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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 싸우는거야
게시물ID : military_688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5142
추천 : 1
조회수 : 27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4/05 20:54:51
쓰다보니 군생활 이야기네요.
글 요지는 마지막 문단에 나옵니다. 스킵하세요 ㅋㅋㅋㅋ..
 
난 한창 뜨거울 여름 7월 말에 군 입대했다.
처음보는 놈들, 처음보는 사람들한테 욕먹으며 울고있는 부모님과 누나들을 뒤로하고
연병장을 한바퀴 돌고 한쪽 구석으로 사라졌다.
 
역시나 욕을 먹으며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우리는 각 지역별로 나뉘어 신분을 검사받았고
거기서 같은날 입대한 중학교 친구를 만났다. 생전 처음보는곳,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을 가지고 있을 때
이 둘이 만난건 엄청난 우연이었고 우리는 3일동안 단 1초도 떨어지지 않았다.  3일동안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를 밥을 쳐먹고도
똥이 나오질 않아 그럴 수 있었다.
아침에 기상하면 생전 처음 만져보는 모포와 이상하게 생긴 냄새나는 천, 그것들로 감싸고 잤던 매트리스를 각을 잡고(이 매트리스가 얼마전에 봤는데
어느 수용소에서도 이런거 쓰더군요) 집합을 하고 밥을 입에 쑤셔 넣고 다시 모여서 잡초등을 뽑고 밤에 청소하고 나서 누우면
몰래 편지를 쓰거나 훌쩍거리기도 했다.
내가 왜 이곳에 와있지, 집에 가고싶다, 엄마보고싶어, 아빠 미안해, 누나들.. 앞으로 난 어떻게 될까? 온갖가지 생각이 짬뽕이 되어
머릿속을 흔들었었고 그 와중에 내 친구와 서로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 버티고있었다.
2일째되는 날 밤에 당직병에게 100kg이 넘는, 키는 190쯤 되어보이는 엄청난 거구의 친구가 담배한대만 피게 해달라고 무릎꿇고 엎드려
비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친구는 3일째 되는날에 단호한 표정으로 담배피고 싶어 중도퇴소를 하고 싶다고 말하고있었고
당직병은 황당한 얼굴로 이새끼를 어떻게해야하나 라는 표정으로 지켜보고있었다.
 
3일째 되는날 친구와 나는 각기 다른중대로 헤어졌다. 당시 70kg대였던 나는 90키로가 넘어 뚱보소대로 배치된 친구와 영영 이별하게 된것이다.
그렇게 군에서 마지막 남았다 생각한 의지할곳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훈련소 시간은 정말이지 너무너무 힘들었다.
시원한 물을 주지 않는다(배탈난다고).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 훈련 받으면서도 목을 축일 수 있는것은 70년도에 만들어진 수통에 담겨진
미친듯이 뜨겁거나 혹은 그와중에 조금 식은 따뜻한 물이었다. 먹으면 오히려 땀이 더나는..
말이 45분훈련 15분휴식이지.. 누군가 마지막 구령을 시원하게 불러일으켰고 그로인해 45분동안 한자세로 그 뙤약볕에 서있어야 했다.
난 결벽증이 조금은 있었는데 내가 밤에 당직병 몰래 화장실에 가서 그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빨래를 하면 중대별로, 소대별로 모아서 속옷을 널어놓는데ㅋㅋ.. 처음엔 누가 훔쳐가도 남은 팬티로 살았지만
팬티가 아예 안남아버려 노팬티로 훈련받은 그날 나는 누구의 속옷인지, 그사람이 피부병이 있던 말던, 화장실에서 변을 잘 닦던 말던
이팬티가 잘 빨렸던 어쨌던 그냥 훔쳤다. 그 생활을 하다보니 내가 훔친 팬티인데 내 이름과 내 전용 마크가 새겨져 있는 팬티를 훔친적도있었다.
훈련소에서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로 소대장 훈련병 생활을 하며 목이 완전히 맛이 나가버렸고 사격1등, 모범훈련병으로 뽑힌 이후 전화통화를
할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여자친구, 부모님께 각 1통씩 했지만 여자친구는 엄청나게 울면서 목소리가 왜그러냐며 괴물이 되었다고 했고
내 목소리는 부모님 가슴에 대못이 되어 박혀들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소총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엄청나게 겁먹고 들어가서 수류탄 던지는 방법을 배웠다. 발바닥에 물집은 안잡히는데 PRI나 기타 훈련에서 생기는 상처는 어쩔 수 없는거 같았다.
내가 왜 이곳에 와서 이런 살인 기술들을 배우며, 왜 소중한 이들로부터 헤어져 살아야하는가..
이 생각을 버리는데 정말 오래걸리고 힘들었던거같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참고 견디면 2년이 지나있다' 등 수 많은 말이 있었는데
나를 합리화 시켰던 말은 의무고 나발이고 X도 아닌 '내가 이렇게 힘들 수 있어서 내 가족, 소중한 이들이 발을 뻗고 잔다.'였다.
간혹 인터넷에 보면 '가서 살인기술을 배우고 온다'는 말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난 살인기술을 배우고 온게 아니라 내 가족과 미래의 내 가정을
폭력적인 방법으로부터 이길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왔다.라고
 
