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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수 내인생 20170403
게시물ID : freeboard_15182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전1시9분
추천 : 3
조회수 : 31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4/03 22:43:43
 
누군가는 아홉수를 만으로 센다고도 하고, 스물아홉이 된 해에 이제 아홉수네 하고 빈정거리기도 한다.
스물아홉해가 끝날때 쯤 만으로 스물아홉이니까 결국 아홉수는 통상 이년인건가? 징하다.
 
스물아홉해가 된지 얼마 안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언니는 내게 왜 니가 이별할때는 항상 누군가 죽는걸까. 하고 말했다.
굳이 아홉수라고 하는 이유는, 이번엔 이별한사람도, 죽은사람도 둘다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정도로 재수가 없으려면 아홉수 핑계를 대지 않고서는 모든게 다 내탓만 같다. 
 
총 8분기의 아홉수중에 이제 겨우 1분기 지났을 뿐인데, 얼마나 더 재수없으려고 이렇게 임팩트있나 싶다.
 
설을 앞둔 어느 눈이 많이 오던 날 할매가 떠났다.
 
장례식장은 마치 다른세계에 와있는것 같았다. 목전에 영원한 이별이 있음에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나는 이제 그녀의, 비닐같이 버석거리는 손등을 만질 수 없다.
그녀의 초점잃은 눈동자를 바라볼 수 없다.부족한 의치 사이의 익살스런 표정을 따라 할 수 없다.
초콜렛을 한입 더 크게 넣어 줄 수 없다. 그녀는 잠수종에 갇힌 나비같았다.
분명 꿈속에서 할매는
뜨거운 국수를 후후 불어 후루룩 먹었으리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을 크게 한입 베어 먹었으리라.
일본여행을 하며 지나간 청춘을 밤 새 이야기 했으리라.
그리고 매일저녁 아랫목에 갓지은 공깃밥을 넣어놓고
집에오는 그의 아들과 손녀를 위해 김치찌게를 한솥 지었으리라.
언니와 나는 하염없이 겁이나 울었다.
얼마지나 옛이야기를 꺼내며 비 현실적인 상황속에서 배가고팠다.
주먹밥을 먹으며 꼴이 우스워 웃음을 자지러지게 지었다.
그리고 곧 다시 감당못할 슬픔이 다시한번 찾아왔다.
 
나와 언니는 왕따였다.
어린 나에게는 그저 큰집언니들은 깍쟁이였지만, 만화를 실컷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세살터울 언니는 철이 들어 새벽녘에 어른들의 빈정거림과 우리가 얼마나 애물단지인지에 대해 들어야했다고 한다.
단순히 내 엄마와 아빠는 이혼했을 뿐이었는데, 우리는 왕따가 되었다.
할매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찾았다고 했다. 고모를 나로 착각해 하염없이 이제왔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왕따였다.
친지들 사이에서 섞이지 못하고 경멸하는 눈초리의 대상이 되었다.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들과 그의 자식들은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이 되었겠지.

염을 끝낸 그녀의 몸은 너무 작은 소년의 체구였다. 허리가 굽었지만 풍채가 좋던 그시절의 할매는 이제 13살 소년의 체구같았다.
고개를 뻗어 베개를 베고 있는 할매의 모습은 마치 수의를 입힌 인형같았다.
가지런히 빗질해놓은 머리는 뒤로 넘겨져 있었고, 적은 숱의 눈썹은 그대로였다. 입술은 부르텄었고, 검버섯이 자리했다.
지난달 보았던 콧망울에는 상처가 자리했고, 할매의 복스러운 부처님귀는 뒤로 쳐져있었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었던 영혼없는 얼굴. 그녀의 빈껍데기. 너무나도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그녀의 껍데기.
할매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얼음장보다 차갑지만 매끄러웠던 할매의 볼에 내 볼을 갖다대고 귀에 속삭였다.
늘 그랬던 것 처럼 입을 맞추면 눈을 뜰 것만 같아서. 늘 그랬듯 쳇 하고 웃을 것 만 같아서
잘 들리지 않던 그녀의 귓볼에 사랑한다고 속삭이면 나도 하고 장난스럽게 말 할 것 만 같아서 나는.

그녀의 차가운 껍데기마저도 너무나 사랑했기에.
왕따였던 나를 끝까지 믿어주었던 나의 영원한 친구이자, 아가페
 
늦어서 미안해 할매, 너무너무 미안해 자주 왔어야 했는데 너무너무 미안해 할매
할매가 죽을것만 같던 순간이있었다. 어느날은 심장이 너무나 두근거리고 자다가 울며 깬날 할메가 죽을 것 만 같아서 흔들어 깨우기도 했다.
이불 속에서 울면서 기도하기도 했다. 할매가 죽으면 나는 정말 혼자라고 생각했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할매 말버릇은 아이고 죽겠다 였는데 그때는 그말이 협박으로 들리기까지 했다.
할매는 죽겠다고 하며 20년을 더 살았다. 그리고, 오늘 할머니는 정말로 죽겠었나보다.
 
할매는 나를 네살때부터 22살까지 키웠다. 내인생의 대부분이 그녀였다.
내가 일본으로 도망가며 할머니는 집에있을 이유가 없어졌는지 집을 떠났다.

그리고 긴 고독의 여정이 시작되었고, 끝끝내 잠수종에 갇힌 나비가 되어 나타났다.
다시 할매를 보았을 때 나는, 내가 초래한 일이 나의 아가페에게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도없는 로비에서 마음으로 말했다. 할매 나한테 와주라, 나좀지켜주라. 나정말 세상에 혼자인것같아.
등을 토닥이며 오빠가 지나갔다. 불꺼진 방에는 큰집언니가 혼자 향을 지키고있었다.
할매에게 나는, 나는 막내손녀이자, 딸이자, 숙적이자, 친구였다. 가장오랜시간 많은시간을 공유하고 싸운 전우였다.
그러나 잊고있었다. 큰집언니는 할매의 귀하디귀한 첫손녀였으며 그들이 떨어져 지내기 전까지 언제나 큰언니는 첫번째였다는 사실을.
나는 왕따에 애물단지였지만, 큰언니도 나도 똑같은 제 자식의 자식이였던 것이다.
 
할매 내꿈에 나타나서 내머리좀 쓰다듬어주라
사랑한다고 말해주라 내꿈에 자주자주 와주라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 국수 후후 불어서 후루룩 먹자
 
출처 사랑하는사람에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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