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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문과와 정통이과가 만났을 때.
게시물ID : wedlock_75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요레요레요
추천 : 24
조회수 : 3082회
댓글수 : 26개
등록시간 : 2017/03/27 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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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뵙습니다.

어제, 아이의 생일이라 간만에 아이의 손길이 잔뜩 들어간 아침상을 받았습니다.
처가의 전통 비슷한 것인데 생일에는 꼭 부모님께 아침상을 차려드렸다고 합니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장모님도, 아내도, 또 형님께서도 그래온 것이기에 우리 아이도 세 살 부터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상을 내옵니다.
(물론 세 살 때는 서빙만 했습니다.)

아무 맛도 안 나는 미역국과 설익은 계란후라이이지만 온 가족이 행복하게 아침을 시작했네요.

아내는 그야말로 '모태 문과' '정통 문과'생입니다. 
반면 저는 골수 이과생입니다.

이런 제게는 저와 비슷하게 생긴, 후덕하고 사람 좋게 생긴 산적 네 마리 친구가 있습니다.
저희는 남중-남고-공대및의대-군대를 나오며 당연하게 여자를 제대로 사귀어본적이 없었고

그 중 저와 가장 친한 A는, 지금으로 말하면 썸만 타다 호구가 되어 버려지는 아픔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썸'이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지금의 제 아내를 처음 소개하던 날, 멀리서 다가오는 아내를 보고
저 여자는 분명히 다단계를 한다. 너는 속고 있다.
몰래카메라다.
빚이 많은 것이 아니냐.
뒷통수에 눈이 하나 더 있을 것이다...등등의 극악한 반응을 쏟아냈고

A는, 자신을 가차없이 내버린 그녀와 같은 국문과라는 이유만으로 '문과생은 믿을 수 없다' 라며
제 아내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여자와 말하는 법도 모르고 눈도 못 마주치는 네 녀석은 점점 삽질을 했고
1시간 가량 제 아내를 방치한 채 대화의 흐름을 전기전자공학과천체물리와암의정복과 신약개발등으로 몰아가고야 말았습니다.
아내의 표정은 평온했지만, 제 마음은 타들어갔습니다.

그 때, A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저희 노는 거 재미없지요? 그냥 우린 이런 얘기하며 놉니다."
아내는 해맑게 웃으며

"아니에요- 자막 없는 예술 영화 보는 것 같아요~"라고 얘기했고

A는 그것이 비꼬는 것이라 오해하고 
"그런 쓸데없는 영화를 왜 봅니까~!"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아내는 아직도 저희 다섯마리의 귓가에 선명한,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배우들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요- 이 영화는 소장하고 싶네요.^^"

친구들은, 다음날에도 이 얘기를 했고
그 다음날에도 이 얘기를 했고
만날때마다 이 얘기를 했습니다.

A녀석은 '이게 바로 올바른 문과생의 힘인가.' 라고 하더군요.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생각이 난다고...

아내는 결국, 그 영화를 소장하게 되었고
배우들과도 절친이 되었지만
아직, 제가 예술영화로 완성은 못시켜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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