그리고 교육기관에 1달, 그 후 자대배치, 2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평생을 처음 보는 사람으로 부터 돌봄, 가르침, 욕설, 폭력을 받아가며 참을성을 길렀고
눈을 쓸며 강원도는 눈이 참 지랄맞게 내리는구나 싶다가도 눈구름이 우리 부대 위에만 떠있는걸 보고
강원도가 아니라 우리부대는 참 지랄맞는곳에 있구나 싶기도 하며 제설 방법등을 배우고
한여름 뜨거운 날에 낫질을 배우고 얘초기를 다루는 방법과 수리방법을 배웠으며
나보다 15년은 더 일찍 만들어진 삼촌뻘 되는 차량에 타서 6.25때 썼던 북한군 무기를 기름칠 하며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고
무전용어를 익혀 무전을 하며 밤새 훈련을 뛰고 산을 넘고 벌레와 밥을 먹으며 들개한테 공격도 받아보고
산에서 노숙은 기본이었고 손과 발을 잘라버릴까 심각하게 고민도 해보고 산하나를 단독군장을 메고 풀탄창을 가지고 10분만에 중턱까지 뛰어
올라가 보기도 하고 훈련상황이라 한겨울에 물이 철철 흐르는 곳에 납짝 엎드려 숨소리마저 참아보기도하고
높은 사람 온다고 칫솔로 온갖 곳을 다 닦아 보았고
내 가족, 내 소중한 사람들을 보려고, 강원도에서 전라남도 끝 얹저리까지 10시간이 넘어가는 버스에서 한숨도 못자고 울먹이면서 갔었고,
맨발로 뛰쳐나오는 어머니를 보며 서로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고 마음이 식어버린 여자친구에게 가서 무릎 꿇고 돌아와 달라고 빌어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그랬지.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었는데 보는 눈이 없었나. 아니면 아직까지도 옆자리가 빌 것을 예상한 나였을까)
 
인터넷에 나온거처럼 휴가를 나와서 집에 가보니 처음 보는 아줌마가 나와서 이사갔다고 알려주기도 하고
열쇠를 들고 집에 가보니 번호킼ㅋㅋㅋ 였던 일도 있었고(아버지 퇴근할때까지 계단에 쪼그려 앉아있었..)
군대에 적응하고 모든 일에 익숙해지고 간부들과 형동생을 먹고 후임들과 너나 할 거 없이 친해졌을 무렵
또다시 강제로 인연을 끊게 만드는 전역의 순간이 다가왔다.(솔직히 이런생각안들지, 마냥 좋지)
수많은 일들을 뒤로 하고 내 가족을 지킨다라는 자기위안으로 버텼던 내 2년을 그곳에 묻어버리고, 훌훌 털어버리고
나는 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입대전 친했던 대학 동기들과 고딩친구들은 다들 어색했고 싸이월드를 통해 연락처를 받고
그와중에 잃어버린 인연도 많겠지. 일말상초때 바람나 헤어진 여자친구, 복학 했을때는 같이 다닐 친구도 없고 지금처럼 혼밥이 유행하지도
않아서 혼자 옥상에서 밥먹기도 했고.. 제일 엿같았던건 학교 전체가 헤어진 여자친구와 만들었던 추억들 밖에 없어서 그것들을 버리는데
정말 오래걸렸다. 군대 갔다와서 끝이 아니라 군에 들어가며 나 자신을 군인으로 만들었던걸 다시 군인에서 학생화 시키는 작업이 너무 힘들었다.
예비군이라고 냄새난다고 과실에 좀 있지 말라고 소리치던 여협누나들과 예비군 선배들과 아웅다웅 하며 다시 학생화 시키기까지..
2년이 아니라 3년이란 시간이 괴로웠고 아직까지도 재입대 해서 어..?어? 시발 전역한 성병장이 왜 여기.. 난 왜 또 이등병이지 시발?
난 왜 방탄철모를 쓰고 또 이 줫같은 성병장의 방탄모로 쳐맞고 있어야하지.. 시발.. 하다가 온몸이 젖어서 깨어난 적도있고...
그나마 좋은 기억으로 포장해서 그래도 이런이런 장점이 있었지라고 생각하며 자기위안 삼으며 버렸던 2년을 지워가는데만 해도
수 많은 날이 걸리는데..
 
왜 여자들과 씨름을 벌려야 하는지 1도 이해가 안간다.
애 낳는게 힘든것도 알지, 애 키우는것도 장난 아닌것도 알고.
임신 10개월동안 남자들이 생전 처음 겪었던 군대 처럼 생전 처음 겪는 자기몸의 변화에 적응해야 하고
소중한 아이를 낳고나면 엄마로써 아이도 키워야 하고 많은 부분을 적응하고 서로 이해하고 해야 하지..
한때는 여러 남자들한테 대쉬도 받고 xx과 퀸카로 생활 했던 누나들이 아줌마가 되고 배가 불뚝 나오고
초췌해진 피부와 얼굴로 애를 낳고.. 하는걸 보면서 임신과 육아는 정말 힘들구나 많이 이해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군생활을 했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자기 아이를 키우기 위해 임신을 하잖아.
어쩔 수 없이 하는 군생활, 사랑하기에 낳아야 하는 임신
그 둘다 그 자체로 그냥 존경해주면 안되나. 굳이 두개를 비교할 필요는 없잖아.
저사람들 덕분에 내가 밤에 발뻗고 잤어,
저사람들 덕분에 우리나라가 대를 이을 수 있고 번영 할수 있어.
이렇게 보면 되는거 아닌가. 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이렇게 비교를 해가며 서로 본적도 없는 사람들한테
상처를 주고 답도 없는 싸움을 해야하는지 난 이해가 안가..
출처 KCTC나오신 분들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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