까.
- 정말 그들이 몰라서 비정규경로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두는 것일까요. 그들도 학생 때에는, 또는 OS에 투자할 만한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OS의 가격이 부담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명한명 가려내는 것도 상당히 고된작업이기에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말씀하신 교수님은 잠시 숨을 고르시고는 말을 이어가셨다.
- 아까하던 이야기로 돌아가봅시다. 아까 여러분의 지적재산을 무단으로 사용한다는 예를 들었죠. 이는 여러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것일까요.
 절도. 아마 수업을 듣는 모두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스쳐지나갔을 단어.
- 그렇죠. 절도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여럿의 부류가 있습니다. 컴퓨터를 조금 쓸줄 아는 사람일 수록 OS에 대해 무신경해집니다. OS 그거 그냥 다운받아서 설치하면 되잖아. 인증은? 크랙으로 해야지. 그리고 그걸 아주 당당하게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절도를 자랑스럽게 말한다는 거죠. 마치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자신들의 죄목을 자랑스럽게 읊듯이 말이죠.
 교수님께서 그들의 흉내를 내시며 말하자 잠시 굳어졌던 분위기가 풀렸고 그 모습을 보시고는 빙긋 웃으셨다.
- 저는 이 수업을 듣는 여러분이 적어도 그런 사람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정품을 쓰라는 것도 아닙니다. 금전적인 문제는 사람마다 다 다르고 민감한 부분이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하는 행위가 정당한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만 명심하면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교수님은 점심을 맛있게 하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강의실을 나가셨다.
 
 원래 쓰던 SSD가 포멧해달라며 비명을 지르기에 윈10 부팅디스크를 꽂고 기다리다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설치가 완료되고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나는 조용히 버튼을 클릭했다.
 잠시 후, 나는 나 자신에게도 떳떳한 사람이, 교수님 앞에서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제목 없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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