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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이 인용되던 순간, 세월호 가족들은
게시물ID : sisa_8643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권종상
추천 : 4
조회수 : 80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3/12 06:06:38

이정미 재판관이 박근혜 탄핵에 대한 인용 여부에 대한 판결문을 읽어나갈 때, 아마 적지 않은 이들은 왜 세월호 문제가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는지 의아해하셨을 겁니다. 그건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던 이들 모두가 비슷한 감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침통한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을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 판결문을 또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요. 

판결문 속의 세월호 관련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건은 모든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고통을 안겨 준 참사라는 점에서 어떠한 말로도 희생자들을 위로하기에는 부족할 것입니다. 피청구인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보호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하고 직책을 수행하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합니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하여 피청구인이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하여야 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의무까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피청구인은 헌법상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와 같은 추상적 의무규정의 위반을 이유로 탄핵소추를 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어,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는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 없으나,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입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이 부분에서 망연자실했을 겁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탄핵이 기각될 거라고 생각한 분들도 있으셨을걸로 압니다. 지켜보던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그렇지만 바로 뒤에 이어지는 최순실의 국정개입 문제, 그리고 권한남용 부분에서 전개된 추상같은 법논리가 탄핵을 예감하게 했지요. 그리고 바로 주문 낭독으로 이어지자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도 그 환호에 동참할 수 없었던 세월호 부모님들의 얼굴을 보았을 때 죄송하고 마음이 먹먹해져왔습니다. 미디어몽구가 촬영한 영상엔 바로 탄핵이 확정되던 그 순간에 헌법재판소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판결을 기다리고 계셨던 그 분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이정미 재판관의 주문판결 순간, 그녀가 주문主文 을 읽는다기보다는 주문呪文 을 영창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말 한 마디로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 지도 모르는 순간. 그것은 현실 속에 놓인 비현실이라는 느낌이었고, 동시에 엄청난 긴장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문은 영창됐고, 우리가 그리던 꿈은 현실이 됐습니다. 정의의 실현이 이뤄졌다고 모두가 환호하던 그 순간, 노란 옷을 입은 그 분들은 아직도 그냥 앉아 눈물 흘리고 있었습니다. 예은아빠가 외치는 소리 "왜 우린 안되냐고요, 우리 아이들 왜 죽었는지 그거 좀 알자구요." 를 외치며 마이크를 잡고 통곡하는 것을 화면 너머로 보는 순간, 저도 그냥 꺼이꺼이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승리의 기분에 들떠 있지만,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기억해야 합니다. 어디 세월호 유가족 뿐이겠습니까. 백남기 어르신의 문제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디 그렇게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이들 뿐이겠습니까. 기르던 닭과 가축을 AI와 구제역에 내주고,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한 이들, 노동현장에서 다치고 죽어간 이들, 블랙리스트에 올라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예술가들... 박근혜는 탄핵됐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촛불의 이름으로 요구하고 바꿔야 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정치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각인시켜야 합니다. 

촛불을 든 주인이 저들에게 명령하여 우리의 뜻대로, 정의가 실현되고 평화가 있으며 아픈 사람들, 힘든 사람들이 그냥 버려지지 않는 나라, 기회가 균등하고 발전할 수 있는 그런 나라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촛불혁명 속에서 잊혀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아직도 아홉 명의 가족이, 우리 국민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배는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유가족들은 그 기쁜 탄핵의 날에도 그렇게 눈물흘려야 했습니다. 

이제 촛불의 힘으로 이 분들의 눈물을 닦아드려야 하겠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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