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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양은 못한게 아니라 안한것이라 보이는 이유
게시물ID : sewol_545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UNSC인피니티
추천 : 11
조회수 : 45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3/23 11:26:43
때는 1941년 12월 7일

이날은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에 본격적인 참여가 시작되었던 날입니다.

바로 구 일본제국해군(이하 일본군)이 미국 진주만에 선빵쳐서 각종 군함들을 "격침"시켰습니다.

당시 격침된 군함들은 다양한데

그중에서 나중에 인양에 성공한 대형급 군함들을 나열해보자면

네바다급 전함 네바다 27,500t  공습당시 폭탄을 얻어맞고 항구입구 근처에서 단단한 땅에 침수로 인한 좌초
네바다급 전함 오클라호마 27,500t  공습당시 좌현에 어뢰를 얻어맞고 전복으로 인해 침몰
콜로라도급 전함 웨스트버지니아 34,130t  어뢰 4~7발과 폭탄을 얻어맞고 격침
테네시급 전함 캘리포니아 33,190t 어뢰2발과 폭탄1발 얻어맞고 다음날 침수로 침몰

대충 보시면 다들 거대한 크기와 어마어마한 무게를 자랑하는 대형 전함들입니다.

네바다의 경우 3개월만에 건져올려서 수리를 했고 다시 현역에 복귀

오클라호마의 경우 손상정도가 심하고, 손상이 덜한 다른 전함들을 먼저 수리하기위해 "방치"되었다가 15개월만에 건져올려서 수리되었습니다.

특히 오클라호마의 경우 전복되었기때문에 더더욱 인양이 힘들었고 그 거대한 무게덕분에 더욱 힘들었다고 봐야하죠.

웨스트 버지니아의 경우 손상이 정도가 심각하여 6개월뒤인 42년 5월달에 인양을 하여 6월달에 건선거에 들어가서 수리를 시작합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42년 3월 25일에 인양하였습니다.

군항내에서 격침되고 수심이 얕아 인양이 쉬웠다고는 하지만 문제는 그어마어마한 무게덕분에

인양이 어려웠고 특히 침몰이유가 대규모 기습에 의한 어뢰나 폭발물로 인한 격침이고 당시엔 당장 필요한 전투함마저 부족한

전시상황이었습니다. 특히 세월호는 대략 6825톤정도이고 물이 가득 들어찼다고 해도 1만톤을 안넘습니다.

전함들의 내부에도 대규모 침수가 있다고 가정하면 적어도 다들 4~5만톤의 무게가 나가는 덩치들을 빠르게 인양해서 수리해서

전장에 내보냈습니다.(너무 늦게 수리되고 신형전함들이 속속만들어져 필요가 없어지자 초계, 호위임무만 맡은 전함도 있음)

다들 최대 15개월정도 걸렸어요. 세월호처럼 3년씩이나 걸릴이유는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건선거나 당장 작업에 쓸 인원도 부족한 전시상황인데도 말이죠

특히 제일 웃긴건 거의 70년전 이야기입니다. 그사이에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겠습니까?

결국 인양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였습니다.

즉 못한게 아니라 안한거죠.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유가족들과 충분한 대화와 합의가 있었으면 적어도 사고발생 1달뒤엔 인양준비 시작해서 3달뒤엔 바로 인양할 수 있었습니다.

유가족들과의 대화도 없었고, 합의도 없었고, 가장 중요한 강력한 의지도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3년간 질질 끈것은 정부의 방해와 의지가 없었고, 또한 가장 중요한 안보이는곳에서 뭔가 해야했기에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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