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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전쟁…
게시물ID : pony_924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overror
추천 : 1
조회수 : 356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7/03/23 19: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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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다.

추운 바람이 분다.

희다.

나는 눈을 떴다.

해는 재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지금 내 곁에 머무는 포니는 없다. 귀가 멍하다. 아까 폭탄이 터졌나? 당장 기억 나는 것은 없지만 아마 그런 것 같다. 눈이 부시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주위엔 온통 반짝이는 보석과 독버섯뿐이다. 어디선가 역한 쇠 내음이 난다. 기름이 끓어 난 증기가 피 향에 섞여 난다. 자세한 것이 궁금해서 살짝 들이 마시자 독을 마신 것처럼 목이 텁텁하고 기침이 나온다.
나는 숨을 몰아쉰다. 진짜 아프다. 그러나 가만히 언덕에 기대어 쉴 시간은 없다. 나는 움직여야 한다. 더 빨리, 더 멀리. 마마를 구하러 가야 한다. 이럴 때 황실 직할 마탑에서 만든 탈 것이 내 앞에 놓이면 참 좋을 텐데. 쓸데없는 생각이다. 얼른 앞발을 들어 나침반을 보고 땅을 박차 뛰었다. 내달리다 보니 어느새 내 숨소리가 들린다.
귀를 쫑긋 세우니 어디에선가 갑자기 쇠 긁는 소리가 들려온다. 기계인가? 나는 고개를 들어 등짐에 매달아 놓았던 총기를 물어 든다. 여긴 내가 맡은 구역이 아니다.
쓴 맛이 난다. 투 뱉어서 탁탁 치자 길고 얇은 포신이 울리며 탄알이 올라와 장전이 끝난다. 철컥. 접힌 개머리판을 펼친 나는 여러 곳을 둘러보았고 기계병을 발견했다. 아주 조금 먼 앞쪽에 보이는 피에 젖은 듯 붉은 빛. 나는 조준했다. 타당. 조용하기만 한 소리가 나며 깨끗히 닦인 개머리판이 흔들린다. 뿔과 눈알 사이가 꿰뚫린 적이 쓰러진다. 움직여야 한다. 총기가 무거우니 총알은 이미 충분할 것이다.

얼마나 달렸는지는 모른다. 날씨가 맑게 개었다. 해가 저물고 달이 보인다. 더 빨리 가야 한다. 발굽에 덧씌운 군화가 닳았다. 냇가가 얼어붙어 미끌미끌한 돌이 밟혔다. 나는 그냥 짓이기고 뛰어넘는다. 멀디먼 산 윗편에 성이 보인다. 공주 마마! 곧 지켜드리겠습니다.

어느덧 산 밑을 기어 턱을 넘고 올랐다. 목이 마르다. 동굴에 들어가 흐르는 물을 마셨다. 바닥이 푹 파여 고인 곳에는 풀이끼를 갉아 먹는 물고기가 있었다. 나는 물고기를 때려 치우고 풀이끼를 모아 씻을 뒤 주둥이에 가져가 씹었다. 쓰다. 빨리 나가서 다시 산을 올라야 한다. 무엇 때문인지 죽은 땅에 푸른 물기가 고였다. 녹색 점액이 그것을 휘어감아 덮는다. 희어멀건 가루가 퍼진다. 신경쓸 사이가 없다. 나는 스스롤 도닥이며 달린다. 쭉 뻗진 않더라도 구불구불 한 것도 아닌 길이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황성의 경계탑이 보인다.

나는 숨을 내쉬었다. 보루가 까진 발굽에 닿았다. 하늘을 나는 것들이 보인다. 뭐지? 검고 빠르다. 거친 날개가 눈에 띄나 깃털이 없다. 새가 아니다.

불안해. 나는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들어갔다. 마마를 찾아야 한다. 계단을 뛰어 올라 집회실을 본다. 붉다. 피 냄새가 난다. 아닐거야. 빨리 걸음을 떼어 가까이 보이는 침실 문을 연다. 곰팡이 핀 흰 고치가 보인다. 난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은 창문에 가까이 붙는다. 창이 깨져나가며 난 물에 빠진다. 모르겠다. 밭에서 풀이, 숲에서 나무가 무럭무럭 커가 듯 자라난 고치가 물에 가라앉는다. 나는 빠져나와 불타는 숲 가까이 가 걸터 앉는다. 뼈가 부러졌는지 가슴이 욱신거린다. 토할 것 같아 빠진 이빨과 함께 피를 뱉는다. 땅에 스미는 피가 붉다. 공주 마마를 그린 금화가 안장에서 튀어나와 구르다 다가온 불에 녹는다. 삐꺽대는 문이 보인다. 왜인지는 몰라도 피가 불어나 내음이 짙다. 난 일어서 문을 연다. 그러자 내
뿔이 빛을 거뒀다.
…시야에 들어온 건 낡아빠진 문이었고, 꺼진 불이었으며, 온기가 빠져나가고 핏기가 가셔 생명이 깃들었단 증거조차 찾아볼 수 없는 시체더미였다.

기억이 돌아온다. 내가 찾아낸 건 고통스러운 현실이었다. 썩어가는 고기. 빛나지 않는 해. 밝던 불을 잃은 달. 깨진 안경알이 떨어졌다. 눈가에 물이 고여 흐른다.

나는 총을 짚어 짧게 자른 갈기 안에 꽂고 방아쇠를 누른다. 찰캉. 나는 죽지 않았다.
탄알집을 빼냈다. 든 게 없다. 나는 아까 공주 마마의 곁에 떨어트린 탄을 주워들어 쎄게 힘을 주어 끼워넣었다. 개머리판에 눌려 주머니가 부풀자 실밥이 끊기고 드러난 살갖에서 피가 배여나온다. 격한 통증을 느껴 몸이 떨리자 녹슨 갑옷이 쩌억 하고 갈라진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공장처럼 금이 간 벽돌이 쌓인 창고의 빈 창가에 달이 보인다. 눈에 달이 비친다. 높이 뜬 달과 함께 내 눈에 빛이 녹아들듯이 두 어머니께서 살아남아 우리를 이끄샤 일군 나라를 바라보고 기삐 지키시리라. 나는 방아쇠를 꾹 누른다. 금이 갈 만큼 돌아간 포신이 울리자 총구에서 먼지가 쏟아진다. 내가 나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가던 나날에 마지막으로 본 달은 다시 밝았다.

어머니, 미안합니다.

잠에 든 것과 같이 검다.
출처 보라색 털과 눈을 가진 작은 포니가 지니고 다녔던 목걸이에 화창한 햇살처럼 따스히 세겨진 글씨가 이제 더는 빛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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