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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뒤에
게시물ID : pony_924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overror
추천 : 3
조회수 : 29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03/12 14: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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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쏴아아아…

눈에 띄는, 죽은 풀빛을 담은 비가 옵니다.

따각 딱.

차갑고 서늘한 바람에 웃지 않는 암말은 쭉 걸어 아무 건물에나 들어서다…

흠칫.

무슨 이유에서인지 깜짝 놀라 몸을 떨고는 옷에 쌓이는 녹색 가루를 털지도 않고 머뭇댑니다.

겁 먹은것처럼 몇차례 몸을 떤 암말이 거친 한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따각. 탁. 닥. 타각.

벌써 바닥에 쌓인 두터운 녹색 가루 위를 구르지 않게 비에 탱탱 불은 나무뼈대를 조심조심 밟도록 신경을 쓰며 집 안에 들어섭니다.

그간 여러 곳을 지겹게도 돌아다니며 살아남았기 때문일까요? 사뿐사뿐 조용히 층계를 올라서는 모습이 놀라우리만치 익숙합니다.

웃지 않는 암말은 음악가를 본딴 작은 모형을 찾아냈고 확 스친 활에 그리운 현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자 귀를 쫑긋 세웠지만 역시 비소리가 더 큽니다.

덜덜 떨리는 발굽에 힘을 주어 오래된 톱니가 고장나지 않을 만큼만 살살, 새파랗게 녹이 슨 태엽을 감자 매끄러운 현이 울리며 아름다운 선율을 자아냅니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음악에 웃지 않는 암말의 눈가는 맺힌 물기 가득입니다.

*찌징*

얼마 지나지 않아 쇠 금 가는 소리가 나고 모형이 움직이지 않아 현이 튕기자 음악은 멈춥니다.

어라? 쭉 잘 참던 암말이 갑자기 울먹울먹 흐느낍니다. 아름다운 음악이 감격스러워서일까요? 모형이 멈춰서일까요? 둘 다 아니라면 슬픈 기억이 떠올랐나 봅니다.

암말은 앉습니다. *끼익* 하고 나무판이 굽어 내리앉는 소리가 들리고, 지금 덮으면 옷 때문에 살짝 작을 닳아헤진 이불이 보입니다. 

재에 녹은 금화빛을 흉내내는 듯 노랗게 갈라진 흰 벽지가 어두침침한 졸린 생기를 잃은 눈에 들어와 쇠를 태우는 불길마냥 흉하다는 평가를 쉽사리 지우지 못하게 합니다. 비가 들이쳐 삭아빠진지 이미 오랜가 봅니다.

번개가 번쩍 치며 천둥소리가 들립니다. 천장쪽에 삐꺽대는 소리가 더 거세지며 시야에 들어오는 빛에 고개를 돌린 웃지 않는 암말은 윤활유 대신 쓰인 향유가 생기넘치는 모형 위에 먼지가 내려앉은 만큼 긴 시간동안 서서히 녹아내린 자리에 마치 눈물 흐른 길처럼 자국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반이 넘게 깨진 창문의 틀에 마침 비가 주르륵 떨어져 고이는 것을 보고 웃지 않는 암말은 옥타비아 모형을 띄워올려 품에 폭 안습니다.
아직까진 공허한 눈을 감은 비닐 스크레치는 수리에 들 재료를 찾아내기를 다짐하며 웃어 잠들 뿐입니다.
출처 다듬기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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